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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8화 (48/575)

[48] 디 임팩트 2권 23화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도현은 검의 파도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의 손에서는 다혜가 만든 검의 파도를 압도하는 거대한 검의 파도가 펼쳐졌고, 그 검의 파도에 다혜가 만든 작은 검의 파도는 흔적도 없이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검의 깊이와 깨달음이 도현이 우위에 있었고, 내공의 크기는 이미 그녀가 감당하기 벅찰 지경이었다.

단번에 그녀의 검을 무너트린 도현의 검이 어느새 다혜의 목울대에 가 있었다.

그녀는 목에 와 닿는 감촉에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으로 도현을 멍하니 바라봤다.

“믿을 수 없어요. 당신도 내공을 가졌단 말이에요?”

“서로 오늘은 똑같이 놀라는 날입니다. 나 역시 당신이 이렇게 뛰어난 검술과 내공까지 겸비한 고수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왔으니까요.”

“도대체 당신 누구예요?”

“호검술 도장 관장 백도현입니다. 그러는 당신은 어디서 무예를 배웠습니까?”

도현이 검을 뒤로 빼며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조용히 대꾸했다.

“당연히 사부님에게 배웠죠.”

“그분이 누구입니까?”

“안 알려 줄 거예요.”

다혜는 공터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당신을 이기면 그다음은 당신의 사부 차례입니다. 난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겁니다.”

다혜는 산발이 된 머리를 더 헝클어트리며 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아요. 나와 사부님을 꺾으라는 조건을 내건 사람이 바로 나니까요. 하지만 진짜 내가 지리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고요. 사부님이 알면 날 죽이려고 하실 텐데.”

그녀는 이제 아예 뒤로 누워 나무 사이로 보이는 노을 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떻게 안 되겠죠?”

“뭘 말입니까?”

“내가 진 이야기.”

“그러고 싶어도 저기 저 사람이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도현이 멀리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박성태를 가리켰다.

박성태는 해가 지도록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그들이 궁금해 조금 전 올라왔는데, 때마침 도현의 검이 그녀의 목울대에 가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누가 보아도 도현이 승리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고, 박성태는 주먹을 움켜쥐고 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 난 죽었어. 죽은 목숨이야.”

다혜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 목검을 챙겼다.

“사부님은 어디 계십니까?”

“좀 기다려요! 지금 져서 힘들어하는 제 모습 안 보여요?”

날 선 그녀의 눈빛에 도현은 헛기침을 하며 부러진 자신의 목검을 주웠다.

그녀의 사부

도현이 이겼다는 소식을 접한 이한규 실장은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서울에서 바로 다혜의 집으로 내려왔다.

어둠 속에서 다혜가 준 과자를 먹으며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박성태는 이 실장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입으로 소리를 내며 계속 과자를 먹고 있었다.

“자네 뭐 하나?”

박성태는 이 실장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과자 봉지를 등 뒤로 돌렸다.

“오셨습니까, 실장님.”

당황하는 박 팀장의 모습에 이 실장이 혀를 찼다.

“지금 과자를 먹고 있었던 건가?”

“아가씨께서 배고프면 먹으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실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또 넙죽 받아서 정신없이 먹고 있었나? 비서실 팀장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무거움이 없어.”

“주의하겠습니다.”

박성태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꾸했다.

“백 관장은?”

“집 안에 있습니다.”

“그래?”

이 실장은 열려 있는 대문 안에 발을 디디려다가 조심스럽게 발을 도로 뺐다.

윤일주 회장을 할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다혜는 회사 사람들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허락 없이 들어갔다간 몽둥이세례를 각오해야만 한다.

“백 관장은 집 안에 어떻게 들어간 거지?”

할아버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꺼리는 그녀가 도현을 집 안에 들였다는 게 의외였다.

“조금 전까지는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라고 부르시더니 나중에는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흠, 별일이군. 백 관장에게 패했다면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을 텐데.”

그는 열린 대문 틈 사이로 불이 켜진 낡은 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백 관장이 아가씨를 이기다니 그로서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라서 박 팀장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모른다.

회장을 가까이 모시는 막중한 책임자로서 그동안 아가씨 문제로 골머리가 아팠는데, 그나마 이제 조금 면목이 서게 됐다.

“아가씨가 사부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셨나?”

“아직 없으십니다.”

“설마 본인이 한 약속을 스스로 깨시지는 않겠지?”

“과자 안 좋아해요?”

다혜가 과자 봉지를 몇 개 뜯어 도현의 앞에 펼쳐 놨지만, 도현은 손도 안 대고 있었다.

“과자의 양이 옛날보다 너무 줄었네. 이거 진짜 맛있는 과자인데, 한번 먹어 봐요.”

“…….”

“젊은 사람이 너무 그렇게 무게 잡고 살지 말라고요. 무게는 나중에 나이 먹고 배가 이만큼 나왔을 때 잡아도 충분하잖아요. 먹어 봐요, 맛있다니까요.”

“다혜 씨, 사부님은 어디 계십니까?”

“연락이 안 된다니까요. 한번 여행 떠나시면 한 달이고 반년이고 그렇게 돌아다니세요. 연락 닿으면 그때 제가 알려 드릴게요. 오늘은 과자 먹고 그냥 가요.”

그녀는 과자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왜요?”

“고심 끝에 맡은 일입니다. 이미 이 일에 손을 댄 이상 끝을 보고 가야겠어요. 기약 없이 그렇게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나보고 어쩌라고요? 진짜 연락이 안 된다니까요!”

토끼 눈을 뜨며 말하던 그녀는 손안에 과자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말인데요, 당신의 무공 실력은 정말 대단하지만, 절대 우리 사부님은 못 이겨요.”

“내가 당신을 이기리라고 아까는 예상했습니까?”

도현의 날카로운 질문에 그녀는 코끝을 찡그렸다.

“못 했죠.”

“사부님은 어디 계십니까?”

“으으, 나 지금 고문받고 있는 게 분명해.”

아무리 말해도 도현이 꿈적도 않고 물러서지 않자 그녀는 힘이 드는 표정으로 옆으로 쓰러졌다.

“이봐요, 백도현 관장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그냥 이대로 가 주면 안 돼요?”

“사부님은 어디 계십니까?”

“제발.”

다혜가 벌떡 일어나 도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싸며 불쌍한 척했다.

“내가 동생 같은데,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

도현은 슬며시 손을 뺐다.

태선군과 청선을 제외하고 내공을 사용하는 고수는 눈앞에 다혜가 처음이었다. 그녀의 사부가 어떤 사람인지 꼭 만나 봤으면 했다.

“사부님은…….”

“그만! 알았으니까 그만해요.”

다혜가 손을 들어 도현의 입을 막았다.

“정말 내가 생전 오빠라는 말도 안 해 본 사람인데, 큰마음 먹고 말했더니 들은 척도 안 하네. 좋아요, 좋아. 어디 한번 사부님께 된통 당해 봐야 후회를 하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과자를 몇 개 집어 먹었다.

“일주일 후에 전화할 테니 전화번호 남기고 가요. 그때 사부님을 만나게 해 줄게요.”

“일주일요?”

“네.”

다혜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처럼 한 달이니 반년이니 하는 터무니없는 말로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혜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준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과자를 몇 개 맛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과자, 맛있네요.”

“이제 알았어요?”

퉁명스럽게 대꾸한 그녀는 도현이 문을 열려고 하자 그의 등을 붙잡았다.

“가다가 먹어요. 오늘 과자 많이 샀어요.”

그녀가 과자 한 봉지를 내밀었다.

도현은 자신 못지않게 굳은살이 많이 밴 다혜의 작은 손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과자를 받으며 입을 뗐다.

“무슨 이유로 할아버지와 떨어져서 사는 겁니까?”

그들 집안의 사정을 캐묻는 것 같아서 일부러 피한 질문이었지만, 도현은 정직하게 수련을 해 온 것 같은 그녀의 손을 보자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 것인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돈 많은 회장의 손녀라고 보기에는 그녀는 너무 소탈했고, 꾸밈이 없었다.

“집안일이에요.”

“내가 당신 사부를 이기면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거죠?”

“뭐, 조금 피곤해질 뿐이에요. 그런데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사부님이 당신에게 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자세한 설명을 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도현은 더 묻기도 뭐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도현과 다혜가 어두운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이 실장이 다혜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안녕하세요, 이 실장님. 다른 분들에게도 볼 때마다 말하지만, 아가씨라는 말,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회장님을 모시는 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도현을 힐끔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 여기 백 관장이 아가씨를 이겼습니다. 다음은 아가씨의 사부님께서 대결에 임하셔야 하는데,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사부가 누군지 아직 그 누구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안을 한 다혜 본인만이 알고 있어서 이 실장으로서는 꼭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세요. 며칠 안에 백 관장님께 연락하기로 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 피곤하셨을 텐데, 편히 쉬십시오.”

이 실장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자 그의 뒤로 있던 박성태를 비롯한 여러 명의 비서실 직원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과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인사에 다혜는 얼른 몸을 피해 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허리를 편 이 실장은 도현이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백 관장님. 정말 큰일을 해내셨어요. 갑시다. 차 안에서 나눌 얘기가 참 많습니다.”

“뭐라고? 내공을 사용하는 여고수?”

도현이 돌아오기를 도장에서 기다리던 용주는 회장 손녀가 내공을 사용하고 검술 실력도 굉장히 뛰어났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가볍게 상대방을 이기고 돌아오리라고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태화실업 회장의 손녀에 내공을 익힌 여검사라. 그런데 시골에서 과자나 먹고 있다?”

용주는 도현이 준 과자를 먹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쪽 집안도 참 복잡한가 보다야. 그나저나 참 대단한데, 너보다 어려 보인다는 여자애가 그렇게 뛰어난 검술과 내공까지 사용하다니. 난 태선군이나 검선문 애들 빼고는 도현이 너만이 내공을 사용할 줄 알겠다 싶었는데, 가만 보니까 그런 게 아닌가 봐. 설마 과자 좋아하는 애가 검선문과 끈이 닿아 있지는 않을 것 같고.”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엔 내공을 가진 숨은 고수들이 의외로 상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현아, 이거 슬슬 불안해진다. 과자 좋아하는 애 사부란 사람 말이야.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용주가 턱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강한 상대라면 내가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을 거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상대해야지.”

도현의 호기로운 말에 용주가 입맛을 다셨다.

“좋아, 이왕 붙는 거 꼭 이겨라. 그래야 십억을 벌지. 그런데 이 과자 어디서 사 왔냐? 맛있네?”

“다혜가 준 거야.”

“과자 좋아하는 애가?”

“어.”

“그새 친해졌냐? 과자까지 받아 오게? 하긴 싸우면서 남녀가 정이 드는 거지.”

“무슨 소리야 정이라니?”

도현이 남은 과자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생각해 봐, 얼굴도 예쁘다면서. 거기에 무예 실력도 뛰어나고, 재력 있는 할아버지에, 완전히 이상적인 신붓감 아니냐?”

용주가 음흉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결혼해서 둘이 음양검법이라도 하나 만들어서는 태선군을 묵사발 만드는 것도 좋잖아. 덤으로 태화실업을 처가로 두고. 대신, 홍영 씨는 내가 책임질게. 내가 소박하게 살면…… 아야! 아파, 자식아!”

도장 바닥에 앉아 있던 용주는 허벅지를 얻어맞고는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 자식, 농담도 못 하나.”

눈물을 찔끔 흘린 용주는 투덜대며 일어나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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