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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67화 (67/575)

[67] 디 임팩트 3권 17화

수하들의 말에 중년인의 표정이 독해졌다. 지금 펼친 수법은 오래가지 못한다. 곧 땅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힘이 떨어진 자신은 저자를 막을 수가 없다.

“불을 질러라!”

“네? 하지만 불이 나면 영주의 성에서 병사들이 나올 텐데요.”

“이 멍청한 녀석들아! 시키는 대로 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둘이 돌아다니며 도현의 주변에 있는 나무들에 불을 지르자 뿌연 연기들이 안개처럼 도현의 주변을 감쌌다. 아마 잠시 후면 나무들이 활활 불타오르며 도현을 태워 죽일 것이다.

“주인님, 금화는.”

“며칠 뒤 다시 오면 돼.”

수하들을 다독인 중년인은 자욱한 연기에 몇 번 콜록이다 불길에 점점 휩싸여 가는 도현을 보며 소리쳤다.

“뼈까지 타올라라, 이 망할 놈아! 하하하하!”

“당신! 지금이라도 날 꺼내 주면 살려 주겠다!”

연기와 불길 속에 가려진 도현의 고함 소리에 중년인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말고 죽어라. 그래야 다시 찾아와서 네놈이 있는 주변을 수색할 수 있으니 말이야.”

“주인님, 그런데 금화 상자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어딘가에는 있겠지. 가자.”

도현은 연기와 불길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중년인과 그의 수하들을 노려보며 분노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가만두지 않겠다!”

연기가 심해졌고, 불에 탄 나뭇가지들이 도현의 바로 근처로 떨어지며 불똥을 만들어 냈다.

‘큰일이다. 빨리 나가지 않으면 정말 여기서 죽을 수 있겠어.’

불타오르는 나무들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제법 떨어져 있었는데도 살이 익을 것 같았고,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코와 입속으로 들어와 숨을 쉬는 걸 방해했다.

불에 타 죽기 전에 연기에 먼저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도현은 주먹으로 땅을 후려쳤다. 정강이까지 삼킨 땅은 여전히 꿈쩍도 안 했다.

허탈하고 분했다.

홍영이 잘 다녀오라며 말없이 보냈던 따뜻한 시선이 떠올랐고, 웃음 많고 농담을 잘하는 용주의 얼굴도 떠올랐다. 태선군의 그 오만한 얼굴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안 돼.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난 해야 할 일이 있어.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살아야 돼!’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으아아아!”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절실함과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난 끝없는 분노는 도현의 온몸을 불길보다 더 뜨겁게 달궜고, 그 순간 도현의 단전에 자리 잡고 있던 내공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았고, 두 눈은 피처럼 붉어졌다. 수려했던 얼굴은 지옥의 사자처럼 무섭게 변했고, 검을 잡은 손은 그 어느 때보다 강인한 힘이 넘쳐 나 보였다.

“산다. 그리고 죽인다!”

평상시 도현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어두운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콰아아앙!

꿈쩍도 안 했던 땅들을 뭉개며 도현이 위로 솟구쳤다.

불타오르는 나뭇가지들을 수중의 검으로 여러 조각 내 버린 그는 공중제비를 돌며 땅에 착지했다.

연기와 불길이 옆으로 밀려났다.

“죽인다.”

고개를 번쩍 든 그는 붉은 눈으로 중년인이 사라져 간 방향을 직시했다.

파아앙!

불길을 헤치며 도현은 엄청난 속도로 중년인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숲에 묶어 놨던 말을 탄 중년인은 뒤를 돌아다봤다. 불길이 점점 거세져 숲 전체로 불이 퍼져 가고 있었다. 저 정도 큰 불길이면 멀리 언덕 위의 영주의 성에서 진상을 조사하고자 사람을 보낼 것이다.

“그놈도 죽었겠지.”

비릿하게 웃던 그는 어베인이나 짐브리오, 로나를 추적하지 않고 일행과 떨어져 도현을 쫓은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검술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가진 힘을 총동원해야 했지만, 잘하면 그 녀석이 가지고 있던 금화를 부수입으로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자.”

말고삐에 힘을 주려던 그때 그의 수하들이 말했다.

“주인님, 저기 누가 뛰어오는데요?”

“응?”

수하들의 말에 그는 말 등에서 다시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불길이 퍼진 숲을 뚫고 여러 나무 사이를 지그재그로 돌파하며 바람처럼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점점 가까워 오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이런 멍청한 놈들! 그놈이잖아!”

“예?”

“달려!”

깜짝 놀란 그들은 주인을 쫓아 허겁지겁 말을 몰았다. 하지만 말을 빠르게 몰기에는 숲의 어둠과 나무 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말이 시원하게 달릴 길이 나오려면 한동안 이 상태로 숲을 통과해야만 했다.

“주인님,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본 사내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젠장. 어떻게 저놈이 거기서 나올 수 있었지?”

중년인은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는 도현을 보며 빨리 숲이 끝나기를 바랐다.

“으아악!”

수하의 긴 처절한 비명 소리에 그는 가슴이 섬뜩해졌다.

돌아보니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은 도현이 수하의 말에 올라타서 검으로 수하의 몸을 여러 조각 내 버리고 있었다.

피를 뒤집어쓴 도현은 말을 몰아 또 다른 사내의 옆을 지나며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목이 잘린 사내가 말 위에서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순식간에 수하들을 모두 죽인 도현의 행동에 중년인은 사색이 되어 말을 심하게 몰아붙였다.

도현과 중년인의 쫓고 쫓기는 추격은 쉽게 끝날 것 같았지만 의외로 말을 상당히 잘 다루는 중년인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도현의 손을 빠져나가며 마침내 숲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탁 트인 길이 나오자 그는 미친 듯이 달렸고, 그 뒤를 도현이 악마 같은 얼굴로 말을 몰아 쫓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운이 조금씩 회복되던 중년인은 말 위에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흙이 한 움큼 튀어 올라 도현의 얼굴로 날아갔다.

번쩍!

도현이 십자로 휘두른 칼에 흙이 박살이 났다.

“괴물 같은 자식.”

중년인은 도현의 놀라운 검술 실력에 다시 한 번 놀라며 말을 모는 데 집중했다.

“죽인다!”

도현의 커다란 고함 소리에 그는 힐긋 뒤를 돌아봤다. 도현이 말 등을 걷어차며 허공에서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허억!”

그는 말을 버리고 땅으로 굴렀다.

그 충격에 어깨가 탈골된 그는 사방을 둘러보다가 강을 낀 작은 숲이 보이자 그쪽으로 필사적으로 뛰어갔다.

“하아, 하아.”

숲의 나무에 몸을 숨긴 그는 소매 속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웬만한 철검은 다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지팡이였다.

그는 숨소리를 죽이며 도현이 자신을 못 찾고 지나치기를 바랐다.

사박사박.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근처에서 들리자 그의 심장은 작게 오그라들었다.

광산 마을에서 들었던 녀석의 험벨 사냥꾼이라는 별명에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기회를 봐서 대지의 힘으로 녀석의 발을 묶어 놓으면, 수하들이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오판했다. 녀석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녀석이었다.

중년인은 지팡이를 손에 꽉 쥔 채, 사박거리는 소리가 멀어지기를 기원했다.

“죽인다.”

그의 기원을 무시하며 도현의 붉은 눈이 중년인 앞에 불쑥 솟아올랐다.

“오늘은 운이 좋군. 버려진 말이 두 마리나 있다니.”

리드만은 강변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말의 고삐를 잡으며 쓱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주인이 있나 없나 살피는 것 같았다.

“영주님, 이 말을 팔면 제법 돈이 되겠습니다. 품종이 아주 좋습니다.”

“놓아줘. 거지도 아니고.”

허름한 복장을 한 영주 딘은 자존심 상한다는 듯, 볼품없는 자신의 말 옆구리를 가볍게 쳤다.

“영주님!”

리드만은 아까운 말을 놓아주고 서둘러 자신의 말에 올랐다.

그의 말은 영주의 말보다 더 볼품없었다.

일하는 노새를 타고 다니는 듯한 둘의 모습은 남이 보면 조롱거리로 삼을 만했다.

30대 후반의 영주 딘은 그를 섬기는 늙은 리드만을 힐끗 쳐다봤다.

“삐쳤나?”

“영주님, 돌아가서 말을 가지고 오는 게 어떻습니까? 이제 돈도 떨어지고, 마을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없습니다.”

“품위를 지켜라. 난 영주고, 넌 사제니라.”

“신을 섬기는 사제도 밥은 먹어야 합니다. 말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흰 수염이 가득한 리드만은 말을 돌려 강변 쪽으로 다시 향했다. 그가 막 임자 없는 말의 고삐를 잡아 갈 때 저쪽에서 창검을 든 기병 수십 기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들은 근처에 있는 영주 컬라드의 성에서 나온 기병들로, 숲에 불을 지른 자들을 찾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 말을 세 마리나 가지고 있는 리드만이 수상했는지 그들이 강변으로 다가왔다.

“뭐 하는 자냐?”

횃불로 리드만의 얼굴을 확인하며 병사가 물었다.

“여행객입니다.”

리드만이 정중하게 대꾸했다. 복장은 허름했지만, 생김새가 학자처럼 순해 보이고 흰 수염도 멋들어져서 병사는 경계심을 약간 늦췄다.

“말이 세 마리나 되는데. 당신 것이오?”

“아, 그게.”

“말의 안장에 피가 잔뜩 묻어 있습니다!”

횃불을 든 또 다른 병사가 말을 살피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병사들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당황한 리드만이 강변에서 주운 말고삐를 얼른 놓으며 뒤로 물러났다.

“하하하, 제 말이 아닙니다. 저도 지나다 말이 그냥 있기에 막 살펴보던 참이지요.”

“살피는 게 아니라 끌고 가던 것 같은데, 아닌가?”

병사들을 지휘하는 군관이 말 위에서 물었다.

“오해십니다. 제 옷차림을 보십시오. 저런 좋은 말을 제가 타고 다녔으면, 이런 옷차림으로 돌아다니겠습니까?”

“흠.”

군관은 리드만의 위아래를 살피다가 손짓을 했다.

“가시오.”

“고맙습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리드만은 손가락으로 신의 별자리인 일곱 개의 별자리를 연속으로 그려 병사들을 축복했다.

“말을 끌고 성으로 돌아간다!”

“네!”

군관의 지시에 기병들은 썰물처럼 물러갔고, 그는 영주가 기다리는 곳으로 힘없이 말을 몰았다.

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비면 아까 오다 목격한 숲의 불은 모두 진화가 될 것 같았다.

“왜 빈손이지?”

“병사들이 와서 포기했습니다. 좋은 기회였는데 안타깝습니다.”

“사제가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면 되겠나?”

“저건 신이 주신 선물일 수도 있었습니다. 영주님, 저기 숲으로 가시지요. 오늘은 저기에서 야영을 해야겠습니다.”

그들은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해서 말을 끌고 작은 숲으로 들어갔다.

“빵이 남았던가?”

영주의 말에 리드만은 담담히 대꾸했다.

“점심때 다 먹었잖습니까?”

“그랬던가?”

“전 그때 굶었습니다. 영주님만 드셨지요.”

“아, 그랬지. 미안하네.”

“영주님, 저쪽이 비 피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커다란 바위 근처에 잎이 유독 무성한 나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말을 끌고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런, 싸움이 있었군.”

영주 딘은 죽어 있는 시체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시체는 가슴에 장검이 박힌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뭐 하는 건가?”

시체의 몸을 뒤지는 리드만의 행동에 딘이 미간을 찌푸렸다.

“장례를 치러 주는데, 수고비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은 돈이 없으면 사람 취급도 안 해 주나?”

“사제가 힘들면 신도 싫어하십니다. 사제들이 호의호식하며 편하게 사는 이유가 다 있는 겁니다, 영주님.”

리드만은 죽은 중년인의 품 안에서 돈주머니를 찾아내자 얼른 열어 봤다. 누런 금화와 은화가 몇 개씩 들어 있었다.

“흐흐흐.”

“찾았나?”

“네, 영주님. 한동안 여관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습니다.”

돈주머니를 챙긴 리드만은 시체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내려고 낑낑댔다. 하지만 나무 깊숙이 박힌 검은 꼼짝도 안 했다.

“비켜 보게.”

뒷짐을 지고 서 있던 딘이 다가와 한 손으로 검을 쓱 뽑아냈다. 시신이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지팡이를 발끝으로 밀어냈다.

“마법사였나 봅니다, 영주님.”

리드만은 지팡이에 그려진 고대어를 잠깐 읽어 보다가 그것도 가방에 챙겼다.

“검에 죽은 마법사라.”

딘은 시체의 몸에 박혀 있던 검을 가볍게 훑으며 중얼거렸다.

“까불다 솜씨 좋은 검사에게 된통 당한 것 같습니다,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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