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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60화 (60/575)

[60] 디 임팩트 3권 10화

사진들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영감을 일으키는 데 반해, 사진을 찍은 당사자인 한석호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아니, 그 사람이 잘못하고 있는 건 없는 거지. 결국 내가 뜻대로 안 돼 짜증이 난 것뿐이니까.’

도현은 들끓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한석호의 수준 높은 사진들에 집중했다.

남은 사진이나 마저 다 보고 가자는 심정으로 그렇게 사진을 보던 그의 시선이 한석호의 마지막 사진에 멈춰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돌무더기로 만들어진 삼각형 모양의 돌탑 꼭대기 위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사진이었는데, 놀랍게도 독수리 발밑에 있는 돌무더기에 눈에 익숙한 돌 하나가 보였던 것이다.

여러 돌들 사이에 반쯤 고개를 내민 그 돌 표면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조 박사가 두 번 다시 찾기는 어려울 거라고 한탄을 했던 부서진 스톤의 문양과 흡사했고, 자신의 팔에 생겼다 사라진 그 타투와도 비슷했다.

조 박사의 집에서 봤던 주먹만 한 크기보다는 작아 보였지만, 사진 속에서도 느껴질 만큼 매끄러운 표면과 타투와 흡사한 문양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계를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것과 닮았다.

‘스톤이다!’

도현은 사진을 코앞에서 보며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지 계속 확인했지만, 다시 봐도 스톤과 너무도 흡사했다.

‘여기가 어디지?’

도현은 돌무더기 위의 독수리 사진의 출처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벽에 걸린 사진 주변에는 위치에 관한 암시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다만 ‘돌과 독수리’라는 짤막한 제목만 붙어 있을 뿐이었다.

“선배님!”

도현은 컵에 음료수를 따라 마시고 있는 한석호에게 뛰듯 걸어갔다.

“왜?”

“저기 저 사진 말입니다. 돌과 독수리요.”

“그 사진. 근데 왜?”

한석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어디서 찍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왜?”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을 했다. 사실대로 말해 줄 수는 없었다.

“너무 인상 깊어서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 사진 속 장소를 가 보려고요.”

“난 내가 찍은 사진의 장소를 관람객에게 알려 준 적이 없어.”

“선배님, 아까 제가 소리를 질러 화가 나신 거면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한석호는 마시던 음료수 컵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 때문이 아니야. 난 정말 내가 찍은 장소를 관람객들에게 알려 준 적이 없어.”

도현은 마음이 급해졌다. 몇 마디 안 한 사이지만 한석호의 성격이 정말 칼 같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선배님, 부탁드립니다.”

“이상해. 왜 저 장소가 그렇게 궁금한 거지? 사진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는 건데, 장소가 왜 그렇게 궁금해?”

한석호가 뭔가 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도현은 더욱 난감해졌다.

“정말 저 장소에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핑계치고는 너무 궁색해.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한석호는 천천히 돌과 독수리의 사진 앞으로 걸어갔다.

“이 장소가 왜 궁금할까, 응?”

사진을 보던 그는 도현을 돌아봤다.

“말해 봐. 왜 여기가 궁금하지?”

“아닙니다, 선배님. 더 이상 궁금하지 않습니다.”

“뭐? 안 궁금해?”

“네, 선배님의 오해를 사면서까지 저 사진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한석호는 도현의 속내를 읽어 보려는 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동안 도현을 봤다.

사진 전시회의 관람객들은 이미 다 나가고 안에는 그들과 전시장을 임대해 주는 갤러리 소속 직원 한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사진을 찍은 장소를 알려 주지 않지만, 딱 한 가지 경우에는 알려 주기도 하지.”

도현은 표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어떤 경우에 말입니까?”

“사진을 사. 구매자에 한해서는 사진을 찍은 장소를 알려 주니까.”

도현은 양손을 펼쳐야 들 수 있는 커다란 사진 액자를 응시하면서 고민하는 척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꼭 그래야만 한다면 제가 사지요. 그렇잖아도 사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됩니까?”

“이천.”

“예? 얼마요?”

“이천만 원. 싸게 주는 거야. 내가 이걸 찍기 위해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데.”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하는데,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진 한 장에 이천만 원이면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건물을 매입하고 그의 수중에 남은 돈은 일억 정도였다.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사진 한 장의 가격으로 이천만 원은 너무 심한 것 같았다.

“내 사진을 모욕하는 거냐?”

한석호의 차가운 눈빛에 도현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격 조정은 어려울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정말 저 스톤이 박사님이 찾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면 꼭 발견해서 가져야 하니까.’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이천만 원에 사겠습니다.”

“전시회가 5일 뒤에 끝난다. 그때 네게 팔면서 사진 속 장소가 어딘지 얘기해 주지.”

도현은 지금 당장 장소가 궁금했지만, 전시회가 끝나야 한다고 하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진을 다시 쳐다봤다.

독수리의 시선이 꼭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저긴 어디지?’

룸살롱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김탁훈은 아버지의 개인 보디가드로 일을 하고 있는 최태진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최 팀장님.”

최태진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김탁훈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중년의 최태진은 체격이 건장하고 눈빛이 어두운 사내로, 국정원 같은 국가기관에서 일을 했다고 김탁훈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버지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팀장님, 오늘 만나자고 한 건 부탁할 일이 있어섭니다.”

김탁훈은 최태진에게 술을 따라 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무슨 부탁 말입니까?”

“저 코 다친 거 아시죠?”

술잔을 입에 대던 최태진의 시선이 김탁훈의 부어오른 코로 향했다.

“손봐 줄 놈이 있어서요.”

“전 그런 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최 팀장님이 직접 나서 달라는 말이 아니라요, 다른 아는 사람들 있을 거 아니에요.”

김탁훈은 준비한 돈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복잡한 일도 아니에요. 지하에 도장 하나 차려 놓고 깝죽거리는 놈이 있는데요, 조용히 가서 몇 달만 병원 신세 지게 만들어 달라는 거죠. 그쯤은 해 줄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최 팀장님?”

최태진은 양주잔을 비우며 야비하게 웃고 있는 김탁훈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사람 많을 텐데, 왜 제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겁니까?”

“가족 같으니까요, 하하하!”

“이런 일은 가족에게도 비밀로 해야 합니다.”

최태진의 차가운 시선에 김탁훈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져 갔다.

“어떤 자입니까? 손봐야 될 사람이?”

최태진은 테이블 위의 돈 가방을 열어 안을 확인하며 물었다.

“백도현이라고 전통 검술 도장을 운영하는 놈이에요.”

김탁훈은 흥신소 사람이 찍어 온 사진 몇 장을 건넸다.

홍영이 오피스텔을 나와 도현의 집으로 이사를 할 때 흥신소 직원이 따라붙어서 사진을 찍은 것이다.

최태진은 몇 가지를 물어본 후, 사진을 돈 가방 안에 넣었다.

“사진 속 몸매만 봐도 운동을 꽤나 한 사람입니다. 손보려면 확실한 사람을 보내서 시간 끌지 않고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습니다.”

“아주 고통스럽게 혼내 주세요. 그래야 그년이 힘들어할 테니까요.”

김탁훈은 홍영을 떠올리며 술을 비웠다.

“돈이 더 필요합니다.”

“최 팀장님, 그 돈이면 충분하지 않아요?”

김탁훈이 인상을 썼다. 그라고 돈이 남아도는 게 아니었다.

“돈이 아까우면 사진 찍었던 흥신소 애들을 보내십시오. 아니면 조폭 몇 놈을 시키시든지요.”

최태진이 세게 나오자 김탁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술잔에 술을 따랐다. 흥신소나 조폭을 시켜 어설프게 일을 진행시켰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는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얼마나 더요?”

“세 장이면 될 것 같습니다.”

“3,000요?”

최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일 드리죠. 그런데 이번 일 확실히 해야 합니다. 혹시 뒤탈 나더라도 제게까지 똥물이 튀면 안 돼요.”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전문가가 나설 테니까요. 그보다, 이제 제게 뭘 해 주실 건지 얘기해 보도록 하죠.”

최태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정말 믿을 수 없군.”

사진 위에 돋보기를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조 박사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맞은편 소파에 도현과 오늘 처음 본 홍영이 나란히 앉아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때요, 삼촌? 스톤 맞죠?”

옆에 앉아 있던 용주가 급히 물었다.

“일단 돌의 느낌과 문양은 매우 흡사해.”

도현이 어제 갤러리에서 챙겨 온 사진 전시회 팸플릿 속에서 돌과 독수리 사진을 돋보기로 들여다본 조 박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하하, 그렇죠? 오면서 삼촌이 아니라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용주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 도현이 갤러리를 다녀와 팸플릿 속 작은 사진을 보여주며 하는 말에 그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 이 사진 속 장소는?”

“아직 모릅니다, 박사님.”

도현은 사진을 구입하고 나서 알려 주겠다는 한석호의 말을 얘기해 주었다.

“그럼 며칠 후면 알 수 있겠군. 잘됐어, 아주 잘됐어, 하하하!”

차원 이동 장치를 만들고도 에너지원인 스톤이 중간에 부서져서 다시 실험도 못 하고 있었던 그는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 듯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만 봐도 진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삼촌, 그런데 이게 이천만 원이래요. 사진 가격이요.”

용주의 말에 조 박사가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아니, 그렇다고요.”

“나 돈 없다. 여기 이 집하고 저기 텃밭도 저당 잡혀서 대출받아 쓴 지 오래됐다.”

“예? 언제 그러셨어요?”

“작년에.”

용주는 괜히 돈 얘기를 꺼냈나 싶어서 삼촌 눈치를 봤다.

“사진은 저희가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박사님.”

“그래 주겠나?”

조 박사가 빙그레 웃으며 홍영이 손수 타 온 커피를 입에 댔다.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도현이와 잘 어울리는구만.”

조 박사의 호의적인 태도에 홍영은 살짝 긴장을 풀며 미소를 보였다. 오면서 용주는 자신의 삼촌이 약간 괴팍하고 성질이 이상하니까 이해하라고 여러 번 말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조 박사는 그녀에게 별다른 말 없이 잘 대해 주는 것 같았다.

“그 스톤을 찾아내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차원 이동 실험을 해 봐야겠어.”

다짐하듯 주먹을 움켜쥔 조 박사에게 도현이 지난번에 물어보려다 만 질문을 조용히 꺼냈다.

“박사님, 문양이 그려진 스톤을 찾아내면 제가 갔던 이계로 다시 갈 확률은 어느 정도나 되겠습니까?”

“확률이라…… 재밌는 질문을 하는군.”

조 박사는 상의 주머니에 꽂아 둔 펜을 꺼내 손바닥에 뭔가를 적었다.

“이게 뭔 줄 아나?”

“21101.”

조 박사의 손바닥에 적힌 일련의 숫자를 입으로 중얼거린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감도 안 오나?”

“네.”

“아가씨는?”

“저도 모르겠어요, 박사님.”

홍영이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게 뭔데요?”

용주가 더는 참지 못하고 빨리 얘기해 달라고 재촉을 했다.

“이 숫자는…… 차원 번호야.”

“차원 번호요?”

용주의 눈이 커졌다.

“그런 것도 있어요?”

“당연히 있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다시 그곳을 찾아 차원 이동할 수 있겠냐?”

조카에게 대답을 해 준 그는 도현에게 시선을 두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경험한 이계의 명칭은 알 수 없네. 대신 번호로 부를 수는 있겠지. 21101. 차원 이동 장치를 조작할 때 내가 임의로 설정한 번호고, 그것이 곧 자네가 찾아간 이계야.”

“그 말씀은…….”

“확률 따위는 없어. 내가 그 번호를 입력하면 자네는 그곳으로 다시 가게 되는 거지.”

“그렇군요.”

도현의 표정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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