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63화 (63/575)

[63] 디 임팩트 3권 13화

사제로부터 보고를 받은 노일문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천만 위안을 달라고?”

“한 푼도 깎아 줄 수 없다는 강경한 표정이었습니다.”

“흠, 항저우를 떠날 생각이 없는 건가?”

“아니에요, 사형. 제가 보기에는 그 더러운 습성이 발동 한 것 같아요. 먼저 아쉽다고 손을 내미니까 배짱을 부리는 겁니다. 아마 오천만 위안을 가지고 가면, 그때에는 더 많은 돈을 달라고 할 자입니다.”

“명을 재촉하는군.”

노일문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하다가 주성하의 목에 난 상처에 시선을 뒀다.

“목에 상처는?”

“왕석의 부하가 제 목에 칼을 들이댔어요.”

“사제 목에?”

“칼을 잘 못 다루더군요. 그러니 이렇게 목에 상처를 남기지요. 조금 있다가 가서 어떻게 칼을 다뤄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주성하는 말을 하며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정장을 벗고 새까만 옷으로 도배를 하는 사제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노일문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접니다, 섭 사형. 그가 천만 위안을 거부했습니다.”

-계획대로 조용히 처리하게.

“섭 사형.”

-말하게.

“그 별장은 왜 차지해야 하는 겁니까?”

-문주님의 지시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궁금해서입니다.”

-나라고 알 수 있겠나?

“음…… 알겠습니다, 사형.”

전화를 끊은 노일문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뒤 기다리고 있는 주성하와 차에서 내려 어둠 속을 달렸다.

“노 사형.”

“왜.”

“대사형 대신 왜 섭 사형이 사부님의 명령을 하달하는 겁니까?”

노일문은 복면을 쓴 주성하를 힐긋 쳐다봤다. 안경을 벗은 주성하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그는 열 명의 사형제들 가운데 제일 막내 사제였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잖아.”

“그거야, 대사형은 그동안 등선궁에서 사부님을 모시고 계셔서 그렇잖습니까. 이제는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완전히 나왔으니, 둘째 사형은 물러나고 대사형이 제자들에게 사부님의 명을 하달하는 게 맞지요. 안 그렇습니까?”

“대사형이 감당하기에는 세상의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그분 성격에 사람을 죽이고 별장을 뺏어 오라는 지시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필요하면 해야지요. 버러지 같은 것들이 돈과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데 얼마나 같잖습니까? 그 속에서 검선문이 세상에 크게 자리하려면 섭 사형처럼 과감하게 끊고 처단해야지요.”

휘익.

경공을 발휘해 담을 넘고 2층 지붕 위를 달리며 주성하는 노일문의 뒤에서 힘주어 말했다.

“검선문이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는 게 과연 옳다고 보나, 사제는?”

집과 집 사이를 바람처럼 뛰어넘으며 노일문이 물었다.

“전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 마음과는 상관없이 사부이신 문주님께서 그리 방향을 정하시지 않았습니까? 따라가는 게 제자의 도리지요.”

“네 욕심이 아니라?”

노일문의 차가운 눈빛에 주성하가 빙그레 웃었다.

“뭐, 욕심도 있겠지요.”

“영악한 놈. 그리 마음먹은 놈이 대사형을 들먹여?”

“사형의 의중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노일문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허리에 매달고 있던 검을 조용히 뽑아 들었다.

“내가 과연 너를 책망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저는 노 사형이 좋습니다.”

주성하는 코앞으로 다가온 왕석의 커다란 집을 노려보며 서슬 퍼런 검을 뽑았다.

비호처럼 지붕 위에서 뛰어내린 그들은 공중에서 몇 번 몸을 회전시켜 왕석의 저택 앞을 지키고 있는 공안의 차 앞에 뚝 떨어졌다.

번쩍.

그들이 공안의 차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안에서 잡담을 나누던 공안들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헉!”

“윽!”

공안들을 처리한 노일문과 주성하는 담을 넘어갔다.

“주 사제는 곧장 그자를 잡아서 서류에 서명을 받아 내게. 나머지는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사형. 하지만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녀석은 살려 두십시오. 제가 처리할 테니까요.”

주성하는 말을 하며 현관문을 열고 나오던 사내를 휙 지나쳤다.

영문도 모르고 왕석의 부하는 목이 베인 채 뒤로 넘어갔다.

차 안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 대던 이 피디는 김유진을 슬며시 쳐다봤다.

“김 작가, 가서 사과하고 와.”

“제가 왜요? 계획은 피디님이 세우셨잖아요.”

“그래도 나보다는 여자인 네가 낫잖아. 내가 가면 검으로 찌를지도 모른다고.”

출연 승낙을 받지 못한 건 둘째 치고 술에 취해 먼저 자 버렸다. 거기에다가 비싼 일식집의 음식값까지 대신 내게 만들어 버렸다. 도현을 어떻게 다시 봐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게 어제 그런 방법은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불난 집에 부채질해? 지금 그런 소리는 왜 해?  ”

짜증 섞인 그의 말에 김 작가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아무튼 안 가요. 저도 어제 술 마시고 실수 많이 했다고요.”

“지금 그게 문제야! 어떡하든 다시 관계를 이어 가야지.”

아침에 출근해 국장에게 불려 가 또다시 한 소리 듣고 왔다. 그로서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걸 왜 제게 책임 전가하시냐고요! 전 힘없는 작가일 뿐이에요.”

“김 작가.”

“…….”

“유진아, 오빠가 부탁하잖아, 응?”

“아쉬울 때만 오빠라고 하죠. 평소에는 피디라고 막 부려 먹으면서.”

“그래, 내가 잘못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창국이가 너를 남처럼 대하라고 해서 그랬던 거야.”

“너무 남처럼 대했죠. 안 그래요, 이 피디님?”

“미안하다, 미안해. 그러니 네가 갔다 올 거지?”

“아니요. 저는 중간에 자서 뒷일을 하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과를 하겠어요? 출연 문제도 그렇고. 결국은 피디님이 나서야죠. 저 같으면 더 늦기 전에 백 관장님 만나겠어요.”

도현은 문 앞에 서 있는 이 피디를 잠시 응시하다가 관장실로 그를 데리고 갔다.

죄지은 사람처럼 조용히 관장실로 따라가던 이 피디는 진검 수련 중인 용주와 홍영을 힐끔 쳐다봤다.

“죄송한데, 저분들은 누굽니까?”

“친구들입니다. 앉으세요.”

도현은 관장실 의자를 권했다.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 피디에게 도현이 물었다.

“어제 과음을 하신 것 같은데, 속은 괜찮습니까?”

“네? 아, 네. 저는 괜찮습니다. 관장님께서는?”

“저도 괜찮습니다.”

“저어, 백 관장님. 어제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초대해 놓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데요.”

“됐습니다. 서로 기분 좋게 술 마셨으니 된 거 아닙니까?”

도현이 화내지 않고 담담히 말을 하자 이 피디는 더욱 미안해졌다.

한동안 도현의 눈치를 보던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어렵게 열었다.

“그러시면 어제 제가 말씀드렸던 방송 출연 문제는…….”

“그때 일이 기억나십니까?”

“신기하게도 기억이 잘 나네요.”

“출연할 생각이 없습니다.”

혹시나 하고 물었던 이 피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가 어제는 미처 다 말씀 못 드렸는데요. 일본의 그 검객을 이긴다면 백 관장님은 일약 스타가 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한일 간의 관계가 그렇잖습니까. 한 번의 방송이 관장님의 인생을 단번에 정상으로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거죠. 그에 따른 돈과 명예까지 생각한다면, 방송 참여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진다면 그만큼 욕을 많이 먹는다는 말씀이군요.”

“네? 아니, 그 말씀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이 워낙 크다 보니까 제가 강조를.”

당황한 이 피디의 말을 도현이 중간에 막았다.

“이 피디님, 지난번 방송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방송 이후로 몇 가지 좋은 일이 제게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도현을 보며 이 피디는 울상을 지었다.

“정말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이 피디님. 다른 출연자분을 구해 보십시오.”

“어디서 관장님 같은 분을 구하겠습니까? 일본 측에서 제의를 먼저 한 이유는 사과를 베는 관장님의 영상 때문이었는데요.”

도현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 관장님!”

이 피디가 그의 도복 자락을 붙잡으며 늘어졌다.

“여기 머리 좀 보세요. 머리카락이 잔뜩 빠졌죠?”

모자를 벗은 이 피디가 훤해진 머리 정수리를 도현에게 내밀었다.

“사실 관장님이 방송 출연하기 싫어하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 딴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 고민하는 잠깐 사이에 이렇게 머리가 빠졌습니다.”

“요 근래에 탈모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은데요.”

도현의 똑 부러진 말에 이 피디가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다시 모자를 썼다.

“아니에요. 빠지긴 했어요.”

“저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하지 마시고, 다른 사람을 구해 보는 게 좋을 겁니다.”

흔들림 없는 도현의 태도에 이 피디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어제 관장님이 계산하셨던 금액입니다.”

그는 낡은 컴퓨터 모니터가 놓인 책상 한쪽에 돈이 든 봉투를 올려놨다.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계산은 분명히 해야죠. 더구나 이렇게 힘들게 도장 생활을 하시는데요.”

이 피디는 좁고 낡은 관장실을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방송에 출연하시기만 하면 지하 도장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도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이 건물이 그의 것이라고 하면 이 피디가 적지 않게 놀랄 것이다.

“백 관장님,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이지만, 꼭! 깊게! 심사숙고해 보십시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이 피디가 도장 밖으로 나가자 홍영과 용주가 다가왔다.

“뭐래?”

“어제 미안하다고. 내가 쓴 돈도 주고 갔어.”

“방송 얘기는 안 해?”

“했지. 안 한다고 했어.”

도현은 말을 하며 홍영을 쳐다봤다. 홍영은 방송 출연을 해서 호검술 도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면서도 도현이 싫다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했다.

“홍영 씨, 전에 찍은 모자이크 없는 방송 영상은 다음 기회에 말할게요. 어제오늘 말할 시기가 아닌 것 같아서요.”

“괜찮아요.”

홍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참, 어젯밤에 요 앞에서 조폭들 얻어터졌다면서. 봤냐?”

용주가 어디서 소리를 들었는지 뒤늦게 물었다.

“아니, 내가 나갔을 때는 피해자들이 구급차에 막 실리고 있었어.”

“누가 그런 짓을 벌인 거지?”

용주가 턱을 매만졌다.

차에 큰 사진 액자를 싣고 온 한석호는 호검술 도장 간판을 확인하며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던 도현이 입구에서 한석호를 반겨 주었다.

“생각보다 크진 않군.”

낡은 도장 내부를 빙 둘러보던 그는 용주와 홍영이 다가와 인사를 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원들인가?”

“친구들입니다.”

“흠.”

한석호는 용주와 홍영의 위아래를 빠르게 훑다가 도현의 뒤를 따라 관장실로 향했다.

“전시회는 잘 끝났습니까?”

도현은 홍영이 새로 사 온 찻잔 세트에 차를 담아서 한석호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종이컵이 아닌 근사한 찻잔은 홍영이 온 뒤에 불어온 작은 변화 중 하나였다.

호검술 도장의 관장으로서 적절한 무게와 품위는, 잘난 체하는 게 아니라 도장의 권위를 높여 주는 일이라며 홍영이 준비한 것이다.

“그럭저럭.”

차를 한 모금 한 그는 자신의 제자와 비교해도 미모가 전혀 손색이 없는 홍영과 발놀림이 가벼운 용주의 검 수련을 지켜보다가 가지고 온 사진을 도현에게 건넸다.

도현은 피사체에 초점이 맞춰져 뒤에 배경이 흐릿한 돌과 독수리 사진을 잠시 응시하다가 조심스럽게 사진 액자를 내려놨다.

사진 배경이라도 알 수 있다면 사진을 찍은 장소를 유추라도 해 볼 수 있는데, 이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결국 한석호의 입에 의존해야 했다.

“선배님, 여기.”

이천만 원이라는 사진값을 받은 한석호는 품 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네팔에 트나슈리라는 작은 산간 마을이 있네.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네 시간 정도 이동하다가 차에서 내려 좁은 비탈길을 올라가야 나오는 곳이지. 이 사진 속 장소는 그 마을 뒤편에 흩어져 있던 돌탑들 중 하나를 잡고 찍은 것이네.”

도현은 네팔이라는 말과 산간 마을이라는 말에 쉽게 찾아 갈 수 있나 의문점이 생겼다. 한석호가 지도를 보며 설명해 주기는 했지만, 막상 지도에는 마을 이름 같은 건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지에 가서 가이드를 고용해. 지도만 보여 주면 알아서 데려다 줄 테니까.”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