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70화 (70/575)

[70] 디 임팩트 3권 20화

“그렇단 말이지. 리드만, 이 친구에게 말 한 마리 사 주게. 그럴 돈은 남아 있지?”

지금 도현은 은화 몇 개가 전 재산이었다. 말을 사 준다는 말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제부터 계속 도움만 받고 있어서 말까지 받는다는 게 미안했다.

더구나 이들의 행색을 보면 고생고생하며 여행을 하는 게 딱 느껴졌다. 어제 먹은 화려하고 푸짐한 식사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괜찮습니다. 말은 제가 구해 보겠습니다.”

“영주는 두 번 말하지 않네. 그냥 받아.”

딘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은화 세 개짜리 말은 골골거리는 게 며칠 못 가다 쓰러질 것 같은 작은 체구였다.

“보기에는 이래도 꽤 쓸 만한 말이네.”

리드만은 말을 사기 위해 멀리 가지 않고 여관 주인에게 은화 세 개를 지불하고 샀다.

헛간에 그들 말과 함께 묶여 있던 말이었다.

볼품없어 보이는 딘과 리드만의 말보다 한 단계 더 낮아 보이는 말이었지만, 도현은 그것도 고맙게 받았다.

“고마워할 필요 없네. 이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나?”

리드만이 작게 속삭였다.

“자네가 죽인 마법사의 주머니에서 나왔네.”

“네?”

도현이 살짝 놀라자 리드만은 근엄하게 말했다.

“내가 장례식을 치러 주고 챙겼으니, 나도 할 도리는 했지. 아무튼 그런 돈이니, 그렇게 부담 갖지 말란 뜻이야.”

도현은 여관 앞에서 떠날 차비를 하는 딘을 쳐다봤다. 돈을 얻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마을을 벗어나 한동안 길을 가자 갈림길이 나왔다.

다크캐슬로 가려는 도현은 마차가 다니는 넓은 길로 가야 했고, 딘과 리드만은 좁은 소로를 따라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가야 했다. 그들도 다크캐슬로 가는 여정이긴 했지만, 중간에 다른 볼일이 있었다.

“이쯤에서 헤어져야겠군.”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도현은 말에서 내려 정중하게 딘과 리드만에게 인사를 했다. 숲에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그가 왜 폭주하게 됐는지 알려 주었다. 거기에다 마법과 마나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얻을 수 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밴 그의 인사에 말 위에 타고 있던 딘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마음을 호수처럼 항상 차분히 가라앉히게. 전투 중에도 말이야. 그래야지 폭주를 막고, 자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잘 가게.”

딘은 말고삐를 옆으로 돌려 좁은 소로로 향했고, 리드만은 도현에게 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무의미한 인연은 없네. 영주님과 같은 처지인 자네를 만난 건 다 신의 뜻이 개입된 것이겠지. 나중에 다크캐슬에서 또 보도록 하세.”

“감사합니다, 사제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리드만은 말을 돌려 상당히 멀리 간 영주를 급히 쫓아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길게 지켜보던 도현은 천천히 말에 올라, 사막과 거대한 강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다크캐슬을 향해 말을 몰아갔다.

“히럇!”

여정

딘과 헤어져 20여 일을 고생한 끝에 도현은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황량한 사막 초입에 도달했다.

오는 도중 도적과도 싸우고 여비가 떨어져 상단의 작은 호위 임무를 띠고 돈을 벌기도 한 그는, 길을 잘못 들어 거대한 산맥을 헤매기도 했다.

지도만으로 길을 찾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도현은 이번 여행에서 뼈저리게 체득했다.

그는 사막을 바라봤다.

통과하는 데 열흘 가까이 걸린다는 굉장한 크기의 사막이었다. 두껍고 넓게 퍼진 사막은 단단한 준비 없이는 절대 통과할 수 없는 불모지대였고, 사막 너머 왕국과 영지들로 가는 최후의 관문이기도 했다.

사막 지리를 잘 아는 전문가와 동행하지 않고 홀로 들어갔다가는 사막의 몬스터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모래 폭풍 지대에 갇혀 방향을 잃다가 모래 속에 파묻혀 죽기 십상인 곳이다.

“일행이 있어야 돼.”

도현은 사막을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 위의 성벽 도시를 바라봤다.

진흙으로 만든 높은 성곽이 사막을 마주 보고 있는 도시를 모래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었다.

도현은 심해지는 모래바람을 옆으로 맞으며 말 허리를 찼다. 언덕 위 사막의 도시가 점점 가까워졌다.

거대한 사막의 도시는 요란스럽고 온갖 사람들로 넘쳐 났다.

수천 채의 규모 있는 진흙 집들과, 도시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광장, 광장 주변에 펼쳐진 수백 개의 천막들, 셀 수 없이 많은 낙타들과 골목길마다 지나는 사내들을 유혹하는 분내 나는 여인들까지.

“이리 와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고삐를 잡고 지나는 도현의 목을 푸른 눈동자의 여인이 휘감았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도현이 여인들의 손을 피해 광장 가까이 있는 말 상인에게 다가갔다.

“은화 두 개요.”

도현은 자신이 타고 온 말을 봤다. 리드만이 사 준 은화 세 개짜리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은 중간에 산을 타면서 팔았고 이 말은 다시 산 말이었는데, 은화 여덟 개를 주고 샀다. 거의 금화 하나 값을 치른 것이다.

다크캐슬까지 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도현이 빠른 말을 산 것이다.

은화 두 개라면 헐값이었다. 도현이 망설이자 말 상인이 주위를 가리켰다.

“다른 데도 다 나 정도밖에 안 쳐줄 거요. 사막이 앞인데, 여기서 누가 말을 사겠소? 다 낙타로 바꾸지.”

사막 여행객들로부터 말을 사들이는 상인들은 제값을 지불하지 않는다. 어차피 사막을 건너려면 타고 온 말을 정리해야 한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도현은 다른 말 상인에게 갔지만 그 사람도 역시 은화 두 개 이상을 부르지 않았다. 아마도 말의 품종에 따라 말 상인들 사이에 묵시적인 가격이 형성된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도현은 은화 두 개를 받고 말을 넘겼다.

‘은화 일곱 개가 전 재산인가?’

은화를 가죽 주머니에 넣으며 도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몬스터 토벌은 북쪽 변방 지역에서 간혹 가다 벌어지는 일이었다. 헬스콧이 아닌 다른 곳도 찾아보면 있기야 하겠지만, 그의 행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지나쳐 온 길은 대륙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미 몬스터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이 정리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몬스터 토벌대에서 쉽게 금화를 모았던 그로서는 예전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가 방패와 검을 착용한 몇몇 사내가 스쳐 지나가자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삐꺽거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십여 명의 용병들이 내뱉는 거친 언어들로 인해 금세 귀가 먹먹해졌다.

이곳은 광장 서쪽에 위치한 천장이 높은 2층 구조의 벽돌집 주점으로, 조건에 맞는 의뢰인을 기다리는 용병들의 집합 장소 겸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였다.

도현은 건물 내부를 둘러보다 구석진 곳의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자리를 잡았다.

자릿세로 통하는 술값을 지불하고는 시큼한 맛이 나는 술이 든 술병과 토기로 만들어진 작은 잔을 받았다.

막걸리의 색이 우러나오는 술을 조금 입에 대며 도현은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방패와 검을 착용한 사람, 활을 메고 있는 사람, 커다란 도끼를 발밑에 두고 술을 마시는 사람, 흰머리가 가득한 나이 든 노인, 젊지만 눈빛이 매서운 청년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넘쳐 났다.

하지만 여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도현이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이 용병을 구하려는 상인이 들어왔다.

그가 주점 한가운데 서서 박수를 몇 번 치며 용병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사방이 조용해지자 상인이 말했다.

“사막을 건너 바위산 도시까지 가는 상단이오. 사막을 건너 본 경험이 있어야만 하고, 보수는 금화 두 개요. 기본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상단 경비대장이 직접 시험도 할 것이오. 일곱 명을 뽑을 것이니, 원하는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무슨 헛소리요! 금화 두 개라니? 사막을 통과하는 데만 해도 열흘 가까이 걸리고 바위산 도시까지 가는 데도 여러 날이 필요한데, 겨우 금화 두 개? 장난하시오!”

“맞아, 맞아. 보수가 너무 적어. 사막의 도적도 막아야 하고 몬스터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목숨을 걸고 일을 맡기에는 너무 적은 보수야.”

“최소한 금화 세 개는 받아야지. 상단이 너무 돈을 아끼려 하는군.”

이곳저곳에서 야유가 쏟아지자, 상인이 급히 손을 휘저으며 껄껄 웃었다.

“좋소. 금화 세 개로 하겠소. 우리와 계약을 맺을 사람은 어서 일어나시오!”

“뭐 그 정도면 아쉬운 대로.”

욕을 하던 사내들 중 일부가 무기를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모인 용병들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규모가 있거나 명성이 있는 용병대들은 따로 그들만이 모이는 장소가 있었고, 큰 상단들을 대상으로만 집단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요구 조건도 까다롭고 몸값이 비쌌다.

대신 이곳은 대체로 몸값이 쌌고, 중소 상인들 역시 낮은 보수로 최소한의 보호를 원할 뿐이다.

“갑시다.”

숫자가 맞춰지자 상인은 그들을 데리고 주점을 나섰고, 다시 주점 안은 사람들의 대화로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곧 또 다른 상인이 들어와 필요로 하는 용병을 뽑아 갔다.

그렇게 몇 차례 상인과 용병들 간에 거래가 이뤄지자 주점 안은 사람이 확 줄어들었다.

‘음, 계속 경험자만 뽑는데.’

상인들이 사막을 오간 경험자 위주로 계속 용병들을 선발하고 있었다. 산지나 평야가 아닌 사막 특유의 특성을 이해하고 사막에서 도적을 상대하는 방법이나 몬스터들을 대적할 만한 사람들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도현은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예상한 용병 자리를 해가 지도록 못 구하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지금 있는 돈으로는 낙타 한 마리도 못 살뿐더러 광활한 사막을 경험 없이 혼자서 통과하는 건 굉장히 무모한 시도였다. 그래서 상단의 호위를 맡아 사막을 그들과 함께 건너려고 한 것인데, 의외로 쉽지가 않았다.

도현은 자신을 제외하고 불과 열 명도 안 남은 주점 안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더 기다려 보자.’

그는 술을 따라 입에 천천히 댔다. 이계로 넘어온 지 20일이 넘었다. 상당히 긴 시간이었고, 오직 다크캐슬만 보고 가는 여정이었다.

아직 반도 못 왔고, 온 만큼 다시 시간을 들여 가야만 한다.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그는 얻는 것 없는 이 긴 여행이 마지막에는 큰 보상으로 돌아올지 때때로 근심에 빠지기도 했다. 다크캐슬에 갈 시간이면 북쪽 몬스터가 있는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몬스터를 잡으며 상당한 수련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토벌장의 몬스터가 아니라 돈을 지불할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애초에 목적한 내공과 검술 수련은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는 시간이긴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생각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때면 보다 멀리 보자고 마음을 다스렸다.

여행을 하며 모은 정보에 의하면 다크캐슬의 몬스터는 약한 녀석들도 험벨보다 훨씬 강하다고 했다.

잡기만 하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내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폭주를 막을 수 있는 비법에 대한 한 가닥 가능성까지 열려 있는 장소였다.

‘가자. 참고 도착하면 지금 소비한 시간을 몇 배로 보상받을 수 있어!’

도현은 소주보다 독한 사막의 술을 쭈욱 들이켜며 눈을 빛냈다.

‘홍영 씨와 용주는 잘 있겠지?’

그들이 있는 현실에서는 6일이 채 안 지났겠지만, 이곳에서 그가 보낸 시간은 그것의 네 배였다.

그들이 잘 있는지 걱정도 되고, 특히 홍영의 얼굴이 많이 그리웠다.

시간이 다시 흘렀고, 이제 주점에 남은 사람은 도현을 제외하고는 단 두 명밖에 없었다.

눈처럼 흰 백발의 노인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활을 멘 청년.

그 많던 용병들이 사라지고 자신들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의식했는지 노인과 청년은 어색한 시선으로 서로를 한번 본 뒤 구석진 곳에 있는 도현을 힐긋 쳐다봤다.

도현은 그들에게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눈인사를 보냈다. 저들이 꼭 자신과 같은 처지인 것 같아 묘한 동지 의식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끈질기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찾아오는 상인은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가서 직접 상인들을 만나 보자.’

도현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주점의 문이 벌컥 열렸다.

“사막 지나 안개 도시까지 가는 용병을 뽑는다! 상단 보호가 아니라 호위 임무다! 보수는 금화 열다섯 개! 실력은 최소 가우너 한 마리는 홀로 감당할 수준은 돼야 하고, 계약 전에 그 실력을 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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