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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1화 (41/575)

[41] 디 임팩트 2권 16화

“하지만 이번만은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사냥 속도를 반으로 줄이도록 하죠. 하지만 결코 느리지는 않을 겁니다.”

조금 오만하다 싶은 말이었지만 밤낮으로 쉬지 않고 세 개 용병대들이 움직이는 지역을 도현이 홀로 다 독식하다시피 사냥을 했기에 용병대 대장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됐습니까?”

“흐음, 뭐 그 정도면.”

용병대 대장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들이 쉬는 시간을 쪼개어 더 늦게 까지 사냥한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성 있는 용병대 세 개 조직이 나서서 특급 용병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을 포위 공격한다는 건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는데, 그런 파국까지 치닫지 않은 점도 의의가 있었다.

“나중에 술 한잔 합시다.”

용병대 대장들은 도현에게 다가와 각기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며 용병식 인사를 하고는 데리고 온 부하들과 함께 계곡 주변에서 물러갔고, 도현은 담담한 얼굴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속도를 조절하자. 이미 건물을 매입할 돈은 마련됐으니까.’

사실 그는 이미 험벨을 42마리나 잡았다. 금화로 1,260개나 되는 큰 금액이다.

거기에다 가우너도 상당수 잡았다.

더 이상 건물을 매입할 돈 때문에 급하게 쫓겨 다닐 이유는 사라진 것이다. 다만 막대한 내공을 주던 험벨을 마음껏 잡을 수 없게 됐다는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그동안 몬스터를 잡는 것에 치중하다 보니 이계에서는 조용히 명상을 하며 심상 수련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부터는 그 시간이 어느 정도는 확보됐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빨리 건물을 사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는데?”

험벨의 귀가 가득 담긴 가죽 가방을 등에 멘 도현의 걸음걸이는 날듯 가벼워 보였다.

“이, 이걸 모두 다 혼자 잡은 겁니까?”

관리는 엄청난 양의 험벨 사냥 증거물을 보며 말을 더듬기 까지 했다.

그는 일전에 도현을 상대로 보상금을 계산해 지급했던 그 관리였다.

그때도 놀랐지만, 지금은 훨씬 더 놀라고 있었다.

험벨 42마리에 가우너가 100여 마리.

값이 상대적으로 싼 크람빌이나 크루는 얼마 보이지도 않았다.

지난번 보상금을 받아 간 뒤로 열흘이 채 안 지났는데 눈앞에 사내는 또다시 엄청난 사냥 결과물을 가지고 온 것이다.

주변에 다른 관리들이나 천막 안에서 보상금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수십여 명의 용병들은 하나같이 다들 놀람과 경탄 어린 시선으로 도현을 바라봤다.

“계산해 주시죠.”

도현의 말에 정신을 차린 관리가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크람빌이나 크루까지 다 해서 금화 1,620개요. 당신의 계산과 맞습니까?”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거액을 받게 될 도현을 부러워하는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유명한 용병대도 한 번에 받기 힘든 돈을 혼자 받다니, 대단한 사람이야.”

“어느 정도 실력이기에 저렇게 잡아 올 수가 있지?”

“몬스터 토벌장만 돌아다녀도 성 하나를 살 정도의 돈은 금방 모으겠네.”

“험벨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해.”

도현은 자신을 두고 오가는 사람들의 온갖 대화 소리에 살짝 민망해져서 빨리 돈을 받아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관리는 뜻밖의 말을 했다.

“돈이 부족합니다.”

“네?”

황당해하는 도현을 향해 관리는 사정을 설명했다.

“보유 중인 토벌 보상금이 거의 다 바닥을 드러내서요. 이렇게 큰 금액을 한 번에 지급할 여력이 지금은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이틀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연락이 가면 영주님이 돈을 보내 주실 겁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다시 오죠.”

도현은 영주로부터 돈이 오기를 기다리며 광산 마을 뒤편에 있는 넓은 숲에서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광산 마을에서는 그의 얼굴이 이미 널리 알려져서 머물기가 불편했다.

못 잤던 잠도 자고, 수련도 하며 숲에서 이틀을 보낸 그는 약속한 날짜가 되어 다시 관리를 찾아갔다.

“번거롭겠지만 돈은 영주님이 계시는 성에서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영주님의 성에서요?”

“네.”

“왜 그래야 합니까?”

“영주님이 당신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날 왜 보자는 걸까? 설마 그 핑계로 성에서 나를 죽이려는 걸까? 돈이 아까워서?’

말 등 위에서 도현은 여러 상상을 했다.

‘아니야. 단순히 내가 궁금해서 부른 것일 수도 있어.’

도현은 길을 안내하는 병사 두 명의 말을 따라가며 조금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영주의 성에 가는 게 꺼림칙했지만 돈을 받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낮에 출발한 그는 여러 마을을 지나쳐 해가 저물 무렵 호수를 옆에 두고 언덕 위에 세워진 영주의 성에 다다랐다.

제법 웅장한 성은 성벽이 무척 높았고, 칼이 그려진 깃발 수십여 개가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맑은 호수를 빙 돌아서 성을 향해 말을 몰아가던 도현은 저녁노을에 물들어 가는 호수와 성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며 언덕으로 이어지는 외길을 타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은 뒤로 따로 길이 있지 않아서 이 길을 통하지 않고는 성에 진입할 수 없는 구조였다.

육중한 성문이 위로 올라갔고 도현은 광산 마을에서부터 자신을 인도한 병사들을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얼마나 피해를 입었지?”

젊은 영주 컬라드의 질문에 염소수염이 난 관리는 밑에서 올라온 보고를 읽어 내려갔다.

“마을 주민과 병사 120명이 사망했고, 소 350마리, 양 1,200마리가 약탈당했습니다. 그 외에도 집집마다 들어가서 여자들을…….”

“그만.”

집무실의 커다란 의자에 앉아서 보고를 듣던 컬라드가 손을 휘저으며 관리의 입을 막았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이기에 내 영지에 들어와 매번 이런 짓거리를 되풀이하는 거지? 내가 우습나?”

“그렇지 않습니다, 영주님. 커딜과 이안은 성품 자체가 악한 자들일 뿐입니다.”

“아니야. 유독 우리에게만 심한 것 같아. 다른 영지들은 건들지도 않잖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영주 자리에 오른 뒤부터 이자들이 마음껏 내 마을을 약탈하고 있어.”

관리는 영주의 눈치를 살짝 보다가 차분하게 말했다.

“수많은 마을들 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넓은 마음으로 참고 그냥 넘어가시지요.”

“그러다 그들이 내 성 앞까지 쳐들어오면?”

“그렇게까지는 감히 못 할 겁니다. 전면전을 각오하고 들어올 영주들이 아닙니다.”

“빌어먹을.”

컬라드는 화려한 의자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천천히 집무실을 거닐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놈들의 영지로 들어가서 당한 만큼 되갚아 주고 싶은데 말이야. 힘들겠지?”

“지금은 광산 마을에서 벌어지는 몬스터 토벌전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판단됩니다.”

“죽일 놈의 커딜과 이안! 두고 보자고!”

컬라드가 이를 갈 때 도현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으로 데리고 와.”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통로를 지나 집무실 입구에 선 도현은 경비대장의 손에 소지하고 있던 검을 넘겼다.

그러지 않고는 영주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끼이익.

거대한 집무실 문이 열렸고, 도현은 대리석이 깔린 그 안으로 긴장을 유지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금으로 치장된 화려한 집무실 안쪽엔 높은 단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 의자에 앉아 있는 젊은 사내가 보였다.

체구는 보통이었고 고집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 사람이 영주?’

도현은 경비대장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가며 양쪽에 늘어서 있는 호위병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은빛이 나는 갑옷과 번쩍이는 창과 검을 든 그들은 하나같이 신장도 크고 눈빛이 강했다.

자신이 영주에게 다가가는 동안 감시의 시선을 끊임없이 보내고는 있지만, 특별히 무슨 꿍꿍이가 있는 표정들은 아니었다.

‘날 해치기 위한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도현은 내심 판단을 내리며 영주와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백도현입니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컬라드는 도현을 찬찬히 살피다가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관리가 서신을 두 손으로 받쳤다.

“내 손에 광산 마을의 관리가 보낸 서신이 있소. 여기에는 당신에게 무려 금화를 1,620개나 지급해야 하는 이유가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소.”

도현이 아닌 서신에 시선을 두고 컬라드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여기에 또 보면 이번 청구를 하기 전, 약 열흘 전에도 금화 432개를 청구해서 받아 갔다는 이야기도 적혀 있소. 맞소?”

“그렇습니다.”

“하면 열흘도 안 되는 사이에 당신은 놀라운 재주를 부린 것이군. 험벨을 42마리나 잡고 가우너를, 흠 그래 이것도 100여 마리나 잡고 말이오.”

서신을 관리에게 돌려준 컬라드는 팔걸이에 손을 올리며 엄한 목소리로 추궁하듯 물었다.

“진정 10일도 안 되는 그 기간 동안 이 많은 몬스터를 잡은 게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혼자서?”

“그렇습니다.”

“험벨도 말이오?”

“네.”

도현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지그시 바라보던 컬라드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증명해 줄 사람들이 있는가?”

“혼자 잡은 일을 따로 증명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도현은 영주가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 마음이 답답했다.

“묻는 바에 대답이나 하시오.”

컬라드의 목소리가 집무실에 낮게 깔렸다.

‘몬스터를 잡아 왔더니 이제 나에게 증명을 하라는 건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도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표정 변화 없이 당당한 태도로 대답을 했다.

“까마귀 용병대 대장과 바젠 용병대, 그리고 크라포드 용병대 대장이 증명해 줄 겁니다.”

“그들이?”

컬라드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용병들 사이에서는 제법 명성이 있는 용병대였고, 영주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십시오. 험벨 사냥 문제로 얘기를 나누었으니까요.”

도현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컬라드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돌연 크게 웃었다.

집무실이 떠나가라 크게 웃던 그는 서서히 웃음을 줄였다.

“굳이 확인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불쾌했다면 이해해 주시오. 정말 당신이 그 정도로 뛰어난 용병인지 확인해 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니.”

도현은 갑자기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는 영주의 행동에 어리둥절해졌다.

“어디 출신이오?”

“태어난 곳은 잊었습니다.”

“고향이 없다. 좋은 말이군. 한데, 험벨을 짧은 시간 동안 수십여 마리나 잡아 온 실력을 보면 매우 특별하다 하겠는데, 무슨 수로 잡은 것이오?”

“검으로 잡았습니다.”

“난 활을 잘 다루는 사람인가 했는데, 검이었군.”

턱을 매만진 컬라드는 잠시 말없이 도현을 내려다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왜 혼자 다니는 거요? 그 정도 실력이면 용병대의 대장이 되어 나름 이름을 날릴 수도 있을 텐데.”

“혼자 다니는 게 좋습니다.”

“세상에 혼자라서 좋을 게 무엇이겠소? 어디라도 소속이 되어야 든든한 법이지.”

잠시 말을 끌던 그는 은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용병이 되어 아무리 돈을 벌면 뭐하겠소. 안정된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부리며 편안하게 지내는 게 좋은 것이지.”

“네?”

“난 용기 있고 실력 좋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걸 좋아 하오. 출신 성분이니 뭐니 난 그런 거 따지지 않소. 내게 오시오. 당신에게 땅과 아름다운 미녀가 있는 여러 마을을 떼어 주겠소. 내게 충성만 맹세하시오.”

전혀 예상치 못한 영주의 제안에 도현은 처음엔 얼떨떨한 기분으로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정중히 답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헬스콧 토벌만 끝나면 떠나야 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오. 영주에게 이런 제안을 듣는 일이 흔치 않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 거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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