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디 임팩트 2권 15화
도현은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뒤적이며 어제와 오늘 사이에 잡은 몬스터의 수를 떠올렸다.
가우너 다섯 마리와 험벨 한 마리였다.
내공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그의 수준은 보이는 대로 가우너와 험벨을 사냥할 정도다. 일단 눈에 띄면 반드시 잡는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 살아 있는 가우너와 험벨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기만 했다. 그보다 한발 앞서 고유의 문장까지 찍힌 갑옷을 착용한 유명한 용병대들이 그들을 다 사냥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도현은 이계로 다시 넘어올 때만 해도 쉽게 험벨을 사냥하고 내공도 키우고 돈도 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광산 마을에서 물품과 병장기 들을 점검하고 이튿날 헬스콧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는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유명한 용병대들이 산을 접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일은 무슨 수를 쓰든 그들보다 앞서 가야 돼.”
도현은 말과 함께 벌떡 일어나 모닥불을 꺼 버린 뒤, 짐을 챙겨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한가하게 쉴 시간이 없었다.
밤에 산을 타던 도현은 어둠 속에서 뛰쳐나오는 가우너 한 마리를 잡아 송곳니를 빼낸 뒤 다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수목이 울창한 산은 달빛만으로 견디기 어려운 짙은 어둠을 선사했고, 구름에 달이라도 가려질 때면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도현이라 할지라도 쉽게 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그럴 때 옆에서 공격을 가해 오는 몬스터는 눈에 의지하지 않고 수련으로 다져진 몸의 감각과 기감에 의지해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험벨과 같이 원거리에서 창이나 활을 사용하는 몬스터도 이 어둠에 영향을 받아 정확히 공격을 가해 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험벨이 기습적으로 날린 창이 도현의 옆을 지나 튀어나온 돌멩이에 부딪히며 큰 소리를 냈다.
‘오른쪽 나무 위?’
도현은 창이 날아온 소리를 추적하며 몸을 날렸다.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세상에 빛을 다시 비추자 높은 나무 위에서 재차 창을 던질 준비를 하는 험벨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카아아아!
빠르게 다가오는 도현의 모습에 놀란 녀석이 괴성을 내뱉으며 창을 재빨리 던지고 근처 나무로 몸을 피했다.
강한 힘이 실린 창을 슬쩍 어깨 뒤로 흘린 도현은 신법을 발휘해 나뭇가지 위에 발끝을 살짝 걸쳤다가 몸을 반 바퀴 뒤틀며 반대편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험벨과 도현이 한나무 위에 서로 마주 보게 된 순간, 다시 달이 구름에 가려졌다.
퍼버벅! 서걱!
둔탁한 소리와 살과 뼈를 가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먹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다시 산 위에 비췄을 때는 도현과 험벨의 싸움은 이미 끝난 뒤였다. 도현의 주먹에 안면을 짧은 시간에 여러 차례 강타당한 험벨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다가 도현의 검에 치명상을 입고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진 것이다.
불어나는 단전의 기운을 느끼며 도현은 험벨의 귀를 잘라 가방에 담고 다시 움직였다.
해가 뜬 아침, 까마귀 용병대 수십여 명은 죽어 있는 험벨의 사체를 빙 둘러쌌다.
피가 굳지 않은 것으로 보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놈들이지?”
“여러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어. 혼자일 가능성이 커.”
추적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내의 말에 동료들이 웅성거렸다.
“게다가 험벨의 상처를 보면, 화살에 맞은 자국이 전혀 없어. 목이 반쯤 잘려 즉사한 거야.”
냉정한 시선으로 시신의 상태까지 파악한 사내는 허리를 세우고 옆에 서 있는 대장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특급 용병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홀로 다니는 특급 용병이 이곳에 왔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걸걸한 말투로 까마귀 용병대의 대장이 말했다.
“아닙니다, 대장.”
곁에서 듣고 있던 작은 키의 사내가 한 걸음 나섰다. 그는 일행보다 이틀 정도 늦게 광산 마을을 출발해 합류한 자였다.
“제가 광산 마을에서 막 출발할 때 혼자 다니는 젊은 용병이 험벨을 사냥하고 큰돈을 받아 갔다는 얘기가 막 돌고 있었습니다.”
“젊은 용병?”
“네. 알려진 자는 아니라고 합니다.”
“흐음, 험벨을 몇 마리나 잡았다고 들었지?”
“열 마리로 들었습니다.”
작은 키 사내의 말에 까마귀 용병대가 술렁였다.
그들이 산에 올라 잡은 험벨의 수는 다 합해 봐야 지금까지 일곱 마리였다.
도중에 만난 유명한 용병대 역시 잡은 수는 비슷비슷해 보였다.
물론, 사냥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건 며칠이 안 돼 잡은 수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젊은 용병 역시 헬스콧에서 사냥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며칠 전에 열 마리나 잡아서 돈으로 바꿔 갔다니, 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험벨을 찾아내는 눈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가자!”
대장의 지시에 수십여 명의 까마귀 용병대 대원들은 다시 몬스터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하루가 가기 전에 죽은 험벨을 여러 마리 더 목격해야만 했고, 그들이 이날 잡은 험벨은 한 마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까마귀 용병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크라포드 용병대와 바젠 용병대 등 험벨과 가우너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규모 있는 용병대들에 공통적으로 닥친 일이었다.
상대는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놀라운 이동속도로 험벨을 사냥하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더 갔고, 나름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유명한 용병대 대장들은 이 일로 인해 산속에서 회합 아닌 회합을 가지게 됐다.
산속 널찍한 공터에 200여 명 가까운 용병들이 경비를 서는 가운데, 모닥불 앞에 둘러앉은 세 명의 용병대 대장들은 갑자기 나타나 그들의 사냥물을 가로채고 있는 싸가지 없는 특급 용병의 처리 문제를 두고 깊은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있었다.
“계속 이대로 두고만 봐야 하겠습니까? 그자 때문에 우리 피해가 상당합니다.”
귀가 한쪽 없는 바젠 용병대 대장이 솥뚜껑 같은 커다란 손으로 바닥을 쿵 치며 그의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바젠 용병대가 나타나면 알아서 작은 용병대들은 조용히 물러난다. 거치적거리면 부하들에게 고함 한 번씩 치고 무기를 흔들라고 한다.
그렇게 경고를 하면 방해되지 않게 주변에서 더 이상 알짱거리지 않는다.
그런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정체불명의 용병이 그동안 편하게 사냥해 오던 그들을 비웃듯 보상이 큰 몬스터들을 한발 앞서 싹 잡아가고 있었다.
“어쩌잔 말이오?”
“손을 써야지요. 그러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우리가 모인 거 아닙니까?”
“죽이자는 말이오?”
까마귀 용병대 대장의 직설적인 물음에 바젠과 크라포드 용병대 대장이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특급 용병이었다. 그것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넓은 산속을 종횡무진하며 험벨을 집중적으로 잡는 무서운 자였다.
그들 셋 역시 용병계에서는 특급 용병으로 통하지만, 그자만큼 미친 듯이 험벨을 사냥할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죽은 험벨의 상처를 보면 아주 깔끔했다.
많아야 두 번의 칼질이고, 대부분은 단 한 번의 칼질에 치명상을 입히고 숨을 끊어 버렸다.
“뭐 꼭 죽이자는 말은 아니고.”
바젠 용병대 대장이 헛기침을 하며 밤하늘에 시선을 두었다.
“그렇지. 몬스터 몇 마리 잡았다고 우리의 이름을 더럽히며 다수로 그자를 핍박할 수는 없지.”
크라포드 용병대 대장이 동의를 했다.
“내 생각도 그렇소.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몬스터 토벌이 끝날 동안 우리의 수익은 변변찮을 것이고, 세 개의 용병대가 혼자 다니는 자보다 못하다는 악평까지 듣게 될 거요. 또한 그로 인해 우리의 명성 역시 곤두박질칠 게 분명하고.”
까마귀 용병대 대장의 말에 두 용병대 대장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용병대에 명성은 아주 중요했다.
몬스터 토벌이 없을 때 그들은 영주로부터 의뢰를 받거나 아니면 상단의 의뢰를 받아 일을 수행한다. 그 대가는 용병대의 명성에 비례한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바젠 용병대 대장의 눈빛이 아주 차가워졌다.
“더 늦기 전에 그자를 만나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가 거부한다면요?”
“그때는 강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소?”
도현이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나고 육체가 강인하다고 해도 잠을 자지 않고 긴장을 유지한 채 밤낮으로 몬스터를 잡는 건 한계가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참고 있던 졸음이 밀려왔고, 피곤이 쌓인 몸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현은 계곡물에 머리를 통째로 집어넣어 정신을 맑게 한 다음, 그대로 뒤로 누우며 잠시 눈을 감았다.
유명한 용병대들에 자극을 받은 그가 위기의식 속에 여러 날 미친 듯이 사냥을 한 결과, 단전의 내공은 세 배 가까이 늘어났고, 어둠 속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요령도 이제는 확실히 체득이 됐다.
거기에다가 잡은 험벨의 수가 많아서 엄청난 보상금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만 내려가자.’
모처럼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자 이대로 잠을 자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지만, 도현은 참아 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때 그의 눈에 계곡 주변으로 모여드는 수많은 용병들이 보였다. 그가 산을 돌아다니며 가끔 목격한 유명한 용병대 사람들이었다.
도현은 몬스터 사냥 증거물이 든 가방을 등에 두르고 천천히 일어났다.
저들의 다가오는 자세가 마치 전투를 앞둔 모습이었다.
뒤에서도 수많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다보니 왼쪽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일단의 용병들이 또 수십여 명이었다.
도현은 눈치가 둔한 편이 아니었다.
‘나를 목표로 왔어. 왜지?’
표정이 딱딱하게 변한 그는 전투가 벌어지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예상 동선을 빠르게 눈으로 그리며 앞서 걸어오는 자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너희들은 여기 있어.”
까마귀, 바젠, 크라포드 용병대의 세 대장들은 뒤를 따라오던 부하들을 떼어 놓고 그들 셋이서만 보조를 맞춰 도현을 압박하듯 느리게 걸어왔다.
“안녕하시오. 난 까마귀 용병대 대장이오. 여기 옆에 두 분은 명성이 자자한 바젠 용병대와 크라포드 용병대 대장들이시고.”
“그러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백도현이라고 합니다.”
도현은 경계를 하면서도 일단 정중한 자세로 자신을 소개했다.
“요즘 험벨을 잡느라 대단히 바쁘실 거요.”
도현은 그의 말에 이들이 왜 찾아왔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내가 잡은 몬스터가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 보군.’
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귀 한쪽이 없는 바젠 용병대 대장을 흘낏 쳐다보다가 다시 까마귀 용병대 대장의 말을 계속 귀담아들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있는 것 아니겠소?”
까마귀 용병대 대장은 젊은 도현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실력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용병의 세계에서는 나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도현을 특급 용병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제게 뭘 원하는 겁니까?”
도현은 짐작이 됐지만 확인하기 위해 되물었다.
“실력이 되는 만큼 몬스터를 잡는 건 당연하겠지만, 우리 입장을 고려해 보라는 거요.”
도현은 닥치는 대로 잡았던 며칠간의 상황을 떠올렸다. 이들이 먼저 몬스터들을 남김없이 잡고 다녀 자극을 받아 그리 된 것이긴 했지만, 그만큼 자신은 절박하기도 했다.
‘내가 앞으로 계속 그러겠다면 어떻게 될까?’
도현은 계곡 주변을 둘러싼 많은 용병들을 가볍게 훑어봤다.
일반 용병들보다 한 차원 높은 솜씨를 지닌 정예 용병들만으로 구성된 용병대들이었다.
모두들 대장들의 명령 한마디면 용맹하게 싸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한번 싸워 볼까?’
몬스터를 상대로 실전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진짜 사람과 싸우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그런 욕심이 솟구쳤지만 도현은 끓어오르는 투기를 잠재우며 까마귀 용병대 대장을 바라봤다.
“저도 이유가 있어서 밤낮없이 사냥을 했던 겁니다. 당신들이 말한 입장이라는 것도 저 역시 존재하고요.”
도현의 말에 좋게 말을 하던 용병대 대장들의 눈초리가 사나워져 갔고, 주변의 긴장감도 늘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