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25화 (25/575)

[25] 디 임팩트 1권 25화

도현은 소설 속 괴물 같은 존재들이 이계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인간들의 영토 확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이계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 주던 로나에게 들었다.

일반 병사들로는 대적할 수 없는 아주 강력한 몬스터도 많다는 그녀의 말에 도현은 기대감이 컸다. 바라던 실전을 그 괴물들을 상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만 끝내고 이들과 헤어져서 몬스터가 있는 지역으로 가자.’

그는 겉옷 소매를 올렸다.

검은색 타투가 옅은 금색을 띠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면 완벽한 금색으로 변할 것 같았다.

‘용주는 잘 있겠지?’

용주는 도현이 맡기고 간 도장에서 목검을 휘둘렀다.

도현과 비슷한 시기에 군대 가기 전까지 나름 열심히 백 관장님 밑에서 수련했던 그라서 호검술 실력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족제비 낯짝의 빌어먹을 태선군!”

휙!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내가! 죽여 버리겠다!”

휙휙!

그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이야야야! 죽어라, 태선군!”

친구가 목숨을 걸고 이계로 넘어간 상황에서 그도 뭔가는 하고 있어야겠다는 책임감에 도장 안을 휘저으며 태선군에게 저주를 마구 퍼부어 댔다.

“절벽이 무너져서 동굴에 갇혀 굶어 죽어라! 뒈져 버리란 말이야!”

한동안 더 목검을 휘두르던 그는 지쳤는지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졌다.

“하아, 하아. 도현이 자식 밥은 굶고 다니지 않나 모르겠네. 불쌍한 자식.”

그의 시선이 도장 한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도현이 이계로 넘어가며 남긴 음식이 든 가방이 놓여 있었다.

친구 걱정을 하며 누워 있던 그는 휴대폰이 울리자 기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엄마였다.

“도장요.”

-빨리 집으로 와.

“왜요?”

-곗돈 가지고 튄 그 여편네 있는 데 알아냈어.

“계주요?”

-그래, 얼른 와. 엄마랑 함께 가서 돈 받아 내게.

“엄마랑요? 제가 가서 뭐 하게요.”

-뭐 하긴. 그럼 엄마 혼자 가게 나둘 거야!

전화기가 터질듯 울렸다.

“아이, 엄마, 그게 아니라 그 아줌마 자식이 수술하느라 그랬다면서요. 일부러 곗돈 가지고 잠수 탄 게 아니라.”

-그래도 말이라도 하고 그랬어야지! 네 아버지 죽고 나도 아끼면서 모은 돈이었는데! 그리고 그 여편네가 원래 가난한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돈 굴리다가 낭패 보고 덜컥 자식 수술비가 없어서 저런 짓을 벌인 것 아니야!

“알죠, 저도.”

-다른 계원들이 알기 전에 가서 있는 돈이라도 받아 내야지.

“엄마, 가서 그렇게 일이 쉽게 되겠어요? 그냥 좀 기다려 봐요. 그 아줌마 아들 동식이, 저도 몇 번 얼굴 본 애라고요.”

-얼른 안 와! 엄마가 왜 그러는데. 너 빚 갚으라고 독촉장이 집에 산처럼 쌓여 있어. 조금이라도 갚아야 할 거 아니야! 얼른 와!

“후우, 알았어요, 엄마.”

용주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푹 쉬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엄마가 자신의 채무를 언급하자 할 말이 없었다.

“도현이 말대로 할까?”

그가 진 빚이 팔천만 원이 넘는다는 말에 도현이는 살고 있는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고 남는 전세금을 주겠다고 했었다.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만, 사채업을 하는 최 사장이 마음에 걸렸다.

“빌어먹을.”

그는 도현이 맡긴 차키를 들고 도장 문을 나섰다.

차를 주차하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던 그는 엄마에게 또 전화가 오자 조금은 짜증 섞인 어투로 대꾸했다.

“엄마, 다 왔어요. 문 열어 두세요.”

전화를 끊으며 그가 막 골목 모퉁이를 돌 때였다. 누군가 그의 명치를 때렸고, 뒤이어 주먹으로 턱을 올려 쳤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용주는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뒤로 쓰러졌다.

“어이, 용주.”

건장한 사내 셋이 그를 에워쌌다.

“형님이 좀 보자신다.”

“어떤 형님 새끼야! 나는 형이 없거든?”

턱을 감싸며 누워 있던 용주가 발로 사내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재빨리 일어나서는 좌우로 있던 다른 사내들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손에 검은 없었지만 마치 손이 검이라도 된 듯 그 움직임이 빠르고 정확했다.

퍽퍽!

그의 주먹에 맞은 사내들이 휘청거리며 좁은 골목길에 등을 부딪쳤다.

“이 새끼들아, 최 사장에게 가서 전해. 이자 그만큼 처먹었으면 인간적으로 조금은 더 기다려 달라고. 알았냐, 이 씹새들아!”

다시 덤벼드는 놈들을 주먹 몇 번과 발길질로 쓰러트린 그는 씩씩대며 전화를 다시 받았다.

“아니, 엄마! 저 다 왔다니까요! 잠깐이면 되…….”

엄마와 통화하던 그는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봤다.

긴 회칼을 등과 옆구리 사이에 찔러 넣은 녀석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 씨발 놈, 그러게 좋게 말로 할 때 따라오지. 에잇!”

최 사장의 부하들은 똥 씹은 얼굴이 돼서는 피를 철철 흘리며 힘없이 서 있는 용주를 두고 골목길을 뛰어갔다.

용주는 비틀거리며 골목 벽에 기댔다.

손으로 칼에 찔린 부분을 내리눌렀지만 손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개쌔기들. 하아, 하아.”

용주는 힘이 한순간에 쫙 빠지며 정신이 흐릿해졌다.

벽을 따라 주저앉은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어, 엄마. 엄마.”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보며 애타게 말을 하던 용주는 그대로 힘없이 고개가 기울어졌다.

저녁을 먹고 잠시 방에서 쉬고 있던 도현은 어베인의 방으로 향했다. 아까 저녁을 먹을 때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자 어베인뿐만 아니라 눈에 익숙한 로나와 짐브리오까지 보였다.

‘무슨 일이지?’

그가 빈 의자에 앉자 어베인은 입을 열었다.

“자네를 오라고 한 건 계획이 바뀌어서야.”

로나와 짐브리오는 이미 알고 있는 듯 별 반응이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어떻게.”

“여길 보게.”

어베인은 로나가 준비해 온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쳐서 어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호뮬리스 산이네.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산이지.”

도현은 몬스터라는 말에 눈이 반짝였다.

“예전부터 이 산에 지하 유적지가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보더군. 빌모르 정보 상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최근에 이쪽으로 솜씨 좋은 용병들 상당수가 일꾼들과 집단으로 이동을 했다고 해. 고용인은 빌모르 거상 중 한 명이고.”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던 도현이 지도에서 시선을 떼며 어베인을 봤다.

“그 말씀은 호뮬리스의 산에 가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어베인은 빙그레 웃으며 술을 따라 마셨다.

“몬스터 지역인데 괜찮겠습니까?”

“도둑이 못 갈 곳이 어디인가?”

어베인의 느긋한 말에 로나와 짐브리오가 크게 웃었다.

“자네만 결정하면 되네. 함께 가야지?”

웃고 있던 로나와 짐브리오가 도현의 입을 주시했다.

분위기가 안 간다고 하면 당장 칼과 철퇴가 날아올 것 같았다.

“가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네. 몬스터가 두려워 등을 보일 인물이라면 애당초 함께할 그릇은 못 되지.”

어베인이 술을 마시며 기분 좋게 웃었다.

“대장, 그거 주셔야죠.”

짐브리오의 말에 어베인은 침대 위에 올려놨던 물건들을 도현에게 주었다.

“가지고 가게. 검과 갑옷이네.”

도현은 그 자리에서 새 검을 뽑아 봤다.

예기가 쭉 뻗어 나오는 게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손안에 잡힌 그립감도 나쁘지 않았다.

그가 이계에 떨어져서 처음 소지하게 됐던 검보다는 한 수 뛰어난 검이었다.

그리고 암갈색 가죽 갑옷은 자로 잰 것처럼 그의 몸에 딱 맞았다. 가볍고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미리 말을 해야 될 것 같군요.”

새 검과 갑옷을 선물로 받은 도현이 미안한 표정으로 어베인에게 말했다.

“호뮬리스에서의 일이 끝나면 전,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흠, 그런가?”

어베인은 잔에 남은 술을 마시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게. 어차피 평생 같이 움직일 우리들은 아니었으니까. 또 기회가 돼서 함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일을 하기도 전에 떠난다는 말부터 하다니, 빌어먹을 자식.”

짐브리오는 투덜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장, 내일 아침에 봅시다.”

그는 휙 하니 방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도현은 그의 반응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며칠 안 되는 사이 짐브리오는 자신을 동생처럼 여기며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도현은 호뮬리스 산에 가기 전에 못을 박고 싶었다. 늦으면 늦을수록 왠지 이들과 떨어지는 게 더 힘이 들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갈 때 가더라도 열심히 해요. 호뮬리스에서 크게 한 건 하고 넉넉히 돈을 나눠 가지고 가야 할 거 아니에요.”

로나는 도현에게 미소를 보이며 어베인의 방을 나갔다.

헐렁한 겉옷 안에 갑옷을 착용한 어베인과 짐브리오, 로나와 도현은 말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들판은 누런 곡식이 아닌 잿빛 잡풀들만 무성했고, 죽은 짐승의 뼈가 곳곳에서 보였다.

간혹 가다 사람의 해골로 보이는 것도 굴러다녔다.

하늘도 흐려서 전체적인 주변 분위기는 어둡고 우울했다.

“여기서부터 몬스터 지역이네. 그리고 저기 전방에 보이는 높은 산이 바로 호뮬리스 산이지.”

“여기에 와 보신 적이 있습니까?”

도현의 물음에 어베인은 빙그레 웃을 뿐 대답은 해 주지 않았다.

“가세.”

그들은 이틀에 걸쳐서 그들을 태우고 온 말들을 풀어 주고는 들판을 가로질러 곧장 호뮬리스 산으로 진입했다.

여러 개의 산이 연결된 호뮬리스 저 안 어딘가에서 용병들의 보호 속에 유적지를 발굴하는 현장을 찾아내야 했다.

“어딘지 알 수 없으니 차근차근 찾아보세.”

몬스터 지역에 들어와서도 어베인은 긴장된 기색 없이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고, 로나와 짐브리오는 몬스터 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나만 긴장을 하고 있나?’

일행의 맨 후미를 맡아 주위를 경계하며 따라가던 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그들이 지나쳐 왔던 수풀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물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황소만 한 검은색 늑대였는데,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몬스터입니다!”

“앞에도 몬스터야!”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거대한 늑대들이 앞뒤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전면의 두 마리와 후방에 한 마리.

크르르르.

거대한 늑대들은 바로 달려들지 않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다가오며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외양은 늑대지만, 그 크기와 분위기가 완전 달라.’

도현은 몇 미터 앞까지 접근한 거대 늑대를 보며 검 손잡이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크르르르.

늑대는 눈이 없고 붉은 광채만 반짝이고 있었지만 마치 도현의 움직임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도현이 슬며시 왼쪽으로 움직이면 그에 맞춰 긴 발톱이 나온 앞발을 그쪽으로 움직였고 당장이라도 도약해 공격할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영악한 놈들이야. 괴물들이 머리까지 똑똑하면 곤란한데 말이지. 자, 그만 기다리고 끝장내게.”

어베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후방의 한 마리를 맡고 있던 도현이 땅을 박차며 가볍게 뛰어올랐다.

캬아아아!

거대 늑대 역시 기다렸다는 듯 이빨을 드러내며 도현을 덮쳤다.

‘나를 지나치면 로나에게 늑대가 간다. 일격 필살. 한 번에 처리한다.’

번쩍.

눈부신 쾌검이 바람을 가르며 긴 소리를 한번 내더니 사라졌다.

도현과 몸을 교차하던 거대 늑대는 목이 폭발하듯 터지며 피를 폭포수처럼 쏟아 내더니 근처 나무 기둥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도현은 목이 반쯤 잘리고도 살아서 일어서려는 늑대의 질긴 생명력에 놀라며 들고 있던 검으로 늑대의 목을 완전히 베어 버렸다.

그 순간, 죽은 늑대의 몸에서 솟구친 붉은 기운들이 도현의 타투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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