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디 임팩트 2권 11화
도현이 이어 뇌물을 받은 관리인이 작성해 준 계약서를 내밀자 관리는 확인을 한 후 기록을 하며 물었다.
“지금 돈을 받아 갈 거요?”
“네.”
“알겠습니다. 어디 얼마나 잡았는지 확인해 볼까요.”
관리는 장갑을 낀 손으로 커다란 가죽 가방을 열었다.
몬스터 신체 일부가 부패하지 않게 상점에서 산 약초즙을 곳곳에 뿌려 두었지만, 역한 냄새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관리는 수없이 겪은 악취에 미간을 찌푸리며 가방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크람빌의 특징인 검은 발톱이 있는 작은 엄지발가락들이 그의 손에 가득 잡혔다.
‘제법 잡았군.’
몬스터 사냥 증거물들이 하나씩 그의 손을 통해, 넓고 긴 책상 위에 전시품처럼 놓였다.
크람빌, 크루, 심지어 가우너까지.
책상 한쪽이 몬스터 증거들로 가득 채워졌고, 그 수에 관리와 주위에 용병들이 깜짝 놀랐다.
“이걸 혼자서 다 잡은 거라고?”
“굉장한 실력자인가 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도현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때 관리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이건 험벨의 귀!”
손바닥만 한 삼각형 귀가 가방에서 나오자 지켜보던 용병들 입이 쩍 벌어졌다.
험벨을 잡으려면 용병대 안에 특급 용병으로 불리는 걸출한 인물이 존재하거나 아니면 활 솜씨 뛰어난 용병들이 여러 명 필요했다. 아무나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가방 안에서 험벨의 귀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진짜였어. 정말 험벨을 잡은 거야.”
도현의 말을 믿지 않았던 옆에 용병들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넓은 천막 안에 있던 수십여 명의 용병들이 모두 도현의 사냥 결과물에 집중을 했고, 관리는 마지막 험벨의 귀를 가방에서 꺼내며 도현을 쳐다봤다.
“도대체 이 많은 험벨을 다 어디서……?”
“사냥을 했지 어디서 났겠습니까. 계산해 주시죠.”
도현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관리는 빠른 손놀림으로 도현이 가지고 온 몬스터 사냥 증거물을 종합하기 시작했다.
“크람빌 92마리, 크루 50마리, 가우너 28마리, 험벨…… 10마리.”
관리는 몬스터 토벌전이 시작된 후 홀로 다니는 용병이 이렇게 많은 몬스터를 잡아 가지고 온 경우는 보지 못했다.
더욱이 험벨은 홀로 잡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 대부분 명성 있는 용병대나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수십여 명으로 구성된 힘 있는 중급 용병대의 차지였다.
그런데 험벨을 홀로 무려 열 마리나 잡아 왔다.
혹시 가짜 험벨의 귀가 아닌지 옆에 있는 관리와 자세히 살펴봤지만, 틀림없는 험벨의 귀였다.
“모두 합해서 금화 432개요. 이의 있소?”
“아닙니다. 제 계산도 그랬으니까요.”
도현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험벨을 잡지 못했다면 이 금액의 반의반 정도밖에 안 됐을 거야.’
험벨 열 마리만 해도 300금화였던 것이다.
‘내공도 키우고, 돈도 벌고.’
도현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려 애를 썼지만 이 순간만큼은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막기 어려웠다.
관리는 무장을 한 병사 10여 명이 단단히 지키고 있는 천막 안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금화가 잔뜩 든 가죽 주머니를 낑낑대며 들고 나왔다. 그리고 도현이 보는 앞에서 돈을 셌다.
“자, 금화 432개요.”
관리가 금화의 무게 때문에 밑으로 축 처진 돈주머니를 내밀자 도현은 호흡을 잠깐 가다듬었다.
빌모르에서 이곳으로 올 때는 이 정도로 큰 성과를 얻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몬스터 사냥을 열심히 하면 막연하게나마 도장 건물을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관리로부터 돈을 받자, 여기저기서 부러움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엄청난 돈을 벌었어. 400개가 넘는 금화라니.”
“그러게. 그런데 험벨을 열 마리나 잡은 걸 보면, 저 사람은 특급 용병인 게 분명해.”
“아무리 특급 용병이라 해도 험벨을 저렇게 많이 잡는 게 쉽지는 않을걸.”
주변에 있는 수십여 명의 용병들이 열기 띤 시선으로 도현을 쳐다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용병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천막을 빠져나온 도현은 곧장 광산 마을 뒤편에 있는 숲으로 들어가 게이트를 열었다.
“용주가 보면 놀라겠지.”
도현은 미소를 머금으며 금화가 잔뜩 든 무거운 가죽 주머니를 품에 안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케이크
“병원에서 너무 일찍 퇴원한 거 아니야?”
“살살 움직일 정도는 돼서 그냥 나왔어.”
도현의 연락을 받고 도장으로 온 용주는 도복을 입고 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친구의 위아래를 살폈다.
“어디 다친 덴 없지?”
“괜찮아. 손에 든 건 뭐냐?”
“이거?”
용주는 야외용 3단 도시락 통을 친구 앞에 내려놨다.
“밥하고 집에 있는 몇 가지 반찬 좀 싸 왔어. 김치하고. 이계에서 이런 게 그리웠을 거 아니야. 안 그래?”
도현은 피식 웃으며 그 자리에서 도시락을 열어 먹기 시작했다.
친구 말대로 양념이 깃든 여러 반찬들이 그립기도 했고, 배도 고팠다.
“천천히 먹어라. 보는 내가 마음이 아프다.”
용주는 아버지 복수를 가슴에 담고 이계에서 친구가 얼마나 검을 휘둘렀을지 보지 않아도 상상이 됐다.
“박사님은 아직 연락 없으셔?”
“그저께 전화 왔어. 아프리카에 잘 계시대.”
“내가 이계를 오가는 얘기는 했어?”
아삭아삭한 오이무침을 먹으며 도현이 물었다.
“아니. 아프리카에서 돌아오시면 그때나 말씀드리자고. 그런데 내공은 많이 흡수했냐?”
몬스터를 처지하고 내공을 흡수한다는 얘기가 용주에게는 마냥 신비롭게만 들렸다.
도현은 해 줄 말이 많았지만 일부러 뜸을 들이며 얘기해 주지 않았다.
“아 자식이, 빨리 말 안 해?”
“밥 좀 다 먹고.”
깨끗이 도시락을 비운 도현은 그제야 이계에서의 얘기를 듣고 싶어 몸이 달아 있는 친구에게 빙그레 웃으며 어베인과 호뮬리스 산에서의 일부터 천천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놨다.
“아 씨발, 신전에서 크게 한 건 올렸어야 하는데.”
동굴에서의 일을 듣던 용주가 안타까워했다.
“뭐 그래도 그 안에서 죽지 않고 탈출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래서 그다음은.”
용주는 도현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이 되어 있었다.
“뭐? 몬스터를 잡아서 금화를 벌어 왔다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용주 앞에 도현이 커다란 가죽 주머니를 내려놨다.
금화의 무게 때문에 도장 바닥이 살짝 울렸다.
용주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안을 들여다봤다.
누런빛이 가득했다.
손에 잡히는 몇 개를 꺼내 얼굴에 가까이 댄 용주는 입이 벌어져 닫힐 줄 몰랐다.
“흐흐흐, 이게 진짜 금이란 말이지?”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있는 친구에게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기서 금화를 계속 벌어 올 수 있는 거야?”
“몬스터가 다 사라질 때까지는.”
헬스콧 산의 토벌이 끝나면 또 다른 토벌전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그에게는 실력과 내공을 쌓고, 돈을 꾸준히 벌 수 있는 구조였다.
“도현아, 정말 이대로 가면 여기 백 관장님이 세운 도장, 살릴 수 있겠어! 건물을 살 수 있다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용주는 벌떡 일어나 도장 문을 걸어 잠그고 돌아왔다.
“내가 영화에서 이런 장면 나올 때마다 꼭 한 번씩 따라 하고 싶었지.”
그는 가죽 주머니에서 수백 개의 금화를 도장 바닥에 쏟아 낸 다음 조명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금화를 허공에 높이 뿌렸다.
“하하하!”
세상을 다가진 듯 용주는 즐거워했다.
“뭐라고? 내공 사용법을 깨달았다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금화를 주워 담던 용주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다봤다.
“한 마리에 금화 30개짜리가 있어. 그 녀석을 잡다가 깨달았어.”
도현은 말을 하며 가볍게 도장 바닥을 발끝으로 밀어냈다.
옆에서 보기에 그저 한 걸음 걷는 동작이었는데, 그의 몸은 마치 서너 걸음을 걸은 것처럼 어느새 저만치 가 있었다.
“순수한 육체적 힘과 스피드만으로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들이 내 몸속의 또 하나의 힘인 내공을 이용하면 가능해져. 호검술 역시 내공을 사용하면 더욱 절묘해지지.”
도현은 이어 검을 뽑아 호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너무 빨라서 잔상만 보이는 것 같아.’
도현의 주변이 온통 떠다니는 검의 파도였다.
어느 것이 진짜 검이고 어느 것이 가짜 검인지 분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도현의 손에서는 현란한 검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감탄 섞인 눈으로 도현의 검을 바라보던 용주는 도현의 몸 주위를 감싸던 수많은 검의 잔상이 사라지고 고요한 눈빛으로 검을 들고 서 있는 도현의 모습이 보이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 굉장한데!”
“호검술을 만든 사람은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 검객이었던 것 같아. 내 나름은 호검술을 극성으로 연성했다고 느꼈는데, 아니었어. 검술에 내공이 가미되자 그 변화가 무궁무진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호검술은 그저 그런 검술이 아니야. 돌아가신 백 관장님이 자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용주는 뿌듯한 자세로 말했다.
“호검술 전반 12식 중 마지막 12식은 가장 단조롭지만 마음을 담아내는 검식이거든. 태선군에게 그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도 모르게 검을 밑에서 위로 올려 쳤는데, 그 한 수에는 호검술 12식의 오의가 담겨 있었던 것 같아.”
“좀 어려운데?”
“쉽게 말하면 12식은 내공을 검에 담아 외부로 방출하는 검기발현의 초식이라는 거지. 이렇게.”
도현은 목각 인형에 붙여 놓은 풍선으로 다가가 검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곧게 뻗어 가던 검이 파란 풍선 근처에 다다랐고, 그 순간 큰 소리를 내며 풍선이 터져 버렸다. 검날이 닿기도 전에 풍선이 터진 것이다.
“장하다, 친구야!”
용주가 두 손을 하늘로 높이 추켜세우며 달려왔다.
괴물 같은 태선군을 상대로 실력으로 이겨 보겠다는 친구의 도전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내심 걱정해 왔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모든 게 착착 이뤄지고 있었다.
내공도 쌓이고, 그 내공을 사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도현이 점점 크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또렷이 보인 것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하던 용주가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도현아, 근데 나는 내공을 만들 수 없겠지?”
“글쎄, 쉽진 않겠지만 꾸준히 단전호흡법을 수련한다면 단전에 기가 모일 수도 있겠지.”
“넌 몇 년이 걸렸더라?”
“20년. 검을 잡을 때부터 아버지께 배웠으니까.”
“젠장, 안 하고 말지.”
용주는 입맛을 다시다가 아직 채 주워 담지 못한 금화를 둘러봤다.
“아직 건물주가 건물을 팔지는 않았으니까, 최선을 다해 보자. 물론, 네가 이계에 가서 고생을 해야겠지만. 그리고 저 금화들은 내가 처리할게.”
“괜찮겠어?”
“그럼. 내게 맡겨 둬. 넌 벌어 오기만 해. 내가 싸악 다 팔아 줄 테니까.”
“고맙다.”
“자식이, 고맙긴.”
용주가 웃으며 대꾸를 할 때였다.
도장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 관장님! 안에 계십니까, 백 관장님!”
케이블 방송국 백두TV의 이호선 피디였다.
“방송국 피디라고?”
“응, 휴대폰을 보니까 내가 이계에 가 있는 동안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몇 통 했더라고.”
둘은 부지런히 바닥에 뿌려진 금화를 가죽 주머니에 주워 담으며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일로? 혹시 네 얼굴 내보내자고 그러는 거 아니야?”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 말고는 날 찾아올 이유는 없으니까.”
“어떡할래?”
“안 된다고 말해야지. 내가 집중해야 할 일들이 있잖아.”
눈을 가리고 기감을 활용해 사과를 자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방송이 나가면 일본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그 동영상처럼 자신의 영상도 화제 아닌 화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 영상을 통해 아버지가 세운 호검술 도장이 유명해진다면 물론 기쁜 일이겠지만, 반면에 조용히 태선군을 상대로 수련에 집중하려는 그에게는 번거로운 일이 닥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백 관장님! 안에 계시죠! 백 관장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