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69화 (69/575)

[69] 디 임팩트 3권 19화

“음식들도 훌륭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 것 같아. 리드만, 들게. 어제부터 자네도 굶었지 않나?”

딘이 음식에 손을 대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양고기를 손에 들고 입에 대던 리드만이 문득 옆에 앉아 있는 도현을 쳐다봤다.

“뭐 하나? 안 먹고?”

“제가 먹어도 되겠습니까?”

“세 명이 안 먹으면, 이 많은 걸 왜 시켰겠나? 안 그렇습니까, 영주님?”

“돈을 얻는 데 저 친구의 공도 적지 않으니, 당연히 같이 먹어야지.”

“영주님 말씀 들었지? 얼른 먹게.”

리드만은 말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고기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내가 공을 세워?’

도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영주의 말이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묻기엔 딘과 리드만이 너무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도현은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서 맛이 강렬한 양고기와 부드러운 야채수프를 번갈아 가며 빠르게 먹어 치웠다.

부상도 입었고, 체력이 많이 고갈된 지금 그에게는 몸에 힘을 불어 넣어 줄 영양분이 절실히 필요했다.

도현이 접시를 깨끗이 비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딘은 손에 묻은 기름기를 천에 닦으며 나직이 물었다.

“자넨 뭐 하는 사람인가?”

도현은 딘을 쳐다봤다.

‘진짜 영주일까?’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나이 든 리드만이 영주라고 꼬박꼬박 존칭을 써 주는 모습을 보면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영주가 이렇게 궁색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게 이상했다.

몰락한 어느 작은 지방의 영주일지도 모르겠다.

“용병입니다.”

“용병? 동료들은?”

“혼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대화 없이 리드만의 말에 타고 왔다. 그래서 언제 그가 혼돈의 마나에 대해 설명해 줄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분위기를 보니 이제 말을 해 줄 것 같았다.

“숲의 그자는 왜 죽였나?”

딘이 술을 한 모금 하며 물었다.

“절 죽이려고 했습니다.”

“원한 관계인가?”

“일을 하다 보니…….”

도현은 말끝을 흐렸다. 간밤에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기는 했지만, 어베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선뜻 할 수는 없었다.

“혼돈의 마나가 뭐냐고 물었지?”

기다리던 말이 나오자 도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습니다.”

잠시 술을 마시며 뜸을 들이던 딘은 주변을 쓸어 보며 도현에게만 들릴 음성으로 말했다.

“어제 자네를 미치광이로 만든 힘일세.”

“네에?”

도현의 눈이 커졌다. 영주가 어떻게 어제 자신의 상태를 알고 미치광이로 표현했는지 등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 힘은 평상시 일반 마나와 같은 강한 힘을 부여해 주지만, 감정이 폭발하고 격렬한 분노에 휩싸이면 때때로 제어할 수 없는 미치광이로 돌변시키지. 그 기분은 자네도 잘 알 걸세. 어제 충분히 느꼈을 테니까.”

딘은 어딘지 음울한 표정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리드만이 그의 술잔에 술을 공손히 따랐다.

“혼돈의 마나는 고대부터 악마들이 사용하는 힘이라고 불렸네. 폭주하는 순간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려고 하거든. 자네 몸속엔 지금 그 혼돈의 마나가 스며들었어.”

도현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옷에 가려진 왼팔의 타투로 향했다. 들을수록 몬스터의 기운이 혼돈의 마나처럼 인식됐다.

‘그럼 내가 어제 그렇게 변한 게 흡수한 몬스터의 기운 때문이라는 건가?’

도현은 어제 광기에 젖어 적들을 쫓아갔던 일을 상기했다. 딘의 말대로 감정이 폭발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자신의 주변에 있는 홍영이나 용주까지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해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한번 경험을 하게 된 도현은 딘의 설명이 아주 무겁게 다가왔다.

“폭주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까?”

“없어. 몸속에 그 녀석이 조금이라도 들어찬 이상 끝이야. 자넨 영원히 혼돈의 마나와 떨어질 수 없는 몸이란 거지. 조언을 하자면,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평상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훈련을 하게. 칼을 들어도 냉철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적을 상대하란 말이야. 왜 그러냐 하면, 폭주 후에는 전신에 힘이 하나도 없거든. 그래서 정신을 잃게 돼. 아이가 칼을 들고 와서 심장에 구멍을 내도 반항할 수가 없는 순간이지. 조심해야겠지?”

“영주님 말씀이 틀리지 않네. 알아서 잘 새겨듣게.”

리드만이 옆에서 거들었다.

“여기 술과 빵 좀 더 가지고 오게!”

지나가는 주인을 보며 딘이 추가로 음식을 더 주문했다.

“술맛이 괜찮군. 리드만,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고 내일 출발하세.”

“그러시지요, 영주님.”

폭주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말에 도현은 가슴이 서늘해져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몬스터의 기운이 기연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시한폭탄 같은 불안한 존재였다.

비록 어제는 위기의 순간에 그의 목숨을 구해 주는 폭주였지만, 다음번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영주님, 그런데 제 몸속에 있는 게 혼돈의 마나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셨습니까?”

도현의 차분한 질문에 리드만은 헛기침을 하며 영주의 눈치를 살폈다.

딘은 술잔을 비우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알 수밖에. 내가 자네와 같은 처지니까.”

도현은 여관 2층 방에 홀로 누워 있었다.

딘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해서 잠이 들었고, 리드만은 한참을 그의 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다가 조금 전 나갔다.

-우리 영주님께서는 일반 마나 수련법인 줄 알고 혼돈의 마나 수련법을 배우셨네. 불행한 분이지.

-따로 수련법이 존재하는 거였습니까? 몬스터를 통해 흡수하는 게 아니고요?

-몬스터도 혼돈의 마나 덩어리이긴 하지. 그놈들은 숨을 쉴 때 공기 중에 혼돈의 마나만 빨아들이니까. 하지만 아니야. 인간이 어떻게 몬스터의 기운을 빨아들이겠나. 수련법이 있어서 주위에 퍼져 있는 혼돈의 마나를 체내에 쌓는 것이지.

-아!

-왜 그러나? 자네도 그렇게 수련하지 않았나? 아, 그렇지. 자네는 끝까지 숨겼지.

-죄송합니다, 사제님.

-흐흐흐, 사제라고 불러 주니 고맙군.

-그런데 혼돈의 마나를 계속 키워도 되는 겁니까?

-안 될 이유가 없지. 우리 영주님도 계속 수련을 하시니까. 혼돈의 마나가 적든 많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폭주는 마나의 양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상황이니까. 오히려 더 강해지게. 그게 오히려 자네가 주위 일에 휩쓸려서 감정 동요를 덜 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마나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런, 자네 여태껏 그것도 모르고 힘을 키워 왔나? 마나는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근원적인 힘이네. 신의 숨결이라고도 하고. 인간이 얻으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네. 하지만 다 얻을 수는 없어. 마나와 적합한 체질의 인간들은 아주 극소수이니까. 자네가 죽인 어제 그 마법사도 그 극소수 중 하나지.

도현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단순하게 느껴졌던 이쪽 세계가 어제 일을 겪으며 복잡하게 다가왔다.

헬스콧에 가서 몬스터 사냥을 하며 내공을 키우고 금화도 버는 단순한 플랜은 이미 물 건너갔다.

커딜과 이안이 보낸 추적대가 자신을 찾아왔다. 헬스콧에서 몬스터 토벌을 하고 있다가 언제 또다시 어제처럼 추적대가 나타나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지 알 수 없다. 굳이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한자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는 저녁에 나가서 사 온 커다란 지도를 펼쳤다.

드넓은 북부 대륙을 횡단하다 보면 사막지대가 나왔고, 그 너머에 다시 영주들의 땅이 이어졌다. 그리고 계속 동쪽으로 가다 보면 바다처럼 넓은 강 ‘블랙리버’가 나온다.

배를 타고 반나절은 가야지 통과할 수 있다는 거대한 강.

그 강을 넘으면 척박한 죽음의 대지가 나오는데 진정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오로지 힘이 정의인 무법자들의 도시 ‘다크캐슬’이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도현도 오늘 리드만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곳이다.

남부 대륙에서 왔다는 딘과 리드만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무법자들의 도시 다크캐슬이었다.

다크캐슬은 고대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딘이 해결책이 없다고 했던 폭주 현상을 어쩌면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는 유일한 장소라고 리드만은 말했다

-고대인들은 혼돈의 마나를 폭주 현상 없이 익혔다는 기록이 내려오네. 영주님은 큰 기대를 하지는 않으시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기에는 그분이 겪은 여러 일들이 그리 가볍지 않지. 자네도 그곳으로 가는 걸 심사숙고해 보게. 일생에 단 한 번의 폭주가 자네를 영원히 힘들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도현은 블랙리버 너머의 땅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다가 천천히 지도를 다시 말았다.

가는 길이 쉽지 않고 먼 길이었지만, 그곳엔 강한 몬스터들이 많다고 하니 그만큼 내공도 빨리 상승시킬 수가 있다.

타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의 효과를 보는 장소를 선택해 수련을 하고 내공을 쌓는 게 필요했다.

위험한 장소이긴 하지만 그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무엇보다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고대인들의 비법을 운이 좋으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꼭 가야 할 장소인데, 그 외에도 그곳의 몬스터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재료로서 팔린다고 하니 높은 수익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끄응.”

도현은 옆구리 통증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다가 침대 위에 누웠다. 숲에서 말을 쫓다가 상처가 벌어져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내일부터 험한 여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되었다.

“영주님, 일어나십시오, 영주님.”

“조금만 더.”

전날 술에 취해 잠든 딘은 여관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써 해가 높이 떴습니다. 떠날 차비를 하셔야지요.”

리드만의 끈질긴 괴롭힘에 딘은 마지못해 일어났다. 머리가 산발이 된 그는 리드만이 준비한 물에 세수를 하고 머리를 손질했다.

“옷을 사 왔습니다, 영주님.”

“오, 그래?”

딘은 입으려던 낡은 옷을 휙 집어 던지고 질 좋은 옷감으로 만들어진 바지와 풍성한 상의를 입었다.

“신발은?”

“신발은 아직 괜찮아 보여서 안 샀습니다.”

“그래도 좀 사 오지 그랬나. 어정쩡하잖아?”

딘이 불만을 표시했다.

“그렇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표도 안 나고요.”

“그럴 리가 있나. 새 옷과 낡은 신발인데. 이보게, 도현. 이상하지 않나?”

문턱에 서 있던 도현은 리드만의 눈짓을 보고는 듣기 좋은 말을 할 수 없이 했다.

“제가 보기에는 괜찮습니다. 영주님의 풍채에 신발이 가려져서요.”

“하하하, 그런가?”

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신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자아, 그러면 아침을 먹으로 갈까?”

딘이 아래층으로 먼저 내려가자 뒤에 남은 리드만이 도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 은근히 눈치 있어. 고맙네. 가세, 밥 먹으러.”

질 좋은 새 옷을 입은 딘은 어제와 달리 기품 있는 동작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리드만, 자네 옷도 좀 사지 그랬나?”

“전 괜찮습니다, 영주님.”

“다음부턴 돈이 생기더라도 내 옷은 사지 말게. 우리 사정에 이건 사치야.”

도현은 빵을 먹으며 웃음을 숨겼다. 조금 전까지 2층에서 신발 얘기를 심각하게 한 상황과 지금 말이 어딘지 모순이 되었기 때문이다.

딘은 나무 수저로 수프를 떠서 입에 넣으며 도현을 쳐다봤다.

“얼굴색이 하루 만에 달라졌군.”

간밤에 푹 자고 일어난 도현은 전날에 비해 혈색이 좋아 보였다.

“자넨 이제 어디로 갈 건가?”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을 했다.

“다크캐슬로 가려고 합니다.”

“응? 그곳으로?”

딘이 미간을 찌푸리며 리드만을 응시했다.

“리드만, 혹시 자네가 얘기해 줬나?”

“영주님과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이잖습니까. 도움이 될까 해서 말해 줬지요. 남 같지 않아서요.”

“흠.”

딘은 수프를 몇 번 더 떠먹은 뒤에 도현에게 말했다.

“내가 어제 그 얘기를 해 주지 않은 이유는 가능성이 희박해서야. 위험하기도 하고. 너무 기대하지 말게.”

“말씀 감사합니다.”

“어디 따로 들렀다 갈 건가?”

“아닙니다. 바로 그곳으로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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