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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2화 (42/575)

[42] 디 임팩트 2권 17화

젊은 영주 컬라드는 자신을 보필할 뛰어난 인재들에 갈증이나 있었다. 워낙 주변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산 마을에서 올라온 보고를 듣다가 도현을 부른 것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혼자서 험벨을 수십 마리나 사냥할 정도의 무력을 소유한 자라면 곁에 두어서 나쁠 게 없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도현이 거듭 사양하자 컬라드는 영주의 체면이 있기에 더는 권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자식. 너도 나를 무시하는 거냐?’

속으로 자신의 제안을 거부한 도현을 마구 욕하며 지금껏 점잖은 표정으로 권위 있게 의자에 앉아 있던 그가 벌떡 일어났다.

“돈을 주고 성에서 내보내라!”

다그닥다그닥.

말을 몰아 어둠이 깔린 언덕 위를 내려온 도현은 달이 내려앉은 호수를 잠시 응시하다가 말 등 위에서 뒤를 돌아다봤다.

조금 전 그가 나온 성이 우뚝 서 있었다.

영주가 그런 제안을 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상당히 불쾌해하는 것 같던데.”

도현은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던 젊은 영주의 모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약속한 돈은 주는군.”

말 등에는 금화가 잔뜩 든 상자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금화가 든 상자는 무게만도 수십 킬로그램이었다.

금화 대신 값나가는 보석들로 대신 줄 수도 있다고 관리가 말했지만 도현은 그냥 금화를 가지고 나왔다. 보석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볼 눈도 없었고, 부피와 무게가 있는 이 금화는 어차피 곧 그의 도장으로 옮겨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호수를 따라 말을 몰던 그는 숲으로 들어갔다.

말 등 위의 무거운 상자를 내린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타투를 내려다봤다.

모든 게 너무 잘 풀리고 있었다.

신법을 이용해 나무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험벨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사냥한 결과, 그에게 이십억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금화가 생겼고, 내공도 크게 증가했다.

이 모든 게 타투가 가져다준 기회였다.

“조 박사님에게 정말 감사드려야겠군.”

도현은 미소를 머금으며 타투에 손가락을 올리고 한 바퀴 돌렸다.

그 순간 허공에 붉은 빛이 일렁이는 게이트가 번쩍하고 그의 전면에 나타났다.

그런데 게이트가 좀 이상했다.

전과 달리 붉은 빛이 굉장히 약해져 있었고, 타원형에 가까웠던 게이트는 지금은 좁아져서 거의 일자처럼 보인 것이다.

“이게 왜 이런 거지?”

달라진 게이트의 모습에 뭔가 불길함을 느낀 도현이 잠시 바라보고 있을 때 놀랍게도 그의 앞에서 게이트가 점점 흐릿해지며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안 돼!”

깜짝 놀란 도현은 금화가 든 상자를 들고 다급히 사라지고 있는 게이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쿠웅!

도장 바닥에 무거운 금화 상자를 내려놓으며 도현은 낙법을 펼치듯 몸을 한 바퀴 앞으로 굴렀다.

이계에서 몸을 날릴 때 그 힘 그대로 도장으로 바로 넘어 온 것이다.

‘다행이다. 넘어왔어!’

그는 무사한 금화 상자와 눈에 익숙한 도장 전경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장실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만화책을 읽고 있던 용주는 쿵 소리와 함께 도현이 멋지게 나타나자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자식, 엄청 박력 넘치게 넘어오네. 도현아, 돌아왔구나!”

관장실에서 웃으며 다가오던 용주는 도현이 어딘지 어두운 미소를 지으며 팔을 내려다보고 있자 가슴이 철렁해 얼른 물었다.

“야, 무슨 일 있었어?”

“용주야.”

도현은 가까이 다가온 용주에게 왼팔을 내밀었다.

“타투가 사라졌어.”

대련

도현의 깨끗해진 팔뚝을 보며 용주는 얼음이 되어 갔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타투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왜?”

혀가 굳어서 쉽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게이트가 이상했었어.”

도현은 차분한 얼굴로 조금 전 게이트가 일으켰던 변화를 설명해 주었다.

“도현아, 너 괜찮은 거지?”

타투가 사라졌다. 이계를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내공이고 돈이고 실전이고 모두가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꿈같은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그런데 어두운 미소를 짓던 도현이 어느새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차분한 얼굴로 담담히 남의 일처럼 게이트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었다.

“너 충격 먹고 제정신이 아니지? 그렇지?”

용주는 도현의 두 눈을 자세히 보기 위해 친구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어디, 눈이 정상인지 확인해야겠어.”

“그만해. 나 멀쩡해.”

도현은 용주의 손을 가볍게 옆으로 밀어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담담할 수가 있어. 타투가 네게 얼마나 중요한데! 주먹으로 벽을 깨부숴도 시원찮을 판에.”

도현보다 용주가 오히려 더 흥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이럴 리가 없어. 어쩌면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생길지도 몰라.”

“용주야.”

“도현아, 실망하지 마라. 기다려 알았지?”

“용주야, 정말 나 괜찮다니까.”

끝까지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 용주는 안쓰러운 마음에 왈칵 눈물이 나왔다.

“백 관장님 복수는? 넌 게이트가 필요하잖아.”

“복수는 이 마음만 있으면 돼.”

도현이 굳은살이 잔득 박인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복수를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뿐 변하는 건 없어. 그러니까 난 괜찮아. 너도 괜찮은 거고.”

“도현아…….”

“씻고 나올게.”

도현은 갑옷 차림으로 탈의실이 있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고개를 푹 숙인 도현은 도장 샤워실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을 바라보다 손바닥으로 벽을 내리쳤다.

“빌어먹을!”

친구 앞에서 끝까지 침작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친구 또한 괴로워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의 가슴은 폭발 직전이었다. 내공을 키우고 수련을 하는 데 그 이상 좋은 장소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 눈을 꼭 감고 잠시 심호흡을 하던 그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샤워실을 나와 도복으로 갈아입은 도현은 탈의실 한쪽 구석에 놔둔 검과 갑옷을 잠시 응시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용주는 상자 안에서 금화를 꺼내 세고 있었다.

“그래, 시발. 다 잊고 새로 시작하는 거야. 아닌 말로 그깟 이계 없었다고 도현이 네가 태선군 못 이길 것 같아?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거 셀 필요 없어. 1,620개야.”

“그래도 셀 거야. 세상에 이렇게 많은 금화를 직접 세 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

용주는 히죽 웃으며 누런 금화를 옆에 보기 좋게 쌓고 있었다.

“여기 두 개 더.”

도현이 손에 들고 있던 금화 두 개를 용주의 손에 올려놨다. 필요할 때 사용하려고 소지하고 다니던 금화로, 어베인이 그에게 준 것이었다.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겠지.’

문득 자신을 도둑으로 오인했던 어베인과 짐브리오, 로나가 떠올랐다.

‘그런데 시간은 다시 제대로 흘러가는 걸까?’

그가 나오는 마지막 시점에 멈춰 있던 이계였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게이트가 파괴되었다면 그쪽의 세계도 자신의 영향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시간이 계속 흘러갈 것 같았다.

“무슨 생각해?”

용주가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도현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용주는 금화로 탑을 쌓으며 말했다.

“삼촌이 아프리카에서 돌아오시면 이계로 다시 갈 수 있는 방법을 여쭤 보자. 그 괴상한 돌덩이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 지구 끝까지 가서 내가 찾아볼게.”

차원 게이트의 핵심은 조 박사가 언급했던 문양이 새겨진 스톤이다.

하지만 두 조각이 난 그 돌 앞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조 박사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스톤일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조 박사님이 전에 했던 말씀 너도 같이 들었잖아.”

“나 여행 좋아하거든. 여기 이 금화 다 팔면 지난번 돈과 합해서 이십육억 정도 될 거야. 건물 매입하고 세금 내고 해도 이억은 남아. 내가 그 돈 다 쓸 때까지만 여행 좀 하고 돌아온다는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야! 뭐가 말이 안 돼! 세계 여행도 하고 겸사겸사 찾아보겠다는 건데. 이억 내게 쓰는 게 아까워서 그러냐?”

도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유치한 말 그만하고.”

“간다. 알았냐? 여권에 도장 빼곡히 찍힐 때까지.”

용주가 결심하듯 말하자 도현도 진지하게 대했다.

“설령 그 돌이 있다고 해도 지난번처럼 내 몸에 타투가 새겨진다는 보장은 없어. 그리고 같은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보장도 없어. 내가 갔던 이계는 다시 갈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아무튼 해 보자고. 될지 안 될지.”

용주는 귀를 꽉 막은 사람처럼 더는 도현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이계 없이는 태선군을 못 이길 것 같아?”

착 가라앉은 도현의 질문에 용주가 금화를 하나 집어 던지며 말했다.

“이긴다, 이겨!”

“아 자식이, 얼굴을 때리냐.”

광대뼈 있는 데가 살짝 부어오른 용주가 삼겹살을 뒤집으며 도현을 째려봤다.

“돌 찾는다고 한 번만 더 얘기해 봐라.”

말을 하는 도현의 이마 한쪽엔 금화에 맞은 자국이 선명했다. 용주가 던진 금화가 정확히 그의 이마 한가운데에 찍힌 것이다.

바로 앞에서 던진 것이고 예상치 못했기에 도현으로서도 방비하지 못하고 제대로 맞았다.

“돌 때문이 아니라 내가 실수로 네 이마 맞혔다고 때린 거잖아, 자식아. 옹졸한 새끼. 내공까지 있는 자식이 그것도 못 피하고서 내게 화풀이를 하다니. 마셔, 자식아!”

투덜대며 용주가 소주잔을 내밀자 도현은 피식 웃으며 그의 잔에 자신의 술잔을 부딪쳤다.

얼마 만에 둘이서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는지 모르겠다.

타투가 사라진 아쉬움은 둘 다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오래간만에 단골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삼겹살 몇 점을 먹자 둘의 마음은 어느새 넉넉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운이 좋은 건지 어쩐 건지 게이트가 사라지기 전에 건물을 살 돈이 마련돼서 기분이 좋다.”

용주가 도현의 빈 잔에 웃으며 술을 따랐다.

“나도.”

“도현이 네가 건물을 산다고 하면 건물주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글쎄, 크게 싫어하진 않겠지.”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하다가 벽에 걸린 TV를 쳐다봤다.

지상파 방송이 아님에도 많은 시청자 층을 확보한 케이블 방송 백두TV의 프로그램이 식당 TV에서 방송되고 있었다.

“아, 맞다. 오늘이지? 너 출연한 그거.”

용주의 말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선 피디가 연출한 검의 고수라는 타이틀을 단 특집 프로그램이 막 시작을 하고 있었다.

“어디 한번 볼까? 얼마나 멋있게 나오는지.”

용주가 몸을 살짝 틀어 TV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기다리던 도현의 장면은 방송 후반에 등장을 했는데, 약속대로 얼굴 전체를 모자이크 처리해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일본에서 화제가 된, 눈 가리고 사과 자르기 동영상을 방송 초반에 등장시키고 이를 재현해 내는 미션이 주어졌던 프로그램은 마침내 한국에도 이를 해낼 수 있는 은거 고수를 찾아냈다는 자막과 함께 도현이 숲을 배경으로 고요히 서 있는 장면부터 음악을 깔며 분위기를 잡아 갔다.

10여 개의 테이블이 있는 식당 안의 사람들은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어 가는 삼겹살에 술을 마시다가 하나둘씩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TV에 집중했다.

“설마 정말 자르려고.”

“아까 일본 고수가 자르는 걸 봤잖아.”

“조작이겠지. 그런 동영상 인터넷에 수두룩해.”

“아니야. 그 일본 동영상을 찍어서 올린 사람은 일본에서 유명한 만화 작가라고. 뭐지 그 사무라이 어쩌고 하는 만화책 작가던데.”

“진짜야?”

“그래, 블로그에서 읽은 기억이 나.”

“둘 다 조용히 좀 해 봐. 시작하잖아.”

도현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사내들은 입을 다물고 일제히 TV를 뚫어질 듯 응시했다.

숲 속 공터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도현의 왼쪽에서 사과가 예고 없이 날아왔고 그 순간 땅을 향해 내려져 있던 검 끝이 반원을 그리며 부드럽게 허공으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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