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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7화 (47/575)

[47] 디 임팩트 2권 22화

“여기서 같이 사는 게 아니었습니까?”

“네.”

집 안으로 들어갔던 그녀는 얼마 뒤 운동복 차림으로 나왔다.

긴 머리카락을 한데 묶어 뒤로 넘긴 그녀는 마당 한쪽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길쭉한 몽둥이를 들고 도현에게 다가왔다.

“산 위로 가면 넓은 공터가 있어요. 그쪽으로 가요.”

“목검은?”

“여기 있잖아요.”

다혜가 길쭉한 몽둥이를 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목검과 크기는 비슷했지만, 아무래도 잘 다듬어진 목검보다는 여러모로 불리할 것이다.

“지금 내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아십니까?”

도현의 물음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잘 알고 있죠. 검으로 승부를 보려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몽둥이 대신 목검을 가지고 오세요.”

도현이 차분히 충고를 했다.

“네? 왜요? 전 이거면 족해요. 여태 다른 분들하고도 다 이걸로 겨뤘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지더라도 검 탓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올라가요.”

자신만만한 그녀의 눈빛과 태도에 도현은 더는 말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뒤에 남은 박성태가 담배를 피우며 혼잣말을 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건 다혜와 도현뿐이었다.

대결의 결과는 두 사람이 내려와 그들로부터 들으면 됐다.

쫓아가서 참관을 하고 싶었지만, 지난번 비서실 직원 중 한 명이 카메라로 몰래 대결 장면을 촬영하다가 다혜에게 걸려 카메라가 박살 난 이후, 더 이상은 참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너무 강하자 영상으로라도 찍어서 앞으로 대결할 검의 고수들에게 참고하게 하려고 했던 이한규 실장의 꼼수 아닌 꼼수는 결국 참관도 못 하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백 관장도 보통은 아닌 것 같던데, 아무리 그래도 아가씨에게는 어렵겠지?”

도현의 번개 같은 죽도에 머리를 얻어맞고 혹까지 생긴 그였지만, 회장 손녀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쳤다.

도현은 정장 상의를 벗어 나뭇가지 위에 걸쳤다.

와이셔츠 소매도 걷어 올린 그는 목검을 거머쥐고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로 천천히 걸어갔다.

길쭉한 몽둥이를 바닥에 톡톡 두드리며 기다리는 다혜의 모습에서는 긴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껏 대결을 펼쳐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그녀의 여유가 엿보이는 듯했다.

“먼저 말해 둘 게 있어요. 건방진 말로 들리겠지만, 내게 패했다고 검의 길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수련하세요. 아까 당신과 악수를 할 때 ‘아, 이 사람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는 느낌이 왔거든요. 왠지 모르지만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게 졌다고 누구처럼 욕을 하며 저기 소나무에 목검을 죽어라 치며 분풀이하거나, 아니면 비통한 얼굴로 뜨거운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았으면 해요. 그럴 때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제 자신이 너무 싫어지거든요.”

“밝은 성격이 참 좋아 보입니다.”

“그래 보이나요? 고마워요. 일부러 밝게 살려고 해요. 시작할까요?”

다혜는 공간을 좁히며 도현의 어깨를 노리고 부드럽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웬만큼 검을 수련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막을 수 있는 빠르기였다.

도현이 막는 순간 몽둥이를 통해 강한 힘이 전달됐다.

손아귀 힘이 약했다면 목검을 순간적으로 놓칠 상황이었다.

실제로 그녀에게 도전했던 사람들 태반이 처음 검을 나누는 이 순간에 검을 놓치고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하지만 도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몽둥이를 옆으로 밀어내며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번개 같은 일 검을 날렸다.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든 빠르기의 검이 유령처럼 불쑥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웃음기를 거둔 다혜가 급히 고개를 옆으로 젖혀 아슬아슬하게 도현의 검을 피해 내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인정사정없이 얼굴에 검을 찔러 오는군요?”

“진지하게 검을 대하세요. 검은 장난이 아닙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아직도 그 몽둥이로 날 상대할 생각입니까?”

“그래요. 내 손에서 이 몽둥이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걸로 당신을 상대해 줄 거예요!”

다혜는 발로 땅을 밀어내며 앞으로 쭉 뻗어 나왔다.

“당신도 인정사정없이 했으니까 나도 그대로 돌려주겠어요!”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한 힘이 서린 몽둥이가 도현의 사방에서 밀어닥쳤다.

도현이 검을 막을 때마다 귀가 따가울 만큼 시끄러운 소리가 공터에 메아리쳤고, 목검은 부르르 떨렸다. 늘씬한 몸매의 여자의 몸에서 이 정도 힘이 나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힘과 스피드.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아. 거기에다 검술까지.’

도현은 화살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공격을 막아 내며 그녀가 몽둥이를 통해 상당히 뛰어난 검술을 발휘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설픈 공격이었다면 대번에 그의 목검이 그 빈틈을 뚫고 들어가 그녀를 가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검을 배웠는지 몰라도 검술이 제대로 가미된 몽둥이 폭풍우는 도현을 집어삼킬 듯 끊임없이 휘몰아쳐 오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검술을 배운 거지?’

만약 몽둥이가 아니라 목검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정교 했을 테고, 상대하는 맛과 기쁨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도현은 실로 오랜만에 검다운 검을 사용할 기회가 생기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그의 미소에 공격하던 다혜는 어리둥절해졌고, 그 순간 도현이 한 소리 기합과 함께 앞으로 성큼 발을 디디며 수평으로 크게 검을 휘둘렀다.

하루에 천 번씩 검을 휘두르고 길러 온 폭발적인 팔의 힘과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태산 같은 하체의 힘이 뒷받침된 그의 검에 실린 어마어마한 검력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몽둥이 공격을 일거에 무너트렸고, 나아가 다혜의 손에 들린 몽둥이를 두 동강 내 버렸다.

휘익!

다혜는 도현의 추가 공격에 대비해 뒤로 번개처럼 물러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설마 자신의 검술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무력화시킬 줄은 예상을 못 했다.

“몽둥이가 부러졌으니 이제 목검을 가지고 나올 때가 된 것 같군요. 기다리겠습니다.”

도현이 검을 거두고 물러나자 그녀는 표정을 회복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역시 세상엔 쓸 만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기다려요. 곧 올게요.”

그녀는 부러진 몽둥이를 바닥에 버려두고는 산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지독한 여자야, 몽둥이를 끝까지 놓지 않다니. 충격이 상당했을 텐데.”

도현은 몸을 숙여 그녀가 버려두고 간 몽둥이를 자세히 살폈다.

그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얼마나 큰 힘을 주고 버텼는지 몽둥이 손잡이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만약 그녀가 버티지 않았다면 몽둥이는 두 동강이 나지 않고 저 멀리 날아가는 선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검사에게 검은 생명과 같은 것이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놓치지 않아야만 한다고 도현 역시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아 왔었다.

비록 몽둥이였지만 그녀에게는 검과 같은 상황, 결국 그녀는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은 셈이다.

“역시 졌나 보군.”

박성태는 홀로 산을 내려오는 회장의 손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을 넘어 일본이나 중국에서 사람을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급하게 뛰어오는 거지?”

다른 때와 다른 그녀의 모습에 그가 가까이 온 그녀에게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아가씨,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있다 얘기해요.”

그녀는 쌩하니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쌩하니 나와 산으로 곧장 뛰어 올라갔다.

그녀의 손에는 목검이 두 자루나 들려 있었다.

“뭐야, 아직 끝난 게 아니었어?”

박성태의 눈이 커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해가 기울며 공터에는 붉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의 목검이 부러졌고 도현은 대결에 흠뻑 취해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공격을 허리를 꺾어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바위 옆에 걸쳐 놓은 목검을 손에 쥐었다.

아까 다혜가 가지고 올라온 두 자루 목검 중 하나였다.

도현은 등 뒤로 날아오는 검을 보지도 않고 막아 내며 뒤돌려차기로 다혜의 얼굴을 빠르게 걷어찼다.

이미 상대방의 실력이 자신과 겨룰 만큼 뛰어나다는 걸 안 이상, 사정을 두지 않았다.

퍼억!

팔뚝으로 도현의 발 공격을 무산시킨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아, 하아, 당신 정말 대단하군요. 지금 일부러 날 봐주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도현은 가슴 한쪽이 뜨끔했다. 모처럼 검을 제대로 주고받을 상대가 나타나자 결정적인 빈틈이 보일 때에는 손에 사정을 두며 그녀가 막아 주기를 바라고 손을 쓴 적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산발이 된 그녀의 눈에서는 투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좋아요. 분명 순수한 검술에서는 내가 한 수 밀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나 정말 질 수 없어요. 지금부터는 정말 무서운 능력을 사용해서 검을 펼칠 거예요.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당신 정말 크게 다칠 수가 있어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심상치 않은 경고를 한 뒤 그녀의 몸이 순간적으로 도현의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졌다.

마술처럼 눈앞에서 증발한 것이다.

‘허공!’

도현은 노을을 등 뒤로 받으며 벼락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다혜의 공격을 몸을 굴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냈다.

콰앙!

그녀의 목검이 땅바닥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사방에 퍼지는 흙먼지를 뚫고 도현의 검이 나타나 측면에서 그녀를 공격했다.

하지만 허공에 순간적으로 생긴 수많은 검들이 도현의 검을 뒤로 튕겨 냈다.

‘이건!’

도현은 속으로 경악을 하며 뒤로 급히 물러났다.

찰나간에 수없이 생긴 검의 파도들.

그 역시 언젠가 친구 앞에서 선을 보인 기억이 있었다.

바로 내공을 활용하며 검을 펼치는 것이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순수한 육체적인 힘과 스피드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제2의 힘.

‘설마 했는데, 진짜 내공을 가지고 있었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느끼게 할 만큼 폭발적인 도약력을 발휘해 허공에 뛰어오른 모습은 신법이었고, 지금은 내공을 이용해 검의 빠르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모습이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세요. 그럼 더 이상 공격은 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검의 파도를 계속 유지하며 도현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왔다.

도현이 어느 방향에서 어떤 수법을 쓰든 그녀는 검의 파도로 모조리 다 튕겨 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굳이 검의 파도를 쓸 필요 없이, 내공을 활용해 그녀가 배운 검술을 펼치기만 해도 도현이 감히 그 무궁한 변화들을 감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도현은 불도저처럼 검의 파도를 앞세워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을 했다.

‘역시 세상은 넓은 곳이었어. 내공을 갖추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배운 걸까? 중국의 검선문처럼 한국에도 그런 문파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설마, 이 여자가 검선문의 제자일까?’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면서 그는 내공을 이 자리에서 사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신중히 고민을 했다.

회장의 손녀가 본격적으로 내공을 활용해 검술을 펼쳐 온다면 도현은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가 그녀보다 검술이 뛰어나긴 하지만 내공이 가미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를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내공을 써야만 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깊은 눈빛으로 다혜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내공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녀를 이기면 그녀 뒤에 버티고 있는 사부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 도대체 그가 누군지 꼭 만나고 싶었다.

‘과연 사부란 사람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만만치 않은 눈앞에 여자를 키운 사람이라면 그의 무위는 대단할 것 같았다.

‘붙어 보지 않은 이상, 모르는 거지.’

도현은 강한 전의를 불태우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한번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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