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디 임팩트 3권 15화
영주와 사제
네팔에서 돌아온 도현과 홍영은 용주와 함께 바로 가평으로 향했다.
이미 연락을 받고 흰돌이가 지키고 있는 마당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조 박사는 도현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진짜군. 다시 타투가 생겼어.”
검은색 타투는 옅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타투가 완전한 황금빛을 띠게 되면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을 도현이나 조 박사는 전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스톤에서 흘러나온 빛이 흡수됐다는 말이지? 그 직후 사라졌던 타투가 다시 나타났고?”
“네, 박사님.”
도현의 팔을 붙잡고 마당에 서 있던 조 박사는 용주가 들고 있는 가방을 쳐다봤다.
“스톤은 가지고 왔어?”
“그럼요, 흐흐.”
용주는 친구의 팔에 타투가 다시 생긴 일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가평으로 오는 내내 신이 나 있었다.
조 박사는 조카의 손에서 스톤을 받아 자세히 살폈다. 외형상으로는 파괴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삼촌, 휴대폰 배터리 충전하듯이 스톤이 도현이의 타투를 충전시킨 거 아니에요?”
조 박사는 조카의 단순한 말이 핵심을 찌른다고 생각했다. 믿기지 않지만 도현의 몸에 생긴 타투는 그 자체로 휴대용 차원 이동 장치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스톤을 구해 오느라 수고했네. 연구실로 내려가세. 실험을 바로 해 봐야겠어.”
조 박사는 스톤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는 빠른 걸음으로 지하 연구실로 향했다.
“바로 이곳이군요. 도현 씨가 타투를 얻은 곳이.”
조 박사의 지하 연구실에 처음 발을 디딘 홍영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복잡해 보이는 기계들과 여러 대의 모니터들을 둘러봤다.
인류에 공개되면 큰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사적 실험이 몇 달 전 이곳에서 벌어졌다는 게 그녀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것도 대상자가 도현이라니.
네팔에서 도현과 오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하나는 조 박사가 차원 이동 장치를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에 큰 혼란이 오는 건 아닌지에 대한 대화였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인류의 멸망을 재촉하는 기괴한 박사의 역할에 조 박사가 딱 자리를 차지하면, 스톤을 찾아온 그들도 악역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된 셈이다.
그녀는 그렇게까지 되는 걸 바라지는 않았다.
“차원 이동은 도현 씨를 끝으로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네요.”
스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실험을 하는 조 박사를 뒤에서 지켜보던 홍영이 작게 속삭였다.
“홍영 씨도 가만 보면 은근히 무서워요.”
네팔을 다녀오며 홍영과 한결 더 가까워진 도현이 웃음기 밴 목소리로 답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예요.”
“나는 괜찮아요?”
“한 명쯤은 괜찮지 않을까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도현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는 어떤 믿음이 가득했다.
스톤의 크기와 무게를 재고 몇 가지 실험을 마친 조 박사는 마지막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차원 이동 장치의 천장 부분에 스톤을 넣었다.
“자아, 다 됐다. 이제 가동만 하면 돼.”
조 박사는 긴장된 눈빛으로 전원 스위치 앞에 섰다.
지난번 테스트 때 스톤이 망가지는 대형 사고가 났었다. 이번에 네팔에서 도현이 가지고 온 스톤은 이상이 없기를 바랐다.
전원 스위치를 올리기 직전, 그는 고개를 돌려 도현을 응시했다. 그가 네팔에서 스톤으로부터 흡수했다는 빛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해 보면 알겠지.’
그는 도현과 홍영, 용주가 지켜보는 앞에서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우우웅우우웅.
주변의 모든 전기를 빨아들이는 듯 지하 연구실 천장 등이 깜빡거렸고, 차원 이동 장치의 내부 불빛이 번쩍거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스톤이 들어간 차원 이동 장치 천장 부근에서 큰 폭발음이 나며 주변으로 삽시간에 불길이 확 솟구쳤다.
“허억!”
조 박사가 기겁을 하며 전원을 차단했고, 도현과 용주는 깜짝 놀라며 급히 소화기를 찾아서 그 불길을 잡아 갔다.
“삼촌, 이리 나오세요!”
“조심해서 뿌려! 기계 망가지니까!”
“어차피 놔두면 다 불타 없어질 텐데요. 집까지 태울 수는 없잖아요!”
“박사님, 저랑 나가요.”
불 끄는 데 방해만 되는 조 박사를 홍영이 외부로 데리고 나갔고, 도현과 용주는 연기에 콜록거리며 소화기 분말을 사정없이 뿌렸다.
빠르게 진화한 덕택에 차원 이동 장치만 반쯤 타 버렸고, 그 외의 지하 연구실 내부는 거의 피해가 없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조 박사는 그때보다 훨씬 많이 망가진 차원 이동 장치를 보며 넋을 놓고 있다가 장갑 낀 손으로 폭발음이 맨 처음 났던 차원 이동 장치의 천장 부근을 뒤적였다.
스톤이 두 조각이 나 있었다.
“허허.”
허탈한 감정을 토해 내며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는 그의 모습에 뒤에서 지켜보던 용주가 다가와 위로를 했다.
“삼촌, 힘내세요. 다시 연구해서 차원 이동 장치를 완벽히 만들면 되죠.”
“이건 기기 문제가 아니다.”
“네? 아니라고요?”
조 박사는 의자에서 일어나 뒤편에 서 있는 도현에게 다가갔다.
“이 스톤 말일세.”
“네, 박사님.”
도현은 박사의 손에 들린 조각난 스톤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매끄럽던 표면은 현무암처럼 구멍이 숭숭 났고, 문양은 크게 훼손돼 알아보기 어려웠다.
일전에 조 박사가 실험 도중 망가졌다고 한탄을 하며 보여 준 그때 그 망가진 스톤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네팔에서 자네에게 모든 기운을 빼앗긴 것 같아. 그 타투에 모든 에너지를 빼앗긴 것이지.”
“그렇습니까?”
도현은 옆에 서 있는 홍영을 한번 쳐다보며, 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사실 실험하기 전에 좀 불안했어. 그런데 이번 실험을 통해 모든 게 명확해진 것 같아. 위로 올라가지.”
조 박사는 들고 있던 망가진 스톤을 책상 위에 툭 던져 놓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타투가 어떻게 자네에게 생성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네. 하지만 몇 달 전 자네 팔에 그 타투가 생긴 순간, 스톤의 기운이 그 타투에 같이 흡수된 거야.”
조 박사는 물을 마시며 말을 계속했다.
“그 영향으로 자네는 타투를 이용해 여러 번 게이트를 열고 닫았던 걸세. 이계에서 시간도 보내고.”
“하지만 삼촌, 도현이 팔에 타투가 생겼을 때는 스톤이 멀쩡했잖아요.”
“겉만 그랬던 거야, 오늘 가져왔던 네팔의 그 스톤처럼. 그런 상태에서 테스트를 했으니, 기기가 폭발을 한 것이고. 전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두 개의 스톤은 이미 도현이 팔에 생성된 타투 속에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버렸어.”
도현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두 개의 스톤이 결국은 자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아닐세. 자네 잘못이 아니지. 몇 달 전 실험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었던 거니까, 따지고 보면 내가 원인이지.”
조 박사는 힘든 기색으로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박사님, 도현 씨가 타투를 이용해 이계를 몇 번이나 오갈 수 있을까요?”
도현도 궁금했지만 분위기상 묻지 못하는 것을 홍영이 대신 물었다.
“하아, 글쎄.”
조 박사는 소파 팔걸이에 손가락을 툭툭 치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깨어났다.
“단순 비교하기가 애매하지만, 굳이 그렇게라도 한다면 네팔의 스톤은 지난번 내가 아프리카에서 구해 온 스톤과 비교해 크기가 반 정도밖에 안 됐네. 스톤이 보유한 에너지의 총량이 크기와 비례한다면 그에 맞춰 예상해 볼 수도 있는데, 그건 너무 단순하지 않나?”
말을 하면서도 조 박사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그 부분은 머리가 아닌 경험으로 파악해야 할 숙제 같아.”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부터 시작된 비는 밤늦게까지 계속 내리며 보도블록에 탁탁 부딪히는 소리를 연신 만들어 냈다.
모자 달린 비옷을 입고 반대편 건물을 주시하던 서지철은 시계를 봤다.
밤 12시 5분.
한 시간 정도 전에 용주라는 녀석이 도장에서 퇴근을 했고, 남은 사람은 도현과 홍영이라는 아가씨 단둘이었다.
조폭 녀석들과 시비가 붙어 기회를 놓쳤던 그는 한동안 이 근처에 오지 않고 며칠을 허비하다가 다시 왔었다.
하지만 그때는 목표물인 도현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도장을 밤늦게까지 용주라는 녀석이 혼자 지키고 있었다.
같이 사는 여자도 없는 걸 보면 함께 여행이라도 간 것 같았다.
그렇게 기다리며 또 흘러간 시간이 며칠.
드디어 어제 모습을 드러낸 도현이 그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 끝내자.’
서지철은 빗속에서 호검술 도장이 있는 상가 건물을 노려보았다.
우우우웅.
그는 휴대전화를 받았다.
“네.”
[전음]-나요, 최태진. 어떻게 됐소?
“목표물이 어제야 돼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전음]-그럼 어제 손을 봤으면 되었지 않소?
“여자와 붙어 다녀서. 여자도 상관없다면 지금이라도 작업이 가능합니다.”
[전음]-안 되지, 그 여자는 건들면.
“그럼 전화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나도 짜증 나니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붙어 다녀서 서지철은 기회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대낮에 도장을 습격할 수도 없었고.
전화를 끊은 그는 잇새로 흘러나오는 욕을 억지로 참고 넘겼다.
오늘도 목표물이 여자와 함께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비옷 속에 감춰 둔 곤봉을 들고 쫓아가 열흘 넘은 이 기다림을 마음껏 해소하고 싶었지만, 그는 프로다. 프로는 의뢰인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줘야 했다.
그는 도현보다 같이 다니는 여자를 더 욕하며 재빨리 차 뒤로 몸을 감췄다.
“도현 씨, 왜 그래요?”
홍영은 몸을 반쯤 틀어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도현에게 물었다.
조금 전 서지철이 있던 장소를 훑어보던 도현은 다시 홍영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누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도 없네요.”
“그래요?”
홍영도 뒤늦게 고개를 한번 돌려 길가에 세워진 차량 있는 데를 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저기 차 뒤에 숨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가 볼까요?”
도현이 그쪽으로 가려는 시늉을 하자 홍영이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장난이에요.”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멀리 사라지자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서지철이 쓰윽 일어났다.
검술 도장을 운영하는 녀석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 짜증 나는 의뢰야.”
왕석이 부하들과 함께 집에서 살해당한 사건은 한동안 항저우 지역 언론과 사람들에게 큰 화젯거리였다.
악명을 떨치던 밤거리 두목 중 한 명인 왕석에게 원한을 크게 진 사람이 거액을 들여 청부 살인업자들을 대거 동원했다는 설도 있고, 그의 범죄를 비호해 주고 있던 당 고위 간부가 부패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제거했다는 이야기도 떠돌아다녔다.
왕석의 집을 감시하던 공안까지 죽어서 관심이 깊었던 이 사건은, 그러나 집을 습격한 범인의 단서 하나 없어 흐지부지돼 버렸다. 죽은 왕석과 관련이 깊다고 거론되던 당 고위 간부와 몇몇 인물들이 서둘러 사건을 덮어 버린 것이다.
피붙이 하나 없이 홀로 잘 먹고 잘 살던 왕석의 재산은 소리 소문 없이 눈치 빠른 자들이 차지했고, 그중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진석산 산자락에 자리한 고급 별장은 홍콩의 부동산 개발 전문 회사인 베스트엠의 소유가 되었다.
별장 안에서는 쉴 새 없이 부수고 허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베스트엠에 고용된 인부들이 별장 안의 시설들을 모두 다 철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성하는 안에 가득한 먼지를 손으로 휘저었다.
“도대체 사부님은 이곳에서 뭘 찾으시려는 걸까요?”
“글쎄다. 사부님만이 아시겠지.”
다섯째 사형인 노일문의 대답에 주성하는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사부님이 관심을 두실 정도면 놀라운 게 숨어 있지 않을까요?”
노일문은 바닥의 목재를 다 들어내고 있는 인부들의 작업을 보면서 팔짱을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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