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디 임팩트 3권 11화
“삼촌, 그럼 타투는요? 차원 이동을 하게 되면 도현이 팔에 타투가 다시 생길까요?”
조 박사는 커피를 마시며 뜸을 들였다.
“그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차원 이동 장치의 기기 결함이 타투라는 결과물을 가져다준 것 같거든.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라는 거지.”
용주는 도현의 얼굴을 힐긋 보았다.
타투를 통해 몬스터의 기운을 흡수했는데, 그게 없으면 내공을 키울 수도 없다. 스톤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타투 없는 차원 이동은 팥 없는 호빵이나 다름없었다.
용주는 기운이 빠져 축 처진 어깨로 커피를 입에다 댔다.
“그럼 다시 기기 결함을 유도해서 만들어 주세요. 도현이 팔에 타투요.”
조 박사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임의로 기기 결함을 유도할 방법은 없다.”
“간다!”
진지한 자세로 검을 든 용주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날이 선 검을 도현에게 휘둘렀다.
채챙! 채채챙챙!
지하 도장 안에 금속성이 가득 메워졌다.
아슬아슬한 장면이 수없이 발생했지만, 용주의 검을 다듬어 주는 도현이나 전력을 다하고 있는 용주나 중간에 검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사악.
용주의 머리카락 몇 올이 도현의 검에 잘려 힘없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관장실에서 지켜보던 홍영의 가슴이 철렁했다. 진검 대련은 늘 부상의 위험이 따라서 옆에 있는 사람이 더 긴장되는 법이다.
간발의 차로 친구의 검을 피한 용주는 바닥을 굴러 이어지는 도현의 검을 피해 냈다.
막 몸을 일으키는 그의 시야로 허공에서 낙엽처럼 빙글빙글 돌며 떨어져 내려오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큰 나뭇가지 같다!’
용주는 맹세코 자신의 머리카락이 그토록 크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머리카락 끝이 갈라져 있는 모습까지 보였을 정도니 그가 그렇게 느낀 게 무리도 아니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친구의 검을 봤다. 너무 빨라서 피하기 급급했던 도현의 검이 이제는 어느 정도 보였다.
턱을 젖혀 검을 피한 용주는 발로 도현의 급소를 걷어찼다.
하지만 도현은 무릎으로 간단히 용주의 발등을 막아 내고는 검에 변화를 주어 아직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용주의 다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챙!
맑은 금속성이 지하 도장을 크게 한번 휘감고 사라졌다.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검 끝을 내려다봤다. 용주의 검신이 그의 검 끝에 정확히 닿아 있었다.
스윽.
뒤로 물러난 도현은 얼굴이 하얗게 변한 친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축하한다. 드디어 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경지에 올랐구나.”
“하아, 하아. 그럼 나 이제 고수가 된 거냐?”
용주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그는 도현이 검에 변화를 주면 감으로 느끼고 피하기 급급했다. 그것도 용한 재주이긴 했지만, 운이 많이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도현의 검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검을 눕혀 막아 낸 것이다.
“아니, 이제 시작이야. 초보 고수쯤으로 해 두지. 그런데 조금 전 내 검에서 몇 개의 변화를 읽었어?”
“세 개, 아닌가?”
“다섯 개야.”
“그래?”
약간 실망하는 용주에게 도현이 격려를 했다.
“검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이 중요해. 나머지는 수련하면서 차차 발전하는 거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고개를 끄덕인 용주는 벽시계를 봤다. 밤 열한 시가 넘었다.
“가야겠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는 도장을 나서기 전 도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낮에 삼촌 말, 그거 확실하지 않잖아. 일단 스톤 찾는 데 주력하자. 나머지는 그때 부딪쳐 보고.”
용주는 타투가 안 생길 거라는 삼촌의 말에 도현이 실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걱정 마. 마음을 어느 정도 비우고 있으니까.”
“너무 비우지 말고. 기대감이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잖아. 흐흐, 간다. 홍영 씨, 내일 봐요!”
닫힌 도장의 문을 잠시 바라보던 도현은 도복 소매를 걷어 올려 타투가 사라진 빈 팔뚝을 응시했다.
조 박사는 타투가 우연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런 만큼, 스톤을 되찾는다 해서 전처럼 그의 몸 일부에 타투가 생긴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몬스터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타투가 생기지 않는다면, 분명 맥 빠지는 일이긴 했다.
그러나 이계는 그에게 현실보다 긴 시간과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 놀라운 세계였다.
그것만으로도 그곳은 도현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이었다.
“도현 씨.”
홍영이 곁으로 다가오자 도현은 도복 소매를 내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연속으로 1등 복권에 당첨된 사람도 있고, 번개를 여러 차례 맞은 사람도 있대요. 예상치 못한 우연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어요. 박사님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혹시 알아요? 기기 결함이 또 일어날지.”
밝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에게 도현은 미소를 보였다.
“조 박사님이 들으셨다면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 말이군요.”
“그런가요?”
홍영은 수중의 검을 좌우로 가볍게 돌렸다.
“조금만 더 하고 우리도 집에 갈까요?”
“그래요.”
도현은 검을 뽑아 홍영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자정 무렵 도장 문을 닫고 나온 둘은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혼자 걷는 데 익숙했던 도현은 옆에 홍영이 있다는 게 아직은 낯설었다.
“아까 인터넷으로 도현 씨가 백두TV에 나왔던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모자이크 안 했으면 더 괜찮았을 텐데.”
도현은 쑥스러워 그냥 걷기만 했다.
“내일 이 피디란 분하고 만나기로 했잖아요.”
“네.”
“모자이크 없는 영상 원본 좀 보내 달라고 해요. 기념으로 가지고 있게요.”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저는 그러고 싶은데요?”
홍영이 새침하게 말하자 도현은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알았어요. 얘기해 볼게요.”
집 안에 들어선 그들은 다탁에 찻잔을 올려놓고 한석호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분은 어떻게 내공을 익혔을까요? 도현 씨는 20년이 걸려서야 작은 내공이 생겼는데요.”
“모든 무예를 스스로 개척하며 배웠다고 했어요.”
도현은 사진 전시회에서 자신을 향해 쉽게 얻으려고 한다고 날 선 눈빛을 보냈던 한석호를 떠올렸다.
“내공심법이 있겠죠?”
“그분의 제자인 다혜 씨가 내공을 익힌 걸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우리도 그런 게 있다면 좋겠는데요.”
홍영은 차를 마시며 담담히 말하다가 도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도현 씨라도 내공을 가지고 있어서요.”
“축기를 통해 내공이 계속 증가해야 하는데, 지금 제가 배운 단전호흡법은 내공의 씨앗 정도밖에 만들어 주지 못해요. 그것도 긴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했죠.”
도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계속 말했다.
“그분이 스스로 개척해서 배웠다면, 우리도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요?”
“어제오늘 든 생각인데요. 수천 년 역사 이래로 내공을 사용한 곳이 검선문밖에 없었을까요?”
“그건 아니겠죠.”
“지구에 남아 있는 유일한 문파가 검선문밖에 없다 해도 이미 사라진 많은 문파들의 흔적은 이 지구상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거예요. 어쩌면 한석호 선배가 스스로 개척했다는 말뜻은 그 흔적들을 쫓아서 배웠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요.”
홍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도현 씨는 사라진 문파의 흔적을 찾아보자는 뜻이에요?”
“당장은 아니라 해도 결국은 그 흔적을 찾는 여행을 떠나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한석호 선배가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트나슈리
도현과 저녁 약속을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래서 이 기회를 잘 살려야만 했다.
백두TV의 이호선 피디는 강남의 고급 일식집에서 도현을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피디님, 이래도 될까요?”
우려 섞인 김유진 작가의 시선에 이 피디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때로는 과감해야 하는 법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막나가는 것 같은데요?”
“죽을 각오로 임하면 그 끝에 서광이 비치는 법이지. 인내와 기다림이 백 관장을 카메라 앞에 끌어냈다면, 이번엔 과감함으로 그를 놀라게 하고, 혼을 빼 놓겠다. 그러다가 여기에!”
탁!
방에 길게 놓인 상에 출연 계약서가 척 하니 놓였다.
“사인을 하게 만들겠어!”
“불안하시죠?”
“……아니.”
그는 계약서를 다시 서류 가방에 넣었다.
“국장님에게 안 된다고 못을 박으셨어야죠. 백 관장님 고집 겪어 보셔서 아시잖아요.”
“네가 그 앞에 서 봐라. 못 한다는 말이 나오나.”
“이러다 우리랑 얼굴 다시 안 보겠다고 할 수도 있어요.”
“김 작가! 정신 안 차릴래? 전투 의지가 안 보여! 전투 의지가! 여기에 사인 받아 내지 못하면, 너나 나나 국장 바뀌기 전까지 끝이야, 끝!”
“모르겠어요, 전.”
턱을 괸 그녀는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독하게 지하 도장에서 수련을 하는 백 관장님이 불쌍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몰라요. 그런 게 있어요.”
“너 자꾸 일에 집중 안 하고 정신 줄 놓고 다니면 창국이고 뭐고 너 내보낸다.”
“오빠 마음대로 하세요.”
“누가 오빠라 부르래? 아직 일 안 끝났다. 피디로 불러.”
이호선은 친구인 창국이의 여동생 김유진에게 눈을 부라렸다.
“네에, 피디님.”
김유진이 투덜거릴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미닫이문이 열리며 종업원의 안내를 받은 도현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백 관장님.”
이 피디와 김 작가의 인사에 도현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고맙습니다.”
도현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건 다음 상 앞에 앉았다.
지난 며칠간 계속 전화를 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이 피디의 말에 결국 승낙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서 자리가 편치만은 않았다.
세련된 장식과 아늑함이 느껴지는 방을 둘러보며 도현은 조용히 물었다.
“여기 비싼 곳 아닙니까?”
“네? 아, 예, 조금.”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으신데요.”
“아닙니다. 이 정도는 대접해 드려야죠. 관장님 덕택에 시청율도 잘 나오고, 프로그램이 망가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걱정 마십시오.”
이 피디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회사에서 내는 겁니다, 하하하!”
크게 웃던 이 피디는 도현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웃음기를 지우며 카드를 도로 넣었다.
“험, 뭐 그렇다는 겁니다.”
“백 관장님, 전에 제가 드린 한약은 잘 드시고 계세요?”
김 작가의 뜬금없는 물음에 도현은 살짝 당황을 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잘 먹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전 혹시 그 이상한 친구분이 드셨을지 모른다고 밤잠을 설쳤거든요. 그날, 한약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해서요. 어머, 죄송해요. 하다 보니까 험담을 했네요.”
‘얘가 왜 이래?’
이 피디가 상 밑으로 손을 넣어 옆에 있는 김 작가의 다리를 꼬집었다.
‘조용히 해라. 집중 안 할래?’
‘이거 놔요. 아프다고요!’
서로 눈싸움을 하는 이 피디와 김 작가의 행동에 도현은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미안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순 없지.’
김 작가가 가지고 온 보약은 용주가 잘 달여서 먹고 있었다. 필요 없으니 가지고 가라고 했지만, 아무 뜻 없는 순수한 선물이라며 보약을 놓고 도망치는 그녀를 제지할 순 없었다.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들어온 종업원 두 명이 긴 상에 이것저것 놓고 가자, 허전했던 빈 상이 꽉 찼다.
“술 하시겠습니까?”
이 피디가 술 주전자를 들며 묻자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술잔을 들었다. 비싼 음식을 차려 줬는데, 기분 좋게 먹고 가야지 사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끝이 좋았다.
술이 든 사기 주전자를 기울여 졸졸졸 도현의 잔에 술을 따른 이 피디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려 했다.
“주십시오.”
도현은 사기 주전자를 받아서 이 피디의 잔에 술을 따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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