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디 임팩트 3권 1화
도깨비탈
도현은 뒤를 돌아다봤다.
송곳니가 길게 뻗어 나온 도깨비탈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나뭇가지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건장한 체격의 사람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는데, 도현은 그것이 내공에 의해 일어난 신묘한 현상임을 모르지 않았다.
‘나무 위에 있었다니.’
허를 찌르는 등장이었다.
“다혜 씨의 사부님 되십니까?”
“그래.”
“처음 뵙겠습니다. 백도현이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도현을 나무 위에서 차갑게 내려다보던 다혜의 사부가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제자의 코를 아주 납작하게 눌러 놨다고?”
“과찬이십니다.”
“날 보니 어떤 생각이 드나? 내 코도 쉽게 납작하게 만들 수 있겠나?”
팔짱을 낀 다혜의 사부는 부러질 것처럼 휘어진 나뭇가지 위에서 낮은 어조로 물었다.
“저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하하하하! 최선을 다하겠다고?”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다혜의 사부는 한동안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며 싸늘하게 말했다.
“진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의 의미를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건가? 그깟 목검을 들고 와서?”
“목검은 제가 정한 방법이 아닙니다.”
“하면 진검으로 바꿔 볼 테냐? 그럴 용기가 있어?”
도깨비탈을 쓴 다혜 사부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아쉽지만, 진검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지고 왔지.”
다혜의 사부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무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사뿐히 도현의 면전에 선 그는 수중의 검 한 자루를 내밀었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검이었다.
“괜한 객기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진검으로 할 테냐?”
도현은 그가 내미는 검을 내려다봤다.
다혜의 사부 몸에서 풍기는 기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태선군 이후 처음으로 맞닥트리는 고수란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진검을 뽑는 순간, 그의 앞에는 생과 사의 두 갈림길이 냉혹한 현실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그는 천천히 검을 받았다.
“제 목숨도 위험하겠지만, 다혜 씨 사부님께서도 목숨을 거셔야 될 겁니다. 검 앞에서는 모든 게 공평해지니까요.”
“좋은 말이다. 명심하지. 하하하!”
다혜의 사부는 호탕하게 웃더니 뒤로 물러나며 검을 뽑았다.
“어디 그럼 실력 좀 볼까?”
“조심하십시오.”
도현의 검이 골짜기에 비치는 햇빛을 반사시키며 눈부시게 날아오자, 다혜의 사부는 손목을 살짝 비틀어 검을 쳐 냈다.
챙!
그가 검을 쳐 내는 순간 도현의 검이 뱀처럼 그의 검을 감싸며 위로 솟구쳤고, 그 검을 다시 다혜의 사부가 연속해서 좌우로 강하게 쳐 냈다.
채채채챙!
날카로운 금속성이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나며 골짜기 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이어지는 검의 충돌음은 처음보다 수배나 크고 격렬했다.
채채챙! 챙채채챙!
다혜가 그렇듯 그녀의 사부 역시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강물처럼 끊임없이 강맹한 공격을 가했고, 도현은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그의 검을 일일이 우직하게 상대해 갔다.
검이 맞닿을 때마다 전달되어 오는 검력이 산을 허물 듯했고, 정교하고 섬세한 검의 운용은 때때로 도현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채챙! 챙챙채챙!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죽을 터트리는 듯한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역시 목검으로 보던 그녀의 검술과는 차원이 달라.’
도현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그의 검이 호검술의 빈틈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오는지 살폈다.
둘 다 아직 내공은 사용하지 않고서 가진 육체적 힘과 검술의 깊이에 따른 기교로 대결을 펼치고 있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빠른 스피드와 검술 운용 능력은 힘차고 살을 에는 차가움을 내포했다.
“팔이 저려 오지 않나?”
“아직 견딜 만합니다.”
호기롭게 외친 도현은 위에서 아래로 검을 번개처럼 내리그었다. 수 분여 가까이 다혜 사부의 맹렬한 공격을 방어만 하던 그가 기습적으로 지척에서 검을 날린 것이다.
가벼운 한 수였지만 이 공격에는 도현이 깨친 호검술의 묘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직접 검을 마주 보며 상대하고 있는 자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 같았다.
‘흠.’
도깨비탈을 쓴 다혜 사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일정한 경지에 이른 고수들은 사물의 움직임을 초 단위로 파악하지 않는다. 1초를 수없이 잘게 쪼개어 길게 늘여서, 각각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해 낸다.
그것은 시력과 감각만으로 이뤄지는 능력이 아닌, 정신적인 깨달음이 병행되면 이뤄지는 복합적인 신체 변화의 일부이기도 했다.
더 높은 경지를 깨달은 고수일수록 그 능력이 더욱 성장하고, 온몸을 위협하는 칼과 화살의 바닷속에서도 각각의 위협 요소를 모조리 꿰뚫어 그 위험을 다 제거해 나갈 수 있다.
도깨비탈을 쓴 그 역시 도현이 기습적으로 날린 한 수에 깃든 여러 변화를 찰나의 시간 동안 파악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13번째 변화의 수까지 파악해 내는 게, 그가 가진 한계.
결국 그는 14번째 변화의 수를 시야에서 놓쳤고, 그것은 곧 생각지도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사악.
도현의 냉정한 검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며 피 분수를 만들어 냈다.
내공을 사용했더라면 다혜 사부는 비록 한 수의 변화를 놓쳤다 하더라도 여유롭게 몸을 뒤로 뺄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받은 대로 돌려줬다.
도현의 검이 그의 어깨를 가르며 땅으로 검 끝이 향한 순간, 그의 검은 소리 없이 움직여서 도현의 빈 옆구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옷이 베이며 그 안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도현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주 깊은 상처를 입을 뻔했다.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수백 번의 검을 주고받은 둘은 길게 숨을 뱉어 내며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호검술이라고?”
“그렇습니다.”
“좋은 검법이군. 실력도 쓸 만하고. 그 녀석이 질 만했어.”
피가 흘러내리는 어깨 상처를 힐끗 내려다본 그는 도현의 옆구리 상처를 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혹시 그거 아나?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네 그 상처는 치명상이 될 수도 있었다는걸.”
“그랬다면 제 검이 다시 움직여서 그만큼 돌려 드렸을 겁니다.”
“패기가 넘치는군. 하지만 그 나이에 그런 검술 실력을 쌓을 정도로 수련한 건 칭찬받을 만하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까.”
스산하게 느껴지는 말투와 차가운 눈빛 속에 도현을 향한 한 점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받아 봐.”
콰앙!
계곡 물가의 작은 돌멩이들이 그의 내공이 실린 발길질에 총알처럼 도현에게 날아갔다.
도현이 옆으로 몸을 피하는 순간, 어느새 그 자리를 선점하고 기다리던 도깨비탈의 그가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언제 이 자리에?’
도현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가 평소 생각했던 신법의 빠르기를 초월한, 놀랍도록 빠른 움직이었다.
채앵!
내공을 끌어 올려 가까스로 검을 막아 낸 도현은 이계에서 터득한 자신만의 신법을 발휘해 공간을 줄이며 다혜 사부의 등 뒤로 순간적으로 이동했다.
유령처럼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고 여겨질 만큼 쾌속하게 움직인 도현은 망설임 없이 검으로 다혜 사부의 등을 베었다.
하지만 그가 벤 건 허상.
이번에는 다혜의 사부가 도현의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나 벼락같은 검을 날렸다.
채엥!
깊은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선명한 금속성에 지켜보던 산새들이 후드득 멀리 날아가 버렸다.
등 뒤로 검을 보내 다혜 사부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막아 낸 도현은 그 상태에서, 갑자기 두 다리를 쫙 벌려 밑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상체를 체조 선수처럼 뒤로 완전히 젖히며 등 뒤에 서 있던 다혜 사부의 두 다리를 바람처럼 쓸어 갔다.
휘익!
공중으로 도약해 도현의 검을 단번에 피해 낸 다혜의 사부를 보며 도현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돌려 드리지요.”
언제 준비했는지 도현의 발등에 올려놓은 작은 돌덩이가 쏜살같은 속도로 허공에 떠오른 다혜 사부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앉아 있는 도현을 향해 독수리처럼 떨어져 내리던 다혜 사부는 코웃음을 치며 떨어지는 그 기세를 담아 검으로 주먹만 한 돌덩이를 내리쳤다.
쩌억!
돌을 피하리라 예상을 하고 다음 수를 계산하며 몸을 세우던 도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공중에서 부서진 돌의 잔해들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우박처럼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돌의 잔해를 뚫고 하늘에서 검이 일직선으로 도현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지척까지 온 상대의 검을 보며 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검을 세웠다.
호검술 전반 12식 중 마지막 초식인 검기발현의 수법이 발휘되자 그의 검 끝에는 밝은 빛이 생성됐고, 그 빛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다혜 사부의 검 끝에 정확히 부딪쳤다.
번쩍하는 눈부심이 사방으로 퍼졌고 그 뒤로 검이 부서지는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차아앙! 퍼석!
‘검이…… 부서졌어!’
도현의 검을 부수고 밑으로 떨어지는 다혜 사부의 검 끝에는 도현이 만든 것과 비슷한 빛이 맺혀 있었는데, 좀 더 선명했다. 다혜의 사부 역시 검기를 만들 수 있는 고수였고, 오히려 도현보다 더 강력했다.
피하지 않고 맞선 것이 화근이었다.
‘끝인가?’
도현은 슬로비디오처럼 공중에서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다혜 사부의 검과 그 검 뒤로 보이는 도깨비탈을 노려보았다.
도깨비탈의 두 송곳니가 그를 비웃고 있었다.
‘아니, 내게 끝이란 없어. 다시 시작이야.’
그가 마음을 다지자 느리게 가는 듯 보였던 시간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현은 긴장으로 굳어진 온몸의 힘을 빼며 자신의 몸이 깃털처럼 한없이 가볍다는 상상과 함께 발휘할 수 있는 모든 내공을 일순간에 발끝에 밀어 넣었다.
파앙!
그의 몸이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계곡물을 넘어 반대편에 다다랐다. 그 속도는 이제껏 도현이 만들어 낼 수 있던 신법의 속도를 크게 뛰어넘는 것이었고, 절체절명의 위험을 벗어나려는 그의 의지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기도 했다.
“잠재력이 뛰어난 자였군. 그새 신법이 늘다니.”
간발의 차로 도현을 놓친 다혜의 사부는 계곡물 넘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현을 지그시 응시했다.
“검기도 사용할 줄 알고.”
검기는 깨달음의 무공이고, 상승 검도의 시작점이다.
그것은 내공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고, 검기를 펼칠 수 있는 적절한 초식의 깊은 이해도가 필요했다.
초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검기발현의 경지에 발을 디디는 것이 검을 잡은 검사에게는 숙명처럼 다가오는 하나의 관문이다. 그 관문을 넘어서야지만 그때서야 비로소 상승의 검법들을 봐도 그 뜻을 이해하고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가 볼 때 도현이 펼친 검기의 수준은 이제 막 깨친 정도가 아니었다.
“하긴 이 정도 되는 실력이 아니었으면 내 제자를 이길 수 없었겠지. 그런데 이제 어쩌지? 네 검은 손잡이만 남았고, 난 이렇게 멀쩡한 검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도현은 피투성이인 오른팔을 내려다봤다.
검이 부서지며 그 날카로운 파편들이 그의 팔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피가 흘러나오는 팔이 아니었다. 부서진 검이었다.
이 상태로 다혜 사부와 싸우겠다는 건 오만하고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동이었다.
“오늘은 제가 졌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현은 담담한 자세로 선뜻 패배를 인정했다.
“검이 없어서 그런다면 저걸로 대신해도 된다. 어차피 목검 대결이 원칙이었으니까.”
다혜의 사부가 목검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도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검으로 해결될 승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진검을 권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맞아.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 무인들에게 목검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물건이지. 검이란 이렇게 차갑고도 날카로운 녀석이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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