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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8화 (58/575)

[58] 디 임팩트 3권 8화

“다혜요. 윤다혜. 그런데 정말 백 관장님 안에 안 계세요? 이상하네. 들어올 때 보니까 주차장에 관장님 차가 세워져 있던데. 낡은 승용차 2752, 관장님 차 맞지 않아요?”

“유, 윤다혜!”

“절 아세요?”

다혜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이런 젠장. 내가 왜 진작 생각 못 했을까. 과자 좋아하는 예쁜 여자.’

용주는 숨을 한번 내쉬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백 관장 불러오겠습니다.”

“없다면서요.”

“아무나 만나 주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귀찮게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요.”

뒤돌아서던 용주는 언제 왔는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도현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안녕하세요, 다혜 씨.”

도현의 인사에 그녀는 빈 과자 봉지를 손에 작게 뭉치며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백 관장님. 부상은 다 나으셨나요?”

“거의 다 나았습니다. 들어오시죠.”

도현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랐지만 침착하게 말하며 문 앞에서 비켜났다.

“이분이 돌아가셨다는 관장님 부친이세요?”

도장 안을 한 바퀴 빙 돌며 구경을 하던 다혜가 벽에 걸린 백남식 관장 사진을 보며 물었다.

“네.”

“굉장한 분이시네요. 백 관장님 같은 고수를 길러 내시다니. 하늘에서 뿌듯해하실 게 분명해요. 우리 엄마도 절 대단하게 여기셨거든요.”

희미하게 미소를 짓던 그녀는 몸을 돌렸다.

“내가 왜 왔는지 궁금하죠?”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내 얘길 들으면 더 놀랄걸요?”

다혜는 말을 하며 도장 한구석에서 검을 들고 수련하는 척하는 용주와 관장실에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홍영을 쳐다봤다.

“그런데 저분들이 우리가 하는 얘길 들어도 상관없나요?”

“괜찮습니다. 그들과 난 비밀이 없으니까요.”

“부럽네요,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어쩐지 절 아는 눈치더라고요. 좋아요, 그럼 얘기하죠. 아까 봤어요. 별장에 백 관장님이 왔을 때요.”

다혜가 그곳에 있었다는 말에 도현은 살짝 놀랐다.

“할아버지와 저 사이에 문제가 해결됐다는 얘길 들으셨죠?”

“네.”

“돈도 받았고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손가락 열 개를 활짝 펴 보였다.

“십억. 그렇죠?”

도현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습니다.”

“반 주세요.”

“네?”

“오억 달라는 뜻이에요. 내가 할아버지에게 가지 않았다면 백 관장님은 십억을 받지 못했을 거 아니에요. 더구나 할아버지 앞에서 당신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엄살을 좀 피웠거든요. 할아버지가 돈을 주시도록 이 몸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드렸다는 거지요. 이만하면 요구할 만하지 않아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는 다혜의 모습에 도현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의 방문에 놀라기도 했지만 내심 기뻐하며, 사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기회를 봐서 꺼내려던 그에게는 그야말로 정신을 빼놓는 이야기였다.

“싫어요? 난 충분히 할 만큼 하고서 찾아온 건데? 기분 나쁘면 미안해요.”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하는 다혜의 모습에 도현은 나직이 물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까? 왜 내가 돈을 받게 하고 또 그 반을 찾아가려고 하는 겁니까?”

“아, 그거요. 간단해요. 나 때문에 피를 흘린 사람이 두 명이거든요. 한 명이 바로 백 관장님이시고요, 또 다른 한 분은 바로 우리 사부님이시라는 거죠. 두 분이 공평하게 반씩 보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우리 사부님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고 수중에 돈이 없거든요. 불쌍하죠.”

코를 살짝 찡그리며 귀엽게 말하던 그녀는 잠시 숨을 돌렸다가 말을 이었다.

“백 관장님도 돈이 필요해서 이번 의뢰를 받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할 결말을 생각해 냈죠. 그리고 전 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에요. 엄연히 재산은 할아버지 소유고, 전 기껏해야 그곳의 수많은 가족들 중 한 명일 뿐이에요. 더 질문 있어요?”

손뼉을 치며 양팔을 활짝 펼치는 그녀의 유쾌한 몸짓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어 보였다.

그녀와 시선을 주고받던 도현은 몸을 돌려 홍영이 있는 관장실로 향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엿듣고 있던 용주가 얼른 그의 뒤를 따라 관장실로 들어갔다.

“줄 거야?”

용주의 물음에 도현은 의자에 앉아 있는 홍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야 될 것 같은데.”

“미쳤어? 오억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한번 준 돈이면 네 거지, 왜 나눠 줘?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

“들었잖아, 너도. 이 돈이 어떻게 생기게 된 건지. 내 힘으로 번 돈이면 절대 주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지 않잖아.”

“젠장.”

입맛을 다신 용주는 힐긋 밖을 쳐다봤다. 다혜가 팔짱을 끼고 도장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자세가 꼭 일숫돈 받으러 온 양아치 같네.”

“다 들리거든요!”

귀 밝은 다혜가 째려보자 용주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홍영 씨 생각은 어때요? 도현이가 돈을 줘야 해요?”

“돈은 소중해요. 필요할 때 없으면 그 고통은 크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해요. 여기 지하 도장도 돈이 없으면 사라지겠죠.”

홍영은 차분히 말을 하며 서랍에서 도현이 준 수표 봉투를 꺼냈다.

“오억을 주고도 남는 돈이 오억이에요. 그 돈이면 있는 돈에 보태서 내일 건물을 매입할 수 있어요. 그 기회를 만들어 준 건 저기 다혜 씨 같네요. 도현 씨, 돈을 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홍영이 내미는 수표를 받은 도현은 속상한 표정으로 서 있는 용주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용주야, 기분 풀어.”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뭐. 대신.”

용주는 귀 밝은 다혜가 듣지 못하도록 도현의 귀에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저 양아치 같은 여자에 사부 말이야. 그 사람하고 연결 좀 잘 시켜 달라고 해 봐. 그건 충분히 요구할 수 있잖아. 막말로 너 아니면 자기는 뭐 오억을 꿀꺽할 수 있는 상황이었나? 안 그래?”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봐서.”

그는 관장실을 나와 다혜에게 걸어갔다.

“친구분이 많이 짜증 난 얼굴이에요.”

“이유야 어쨌든 들어온 돈이 나가는 거니까요. 오억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다혜는 일억짜리 수표 다섯 장을 내려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런 큰돈은 처음이에요. 고마워요. 별말 하지 않고 나눠 줘서요.”

그녀는 기쁜 표정을 짓더니 흰 봉투에 다시 수표를 담아 도현에게 돌려줬다.

“부탁이 있어요. 제 대신 사부님에게 이 돈 좀 가져다주세요.”

“제가요?”

돈을 달라고 했을 때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던 도현이 이번에는 놀라움을 숨기지 않으며 눈을 크게 떴다.

“사정이 있어요. 사부님은 제가 직접 돈을 주면 받지 않으실 분이거든요. 제 대신 믿고 보낼 사람은 관장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부탁 들어주시겠어요?”

돌과 독수리

건물주 박 사장은 도현이 돈을 준비했다는 말에 두말없이 그가 아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끼고 바로 매매 절차에 들어갔다.

용주는 그가 끝까지 돈 한 푼 안 깎아 주는 게 서운하다며 도현이 옆에서 건물을 사지 말라는 괜한 말을 늘어놨다.

건물주 박 사장은 눈엣가시 같은 용주의 행동이 불쾌하면서도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사겠다는 도현의 마음이 행여나 바뀔까 봐 결국 삼십일억 오천만 원에 합의를 봤고, 도현은 상가 세입자 보증금을 제외한 이십구억 오천을 그 자리에서 지불했다.

박 사장은 웃었고, 용주는 쉴 새 없이 날강도라며 작은 목소리로 박 사장을 욕했다.

건물에 대한 등기 이전을 마치고 돌아온 도현은 차에서 내려 20여 년을 보낸 상가 건물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제만 해도 남의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그의 명의로 된 5층짜리 건물이었다.

“축하하네, 백 관장. 아니지, 이제 엄연히 백 사장으로 불러야겠지.”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건물을 넘긴 전 건물주 박 사장은 흐뭇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 도현의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놨다.

하지만 도현의 귀에는 그의 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건물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어린 그가 아버지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웃으며 나오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영화처럼 선명하면서도 부드럽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있었다.

‘아버지, 이 건물이, 도장이 우리 게 됐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구요?’

도현은 자신의 왼편에 서 있는 홍영과 오른편에 서서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용주를 차례로 둘러봤다.

‘저희에게는 의미가 있어요, 아버지.’

도현은 눈가가 붉어진 용주를 잠시 더 보다가 다시 건물에 시선을 두었다.

박 사장은 도현과 용주가 건물을 바라보기만 하고 자신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자,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뉴질랜드로 투자 이민만 가지 않으면 이 건물을 몇 년이고 더 가지고 있다가 더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백 사장, 자넨 아주 잘 산 거라고.”

“다시 사실래요?”

용주가 듣다 듣다 못 참겠는지 슬며시 노려보며 물었다.

“허험, 그게 무슨 막말인가? 샀으면 그만이지.”

“뉴질랜드 아주 좋다는군요. 어서 가십시오, 뉴질랜드.”

“자네 말투가 왜 그래?”

“제가 뭘요?”

용주가 삐딱하게 쳐다보자 박 사장이 벌컥 화를 냈다.

“난 자네가 마음에 안 들어! 젊은 사람이 어른을 그런 싸가지 없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나 하고 말이야.”

“제게 떡이나 하나 주고 그런 말씀 하세요. 살아오면서 10원짜리 하나 남에게 보태 준 적 있습니까?”

“뭐야? 아니, 이 사람이!”

“뭐요, 뭐. 어쩌실 건데요! 때리실래요? 때리세요. 사람이 그러면 안 됩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인정이 있는 건데 말이에요. 어떻게 20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인정머리 없이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팝니까? 욕해요, 사람들이.”

용주가 작정을 하고 그동안 꾹 참아 왔던 말들을 토해 냈다.

“그만해, 용주야.”

“할 말은 해야지. 이제 뭔 상관이야. 박 사장님, 거기 밟고 있는 땅, 도현이 거거든요. 저쪽으로 가세요, 저쪽으로.”

용주의 손짓에 박 사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백 사장, 자넨 친구를 잘 사귀어야겠어. 이런 친구가 옆에 있으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야.”

“좋은 친구입니다.”

도현의 한마디에 용주는 어깨가 으쓱했다.

“건강하십시오.”

도현이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박 사장은 용주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잘 살게.”

돌아서서 차로 향하던 그는 주머니 안에서 요란하게 진동하는 휴대폰을 귀에다 댔다.

-박 사장님, 건물 아직 가지고 있지요?

“누구신가?”

-접니다. 화정부동산뱅크.

“아, 김 실장이었군. 건물은 왜? 이미 팔았는데.”

-팔았어요? 얼마에요?

“삼십일억 오천.”

-하아, 정말 사장님도 운이 없습니다. 운이 없어요.

“무슨 소리야, 그게?”

박 사장이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그쪽 지역에 강북을 대표하는 대규모 쇼핑몰이 생긴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오락 시설을 갖춘 복합 영화관도 함께요.

“뭐야?”

깜짝 놀란 박 사장이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다봤다.

도현과 용주가 세입자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었다.

용주가 건물 앞에서 새로운 건물주가 왔다는 소리를 큰 소리로 떠들어서 사람들이 금세 모인 것이다.

“그냥 소문이겠지?”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전화드린 이유는 조금 전 사장님 건물을 사겠다는 전화를 두 통이나 받아서예요.

“얼마에?”

-사장님이 제게 말했던 삼십이억에 산다는 사람이 있었고요, 다른 한 사람은 삼십삼억에도 사겠다고 그러네요.

“이 사람아! 그걸 왜 지금 와서 얘기해!”

-왜 제게 화를 내십니까? 바로 전화를 드리고 있잖습니까?

“이, 이, 빌어먹을!”

전화를 끊은 박 사장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도현과 용주를 노려보다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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