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디 임팩트 2권 14화
“아, 눈물 난다. 너무 웃었더니 칼에 찔렸던 부분도 땅기고.”
용주는 붉어진 눈을 감추며 케이크를 꺼냈다.
“용주야, 고맙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자식아. 다 네 덕 좀 보려고 옆에 붙어 있는 거니까.”
케이크를 자른 그들은 아이처럼 단맛에 빠져 한동안 먹기만 했다.
“도현아, 홍영 씨 정말 미인이더라.”
“그래?”
“며칠 전에 여기 왔을 때 내가 느꼈는데, 너와 정말 잘 어울려. 아버지 일로 그녀와 거리를 두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 알았냐?”
도현은 담담히 웃기만 했다.
“이계에는 언제 가지?”
“내일.”
도현이 일어서며 대답을 했다.
“어디 가려고?”
“밖에 김 작가에게 케이크 좀 갖다 주려고. 아침부터 와서 점심도 거르고 저러고 있잖아.”
방송 일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온 여자였다. 관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도현아, 넌 앉아 있어. 내가 갔다 올게.”
휴지로 생크림이 묻은 입을 닦은 용주는 접시에 커다란 케이크 조각을 두 개나 담아서 관장실을 나섰다.
김유진은 문을 열고 나오는 용주의 모습에 실망한 기색으로 도로 계단에 엉덩이를 붙였다.
내심 도현이 나오기를 바랐는데 아니었다.
“저녁에 비가 온다던데, 빗소리 들으며 계단에서 책을 보는 것도 나름 분위기 나겠어요.”
“아저씨 누구세요?”
김유진이 책을 덮으며 앞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용주를 살짝 흘겨봤다.
아까 물어봤을 때 백 관장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어이없는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안에 들어간 그였다. 첫인상이 별로더니, 와서 속 긁는 소리를 하고 있다.
“아저씨 누구시냐고요?”
“저 아저씨 아니에요. 그냥 미스터 조라고 부르세요.”
“네에?”
“이것 좀 드세요.”
용주는 넉살 좋게 김 작가의 옆에 앉으며 등 뒤로 숨기고 있던 접시와 나무젓가락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뭐긴요, 케이크죠. 생크림이 달달하니 좋더라고요. 드셔 보세요.”
김 작가는 접시에 담긴 케이크와 용주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고맙긴 한데요. 별로 생각 없어요. 그보다 백 관장님과는 어떤 사이세요?”
“드시면 말씀드릴게요.”
그녀는 살짝 인상을 쓰다가 할 수 없다는 듯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얼굴로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다람쥐 같기도 하고 천진난만한 소녀 같기도 했다.
“방송국 작가라면서요?”
“네.”
“바쁘지 않아요?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용주가 슬쩍 떠보듯이 묻자 김 작가는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할 일 다 하고 왔어요. 시간 많으니까, 걱정 마세요.”
“정말 호검술을 배우고 싶어서 온 게 맞아요?”
“네.”
“안타깝네요.”
“뭐가요?”
케이크를 먹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용주를 쳐다봤다.
“몇 달만 일찍 찾아왔어도 검신 백도현 관장 밑에서 검을 배울 엄청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안 됐다는 듯 용주가 혀를 차기까지 했다.
“무슨 말이에요?”
“부산의 충덕관 관장님에게 소개를 받고 이곳을 찾아왔었다면서요?”
“네에, 그랬죠.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긴요. 저하고 검신 백 관장님하고는 그런 이야기도 나눌 정도로 긴밀하고 가까운 사이거든요.”
“혹시 친구 사이세요?”
용주는 눈을 지그시 내리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내가 검신의 친구 조용주요.”
“정말이에요?”
“당신들이 방송 출연을 해 달라고 도장 앞에서 밤을 새운 것도 압니다. 이 정도면 그와 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 줄 짐작하겠죠?”
“저 좀 관원으로 받아 달라고 얘기 좀 해 주시면 안 되겠어요?”
그녀가 접시를 내려놓으며 용주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허허, 이거 놓으세요, 김 작가님.”
“제 이름도 아는군요?”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하죠.”
나이 든 사람처럼 용주는 헛기침을 하며 충덕관 관장 얘기로 돌아갔다.
“그때 백 관장에 대해 충덕관 관장님이 다른 말씀 안 해 주셨습니까?”
“백 관장님이 얼마 전에 부친상을 당했으니 되도록 개인적인 질문은 피하고 정중히 부탁하라고…….”
이 피디와 같이 있던 김 작가는 어렵지 않게 그때 상황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 말에 해답이 있어요. 왜 백 관장이 관원을 모집하지 않고 개인적인 제자를 받지 않는지요.”
“그럼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네. 맞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용히 아버지를 추모하며 검의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겁니다.”
“아! 그랬군요. 방송에 얼굴을 가려 달라는 이유도.”
“그렇죠. 그렇죠.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김 작가님이 정말 호검술을 배우고 싶다면, 백 관장이 정식으로 호검술 도장을 다시 열 때, 그때 찾아오십시오. 그게 올바른 순서이지 않을까요?”
“…….”
김유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숲에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에 그만 홀딱 마음을 빼앗긴 그녀는 그 뒤로 편집된 영상을 보며 가슴앓이를 하다가 관원이 되면 자주 도현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싶어 찾아왔다.
하지만 친구라는 사람의 얘기를 듣고 보니 자신이 이렇게 떼를 쓰듯 앉아 있다고 해서 관원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사정을 알게 된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이 스토커도 아니고 단지 숲에서 본 백도현의 모습에 끌렸을 뿐이었다.
“제가 큰 실례를 한 것 같네요.”
그녀가 책과 가방을 들고 계단에서 일어나자 용주도 따라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백 관장님께 제가 죄송했었다고 말씀 전해 주세요.”
김 작가는 용주에게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섰다.
“잠시만요.”
용주는 그녀를 불러 세운 뒤 웃으며 말했다.
“호검술은 저도 압니다만. 제게 혹시 배울…….”
“아니요. 배우지 않을래요.”
특급 용병
이계로 돌아온 도현은 갑옷과 무기들을 정비한 후, 다음 날 헬스콧 산으로 재진입했다.
능숙하게 산을 타고 오르던 그는 우람한 체격의 병사들 수십여 명이 거대한 도끼로 하늘 높이 치솟은 거목들을 벌목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쿵! 쿵쿵! 쿵!
“넘어간다! 조심해!”
여기저기서 조심하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때마다 거목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거목은 다시 사람들에 의해 여러 부분으로 잘린 뒤 옆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용병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며 훑고 간 안전한 지역에 마차가 다닐 만큼의 넓은 산길을 내고 있었다.
경사가 완만하더라도 실제로 마차가 산을 오를 수는 없겠지만, 일꾼들과 병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차가 다닐 만큼의 넓은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산 밑에서 시작된 길은 거목과 바위를 부수며 산 위로 제법 올라온 상태였다.
‘왜 이렇게 넓은 길을 내는 거지?’
지난번에도 목격을 했지만 도현은 볼 때마다 궁금했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지켜보던 그는 옆을 지나는 용병에게 물었다.
“이 길은 왜 내는 겁니까?”
“그거야 산 정상 부근에 머문다는 악마 같은 슈빅타이런 때문이지 않소.”
“슈빅타이런요?”
도현의 머릿속에 금화 1,000개라는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붙은 몬스터가 떠올랐다.
신장이 무려 5미터에 이르는 슈빅타이런은 얼굴이 사자와 비슷하고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사람을 거대한 주먹으로 으깨어 죽이는 무시무시한 녀석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죽은 무척 질겨서 화살도 뚫을 수 없고, 사람 몸통을 다 가릴 정도로 거대한 주먹은 바위처럼 단단해서 칼로 아무리 내리쳐도 끄덕도 없다고 했다.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긴 해도 대적할 수 없는 놈도 있잖소. 이곳의 영주도 그걸 대비해서 슈빅타이런을 잡기 위해 이 길을 내는 거지.”
중년의 털북숭이 용병이 수염을 매만지며 설명해 줬다.
“슈빅타이런을 잡으려면 이 길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계속된 도현의 질문에 용병은 피식 웃으며 도현의 위아래를 다시 살폈다.
“당신 용병 된 지 얼마나 됐소?”
“얼마 안 됐습니다.”
“경험을 좀 많이 쌓아야 할 것 같소. 이런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여길 올라온 거요? 몬스터를 상대할 실력은 갖췄는지 의문이군.”
도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뭐 하나 물어보기가 겁나는군.’
“이 길은 슈빅타이런을 잡기 위해 고안된 거대한 화살 발사대를 옮기기 위한 것이오. 한번 발사하면 수십 개의 창보다 긴 화살이 날아가는데, 그 앞에서는 슈빅타이런의 질긴 가죽도 빛을 못 보지.”
도현은 수십 개의 화살을 날리는 신기전이라는 무기가 생각났다.
‘도대체 얼마나 큰 화살 발사대이기에 이렇게 큰 길이 필요한 거지?’
그는 한편으로는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창보다 큰 화살이 수십 발 날아가도 슈빅타이런이 가만히 앉아서 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털북숭이 용병이 말을 덧붙였다.
“그놈을 유인해서 화살대 앞으로 끌고 오는 거요. 바로 이 길이 만들어진 곳까지 말이지. 운이 좋으면 한 번에 잡는 거고, 아니면 개박살 나는 거지.”
“설명 잘 들었습니다.”
도현은 자신을 낮게 평가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 털북숭이 용병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다시 산 위로 올라갔다.
“아는 게 적은 걸 보면 솜씨를 알 만하군. 아무리 봐도 크람빌 떼에 몸이 찢겨 죽을 것 같아.”
뒤에 남은 털북숭이 용병이 혀를 찰 때였다. 같이 다니는 동료들이 나타나 그에게 급히 물었다.
“이봐, 저 사람이 뭐라던가?”
“누구?”
“지금 자네와 말하고 올라간 사람 말이야.”
“아, 저 초보.”
“초보라니? 누가 초보라는 거야?”
“위에 올라간 친구 말이야. 아는 것도 적고, 실력은 더 없는 것 같아. 내가 우리랑 같이 다니자고 말해 볼까 하다가 너무 실력이 없어 보여서 그냥 보냈어. 근데 왜?”
그의 말에 듣고 있던 동료들이 일제히 그를 비난했다.
“이런 미친 사람 같으니.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누군데?”
“소문 못 들었어? 혼자서 험벨 열 마리를 잡고 거액을 수령해 간 사람.”
털북숭이 용병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험벨 사냥꾼?”
“그래, 이 답답한 친구야! 누구는 말을 한번 붙여 볼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자네는 인사도 제대로 안 나누고 보냈단 말인가? 에라이!”
동료들의 살기 띤 구박에 털북숭이 용병은 울상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다.
“왜, 왜들 그래. 나는 몰랐다고.”
도현은 크람빌과 같은 자잘한 몬스터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그를 보고 달려들지 않는 한은, 그대로 지나쳤다.
그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잡을 용병들은 많았다.
‘가우너와 험벨 위주로 잡는다.’
내공의 증가량이 달랐고, 돈의 액수도 차이가 컸다.
쉬이이익!
신법 연습을 하며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통과하던 그는 오후 무렵, 그가 마지막으로 사냥했던 산속 깊은 지점에 도달했다.
거대한 면적을 가진 산을 100의 높이로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높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시작해 볼까?”
도현은 저만치 머리를 내밀고 있는 가우너를 향해 가볍게 몸을 날렸다.
밤이 됐지만 도현은 홀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밤을 보내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한데 뭉쳐 밤을 보내고 싶어도 근처에 마주치는 용병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없는 건 아니었다. 수십여 명 단위로 같이 몰려다니는 유명한 용병대들 서너 팀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홀로 다니는 용병이나 소규모 용병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는 일이 없었다. 이미 그들의 힘만으로도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산에서 밤을 충분히 버틸 수가 있었고, 힘 있는 용병대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깔려 있어서 일반 용병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류였다.
도현이 듣기론 그들은 용병대 안에서 군인들처럼 딱딱한 규율을 만들어 지킨다고 했다.
“으음, 생각보다 몬스터가 너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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