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디 임팩트 2권 9화
음산한 눈빛으로 도현을 노려보며 달려오던 가우너는 들고 있던 창을 길게 휘둘렀다.
큰 키와 덩치에 비해 팔이 아이처럼 짧아 보였지만 그래도 녀석의 공격은 위압감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지녔다.
도현이 피한 공간을 빠르게 훑고 지나간 창이 손목처럼 두꺼운 여러 나뭇가지를 동시에 잘라 냈다.
몬스터가 인간의 무기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 궁금증이 생긴 도현은 적당히 거리를 두며 가우너의 창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카아아아!
요리조리 피하는 도현의 행동에 분노한 가우너는 더욱 빨리 창을 휘둘렀고, 때로는 거대한 덩치로 도현을 박살 내려는 듯 몸을 던지기도 했다.
쿠우웅!
나무 기둥이 크게 흔들리며 나뭇잎들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르르르!
흥분한 녀석은 창을 마구 휘두르며 큰 덩치를 이용한 공격도 계속했다.
‘인간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놀랍지만, 본능적으로 휘두르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여.’
가우너의 능력 판단이 끝난 도현은 검을 뽑아 위에서 내려오는 창을 두 동강 내 버린 후 안쪽으로 파고들어서 가우너의 두 무릎 부위에 깊은 검상을 남겨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가우너가 창대를 들고 주춤거리는 순간, 도현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손안에 검을 가우너의 가슴에 깊숙이 꽂고 아래로 내리그었다.
가슴이 길게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가우너는 그대로 죽어 버렸다.
‘흐읍! 엄청나다!’
가우너가 죽는 순간 타투를 통해 유입된 기운은 크람빌이나 크루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온몸이 부웅 뜨는 엄청난 쾌감을 선사하며 전신을 한번 돈 가우너의 기운은 어느 순간 단전으로 가 내공과 합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단전의 기운을 느끼고 있던 도현은 천천히 눈을 뜨며 죽은 가우너를 내려다봤다.
‘몬스터가 강할수록 가지고 있는 기운의 차이가 실로 어마어마하구나.’
크루나 크람빌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가우너를 잡자 내공이 불어난 정도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비록 아직 내공 자체의 양은 미미하지만 강한 몬스터를 꾸준히 잡기만 하면 내공이 얼마나 늘어날지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태선군을 뛰어넘는 게 꿈만은 아니야. 할 수 있어!”
도현은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다가 뒤에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가우너의 송곳니를 빼서 바로 그곳을 벗어났다.
헬스콧에서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는 용병들도 있었지만, 산에서 밤을 지새우는 용병들도 상당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산 깊이 들어왔는데, 다시 내려가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고, 다음 날 산 깊이 다시 들어오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또 소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밤이 오고 산에 어둠이 깔리면 흩어져 몬스터들을 사냥하던 용병들은 하나둘씩 마주치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한데 모여 모닥불을 피워 놓고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잠을 잤다.
“이보시오. 일어나시오.”
불침번을 서던 용병이 도현의 어깨를 흔들려는 순간, 도현이 눈을 번쩍 뜨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
언제 잤나 싶을 정도로 눈을 매섭게 빛내며 검을 뽑을 자세를 취하는 도현의 모습에 어깨가 좁은 용병이 움찔했다.
‘이런, 너무 긴장을 했군.’
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미안합니다. 제 차례인가 보군요.”
“험, 그렇소. 경비 똑바로 서시오.”
다소 퉁명스럽게 말을 받은 용병은 모닥불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도현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2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자신처럼 홀로 온 사람도 있었고, 서너 명이 모여 함께 온 용병들도 존재했다.
산에서 내려가지 않고 밤을 보내는 이런 무리는 여기뿐만이 아니라 헬스콧 산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도현은 제법 자란 턱수염을 매만지며 짙은 어둠에 잠긴 산 저편을 응시했다.
헬스콧에 들어온 지 4일째.
그는 산을 내려가지 않고 계속 버티며 몬스터를 사냥하고 내공을 키우고 있었다.
그의 가방에는 다른 용병들이 보면 깜짝 놀랄 만큼의 많은 수의 몬스터 사냥 증거물들이 들어 있었다.
‘내공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아쉬운 건 여전히 이 내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방법을 깨치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태선군을 만나던 날, 부지불식간에 단전의 내공을 사용한 것이 그가 내공을 이용한 전부였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지만, 갈수록 급속도로 쌓여만 가는 내공의 힘을 하루라도 빨리 사용해 보고 싶은 무인으로서의 욕망은 어쩔 수 없었다.
“몬스터는 많이 잡으셨소?”
모닥불 반대편에서 불침번을 서던 용병이 슥 다가와 조용히 묻자 도현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별로 못 잡았나 보군. 힘내시오. 산에서 안 내려가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단 얼마라도 벌지 않겠소?”
도현은 상대방이 오해를 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많이 버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용병은 자고 있는 동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세 명이서 왔는데, 금화 열 개 정도는 번 것 같소. 가우너까지 잡았다면 배는 벌었겠지만, 워낙 위험해서 말이오. 수고하시오.”
키는 작았지만 어깨가 넓은 중년의 용병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몬스터가 접근하는지 경계를 섰고, 도현은 그동안 자신이 사냥한 몬스터의 보상 금액을 가만히 계산해 봤다.
크람빌이 38마리, 크루가 23마리, 가우너가 7마리였으니, 대략 금화 40개 정도를 번 셈이다.
아마도 저편에서 불침번을 서는 용병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얼굴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몇 시간 뒤 도현은 하늘이 밝아 오자 짐을 챙겨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자리를 떠났다.
강한 햇살이 무성한 나뭇잎 사이를 뚫고 도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숨소리를 죽이며 걷던 도현은 정글처럼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옆으로 젖혀 전방을 확인했다.
크람빌 10여 마리가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뭔가를 맛있게 뜯어 먹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칼과 방패, 도끼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사람을 먹고 있다.’
조금 전 들렸던 비명 소리를 따라온 도현은 처참한 상황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빠르고 간결하게.’
도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수풀을 박차고 크람빌 무리를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갔다.
하급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무리를 이룬 녀석들은 강했고, 그래서 홀로 다니는 용병들에겐 지옥의 사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도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인기척에 죽은 용병을 뜯어 먹던 크람빌들이 휙 돌아봤다.
캬아!
주둥이가 길게 발달한 크람빌들이 일제히 피가 묻어 있는 손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체구의 몬스터들이지만 그 움직임이 제법 민첩했다.
캬아!
공중으로 도약해 도현의 얼굴을 노리던 녀석의 몸이 가랑이부터 머리끝까지 반으로 쭉 갈라져 땅바닥에 처박혔고, 옆에서 달려드는 놈은 목이 달아났다.
다리를 물려고 이빨을 들이밀던 크람빌의 몸통을 걷어찬 도현은 풍차처럼 그 자리에서 빙글 돌며 검을 번개처럼 이리저리 휘둘렀다.
후드드득.
나름 포위 공격을 하던 크람빌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죽어 나뒹구는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살아남은 크람빌 한 마리는 압도적인 무력을 보이는 도현의 힘에 기가 눌렸는지 황급히 나무 사이로 도망을 치려 했다.
“그냥은 못 가지.”
도현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손도끼를 재빨리 주어 도망치는 녀석에게 벼락처럼 집어 던졌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빠르게 날아가던 손도끼는 막 나무 뒤로 몸을 감추려던 크람빌의 등에 깊숙이 박혔다.
케헤렉!
괴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크람빌은 몸이 축 늘어졌고,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제법 멀리 떨어진 도현에게 쏜살같이 날아와 타투에 흡수됐다.
홀로 크람빌 떼를 전멸시킨 도현은 이마에 흐르는 땀 한 방울을 닦아 내며 뒤로 돌아섰다.
가죽 갑옷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얼굴을 비롯해 전신이 파헤쳐진 용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음.”
지난 며칠간 도현은 몬스터에게 참혹하게 죽은 여러 명의 용병 시체를 목격했다.
규모 있는 용병대들은 위험을 줄이며 사냥할 수 있었지만, 실력도 부족하고 인원수도 적은 용병들은 그야말로 아차 하면 이렇게 산속에서 뼈를 묻는다.
도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검에 죽은 크람빌들에게 다가가 엄지발가락을 잘라 냈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이상한 점이 뒤늦게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왜 죽은 용병들 옆에 나무창이?’
도현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 죽은 두 명의 용병에게 다시 다가갔다.
시신 옆에는 죽창처럼 다듬어진 끝이 뾰족한 나무 두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어깨 높이의 나무창을 집어 도현은 자세히 살펴봤다.
뾰족한 나무창 끝에는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누가 이걸 사용한 거지?”
죽은 용병의 것은 아닐 것이다.
바닥에는 그들이 사용한 철제 무기들이 떨어져 있었다.
멀쩡한 무기를 놔두고 위급한 상황에서 이런 나무창으로 몬스터를 상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크람빌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이용해 공격할 뿐이다.
마르지 않은 피로 보아 그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분명 누군가가 사용한 것은 확실했다.
“그럼 누가 이걸…….”
나무창을 들고 곰곰이 생각하던 도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설마 험벨?’
인간형 몬스터로 분류된 험벨은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처럼 나무를 다듬어 창을 만들기도 하고 활을 제작해 직접 사용하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인간의 도구를 단순히 휘두르는 가우너와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다.
게다가 험벨은 다른 몬스터들처럼 자신을 드러내 놓고 사람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아주 은밀히 다가와서 멀찍이서 사람을 죽이고 간다.
그래서 발견하기도 어렵고, 발견한다손 치더라도 잡는 건 굉장히 어려운 몬스터였다.
몬스터 양피지에서 읽은 정보를 떠올리며 도현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나무창을 바라봤다.
어쩌면 이건 인간처럼 도구를 제작해 싸울 수 있는 손재주를 가진 험벨의 흔적일 수도 있었다.
‘혹시 아직도 여기에?’
도현이 고개를 들어 주변 나무들을 올려다봤다.
굵은 나뭇가지와 무성한 잎들이 햇빛을 가리고 있었고, 조용한 가운데 산새 우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렸다.
그의 시선이 조금 더 멀리까지 미치는 순간, 나무 위에서 기다란 물체가 번개처럼 날아왔다.
도현은 깜짝 놀라며 옆으로 몸을 굴렸다.
푸욱!
힘찬 소리와 함께 그가 있던 자리에 나무창 하나가 깊숙이 박혔다.
도현은 바닥에서 일어나며 죽은 용병의 방패를 재빨리 들어 전면을 가렸다.
파직!
방패와 함께 뒤로 약간 밀린 도현은 온몸이 찌릿했다.
‘굉장한 힘이야!’
나무창을 방패로 막은 도현은 창에 실린 강렬한 힘에 살짝 놀라며 창이 날아온 나무를 향해 뛰어갔다.
아직 적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연이은 나무창 공격에 도현은 험벨이라는 심증을 굳힌 상태였다.
한 손에 방패를 들고 다른 한 손엔 나무창을 들고 뛰던 도현은 어느 순간 들고 있던 창을 나무창이 날아오는 나무 위로 힘껏 집어 던졌다.
방향이 정확했는지 5-6미터 높이의 나뭇가지 위에 숨어 있던 험벨이 날렵한 동작으로 피하며 원숭이처럼 빠르게 반대편 나무로 점프를 했다.
2미터 넘는 장신에 등 뒤로 나무창을 가득 매달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크크크크크.
놈은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자 아쉬운 듯 높은 나무 위에서 낮게 조소를 흘리며 달려오는 도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험벨의 얼굴은 사람 얼굴과 흡사하게 생겼지만 입이 턱 끝까지 길게 찢어졌고, 그 안에 수십여 개의 칼날 같은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거기에 귀는 고양이처럼 뾰족한 삼각형 모양이었다.
‘기회야, 잡아야 해!’
현상금이 가우너의 열 배인 무려 금화 30개였다.
그뿐 아니라 흡수할 수 있는 기운도 많아서 내공이 크게 오를 것 같았다.
도현이 눈을 빛내며 돌진해 오자 험벨은 자신의 무서움을 보여 주겠다는 듯 뱀처럼 긴 혀를 입 밖으로 날름거리며 놀랍도록 빠른 손동작으로 등에 멘 창 두 개를 꺼내 벼락처럼 집어 던졌다.
투창 기술이 뛰어난 험벨의 창은 맹렬한 기세로 도현의 두 다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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