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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7화 (37/575)

[37] 디 임팩트 2권 12화

“야, 문 부서지겠다. 얼른 나가 봐라.”

바닥에 금화를 다 주워 담은 용주가 가죽 주머니를 들고 관장실로 가며 말했다.

도현이 도복 차림으로 나타나자 문을 시끄럽게 두드리던 이 피디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백 관장님.”

“안녕하세요.”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도현은 이 피디와 함께 지난번 얘기를 나눴던 길 건너 커피숍으로 갔다.

옷을 갈아입지 않고 검정색 도복 차림으로 온 도현은 모자를 쓰고 온 이 피디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문 부서지는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백 관장님. 하도 연락이 안 돼서 그만.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이 피디는 도현을 만나기 위해 여러 번 도장을 찾아오기도 하고 전화도 수없이 했었다. 그렇게 전화를 자주 했으면 인간적으로 아무리 자기가 마음에 안 들어도 전화 한 통은 받아 줄 만한데, 눈앞의 도현은 그런 게 없었다.

도현이 이계에 갔다 오느라 그런 것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 피디는 백 관장이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날 촬영분을 가지고 가서 편집을 했는데요, 관장님이 그렇게 멋있게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편집자나 작가들이나 편집을 하면서 계속 감탄을 했어요.”

이 피디가 목소리를 높여 칭찬을 거듭하자 도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영상이 잘 나왔다니 다행이군요.”

“그래서 미치겠는 겁니다. 프로그램 후반부에 불가능할 것 같았던 미션을 수행할 검의 고수가 마침내 딱 등장해서 검 하나로 예술과 같은 장면을 보였는데요. 얼굴을 모자이크하니까 그림이 이상해지는 겁니다.”

‘역시 또 그 얘기군.’

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종업원이 놓고 간 커피에 입을 댔다.

“백 관장님, 전에 제게 하신 말씀 무시해서가 아니라요, 정말 너무 아까워서 그래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숲을 배경으로 한 관장님의 모습은 그 어떤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보다 멋있었고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거기에다 그런 뛰어난 검술 솜씨를 보여 주는데, 남자인 제가 봐도 ‘야, 이건 그림이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이 피디는 목이 타는지 커피를 한 모금 하며 도현을 쳐다봤다.

“백 관장님, 이건 레전드로 남을 영상입니다. 시청자들도 모자이크 없는 영상을 볼 기회를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백 관장님.”

“죄송합니다, 이 피디님. 검술을 검술로 봐야지 저에 대한 이미지로 이어 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시청률 때문에 그러지!’

속으로 꽥 소리를 지르던 이 피디는 끓어오르는 혈압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처음에는 미션을 완성하는 장면이라도 건지면 대박이다 싶었는데, 찍고 보니 욕심이 생긴 것이다.

예고편에 수려한 외모의 젊은 검객을 부각시키면 방송에 화제성이 생긴다.

방송에서도 모자이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상당했다.

“어쩌면 저희 연출팀이 조작을 했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조작요?”

“모자이크를 하면 관장님이 눈을 가리고 사과를 잘랐다는 것을 명확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어렵거든요. 얼굴이 가려지니까요.”

“그 부분까지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백 관장님, 정말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도현은 이 피디가 우는소리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방송에 출연하기 싫은 제 심정도 이해해 주세요.”

도현은 정중히 양해를 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커피숍에 남은 이 피디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박박 긁었다.

“젠장. 방송 나가면 자기도 좋을 텐데. 정말 황소고집이네, 후우.”

그는 휴대폰을 꺼내 연출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아무래도 힘들겠어. 그냥 모자이크 처리해.”

“대사형, 정말 여기에 남으실 생각입니까?”

“그래, 난 여기가 편하고 좋다.”

청선은 등선궁 앞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앉아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의 손에는 사제가 가지고 온 술병이 들려 있었다.

“여기가 왜 좋습니까?”

“편해서 좋다.”

“밖은 불편합니까? 대사형께서 그리 좋아하시는 술을 얼마든지 드실 수 있고, 호화로운 집에 매일 산해진미들을 맛보실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면 아름다운 여인까지 품을 수 있고요.”

“좋겠다, 이놈아. 그런 곳에서 살아서.”

코웃음 친 청선은 술병에 입을 댔다.

머쓱해진 노일문은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돌려 도관을 보며 물었다.

“일전에 겁도 없이 여기에 온 녀석들 말입니다.”

“그들은 왜?”

“죽여야 하지 않았습니까?”

“사부의 결정이다. 손대지 마.”

청선의 차가운 눈빛에 노일문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자들 사이에 말이 많습니다. 대사형이 문주감이 아니라고요.”

“내가 문주가 되어 제 놈들 곤란하게 만들까 봐서?”

“아니라고는 못 하겠습니다.”

“모두가 사부의 잘못이다.”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십시오.”

노일문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내 잘못이 가장 크다. 곁에서 잘못 보필한 내 잘못이 가장 커.”

청선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어찌 대사형의 잘못이겠습니까. 계절이 바뀌듯 검선문이 있어야 할 위치가 자연스레 움직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조용히 따르란 말이더냐?”

“원치 않으신다면 차후 대사형께서 문주직에 오르시는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현재 대사형의 무공 수준으로는…….”

노일문이 말하기 미안했는지 말끝을 흐렸다.

“죄송합니다, 대사형. 제가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훗날을 대비하시라는 뜻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자가 문주직에 오르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깊은 침음성을 흘리며 청선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노일문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민하지 마십시오. 오원신공을 익히십시오. 그러면 끝이 나는 게 아닙니까?”

“내게는 오원신공이 없다.”

청선이 잘라 말하자 노일문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전대 문주께서 임종 직전 대사형을 불러 직접 전수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터무니없는 소리. 사부님이 계시는데, 어찌 내가 전수받았겠느냐?”

“그렇겠지요. 사형제들이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해서 저는 여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노일문은 귀밑머리를 긁적였다.

“참으로 어렵겠지만, 전 이번에 대사형이 사부님을 따라 세상으로 나오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리를 두고 지켜만 본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잖습니까?”

사제의 말을 듣는 청선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팼다.

“여기 세워 주세요.”

홍영은 택시에서 내려 길을 건넜다.

조금 걷자 눈에 익은 5층 상가 건물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지금 있을까?’

그녀는 휴대폰을 가방에서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도로 넣었다.

‘없으면 그냥 돌아가는 거야.’

홍영은 살짝 긴장을 한 채 호검술 도장으로 이어지는 지하 계단을 막 밟으려 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홍영 씨!”

그녀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다봤다.

도복 차림의 도현이 반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놀랐네요?”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도현을 바라봤다.

“잘 있었어요?”

“네. 홍영 씨는요?”

“전 좀 바빴어요. 한국에 오려니까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요.”

“아, 그럼 지금은 한국에서…….”

“아직 아니에요. 회사 일 때문에 잠깐 와 있는 거예요.”

“네에.”

투피스 정장 차림의 그녀를 잠시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도현은 얼른 정신을 차리며 그녀를 도장 안으로 데리고 갔다.

“안에 친구가 있어요. 일전에 말한 용주라고요.”

“아, 그래요?”

용주는 눈앞에 천사가 나타난 줄 알았다.

얼굴은 희고 아름다웠고, 늘씬한 체형은 어떤 옷을 입든 맵시가 나 보였다.

이 피디를 만나고 오겠다는 도현이 천사를 데리고 오자 용주는 특유의 멋있는 표정을 지으며 점잖게 말했다.

“도현아, 누구셔?”

“인사해. 홍영 씨.”

“뭐? 아니, 그럼 이분이 그…….”

놀라는 용주를 향해 홍영이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홍영이에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형제 같은 분이라고요.”

“네? 아예. 하하하! 전 조용주라고 합니다. 여기 도현이의 둘도 없는 친구죠. 저도 홍영 씨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듣던 대로 아주 미인이시네요.”

홍영은 격의 없이 다가오는 편안한 용주의 행동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건강한 미소를 즐겁게 바라보던 용주는 시계를 보는 척했다.

“전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함께 모여서 술이라도 한잔하죠.”

“네, 그렇게 해요.”

홍영은 밝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도현아, 나 그만 갈 테니까, 나중에 전화해라.”

“어? 그래. 알았어.”

용주는 관장실에 있는 금화 주머니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는 서둘러 도장을 빠져나갔다.

“여긴 그대로네요.”

왠지 허전함이 쌓인 도장을 둘러보던 그녀는 벽에 걸린 백남식 관장의 액자 사진을 발견하고는 차분히 걸어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숙연한 표정으로 묵념을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그녀는 눈물이 조금 고인 눈으로 도현에게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다 함께 웃던 분들인데, 어쩜 이렇게 빨리들 가셨을까요.”

“…….”

“미안해요. 사진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도현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관원들은요?”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도장 문만 열어 놨지 관원들은 없어요.”

홍영은 지난번 만남에서 그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장 운영을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을 내비쳤었다.

“조만간 이 도장도 사라지겠네요.”

손때 묻은 목검들이 진열된 곳으로 가며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장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무슨 뜻이에요?”

“관원들을 받고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더라도 이 도장 자체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유지한다는 뜻이에요.”

홍영은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작은 검술 도장이었지만, 이 안에는 그와 그의 부친이 흘린 땀과 검술에 대한 진지한 열정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부친의 죽음 이후 그는 이 장소에 대해 더 애착을 가졌을 수도 있다.

“도현 씨, 혹시 남은 도복 있어요?”

“도복은 왜요?”

“오랜만에 우리 대련 한번 해요.”

그녀의 손에는 이미 목검이 들려 있었다.

검은 도복을 입고 긴 머리를 한데 묶어 등 뒤로 넘긴 그녀는 도장 한가운데 서 있는 도현을 향해 태극검법과 팔사검법, 창술을 변형한 일기검법 등 그녀가 배운 검술에 다양한 변초를 섞어 공격을 했다.

목검이었지만 허공을 가르는 소리는 매서웠고 화려한 몸놀림 뒤에 따르는 찌르기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도현이 가볍게 휘두르는 검에 모두 차단됐다.

대련을 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만 도현이 움직인 범위는 전후좌우로 각 각 두 걸음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해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얼굴엔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무지 도현의 철벽같은 방어막을 뚫을 수 없었다.

그와 마지막으로 했던 가장 최근의 대련은 대략 5년 전으로, 그때에도 물론 자신이 넘을 수 없는 검술 솜씨를 지녔었지만 오늘처럼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예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도현은 마땅히 해 줄 말이 없어서 그저 얼굴에 미소만 띤 채 그녀의 공격을 막기만 했다.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홍영은 검을 막는 도현에게 발차기를 날리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내가 한국에 오는 게 싫은가요?”

도현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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