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디 임팩트 2권 6화
경비들의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짐브리오의 은신 능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런 장소에 도둑이 찾아올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 경비들의 감시 능력을 무디게 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애초부터 그들은 인간이 아닌 몬스터를 경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봤죠? 별일 없잖아요.”
로나가 작게 하품을 하며 나무에 등을 기댔다.
“저 경비들은 용병들이죠?”
“아마 그럴 거예요. 거상의 부하들은 저런 복장을 하지 않거든요.”
“거상에 대해 알고 있어요?”
“잘 알다마다요.”
하품을 하며 흘린 눈물을 그녀는 손끝으로 찍어 냈다.
“그자는 영주들 간의 싸움을 부추겨서 전쟁 물자를 팔아먹는 저급한 장사치들 중 한 명이에요. 도둑보다도 욕심이 많고 영주보다도 잔인한 구석이 있는 자죠.”
거상에 대해 악평을 늘어놓던 그녀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도현을 깊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당신, 정말 이번 일 끝나고 떠날 거예요?”
“그래야 될 것 같아요.”
“왜요? 도둑이 싫어요?”
사실 그녀는 도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도현의 말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검을 수련하려고요.”
“같이 다니면서 수련하면 되죠.”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생각해 놓은 게 있어서요.”
몬스터를 통해 내공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도현은 이들과 헤어져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도현의 뜻이 이미 확고한 듯하자 로나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당신이 도둑이 되기 싫어서 우리와 헤어지려는 건 줄 알았어요. 당신 입으로 내게 그랬잖아요. 과거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분명 도둑은 아니라고. 대장과 짐브리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당신은 정말 도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도현의 곁에서 짐브리오가 들어간 동굴만 주시했다.
‘내게 잘해 주긴 했는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도현은 험한 일을 하는 도둑이라고 보기 어려운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순간 마음을 빼앗기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동안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잘해 주는 것 같은 그녀의 행동에 너무 편안함을 느꼈나 보다.
‘정신 차리자, 백도현.’
로나의 외모에 잠시나마 정신이 팔렸던 그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질책하다가 문득 홍영이 생각났다.
‘그녀는 잘 있을까?’
상해에서 어색한 분위기 속에 헤어진 후, 지금껏 연락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만간 한국에서 근무하게 될 그녀를 어떻게 대해 줘야 할지 지금도 가슴이 답답했다.
용주 말대로 복수는 복수고, 사랑은 사랑으로 가야 할지.
‘쉽지 않아.’
아버지와 홍 사부를 해친 태선군의 존재는 홍영을 향한 그의 마음까지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 들어간 짐브리오는 아직 나올 기미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도현이 걱정을 할 무렵, 짐브리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경비들의 시선을 피해 골짜기 위로 올라온 그는 도현과 로나를 발견하고는 급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대장에게 가자고.”
“왜 그래요. 안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빨리 와! 시간 없으니!”
로나의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도 해 주지도 않고 그는 어베인이 있는 곳을 향해 바람처럼 뛰어갔다.
그때 동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자고 있는 사람 모두 깨워!”
“어서 동굴로 들어가야 돼!”
천막에서 자고 있던 일꾼들과 용병들 수십여 명이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로나와 도현은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급히 짐브리오의 뒤를 쫓았다.
“동굴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고?”
“네, 대장.”
짐브리오는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빠르게 그려 나갔다.
“동굴은 지하로 이어져 상당히 깊어요. 고대 신을 모시는 신전은 여기 중간 정도부터 시작되고요. 그런데 동굴 곳곳에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어요. 제 발 좀 보세요.”
그의 신발은 젖어 있었다.
“물이 이미 발목까지 차올랐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차오르는지 몰라요. 얼마 후면 동굴 안은 물바다가 되고 안에 있는 유적도 잠기게 될 거란 말이지요.”
설명을 듣던 도현은 천막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간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동굴 안에는 어떤 상황인가?”
“안을 지키던 용병들이 발굴 중이던 신전 주변에서 물이 마구 올라오자 어쩔 줄을 몰라 하더라고요. 그 안에서 자고 있던 거상 놈이 보낸 부하 녀석들도 아주 사색이 되었습니다. 횃불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예요.”
“천막에 있던 사람들과 밖을 지키던 용병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로나의 말에 짐브리오가 고개를 저었다.
“인력으로 어떻게 할 상황이 아니야. 동굴 밑을 지나는 지하수가 땅바닥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고.”
“발굴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던가?”
“무너진 신전의 입구가 열리기 직전이었습니다. 아마 오늘 안에 신전 안으로 들어갈 계획이었을 겁니다. 재수가 없는 거지요.”
“흐음.”
어베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대장, 신전의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아마 고대 신에게 바치던 제물들이 가득할 겁니다. 젠장, 그게 다 우리 게 될 상황이었는데.”
미련이 가득한 그의 말에 듣고 있던 로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곧 물에 잠긴다면서요. 들어가자는 말이에요?”
“아깝다는 말이지.”
“돈이 아무리 좋아도 너무 위험해요. 포기해요.”
“지금쯤 녀석들이 막혀 있던 입구의 마지막 돌들을 제거하고 있을 텐데. 그냥 빠르게 뒤를 덮친 다음 신전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우리 손엔.”
“짐브리오!”
로나가 째려보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는 어베인을 봤다.
“대장, 어쩌실 거요?”
“자네가 보기에 신전에서 우리가 뭘 빼 올 시간적 여유가 된다고 생각하나?”
“반반입니다.”
“음.”
어베인은 점점 밝아 오는 새벽하늘을 보며 잠시 생각을 더 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면 유적의 보물은 포기하고 그 즉시 동굴을 탈출한다. 짐브리오, 명심하게. 알겠지?”
“흐흐, 물론이지요, 대장.”
어베인이 안으로 들어가기를 결정하자 반대를 한 로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이 결정한 이상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 얼른 가세.”
어베인이 자잘한 짐 가방을 커다란 바위 옆 수풀 속에 던져 넣으며 동굴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고 짐브리오와 로나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내 의견은 어느 누구도 안 물어보는군.”
쓴웃음을 지은 도현은 가볍게 땅을 박차고 올랐다.
천막은 텅 비어 있었고, 동굴 주변을 지키던 용병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동굴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횃불의 불빛이 동굴 내부에 음산한 그림자를 만들어 냈고, 그 그림자를 밟으며 어느새 복면을 착용한 어베인과 짐브리오, 로나, 도현이 빠른 속도로 진입했다.
동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며 밑으로 서서히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촤르르륵.
썰매를 타듯 10여 미터 이상 되는 경사진 지하로를 미끄러져 내려가던 도현은 경사가 끝이 나는 지점에 물이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강이까지 차오른 물에 몸을 담근 그들은 물을 헤치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동굴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곧 동굴의 천장과 바닥으로 이어지는 2열의 석주들이 길게 늘어선 웅장한 모습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대단하다! 동굴 내부에 이런 건축물이 존재하다니.’
도현은 감탄을 하며 전방을 바라봤다.
동굴 천장을 떠받치듯 세워져 있는 거대한 원형의 돌기둥이 끝나는 지점에는 반쯤 허물어진 신전이 작은 산과 같은 크기로 존재했다.
신전 주변은 일꾼들이 발굴 작업을 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불들로 인해 환했는데, 짙은 어둠을 다 몰아내고 있지는 못해서 군데군데가 어두웠다.
하지만 전체적인 윤곽만으로도 무너지기 전의 신전 크기가 대단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저런 건축물을 동굴에 만들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대장, 잠시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돌기둥에 몸을 숨기고 앞을 살피던 짐브리오가 말했다.
무너진 신전 입구에 해당하는 부근에서 수십여 명의 일꾼들과 용병들이 뒤엉켜 신전 내부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중이었지만, 아직 입구는 완전히 열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물에 서서히 잠기고 있는 신전을 보며 어베인이 무거운 어조로 대꾸를 했다.
“제발 좀 서두르시오! 물이 차기 전에 신전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오!”
“보채지 좀 마시오! 우리가 지금 놀고 있소! 젠장!”
일꾼들과 합세해 무너진 신전의 입구를 열고 있던 용병대 대장이 거상이 보낸 감독관에게 투덜댔다.
안에서 발견하는 보물의 일부를 받기로 하고 동굴에 물이 차는 위험한 상황에도 동료 용병들을 다독여 입구를 개방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게 마음만큼 쉽지 않았다.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자 동료 용병들이 하나둘씩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자기들끼리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일꾼들 또한 돌을 빼내기보다는 언제 동굴을 빠져나가야 하는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빌모르로 돌아가면 계약한 돈은 다 지불할 수 없어요! 아시겠습니까!”
거상이 보낸 감독관이 손에 든 횃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함을 쳐 댔지만 금방 열릴 것 같은 입구는 쉽사리 열리지 않고 있었다. 동굴에 물이 차는 두려운 상황이 모두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답답한 자식들! 왜 저렇게 꼼지락거리는 거야?”
멀리서 신전을 지켜보던 짐브리오가 가슴을 치며 돌아봤다.
“대장, 안 되겠습니다. 내가 가서 힘을 보태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농담이 나와요?”
로나의 힐난에 그는 헛기침을 하며 동굴에 들어와서 한마디도 없는 도현을 쳐다봤다.
“자넨 왜 그렇게 과묵하게 있어? 동굴에 들어온 게 마음에 안 들어? 걱정 말라고, 안에서 보물을 들고 나오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
도현은 머리가 아팠다.
보물은 고사하고 이곳에서 제대로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물에 손을 넣고 물의 흐름을 읽던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신전 쪽에서 물이 올라와 기둥이 있는 통로를 거쳐 동굴 전체로 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갈수록 물의 흐름이 강하게 느껴지자 도현은 마침내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뭐라고?”
“물이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늦기 전에 이제는 포기해야 합니다. 신전 내부도 지금쯤은 물바다가 되어 있을 겁니다. 입구가 열린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요.”
“내 생각도 그래요.”
로나가 도현의 말을 거들었다.
직접 와서 보니 밖에서 들었던 짐브리오의 말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했다.
“대장, 저기 보세요. 일꾼들과 용병들도 신전이 물에 잠기고 있는 것 때문에 당황하고 있잖아요. 뒤에서 거상이 보낸 자가 아무리 닦달해도 제가 보기에는 저들은 곧 동굴에서 도망칠 게 분명해요. 입구는 열리지 않아요. 우리도 나가요, 그만.”
듣고 있던 짐브리오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와서. 대장, 안 됩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요.”
“나가세.”
도현과 로나의 말을 묵묵히 듣던 어베인은 차분한 시선으로 짐브리오를 쳐다봤다.
“대장.”
“물이나 입구 문제가 아니야.”
“네?”
어베인은 동굴 벽에 대고 있던 자신의 등을 떼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곧 동굴이 무너질 거야.”
“뭐라고요?”
짐브리오가 깜짝 놀라는 순간 동굴이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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