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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64화 (64/575)

[64] 디 임팩트 3권 14화

도현의 생각을 읽었는지 한석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돌탑들이 많습니까?”

“별로 안 돼. 가 보면 알게 될 거야.”

“어느 돌탑인지 기억은 안 나시고요?”

“2년 전에 다녀온 데야. 내가 그것까지는 기억 못 하지. 한데, 돌탑이 중요한 건가, 아니면 그 장소가 중요한 건가?”

쓱 물어 오는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알려 드리면 제가 드린 이천만 원을 다시 주시겠습니까?”

“됐어. 나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자넨 지금 그 돌탑을 찾고 싶어서 장소를 물어본 거야. 아닌가?”

“아닙니다.”

한석호가 도현에게 판 사진 액자를 쳐다봤다. 며칠 전 도현이 돌아간 이후 곰곰이 사진을 들여다봤지만, 딱히 짚이는 게 없었다.

“그만 가겠네.”

한석호는 차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님.”

일어서는 한석호에게 도현이 말했다.

“여전히 대련은 안 되는 겁니까?”

“자네 나이에 나는 피똥 싸면서 어디에 굴러다닐지도 모르는 무예 한 조각과 내공수련법을 구하려고 죽도록 고생을 했네.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기고.”

한석호는 도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와 정 대련을 하고 싶다면 그것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게. 존중해 주란 뜻이야. 몇 마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가치를 지불하라는 것은…….”

“돈!”

한석호가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며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내가 들인 피땀 어린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거야.”

수업을 받으면 수강비를 낸다. 무술 도장도 회비를 받고. 도현은 한석호의 요구가 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런 측면은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그럼 얼마를 드리면 저와 대련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도현은 자신의 검기가 실린 검을 부수어 버린 한석호가 자신보다 내공도 우위이고 검술에 대한 깨달음도 한 수 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꾸준히 대련을 하다 보면 자신의 검이 더욱 다듬어질 것이다.

“천만 원.”

“한 번에 말입니까?”

도현이 살짝 놀라며 물었다.

“물론이지. 자네 같은 고수와 검을 겨루는 게 쉬운 줄 아나?”

열 번만 하면 일억이었다.

물론 대련을 얼마나 자주 할지는 도현의 성취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중에는 돈이 부족해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내가 시간이 날 때 해 준다는 거지, 무조건 해 준다는 게 아니야.”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잘 있게. 차 잘 마셨네.”

한석호는 도장을 나갔고 홍영과 용주는 그를 배웅하고 돌아온 도현에게 사진의 위치를 물었다.

“네팔? 저기 히말라야 네팔?”

용주의 물음에 도현이 들고 있던 지도를 펴 보였다.

“응, 그 네팔이 맞아. 네팔 수도에서 포카라 쪽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산간 마을이야.”

도현은 지도를 짚으며 관장실에서 한석호에게 들었던 마을에 대해 홍영과 용주에게 설명해 주었다.

“산간 마을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겠어요. 하지만 약간 걱정이 돼요.”

홍영이 도현이 들고 있는 지도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뭐가요?”

용주가 물었다.

“전 내심 사람들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 있었으면 했거든요. 한데, 사람들이 사는 마을 뒤편의 돌탑이라면…… 누구든 돌탑에 손을 댈 수가 있잖아요. 그것도 2년 전의 돌탑이면.”

“그것도 그러네요.”

용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도현아, 한시라도 빨리 가 봐야겠다.”

“그래야지.”

“누구랑 갈 거예요?”

홍영의 물음에 도현은 지도를 접으며 간단히 대꾸했다.

“혼자요.”

“무슨 소리야, 인마. 같이 가야지.”

용주가 펄쩍 뛰었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돌탑에서 스톤 하나 찾아오는 일이야. 마을에 도착해서 확인만 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굳이 같이 갈 필요 없잖아.”

“홍영 씨 말 못 들었어? 그 마을 사람이 돌에 손을 댔으면 어떡해? 물어물어 찾아와야 할 것 아니야. 그런 일에는 여기 홍영 씨처럼 천사 같은 사람이 나서는 게 훨씬 수월하고 협력도 얻기 쉬울 거라고. 안 그래요, 홍영 씨?”

“그럼요. 그리고 찾는 데는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더 낫지 않겠어요?”

홍영이 용주의 말을 냉큼 받아 말했다.

“홍영 씨랑 둘이 가. 여기 도장은 내가 지키고 있을게.”

며칠 뒤 홍영과 도현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가이드를 고용해 한석호가 알려 준 산간 마을 트나슈리를 찾아갔다.

30여 가구가 드문드문 비탈진 산기슭에 터를 잡고 사는 그곳엔 사람 키만 한 돌탑이 수십여 개가 존재했는데, 커다란 돌을 규모 있게 올린 돌탑들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작은 돌과 큰 돌들이 서로 빈곳을 메워 가며 쌓인 돌탑들이었다.

마을 뒤편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돌탑 사이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은 순박한 아이들이 꺄르르 웃고 떠들며 장난치는 모습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몹시 평화로워 보였다.

“사 오길 잘한 것 같아요.”

가만히 지켜보던 홍영은 배낭 안에서 달콤한 사탕과 초콜릿을 한가득 꺼냈다.

“얘들아!”

가이드에게 간단히 배운 네팔어로 홍영은 소리치며 손안의 사탕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모두 달려와 그녀 주변에 몰려들었다.

도현은 흐뭇한 시선으로 홍영이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돌탑들을 조사해 갔다.

사진 속의 돌탑 상층부 위주로 조사를 하면서도 혹시 몰라 위아래 전체를 다시 한 번 꼼꼼히 훑어갔다.

“아이들에게 단걸 너무 많이 주면 안 됩니다.”

도현이 돌탑을 살피면서 장난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과 뛰놀고 오느라 빨갛게 상기된 얼굴의 홍영이 웃으며 답했다.

“좋아할 때 실컷 먹어야 해요. 근데 아직 못 찾았죠?”

“네, 어째 불안한데요?”

도현이 조사를 마친 돌탑을 지나 또 다른 돌탑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불안한 표정이 아닌데요?”

홍영이 도현이 스치고 간 자리를 다시 훑으며 물었다.

“편안해서 그래요.”

“뭐가요?”

“그냥 이곳 분위기가요. 불편해 보이는 산간 마을이지만, 사람들 인상도 다들 좋고, 아이들도 보기 좋고, 저쪽 숲에서 바람을 타고 오는 숲 냄새도 좋고요.”

홍영은 도현의 말에 공감했다. 그녀 역시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스톤까지 찾아내면 금상첨화겠어요.”

“그러게요.”

빙그레 웃으며 도현은 휴대폰에 담아 온 사진을 주변의 탑들과 비교해 보았다.

다들 똑같은 모양새로 사진으로 구분 짓기는 애매했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그는 돌탑에 집중했고, 얼마 뒤 마지막 돌탑까지 다 조사를 마쳤다.

“음, 마을의 분위기는 마음에 드는데, 스톤은 없네요.”

실망감이 묻어나는 도현의 말에 홍영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앞머리를 뒤로 한번 쓸어 넘겼다.

“다시 한 번 살펴요. 주변 바닥도.”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수십 개의 돌탑과 그 주변을 샅샅이 훑어갔다.

시간이 제법 흘렀고 역시 눈에 들어오는 마을 뒤편의 돌탑 속에는 찾는 스톤이 없었다.

도현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여기 돌탑 더 없니?”

도현이 급히 배운 네팔어로 떠듬떠듬 물었다.

가이드가 바로 옆에 있다면 그를 시켰겠지만, 그는 저 산 밑에 차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돌탑.”

도현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 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돌탑요? 독수리 앉는 돌탑?”

홍영이 준 막대 사탕을 녹여 먹던 소녀는 작은 손가락으로 도현이 보여 준 휴대폰 속 사진의 독수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녀의 행동에 도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독수리. 돌탑.”

“따라오세요.”

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는 다람쥐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막 뛰기 시작했다.

“우리 말뜻을 정확히 이해한 거겠죠?”

홍영이 뛰는 아이를 쫓으며 도현을 쳐다봤다. 아이는 지금 마을 뒤편의 비스듬한 비탈진 길을 뛰어서 산등성이를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해한 것 같았어요.”

도현은 지친 기색도 없이 달려가는 소녀를 보며 눈을 빛냈다. 10여 분을 넘게 뛴 소녀는 산등성이를 막 넘어서자 걸음을 멈추었다.

“하아, 하아, 저기요. 저게 독수리 돌탑이에요.”

도현의 시선이 소녀의 손끝을 따라갔다.

마을 뒤편에 만들어진 돌탑과 똑같은 모양의 탑 한 개가 산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산등성이 한쪽에 우뚝 서 있었다.

다른 점은 그 돌탑 위에 무게만도 수 킬로그램은 나가 보이는 커다란 독수리가 날개를 접은 채 도도하게 앉아 있다는 것이다.

도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찾고 있는 돌탑이 저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홍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 미소를 띠며 그들 사이에 서 있는 소녀를 내려다봤다.

“홍영 씨, 사탕 남은 거 있으면 아이 다 주세요.”

“많이 주지 말라면서요.”

“어떻게 안 줄 수가 있어요.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데요, 하하하!”

도현은 크게 웃으며 소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헤헤.”

소녀는 귀엽게 웃으며 홍영이 챙겨 주는 사탕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친구들이 있는 마을을 향해 지친 기색도 없이 막 달려갔다.

소녀가 넘어지진 않는지 잠시 지켜보던 도현과 홍영은 몸을 돌려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돌탑을 응시했다.

탑을 찾긴 한 것 같은데, 스톤이 아직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가요, 홍영 씨.”

“네.”

그들은 약간 경사진 암벽길을 조심해서 내려갔다.

독수리는 인간들이 다가오자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넓은 날개를 펴며 허공으로 비상했다. 그러곤 도현과 홍영의 머리 위를 크게 선회하다가 먹이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났다.

독수리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도현은 누가 만들었을지 모를 오래된 돌탑 앞에 섰다.

손만 뻗으면 닿을 위치에 그토록 찾고자 했던 스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다가 실물로 보니 일전에 본 조 박사의 스톤과 더욱 흡사했다.

“홍영 씨, 찾은 것 같아요.”

“돌탑을 망가트리지 않고 꺼낼 수 있겠어요?”

왠지 신성한 느낌이 묻어나는 독수리 돌탑이었다. 이왕이면 손상시키고 싶지 않은 게 그들의 심정이었다.

“노력해 봐야죠.”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스톤을 대체할 만한 크기의 작은 돌을 찾아내 홍영에게 건넸다.

“내가 빼낼 때 빠르게 밀어 넣으세요.”

“알았어요.”

도현과 홍영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람 키만 한 돌탑 앞에 섰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도현은 한 손으로 위의 돌을 받치며 다른 한 손으로 문양이 새겨진 스톤을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스톤에서 눈부신 섬광이 나며 그 빛이 도현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도현이 반사적으로 스톤을 힘주어 빼냈고, 옆에 있던 홍영이 재빨리 위에 돌이 주저앉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빈 구멍에 돌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살짝 흔들렸던 탑은 안정이 되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놀란 홍영은 숨을 몇 번 돌린 뒤, 조금 전 스톤에서 나온 빛이 도현의 손을 통해 흡수된 일을 물었다.

“모르겠어요, 나도. 예상한 일이 아니라서. 그저 손을 스톤에 댔을 뿐인데.”

도현은 손에 들린 스톤을 내려다봤다. 테니스공만 한 스톤은 겉이 매끄럽고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상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스톤은 이상 없어 보이는데.’

스톤을 살피던 도현의 시선이 왼팔로 향했다.

‘설마?’

그는 소매를 올려봤다.

사라졌던 타투가 예전 위치에 다시 생겨나 있었다.

곁에서 도현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홍영의 눈이 커졌다.

“도현 씨, 혹시 그거?”

“맞아요. 이게 내가 말했던 타투예요.”

“그런데 어떻게 다시?”

“아무래도 조금 전 스톤에서 나온 빛이 타투를 되살린 것 같아요.”

말을 하는 도현의 가슴은 흥분으로 폭발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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