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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71화 (71/575)

[71] 디 임팩트 3권 21화

들어오자마자 거침없이 말을 내뱉은 중년의 사내는 도현을 시작으로 노인과 청년까지 한 번에 쭉 훑었다.

“아무도 없나?”

“금화 20개라면 한번 생각해 보겠소.”

백발노인의 말에 중년의 사내가 날카롭게 쏘아봤다.

“금화 20개?”

“안개 도시까지면 상당히 먼 거리고, 호위 임무가 위험하지 않소?”

“음.”

한동안 주름살 짙은 건장한 백발노인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점을 나가서 실력 검증은 할 것이오.”

“좋을 대로.”

“나도 금화 20개는 받아야 하겠는데.”

활을 메고 있던 청년이 조용히 일어났다.

“활 솜씨 좀 볼까.”

중년인이 주머니에서 동전 한 개를 꺼내 허공으로 튕겼다.

그 순간 청년이 번개와 같은 빠르기로 화살을 날려 보내 동전을 정확히 맞혔다.

“괜찮군.”

중년인이 그의 실력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도현은 지도를 꺼내 안개 도시가 어딘지 찾고 있었다.

‘그래, 여기군.’

도현은 사막을 건너 블랙리버로 가야 했는데, 그 중간에 위치한 곳이 안개 도시였다. 코스도 좋았다.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금화도 적지 않았다. 그 정도면 다크캐슬까지 가는 데 경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거기 당신은 실력이 부족한가?”

철탑처럼 단단하게 생긴 중년인이 지도를 가방 안에 넣고 있는 도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도 금화 20개면 함께하겠습니다.”

“좋소. 모두들, 따라오시오.”

중년인이 주점을 나가자 백발노인과 청년 그리고 도현은 그를 따라갔다.

그들이 간 곳은 분수가 올라오는 넓은 정원을 가운데 두고 ‘ㅁ’ 자 형태의 회랑이 있는 커다란 2층 집이었다.

회랑 곳곳에는 화롯불이 켜져 있었고, 무기를 들고 경비를 서는 사내들도 적지 않았다.

“정원에서 잠시 기다리시오.”

중년인의 말에 어둠이 내려앉은 정원으로 사람들이 걸어갔다.

잠시 후, 중년인이 서너 명의 사내들과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가우너 정도는 가뿐히 상대할 실력자들이오. 이들과 싸울 실력이라면 주점에서 말한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하겠소.”

말을 마친 그는 턱짓을 했고, 무기를 뽑은 세 명의 사내들이 천천히 정원으로 내려갔다.

백발의 노인은 등에 메고 있던 검신이 좁고 얇은 두 자루의 검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싸울 준비를 했고, 활을 든 청년도 허리에 걸어 둔 검을 뽑아 들었다.

‘가우너를 홀로 상대할 정도면 일급 용병 정도의 실력.’

도현은 여행을 하며 들었던 정보를 떠올리며 검을 앞에 세웠다.

“시작해!”

중년인의 지시에 사내들이 달려들었다.

깡! 채채챙!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노인과 청년의 주위로 불꽃이 일어났다. 마치 진짜 전투를 벌이는 것 같은 날 선 공방이 곧장 시작되면서 정원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우리도 시작해 볼까?”

도현을 앞에 둔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채채챙 채챙!

아래위로 동시에 공격해 오는 사내의 검을 도현이 가볍게 막아 냈다.

사내는 도현이 손쉽게 막아 내자 눈을 빛내며 조금 전 보다 빠르고 위협적으로 검을 날렸다.

검신이 긴 양손 검을 휘두르고 있어서 그 기세가 폭풍과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가볍게 도현의 실력이나 보자는 것이었고 지금부터가 진짜인 듯했다.

‘오랜 시간 검을 수련한 사람이다. 하체가 안정되어 있고, 검은 막힘없이 제 길을 찾아가고 있어. 긴 검을 이용한 독특한 검법이군.’

이계에서 제대로 검술을 배운 사람을 만나자 도현은 흥이 나서 그의 공격을 적당히 막아 내며 검신이 넓은 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 보니 계속 방어에만 치중했고,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이놈이!”

사내는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도현이 미꾸라지처럼 용케 빠져나가며 철벽처럼 방어를 하자 얼굴이 붉어져 더욱더 빨리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호승심이 상당한 사람 같았다.

번쩍.

정원의 나뭇가지가 검에 절단되며 허공으로 치솟았고, 땅의 흙들이 그의 검세에 휘말려 올라가 뿌연 흙먼지를 어둠 속에 만들어 냈다.

‘흠, 실력이 저들에 비해 조금 미치지 못하는 자인가?’

주점에서 도현을 데리고 온 중년인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도현을 살폈다.

백발노인과 청년은 공격과 수비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데 반해, 도현은 수비에는 뛰어나 보였지만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없지. 그래도 저 정도면 그나마 괜찮은 편이니까.’

중년인은 손뼉을 치며 외쳤다.

“그만하면 됐다. 물러나!”

시험을 하던 사내들이 검을 거두자 노인과 청년이 거친 숨을 돌리며 도현 옆에 나란히 섰다.

“의뢰금의 반은 잠시 후 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겠소. 나머지 반은 안개 도시에 도착하는 즉시 지불할 거요. 잠은 여기서 자시오.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하니까.”

“호위 임무라고 했는데, 누굴 보호하는 겁니까?”

백발노인이 물었다.

“바로 나예요.”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2층 난간으로 향했다.

긴 머리를 위로 말아 올려 황금빛이 나는 비녀로 고정시킨,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여성이었다.

“당신들은 내 호위대와 함께 날 보호하면 돼요.”

숙소로 배정받은 1층의 방은 침상 없이 바닥에 푹신한 양탄자가 깔린 곳으로, 도현을 비롯해 노인과 청년이 자기에는 공간이 부족하지 않았다.

“파먼이네.”

백발노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용병 생활을 적지 않게 했는지 그의 얼굴 곳곳엔 상처 자국이 가득했다. 인상을 쓰면 몹시 흉해 보일 상처였다.

“난 우르틴입니다.”

평범한 인상에 말수가 적어 보이는 그는 도현보다 두세 살 어려 보이는 키가 큰 청년이었다.

“도현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점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세 사람이 한데 모이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묘하게도 그들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말수가 적고 과묵한 편이었다.

다음 날 일찍 떠날 걸 대비해 그들은 불을 끄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어둠 속에서 도현은 눈을 깜빡였다.

‘상당한 신분의 여자 같은데, 뭐 하는 여잘까?’

2층 난간에서 봤던 여성을 떠올리며 도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오늘 처음 만난 파먼과 우르틴은 그 여자의 신분을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필요하니 용병을 돈 주고 불렀을 테고, 돈만 받고 정해진 대로 호위만 서 주면 되는 것이다.

‘내일이면 사막으로 가는 건가?’

도현은 설렘을 안고 뒤척이다 서서히 잠이 들었다.

어제와 달리 릴리아는 하늘거리는 치마 대신 활동하기 편한 바지 차림에 모래바람을 막아 주는 헐렁한 겉옷을 위에 걸치고 나타났다.

2층 난간에서 아래를 잠시 내려다보던 그녀는 계단을 내려와 정원 분수대 앞에 도열해 있는 그녀의 호위대와 용병들을 지나쳐 이 저택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돈 많은 상인으로 그녀에게 숙소는 물론 사막에 필요한 튼튼한 낙타와 물품 들을 무상으로 제공해 줬다.

“당신이 내게 베푼 호의는 잊지 않겠어요.”

“별말씀을요.”

턱수염이 가득한 집주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디 무사히 사막을 지나시기를 바랍니다.”

“고마워요.”

동이 트고 성문이 열리자마자 언덕 위 사막의 도시에서 천으로 얼굴을 가린 십수 명의 사람들이 낙타를 타고 빠르게 내려왔다.

릴리아를 보호하는 호위대장과 호위대 아홉 명, 도현과 용병 노인 파먼, 20대 초반의 활 실력이 뛰어난 우르틴이었다.

‘낙타가 아니라 말이라 해도 되겠어.’

코와 눈만 내놓고 천으로 얼굴을 가린 도현은 빠르게 스쳐 가는 주변을 보며 생각했다.

생김새는 낙타였지만, 등이 좀 더 길고 다리는 힘이 넘쳐 났다. 일반 낙타보다 가격이 열 배 이상 비싼 얼룩 반점 낙타로 턱수염 상인이 특별히 구해 준 것이다.

말처럼 달리는 낙타의 빠르기에 감탄하는 그사이 일행은 광활한 사막에 들어섰고, 도현의 머리 위로는 앞서 가는 일행이 만든 모래 먼지가 바람에 실려 계속 쏟아졌다.

‘쉽지 않군.’

도현은 얼굴을 가린 천을 위로 조금 더 올려 콧속으로 모래들이 들어가지 않게 했다. 하지만 눈을 괴롭히는 작은 먼지와 모래 알갱이들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최대한 고개를 숙이며 수시로 손으로 털어 낼 수밖에 없었다.

산처럼 솟은 모래언덕 능선을 따라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하지만 말처럼 빠르게 달린다는 얼룩 반점 낙타라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한 시간을 넘게 달리자 속도가 느려졌고, 모래언덕을 올라가는 것도 매우 더디어졌다.

“이제부터 걷는다!”

호위대장의 지시에 사람들이 낙타에서 일제히 내려 낙타와 나란히 걸었다.

해가 높이 뜨자 더위는 더 심해졌고 열기를 가득 담은 모래바람은 입술을 금방 건조시켜 자꾸만 목이 마르게 만들었다.

도현은 자신에게 지급된 수통의 물을 한 모금 하며 앞을 봤다. 앞서 가는 호위대나 파먼, 우르틴도 자신처럼 물을 저마다 마시고 있었다.

사막에선 물 한 방울이 금보다 가치가 있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사막의 열기와 건조함을 몸소 느끼고 있는 도현은 절로 공감이 갔다.

한참을 걷던 그들은 낙타가 기운을 회복하자 다시 낙타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모래바람이 그들이 지나간 흔적을 지워 갈 때쯤, 모래언덕 밑에서 포효하는 사자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앞세우고 달려오는 자들이 있었다.

“대기!”

선두에서 달리던 검은 수염의 노인이 손을 하늘로 올려 한 바퀴 빙글 돌리자, 그의 뒤를 따르던 사내들이 일제히 멈췄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모래언덕 일대를 가득 메운 낙타와 부하 들을 잠시 살펴보던 그는 옆에 있는 중년 여인을 쳐다봤다.

베른 가문이 아끼는 마법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아무래도 눈치챈 것 같소. 이렇게 서둘러 이동하는 것을 보니.”

“예상했던 것 아니었습니까?”

요염하게 생긴 갈색 눈동자의 여마법사가 차가운 눈빛으로 사막 저편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몰랐으면 했지. 난 사막이 싫거든.”

노인은 검은 수염을 매만지며 부드럽게 말을 했다.

“여기서부터는 모래바람이 심해 어디로 갔는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소. 길을 내시오.”

“명을 따르지요.”

여마법사는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음산한 어조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 순간, 모래언덕 왼편으로 길게 이어진 낙타 발자국들이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사라지긴 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해가 지자 사막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가운 모래바람이 대신했다.

달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수많은 별빛을 올려다보던 릴리아는 일행의 선두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가리키며 위험한 사막의 어둠 속을 뚫고 있었다.

아침부터 쉼 없이 이동하는 강행군이 밤늦도록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릴리아 님, 오늘은 이쯤에서 잠자리를 마련하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내가 지쳐 보이나요?”

“그건 아니지만…….”

“사막의 별은 참 아름답네요. 별 구경하면서 가는 게 나쁘지 않아요.”

“쉬지 않고 사막을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우리가 쉰 만큼 뒤를 쫓는 자들은 가까워질 거예요. 하지만 맞는 말이에요. 쉬지 않고 이 넓은 사막을 통과할 수는 없겠죠. 여기서 쉬었다가 새벽에 다시 출발하도록 해요.”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돌아선 호위대장은 낮은 목소리로 지시를 했다.

“여기서 야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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