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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62화 (62/575)

[62] 디 임팩트 3권 12화

방송이 나가고 귀찮은 일도 벌어지기는 했지만, 방송이 아니었으면 태화실업의 이한규가 자신을 찾아올 리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그에게 저녁을 대접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술을 따르는 그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술을 받던 이 피디가 도현의 얼굴을 힐긋 쳐다봤다. 보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왠지 오늘 계획한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김 작가의 잔에도 술을 따라 준 도현이 사기 주전자를 내려놓자 이 피디가 목을 가다듬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백 관장님을 위하여!”

“위하여!”

이 피디의 선창에 김 작가가 큰 소리로 따라 하며 술잔을 허공에 올렸다.

둘의 행동에 도현은 쑥스러워 한마디 했다.

“이러지 마십시오.”

도현은 가볍게 그들의 술잔에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하하하! 오늘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백 관장님, 아주 술이 달아요.”

“저도요, 호호호!”

두 사람은 흥겹게 떠들며 도현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들끼리 술을 따라서 마시기도 했다.

입담이 의외로 좋은 이 피디는 방송국에서 벌어진 재미난 이야기와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연예계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술 먹는 내내 해서 분위기를 한껏 올려놨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세 명이 먹은 술은 적지 않았다.

“아이고, 이거 또 술이 떨어졌네.”

눈이 붉게 충혈된 이 피디가 상체를 앞뒤로 흔들며 빈 술 주전자를 흔들었다.

“그만 드시죠, 이 피디님.”

도현의 말에 이 피디가 펄쩍 뛰었다.

“아이고, 무슨 섭섭한 소리를. 사내대장부가 술을 입에 댔으면 끝까지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 김 작가? 이봐, 김 작가.”

말을 하며 옆을 바라본 이 피디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냐? 그래, 자라.”

“안 자여, 피디님.”

상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김 작가가 고개를 세우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쓰러졌다.

“피디님, 잠깐만 쉬었다 마셔요. 지금은 너무 졸려서…….”

“술 세다고 그렇게 자랑하더니.”

혀를 차던 이 피디는 만류하는 도현의 손을 뿌리치고 술을 한꺼번에 많이 시켰다.

“정말 드실 수 있습니까?”

도현의 걱정 어린 말에 이 피디는 게슴츠레 눈을 뜨며 도현을 노려봤다.

“그럼요. 내가 말이죠, 우리 백두TV 배 술 마시기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 아닙니까? 하하하!”

농담 섞인 말을 한 그는 종업원이 술을 가져오자 거침없이 도현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먹기를 권유했다.

“자, 마셔요. 걱정 마시고.”

“음, 알겠습니다. 저도 술은 싫어하지 않습니다.”

둘은 그야말로 술을 물 마시듯 했고, 회사에서 술 세기로는 첫손에 꼽혔던 이 피디도 점점 혀가 꼬이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도현은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를 작성하는 꼿꼿한 선비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을 보이며 술잔을 입에 대고 있었다.

“지금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백 관장님도 그렇게 느껴집니까?”

“네.”

“크크, 그래요? 드디어 취했군, 취했어.”

딸꾹질을 크게 한 번 한 이 피디는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며 서류 가방에서 준비한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자, 백 형! 여기 사인 하나 해 주시오.”

도현은 음식 위에 놓인 계약서를 보며 물었다.

“그게 뭡니까?”

“저기 섬나라 일본 DBC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보고는 기발한 제안을 해 왔어요. 일명 ‘한일 검객 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이 피디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도현에게 더듬더듬 말을 이어 했다.

“일본의 그 사과 베기를 한 검객과 백 관장이 대결을 벌이는 겁니다. 일본 방송국과 우리 방송국이 공동으로 제작해서 양국에서 같은 날 동시에 내보내는 거죠. 어때요, 재미있겠죠?”

어렵게 설명을 마친 이 피디는 도현이 꿈쩍도 않고 술만 묵묵히 마시고 있자 도현에게 기어서 다가갔다.

“에이, 백 형, 아니 백 관장님, 사인하시죠. 안 하면 일본 쪽 애들이 우리가 장난질해서 사과 베기를 했다고 헛소문 퍼트린다고요. 자아, 어서요.”

펜과 출연 계약서를 도현의 앞에 내려놓은 이 피디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결국 옆으로 쓰러졌다.

계약서를 찬찬히 훑어보던 도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취해서 잠든 이 피디와 김 작가를 둘러보았다.

술을 계속 권하던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술기운에 방송에 출연한다고 말을 하며 계약서를 작성하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몰랐던 사실은 도현이 굉장히 술이 센 사람이라는 것이다.

빈 술잔에 마지막으로 술을 따라 한 번에 비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피디를 안아서 방 안쪽에 편히 눕혔다.

그들의 의도가 괘씸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미운 감정 대신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겉옷을 걸친 그는 방을 나와 계산대로 향했다.

“얼마죠?”

도현이 탄 택시를 미행하던 사내는 손으로 호두를 깨서 안에 내용물을 한꺼번에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단단한 호두 껍데기가 입안에 들어왔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와자작.

순식간에 호두 몇 개를 강철 같은 손아귀 힘으로 으깨어 먹은 그는 도현이 상가 건물 앞에서 내리자 힐긋 도현을 쳐다본 뒤 그를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곧 차를 길가에 세우고 주변을 살핀 뒤, 도현이 들어간 지하 도장을 향해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매타작하기 좋은, 길이 50센티 정도의 쇠심이 박힌 곤봉 하나가 들려 있었다.

철퍼덕.

“아니, 이 자식이 눈은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똑바로 안 보고 다녀!”

껄렁하게 생긴 건장한 사내 두 명이 자신들과 부딪힌 모자 쓴 사내를 향해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가라.”

모자 쓴 사내는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이게 미쳤나. 거기 안 서!”

조폭들인 그들은 모자 쓴 사내를 쫓아가 그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어두운 거리에 사내의 모자가 뒹굴었다. 사내는 잠시 서 있다가 몸을 굽혀 떨어진 자신의 모자를 주워서 다시 머리에 썼다.

“그만하고 가. 미안하니까.”

사내의 묵직한 저음에 조폭 사내들의 눈초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 새끼가 어디서 후까시 잡고 지랄이야. 너 정말 뒈져 볼래?”

그들 중 한 명이 품 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죽여 줄까? 엉?”

“이 새끼가 그래도 등 돌리고 서 있네! 얀마, 너 이 동네 살아? 어?”

모자 쓴 사내는 칼을 든 사내가 겁을 주듯 명치에 칼끝을 들이밀자 소매 속에 감춰 둔 곤봉을 꺼내 들었다.

퍼억!

쇠심이 박힌 곤봉이 칼 든 조폭 사내의 머리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사내가 칼을 떨어트리고 휘청거리는 순간, 모자 쓴 사내의 곤봉이 번개처럼 여러 번 움직여 그의 어깨와 무릎뼈를 순식간에 박살 내 버렸다.

깜짝 놀란 동료가 뒤늦게 모자 쓴 사내에게 달려들었지만 곤봉에 팔이 부러져서 저만치 나뒹굴었다.

“으아아아!”

목청이 떨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그의 행동에 모자를 쓴 사내는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다가가 발로 그의 얼굴을 걷어 찬 뒤에 곤봉으로 그의 정강이뼈를 사정없이 두 조각 내 버렸다.

저만치서 사람들이 다가오자 그는 호검술 도장이 있는 상가 건물 쪽을 힐끔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자신의 차로 뛰어가 자리를 피해 버렸다.

잠시 후, 신고를 받은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했고, 119 구급차도 곧이어 도착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도복 차림으로 거리로 나온 도현이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오르는 조폭 사내들을 보며 물었다.

“어? 백 관장.”

근처에서 술집을 하는 김 사장이 도현을 알은체했다.

“몰라, 나도. 누구하고 싸움질이라도 났나 보지.”

“네에.”

술은 먹었지만 집에 가기 전에 검 수련을 하려고 지하 도장에 들렀던 도현은 밖에서 들리는 앰뷸런스 소리에 신경이 쓰여 밖에 나왔던 것이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도현이 다시 도장으로 향하자 술집 김 사장이 그를 붙잡았다.

“저기 백 관장, 혹시 사귀는 사람 있나?”

“예?”

“아니, 없으면 말이야, 내 조카나 소개시켜 줄까 하고. 얼굴도 예쁘고, 대학도 괜찮은 데 나왔어. 다만, 집이 좀 기울었는데, 그거야 백 관장이 건물도 살 재력이 있으니 상관없지 않겠어?”

도현은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사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랬어? 이거 아쉬운데.”

“그럼.”

도현은 인사를 하고 나서 도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 소개시켜 준다는 사람은 김 사장이 처음이 아니었다. 상가 건물의 분식집 아주머니부터 해서 2층 학원 원장까지, 모두 그가 건물을 산 며칠 사이에 나온 얘기들이었다.

저장성 성도인 항저우의 밤을 지배하는 자는 세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인 왕석은 저장성 당 고위 간부를 배경으로 두고 있어서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폭력 조직 소탕 작전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인신매매와 불법 도박장, 유흥가를 관리하며 많은 돈을 벌어들인 그는 항저우 인근의 많은 땅을 매입했고, 그중 경치가 수려한 곳에는 접대를 위한 고급 별장을 짓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별장을 사고 싶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얼마나 줄 거요?”

“천만 위안을 드릴 수 있습니다.”

“천만 위안?”

겁도 없이 한밤중에 집을 방문해 제안을 하는 홍콩에서 온 사내에게 왕석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장난치는 거요? 거기 시설에 들인 돈만 해도 천만 위안이 넘는데, 뭐? 천만 위안?”

“사업을 곧 정리한다고 들었습니다.”

왕석은 그의 말에 뜨끔했다.

“당 간부가 당신의 뒤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언제 공안이 총을 당신에게 겨눌지 알 수 없지요. 사업 정리를 하기로 한 건 탁월한 선택입니다.”

“뭐라고?”

“천만 위안이면 적절한 금액입니다. 항저우를 빨리 뜨려면 가진 땅과 빌딩 들을 빨리 처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특히 그 별장은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들었는데요. 아닙니까?”

“건방진 자식!”

꽝!

왕석이 서재의 책상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내가 누군지 알고 왔으면서도 감히 그딴 시답지 않은 말들을 늘어놔! 목을 따 줄까!”

그의 고함 소리가 신호였는지 밖에서 기다리던 그의 부하들이 소리 없이 들어와 홍콩에서 온 사내를 감쌌다.

30대 초반의 단정한 외모를 갖춘 주성하는 안경을 곧추세우며 왕석의 부하들을 쭉 둘러봤다.

“많네요. 이들도 데리고 갈 겁니까?”

“이 자식이 정말!”

왕석이 턱짓을 하자 부하 한 명이 날카로운 칼을 꺼내 의자에 앉아 있는 주성하의 목에 가져다 댔다.

“죽고 싶나?”

“날 죽여서 당신에게 남는 게 뭡니까?”

“기쁨이지. 내게 건방 떤 놈이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걸 지켜보는 기쁨.”

왕석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내 딴에는 당신에게 호의를 베푼 건데, 건방이라고 느꼈군요.”

“그 주둥이가 찢어지고도 그렇게 말을 내뱉는지 보자. 잘라.”

“네!”

다른 한 명이 칼을 들고 주성하의 입에 가져다 댔다.

“잠깐!”

주성하가 다급히 외쳤다.

“왜 이제야 겁이 나나?”

왕석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의자에 느긋하게 앉았다.

“밖에서 나를 감시하는 공안들을 믿고 까분 모양인데, 착각하지 마. 그놈들 모두 내 돈 먹고 자라 온 놈들이니까. 여기서 네 녀석 죽인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전혀 없어.”

“그렇군요. 아무래도 오늘은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알아들었으면 널 보낸 홍콩의 그 부동산 개발 업자에게 가서 내 말 똑똑히 전해. 오천만 위안이면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알았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지요. 그런데 이 칼 좀 치워 주시지 않겠습니까?”

의자에 앉아 있는 주성하가 고개를 살짝 틀어서 목에 칼을 들이댄 사내를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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