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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66화 (66/575)

[66] 디 임팩트 3권 16화

사부인 태선군은 왕석의 별장 내부 어딘가에 지하로 통하는 암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찾아내라고 했다.

인부들이 별장 내부의 시설을 철거하고 그 자리의 바닥들을 다 들어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도 막내 사제의 말처럼 사부의 의중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부의 지시라며 명령을 내리고 있는 둘째 사형인 섭상은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얘기를 시원하게 안 해 주니 일을 하면서도 답답했다.

“조만간 알 수 있겠지, 사부님이 찾으시는 것을.”

“사형, 지하 암도가 나오면 저희가 먼저 자세히 조사해 볼까요? 저희보고 그곳을 조사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없었잖습니까?”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주성하에게 노일문은 충고하듯 말했다.

“쓸데없는 관심으로 사부님께 노여움받을 일을 만들지 마라.”

“알겠습니다, 사형.”

입맛을 다시며 대답하던 주성하는 별장 밖으로 나가는 노일문을 따라갔다.

“그런데 사형, 무허 사숙 정말 끈질기지 않습니까? 셋째 사형과 넷째 사형에게 부상을 입히고 추적을 뿌리치지 않았습니까?”

“사부님이 직접 움직이셨으니, 무허 사숙도 더 이상의 도주는 어려울 거다.”

“듣기론 대사형께서 무허 사숙이 도주하는 데 길을 내주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노일문이 걸음을 멈추며 뒤돌아섰다.

“누가 그런 말을 해?”

“구 사저가요. 그것 때문에 사부님께서 대사형을 엄하게 꾸짖었답니다. 이러다가 정말 둘째 사형이 다음 대 문주가 되는 거 아닐까요?”

“문주 자리는 막내인 네가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노일문의 사나운 눈빛에 주성하는 피식 웃었다.

“그런가요?”

‘이걸 정말 다시 입게 될 줄이야.’

도현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암갈색 가죽 갑옷, 정강이까지 오는 긴 가죽 신발, 허리띠에 매달린 장검, 손바닥 길이만 한 단검까지.

모두 이계에서 용병으로 활약하던 때의 그 차림이었다.

은화가 몇 개 든 돈주머니까지 챙긴 그는 관장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홍영과 용주가 걱정 반, 기대 반의 얼굴로 도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잘 다녀와라. 여긴 걱정하지 말고. 5층 호검술 도장은 홍영 씨와 잘 상의해서 준비할게.”

“고맙다, 용주야.”

“몸조심해요. 다치지 말고요.”

홍영은 긴말을 하지 않았다.

“조심할게요.”

도현은 홍영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가면 한동안 못 본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녀와 같이 사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가끔 손을 맞잡고 도장에서 집으로 갈 때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진 듯해서 행복했다.

그 행복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이계에서 죽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힘도 길러야 한다. 태선군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와 그녀는 완벽히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되도록 오래 머물다 올 거예요.”

타투를 이용해 이계를 몇 번이나 오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도현은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만 했다.

홍영과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마지막으로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을 쳐다봤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금색 타투의 테두리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빙글 돌리자 허공이 갈라지며 붉은빛으로 일렁이는 차원 게이트가 생성됐다.

‘그곳이 나오겠지?’

그는 젊은 영주 컬라드의 성에서 나와 호수를 따라 말을 몰다가 숲 속에서 마지막 게이트를 열었었다.

머릿속으로 달빛이 비치는 숲을 떠올린 그는 홍영과 용주에게 시선을 다시 한 번 준 뒤, 길게 심호흡을 하며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도현의 몸을 삼킨 게이트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달빛이 내려앉는 숲 속의 나무가 보였다. 그가 탔던 말도 보였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그가 떠나던 그날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이곳의 시간은 아직 그대로야.’

도현은 허공에 발이 약간 뜬 상태에서 멈춰 있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를 기다렸다.

눈동자가 자유롭게 움직였고, 손끝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왔다. 피부에 공기가 훅 하고 부딪히는 느낌이 나는 순간, 멈췄던 세상의 시간이 마침내 정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됐다!’

도현은 짧지만 길게 느껴진 기다림에서 벗어나며 숲 속에 뚝 하고 떨어졌다.

무릎을 굽히며 충격을 최소화한 그가 허리를 펼 때, 그의 등 뒤에서 별안간 날아온 화살 한 발이 말의 목에 박혔다.

히히힝!

길게 한번 울부짖은 말은 붉은 피를 뿌리며 힘없이 고꾸라졌다.

‘누가?’

얼굴이 굳어진 도현은 재빨리 검을 뽑으며 근처 나무 뒤로 몸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그는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다.

믿을 수 없게도 땅이 진흙탕처럼 변하더니 그의 발목을 휘감은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도현은 어둠뿐인 숲 사방을 둘러보며 급히 내공을 발에 집중했다. 근력만으로는 어느새 시멘트처럼 단단히 굳어진 땅에서 그의 발을 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경 1미터 정도 되는 땅들이 도현이 내공을 실어 발에 힘을 줄 때마다 들썩였다.

엄청난 힘이었지만 그의 발을 집어삼킨 땅은 그를 결코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끝까지 버티며 도현을 괴롭혔다.

얼굴과 목에 힘줄이 툭툭 튀어나오고 악다문 입에 이를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의 발을 짓누르는 땅의 무게가 거대해 두 발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발을 구성하는 모든 뼈들이 이대로 가다가는 잘게 조각나 버릴 것 같은 공포감도 엄습했다.

‘크으,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들고 있던 검에 정신을 집중해 내공을 실었다.

“이얏!”

옅은 검기가 솟아나자 그는 지체 않고 주변의 대지를 향해 휘둘렀다.

도현의 발목을 잡고 있던 땅들이 뒤집어지며 사방으로 흙이 비산했다. 도현은 그의 발을 내리누르는 압력이 약해지자 발에 내공을 다시 집중해 힘껏 몸을 띄웠다.

‘벗어났다!’

발이 자유로워진 도현이 허공에서 기뻐할 때 맞은편 어둠 속에서 두 발의 화살이 기습적으로 날아왔다.

땅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은 도현으로서는 자유롭지 못한 허공에서 무방비로 화살에 노출된 셈이었다.

간신히 화살 한 발은 막아 냈지만, 어둠을 은폐 삼아 다가온 또 다른 화살은 그의 가죽 갑옷을 그대로 뚫고 들어와 그의 옆구리에 깊숙이 박혔다.

질긴 가죽 갑옷이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종이처럼 뚫린 걸 보면 화살촉이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크윽!”

쿠웅.

도현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화살이 꽂힌 옆구리를 내려다봤다. 붉은 피가 화살대를 타고 내려와 비처럼 숲의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굉장한 녀석이군. 대지의 힘을 버텨 내고 벗어나다니.”

도현의 시선이 말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숲의 공터로 후드가 달린 망토를 입은 음산하게 생긴 중년인과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두 명이 나타났다.

땅을 움직인 괴이한 수법은 꼭 이야기 속 마법사들의 마법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수법을 발휘한 자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지팡이 든 중년인 같았다.

싸움이 벌어지면 반드시 먼저 손을 봐야 할 자다.

도현은 지팡이를 든 중년인 좌우에서 활을 겨누며 다가오는 사내들도 눈여겨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공격한 게 당신들입니까?”

“상황 보면 모르겠나?”

중년인이 적당한 거리에서 발을 멈추며 대꾸했다.

“왜?”

도현이 검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어베인, 짐브리오, 로나, 그 세 녀석들과 너는 한패가 아니냐?”

도현은 생각지도 않은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빌모르에서 자신과 이별주를 마시다가 밤에 급히 떠난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커딜과 이안, 두 영주가 보낸 추적대가 있다고 했었어. 그럼 이들은?’

도현은 중년인에게 말했다.

“내가 그 세 사람과 한패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입니까?”

“수백 명의 병사들을 독살하는 데 가담한 죄를 함께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독한 녀석들. 나도 못 하는 대담한 짓을 벌이다니.”

“내가 벌인 일이 아닙니다.”

“부인해도 소용없다. 빌모르에서 그들과 같이 다닌 네놈의 행적은 다 드러났으니까. 조용히 숨어 지낼 것이지 헬스콧에서 토벌대로 활약을 하고 있다니.”

도현은 이들이 자신을 타깃으로 삼아 왔다는 게 놀랍고도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분명히 아니라고 했습니다.”

“시끄럽다!”

중년인은 도현에게 소리를 친 뒤에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하나 묻자. 조금 전까지 분명히 네놈은 컬라드 성에서 받아 온 금화 상자를 들고 있었는데, 지금 그것은 어디에 있지?”

“그건 왜 묻습니까?”

“죽을 놈에게 무슨 재물이 필요하겠나?”

그의 말에 양쪽에서 활을 겨누고 있던 사내들이 음침하게 웃었다. 그들의 눈에는 탐욕이 어렸다.

“금화를 내놓으면 편안한 죽음을 선사하겠다. 아니면 고통스럽게 죽여 주지.”

중년인은 말을 하며 손을 앞으로 쫙 뻗었다.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며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도현은 수상한 그의 행동에 즉시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가 있던 자리가 진흙탕처럼 변해 있었다. 가만히 있었다면 조금 전처럼 그를 곤경에 빠트렸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을 왜 공격했는지 알아낼 건 다 알아낸 도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사내들이 날린 화살 두 발을 눈부신 빠르기의 검으로 단번에 잘라 내 버렸다.

허공에서 대처를 못 했던 조금 전 상황과 지금은 달랐다. 비록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옆구리에 박힌 화살촉이 그의 몸속을 휘저으며 고통을 주고는 있었지만, 저들을 상대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받은 대로 돌려주지.”

검 손잡이에 힘을 준 도현은 제일 위험해 보이는 지팡이를 든 중년인을 향해 공간을 줄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접근해 일 검을 날렸다.

달빛을 받아 번뜩이는 도현의 검이 중년인의 머리 위로 벼락처럼 떨어졌다. 좌우에 서 있던 활을 든 사내들이 미처 반응을 보일 수 없는 빠름이었다.

쉬이이익!

도현은 냉정한 마음으로 검에 힘을 주어 밑으로 내리그었다. 기회가 있을 때 이자를 죽이지 않으면 잠시 후엔 그가 당할 수도 있다. 땅의 속박은 그만큼 도현에게는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흙!’

검이 가르고 지나는 감촉이 이상했던 도현은 중년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흙무더기만 있자 가슴이 철렁했다.

푸욱!

도현이 딛고 서 있던 부분이 아래로 푹 꺼지며 밀가루 반죽처럼 변한 땅들이 이번에는 그의 정강이 부근까지 순식간에 휘감아 버렸다.

“흐흐흐.”

중년인의 음침한 웃음소리가 도현의 왼편 나무 뒤에서 들렸다.

“멍청한 놈아. 내가 너 같은 놈을 상대하면서 미련하게 멍하니 서 있을 줄 알았느냐?”

걸어 나오는 그의 안색은 심하게 창백했다. 대지의 힘을 연속으로 사용해 힘이 거의 소진된 것이다.

도현은 심각해진 얼굴로 검기를 만들어 주변의 땅에 휘둘렀다. 하지만 몇 미터 정도 되는 넓은 반경의 땅들이 만들어 내는 큰 힘은 도현의 검으로도 다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앞서보다 몇 배나 더 큰 땅의 힘이었다.

도현은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전면의 중년인을 노려봤다.

비틀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바람이라도 불면 넘어질 것같이 위태로웠다.

“어서, 저놈을 죽여라.”

“주인님, 금화 상자는 어찌할까요?”

활을 든 사내들이 물었다.

“죽여 놓고 찾아. 저기에서 나오면 더 이상 저놈을 막을 방도가 없다.”

“네.”

그들은 땅에 박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도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화살을 쏘아 댔다.

서걱! 서걱!

모든 감각을 다 열어 놓고 눈을 반개한 채 지근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도현의 검이 잘라 내 버렸다.

‘후우, 후우. 할 수 있어.’

화살이 계속 날아왔다.

등으로도 날아오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의 정수리를 노리고 화살을 날리기도 했다.

도현은 그 모든 화살을 놓치지 않고 막아 내고, 튕겨 내고, 잘라 내 버렸다.

“주, 주인님, 화살이 다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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