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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1화 (21/575)

[21] 디 임팩트 1권 21화

인간 같지 않은 태선군의 힘을 보고도 용주는 겁먹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도현은 왠지 뒤가 든든해지며 새로 힘이 솟았다.

오늘은 이렇게 태선군에게 모욕을 당하고 검까지 빼앗기며 내려가지만, 언젠가는 그 반대가 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태선군!’

“얼굴이 왜 그래요?”

며칠 사라졌다 나타난 도현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고, 몸도 피곤해 보였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홍영에게 도현은 궁색한 핑계를 댔다.

“몸살인가 봐요.”

“어디 봐요.”

홍영은 자리를 옮겨 도현의 옆에 앉아서 손을 도현의 이마 위에 올렸다.

부드러운 홍영의 손이 이마에 닿자 도현은 얼굴이 괜스레 달아올랐다.

“이마에 열이 심해요. 병원에 가 봤어요?”

“이럴 땐 오히려 땀을 빼면 좋아져요.”

“아버지처럼 얘기하네요. 무도인도 사람이에요. 병원에 가는 게 이상하지 않잖아요.”

다정하게 말을 하며 홍영은 도현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가요, 병원에.”

“홍영 씨.”

“얼른 일어나요.”

“정말 괜찮아요.”

도현이 한사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그녀는 다시 맞은편 커피숍 자리로 돌아갔다.

“도현 씨 고집도 정말 알아줘야겠어요. 그런데 도대체 어딜 다녀온 거예요? 전화도 안 되고.”

“그럴 일이 갑자기 생겼어요.”

“3년 전 그 일이에요?”

태선군과 관련된 일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에요.”

“그래요?”

홍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도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뭔가 미심쩍었지만 그녀는 그대로 넘어가는 눈치였고, 도현 역시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려고요.”

“벌써요? 3년 전 일을 조사한다고 했잖아요.”

“생각해 보니, 홍영 씨 말이 맞아요. 3년 전 일보다는, 지금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거.”

도현은 홍영이 준 작은 노트를 돌려줬다. 죽은 홍 사부와 관련된 사람들이 리스트로 기록된 노트였다.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이상 더는 필요 없었다.

“이제 도현 씨와 나만 남은 거네요. 3년 전 사건은 사라지고요.”

노트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하는 홍영 앞에 환영처럼 태선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져 도현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담 없이 얘기할게요. 한국에 있는 본사로 가게 됐어요.”

“네?”

도현은 전에 그녀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님은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비전이 있는 직장, 도현 씨 문제, 그리고 어머니 홀로 계셔야 할 부분.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녀가 거취를 두고 자신을 고려했다는 말에 도현은 목이 뻣뻣해지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에겐 여자는 오직 홍영뿐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그녀를 보고 난 이후 가끔 그녀가 꿈에 나올 때면 가슴이 두근거려 하루가 설렜다.

풋풋한 첫사랑은 어느덧 성년이 된 뒤에도 계속 이어져 그의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홍영과 그 사이엔 태선군이라는 거대한 철벽이 생겨 버렸다.

아버지 복수를 하기로 작정한 그이기에 태선군을 잊고 그녀와 알콩달콩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가까운 사이로 맺어지기란 불가능했다.

어떻게 홍영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그를 잊고 그 모든 걸 모른 체하며 그녀와 사귀겠는가.

도현은 처한 현실이 서글펐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자신을 구해 줬던 청선에 대한 한 가닥 미움도 생겼다. 애초에 그가 3년 전 도관을 비워 도둑이 들지 않게 했더라면 아버지도 살아 계셨을 테고, 눈앞에 홍영과 웃으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찰나지만 온갖 가정과 미움 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뛰어다녔다.

얼굴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모습에 홍영은 그저 몸이 안 좋은 것 때문에 그런 것이라 여기며 하던 말을 계속했다.

“제가 행복해야 어머니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결정을 내린 거예요.”

“네에.”

“기쁘지 않은가 봐요?”

그녀의 서운함이 깃든 말에 도현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잘됐습니다. 그런데 홍영 씨.”

말끝을 흐린 도현은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한국 본사로 가는 게 꼭 저 때문은 아니죠?”

“네?”

당황한 홍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니까 제 말은요, 굳이 저 때문에 어머님과 헤어져 한국으로 오는 거라면…….”

“아니에요!”

홍영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쳤다.

그 소리에 커피숍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봤다.

“홍영 씨.”

“아니라고요. 한국 가는 건, 직장에 대한 미래가 보여서예요. 대우도 좋고요. 당신 때문이 아니라고요!”

속사포처럼 말을 한 번에 뱉어 낸 그녀는 무안한 얼굴로 앉아 있는 도현을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요.”

“네?”

“일어나라고요! 저녁은 먹고 헤어져야 할 거 아니에요!”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이 꼭 오래전 처음 그녀를 만나 도장에서 대련을 했을 때 자신에게 자꾸 지자 분에 겨워 씩씩 대던 때와 비슷해 보였다.

“미친 자식. 네가 사람이냐!”

호텔에 몸져누워 있던 용주가 저녁에 홍영과 있었던 일을 담담히 얘기하는 도현의 머리에 베개를 집어 던졌다.

“나도 말을 하고서 당황했어. 후우.”

“복수는 복수고, 사랑은 사랑이지. 네가 얼마나 특별한 놈이라서 너 때문에 한국까지 오려는 여자 가슴에 못을 박아?”

“나 때문이 아니라잖아.”

“척 보면 알 수 있지, 넌 나쁜 놈이야, 새끼야. 아이고 머리야. 이 빌어먹을 태선군, 도대체 내 몸을 어떻게 가지고 논 거야.”

옥룡산을 내려와 상해로 힘들게 돌아온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몸이 아파서 제대로 서 있을 기력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현이 태연한 척 홍영을 만나고 온 건 정신력의 승리였다.

옆 침대에 남방을 벗고 도현은 그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었다.

‘홍영은 괜찮을까? 어깨가 많이 처져 있던데.’

헤어질 때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도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아까 한 말은 너무 좋아서 그런 거라고 얘기해, 자식아.”

“조용 좀 해! 내가 알아서 할게!”

평소 화내지 않다가 화를 한번 내면 엄청 무서운 게 도현이라는 걸 학교를 같이 다녔던 용주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 자식, 괜히 승질이야. 죽을 때 죽더라도 연애는 하고 죽어야지.”

낙천적인 성격의 용주는 입을 내밀다가 금빛 타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도현아, 타투는 괜찮냐?”

홍영의 일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던 도현은 침대에 앉아서 왼팔을 내려다봤다.

검은색에서 금빛으로 변한 뒤로는 아예 변화가 없었다.

“그대로야.”

도현은 말을 하며 타투의 기하하적인 선들을 감싸고 있는 원형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쓰윽 연결시켜 보았다.

그 순간 눈부신 붉은 섬광이 번쩍했고 그곳엔 도현이 보았던 차원 이동 게이트가 타원형의 형태로 일렁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너무 놀란 도현은 침대에서 내려와 차원 게이트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뭐 하냐?”

침대에 누워 있던 용주는 도현의 행동을 보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기, 저 빛. 안 보여?”

“무슨 빛?”

용주는 호텔 창가 쪽에 배치된 도현의 침대 주변을 살피며 되물었다.

“차원 게이트 말이야!”

“뭐! 차원 게이트?”

몸 아프다고 누워 있던 용주가 튕기듯 일어나며 도현 옆에 바짝 붙었다.

“어디, 어디에 있는데?”

“침대 옆에 생겼잖아. 안 보여?”

“안 보이는데. 가만, 야, 그날도 차원 게이트는 네 눈에밖에 안 보였잖아. 삼촌하고 나는 네가 그냥 사라지는 것만 보였어.”

용주는 차원 게이트를 볼 수 없는 게 원통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근데 확실해? 차원 게이트가 맞냐고?”

“확실해. 저걸 내가 어떻게 혼동하겠어.”

도현은 붉은 빛이 일렁이는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저게 생긴 거지?’

조 박사에게 듣기론 차원 이동 장치를 통해서만 이계를 오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하고는 맞지 않았다.

‘내가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분명 저건 차원 게이트야. 이유 없이 나타난 건 아닐 텐데.’

옆에서 용주가 뭐라고 떠들고 있었지만 도현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 상황을 반추해 보았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지금 벌어지는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찬찬히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던 그는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무심코 타투에 손을 댄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타투가 다시 검은색이 됐어!”

놀란 그는 소리치듯 말했고, 옆에 있던 용주는 그 말을 듣고 얼른 고개를 숙여 도현의 팔을 살폈다.

“어, 정말이네. 도현아,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어. 게이트가 생기기 전에 무심코 타투를 만졌는데…….”

도현은 색이 변한 타투와 붉은 빛의 차원 게이트를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조금 전처럼 타투의 테두리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그가 테두리를 따라 한 바퀴 원형을 그리는 순간, 게이트가 번쩍하며 사라져 버렸다.

“바로 이거였어!”

도현은 놀람과 흥분이 가득한 환호성을 질렀다. 타투는 알고 보니 차원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였던 것이다.

그는 타투의 테두리를 따라 다시 손을 움직여 봤다.

하지만 이번엔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응?”

다시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음, 이건 또 왜 그렇지?’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옆에서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용주에게 자신이 느낀 점을 얘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 타투가 게이트를 여닫는 키고, 금색으로 타투 색깔이 변했을 때만 이용할 수 있다는 거야?”

“확실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

도현은 검은색으로 변한 타투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의 생각이 옳다면 이 타투는 다시 금빛으로 물들 것이다.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잘 있었어, 똥개야?”

도현과 함께 차에서 내린 용주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삼촌의 개를 보며 반가운 척했지만 배를 대고 누워 있던 개는 그를 본척만척했다.

“서럽네. 이제 개도 나를 무시하네.”

입맛을 다신 그는 앞서 가는 도현을 따라가며 말했다.

“태선군 얘기해야 하나?”

“아니, 그건 우리만 아는 걸로 하자.”

“그래, 그럼. 사실 삼촌 험담하는 것 같지만, 자신이 하는 연구에만 몰두하시는 스타일이라서 말해도 도움을 주실 분도 아니고.”

중국에서 오늘 낮에 한국에 도착한 그들은 타투와 게이트 얘기를 해 주기 위해 바로 조 박사를 찾아왔다.

“집 안에는 안 계실 거야. 바로 연구실로 가자.”

용주의 말에 도현은 집 앞 현관을 향해 가다가 빙 돌아서 뒤편에 있는 지하 연구실 외부 문 앞에 섰다.

“삼촌! 삼촌!”

용주가 철문을 몇 번 두드리자 잠시 후, 얼굴과 손에 검정 칠을 한 조 박사가 나타났다.

머리카락도 여기저기 탄 그의 모습에 용주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불이라도 났었어요?”

“용주야!”

갑자기 조 박사가 용주의 양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흐느꼈다.

“왜, 왜 이러세요, 삼촌?”

“난 망했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됐어.”

“박사님, 진정하십시오.”

도현은 조 박사를 옆에서 부축했다.

철문을 열자마자 훅 하고 밀려온 뭔가 탄 냄새에 그는 조 박사의 연구실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삼촌, 무슨 일인데요?”

“차원 이동 장치가 완전히 망가졌어. 에너지원 역할을 하던 그 스톤이 두 조각이 나고 말았단 말이다.”

“네에? 아니, 어쩌다가요?”

“테스트를 위해 시험 가동을 했는데 스톤을 넣어 뒀던 천장 부분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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