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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72화 (72/575)

[72] 디 임팩트 3권 22화

도현은 모래언덕 경사면에 몸을 숨긴 채 혹시 누군가 다가오는지 경계를 서고 있었다. 심한 일교차로 인해 귀가 다 시릴 정도였지만 그는 사막의 별을 보는 재미로 참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게 분명해.’

동이 틀 무렵 출발해 밤늦은 시간까지 강행군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뒤를 누가 쫓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행동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사막의 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무리하게 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자기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저녁을 함께 먹던 늙은 용병 파먼과 우르틴이 먼저 꺼낸 얘기였다.

-위험이 없으면 용병을 고용하지도 않지.

그들은 그렇게 얘기하며 이번 사막 여행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전문 용병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도현으로서는 이곳 세계의 용병이 갖는 단순하면서도 계약에 충실한 삶이 가끔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약속과 신의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던 그는 뒤를 돌아다봤다.

야영지에서 잠을 자던 파먼이 교대를 해 주기 위해 밑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수고했네. 눈 좀 붙이게.”

“수고하십시오.”

도현이 모래언덕 밑으로 내려가려는데 파먼이 불러 세웠다.

“잠시만 기다리게. 이번 의뢰가 끝나면 무슨 일을 할 건가? 계획이 세워져 있나?”

“네, 갈 곳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음, 아닐세. 아무것도. 그만 가서 자게.”

파먼이 몸을 돌리자 도현은 잠시 그의 등을 바라보다가 몸을 낮춰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갔다.

사막 진입 3일째. 태양이 머리 높이 위치했을 때, 도현은 말로만 듣던 사막의 도적들을 볼 수 있었다.

입으로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낙타를 타고 측면 모래언덕 위에서 달려오는 그들의 수는 대략 30여 명.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는 릴리아와 호위대장 쪽을 쳐다봤다.

아직 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도망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주하는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저 정도 도적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전투준비!”

호위대장의 지시에 릴리아를 근접에서 호위하는 네 명을 제외한 호위대 다섯 명이 낙타 머리를 도적들에게 향하고 일렬로 나란히 섰다.

“뭐 하나?”

파먼이 도현에게 말했다.

“우리도 저들과 함께해야지.”

“아직 지시가 없었잖습니까?”

“별다른 지시가 없으면 항상 용병은 일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거네. 몰랐나?”

도현이 보니 말수가 적은 젊은 용병 우르틴은 이미 다섯 명의 호위대 옆에 낙타를 타고 함께 일렬로 서 있었다.

도현은 뒤늦게 파먼과 함께 호위대 옆에 나란히 섰다.

“전진!”

호위대장의 지시에 따라 여덟 명의 사내들이 일사불란하게 열을 맞춰 모래언덕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히야하하하! 이야하호!”

사막의 도적들이 외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그들이 흔드는 무기들이 햇빛에 반사됐다.

“유드루족이군.”

“저들을 아십니까?”

도현의 물음에 파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지. 저들은 통행세만 받고 상인들이나 여행객들을 보내 주는 일반 사막의 도적들과 다른 부류들이네. 가진 재물을 모두 약탈하고 마음에 안 들면 모조리 죽이기까지 하지. 아주 악랄한 자들이야. 덕분에 우리 같은 용병들이 먹고살고는 있지만.”

노인은 말을 맺으며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어느새 도적들은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였고, 도현은 닥쳐올 피비린내를 예감하며 검을 굳게 잡았다.

“발사!”

호위대장의 명령에 활을 소지한 다섯 명의 호위대와 우르틴은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크아악!”

“커헉!”

도적들 서너 명이 피를 뿌리며 동시에 낙타에서 떨어졌다.

쉬이이익! 피피핑!

호위대의 활 쏘는 실력은 주점에서 동전을 맞힌 우르틴 못지않았다. 쏘는 족족 도적들의 얼굴과 심장에 정확히 꽂혔다.

저들도 활을 쏘며 응사는 했지만, 달리는 낙타 등에서 호위대와 도현을 정확히 맞히기에는 그 실력이 많이 뒤처졌다.

“거의 다 왔다! 멈추지 말고 돌진해!”

도적들 중 덩치가 산만 한 자가 방패로 화살을 걷어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하들을 독려하며 모래언덕 밑에 진을 치고 있던 도현 일행에게 가까이 접근한 그는 으스스한 눈빛으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감히 우리에게 대항을 하다니! 가서 놈들을 찢어 버려!”

수백여 명의 도적들이 모인 유드루족에서 제법 싸움 실력이 출중한 그는 크게 고함을 지른 뒤, 잔인한 눈빛으로 바로 눈앞에 보이는 도현을 향해 큰 칼을 휘둘렀다.

“죽어라!”

바람이 크게 일며 도현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칼을 도현이 교묘히 감싸더니 옆으로 저만치 날려 버렸다.

“어?”

당황한 사내는 재빨리 화살을 막았던 방패로 도현이 내려치는 검을 막았다.

타앙앙!

강한 힘이 서린 도현의 검에 나무 판에 청동을 입힌 방패가 힘없이 옆으로 비켜났다.

사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방패 뒤에 있던 사내의 얼굴이 반쪽으로 갈라져 피 분수가 솟구쳤다.

툭.

30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던 도적의 우두머리가 허무하게 낙타에서 굴러떨어졌다.

사내의 피로 사막의 모래가 온통 붉게 물드는 것을 내려다보던 도현은 손쉽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는 자신의 냉정한 행동에 잠시 놀라다가 옆에서 덤비는 도적의 칼을 몸을 숙여 피한 뒤 사선으로 검을 그었다.

“크아아악!”

가슴이 갈라진 도적이 비명을 지르며 낙타 밑으로 고꾸라졌다.

“아주 깔끔한 솜씨군.”

낙타에서 뛰어내린 파먼이 도적의 등에 칼을 꽂으며 말했다.

푸욱.

도적의 몸이 부르르 떨리다 곧 움직임이 멈췄다.

“하지만 이왕이면 확실히 숨통을 끊어 버리게. 어차피 심한 부상을 입곤 사막에서 버틸 수도 없어. 고통만 줄 뿐이지.”

도현은 자신의 검에 가슴이 갈라지고 파먼의 검에 등이 꿰뚫려 비참하게 죽은 도적의 얼굴을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실력이 부족했으면 도적 대신 자신이 저 얼굴로 사막에서 누워 있었을 것이다.

도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주인 잃은 낙타들만 이리저리 움직일 뿐 도적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무모했어.’

활 솜씨가 뛰어난 호위대들을 향해 감히 겁도 없이 덤벼들던 유드루족의 행동은 불나방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서 벌써 반수 가까이 죽고, 근접전을 벌일 때는 이미 숫자상의 이득도 크게 보지 못할 상황. 결과는 너무도 빠른 그들의 전멸이었다.

도현은 화살을 수거하는 호위대와 우르틴을 잠시 바라보다 멀리 시선을 두었다.

‘무슨 소리지, 이게?’

바람을 타고 멀리서부터 은은하게 들려오는 괴성이 그의 귀를 파고들고 있었다.

“대장님, 도적들입니다!”

모래언덕 위에서 릴리아를 호위하며 사방을 감시하던 호위대원이 높은 모래언덕을 넘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도적들을 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얼마나 되나!”

“아직 확인이 안 됩니다! 끝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라오세요!”

릴리아가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명령하자 모두 서둘러 위로 올라왔다.

도현이 보니, 멀리서부터 그들을 포위하며 다가오는 자들이 수백이 넘었다.

“유드루족 전체가 다 몰려온 모양이군.”

파먼이 미간을 찌푸렸다.

호위대장은 돈을 주고 고용한 도현과 파먼, 우르틴을 둘러보며 빠르게 설명했다.

“우리는 정면 돌파할 거요. 당신들은 뒤에서 따라붙는 자들을 맡으시오.”

파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머리가 희도록 수십 년을 용병으로 싸운 그는 죽음은 두렵지 않다는 식으로 나오는 멍청한 의뢰인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적지 않게 보아 왔다.

의뢰인도 죽고, 용병들도 죽는다.

“그나마 살 가능성이 높은 퇴로가 있는데, 굳이 삼면을 포위하며 다가오는 저들과 왜 정면으로 싸우겠다는 겁니까?”

그들이 지나왔던 길을 파먼이 언급하자 호위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왔던 길로 돌아갈 수 없소. 추적하는 자들이 있고, 그들과 조우하면 뒤를 쫓는 도적들과 양쪽에서 협공을 당할 우려가 있소. 시간이 없으니 이대로 따라 주시오.”

호위대장의 지시에 파먼은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뒤를 쫓는 적이 있다고 하니 새삼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짐 낙타는요?”

도현이 묻자 호위대장은 짤막하게 대꾸했다.

“버리시오.”

릴리아를 중심으로 화살촉처럼 뾰족한 진형을 짠 호위대원들은 모래언덕을 내려갈 준비를 했다.

도적들이 삼면을 포위하며 새까맣게 밀려들고 있었고, 낙타 수백이 달리는 소리에 온 사막이 들썩이는 듯했다.

숨을 고르며 지시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도현은 아주 길게 느껴졌다.

후미를 맡고 있는 도현은 옆을 봤다.

파먼과 우르틴이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용병으로서 감내해야 할 위험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들은 두려움 없이 담담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침착하자. 다가오는 적들만 막으면 돼.’

도현은 수백의 적이 아니라 자신의 공간 안에서 직접 칼을 주고받을 몇 안 되는 적들만 생각했다.

‘단호하게. 두 번 칼을 쓰지 않도록.’

체력 낭비를 최소화할 생각을 다지며 그는 전면을 응시했다.

‘시작됐어.’

호위대장이 어딘가를 가리키자 호위대들이 미리 시위를 당겨 놓은 활을 들어 일제히 그곳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크아아악!”

“커헉!”

호위대들은 집요하게 호위대장이 가리킨 곳을 향해 있는 화살을 다 쏟아부었다.

숨 몇 번 들이마시는 시간 동안 수십 발의 화살이 적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고,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흩어져라!”

촘촘히 붙어서 달려들던 도적들이 놀라며 서로 간에 거리를 두었고, 그 순간 호위대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사막 가득 메아리쳤다.

“돌격!”

화살로 적의 포위망을 느슨하게 만든 호위대는 적들이 다시 인의 장막을 치기 전에 번개처럼 적들에게 들이닥쳤다.

“막지 마라!”

용맹한 호위대들은 낙타 위에서도 검을 아주 잘 다뤘는데, 그들의 기다란 양손 검이 좌우로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도적들의 목과 팔이 한꺼번에 하늘 높이 솟으며 피비를 내렸다.

무자비한 칼질에 앞을 가로막던 도적들의 기세가 주춤했고, 그 사이를 호위대들이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갔다.

“비켜라!”

제일 선두에 선 호위대장은 겁도 없이 정면에서 덤비는 도적의 몸을 낙타와 함께 두 동강 내며 바람처럼 앞으로 내달렸고, 그 뒤를 호위대들이 릴리아를 물샐틈없이 보호하며 옆으로 계속 칼질을 해 댔다.

피가 튀고 신체 일부와 살점 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사막을 붉게 물들였다.

후미를 맡으며 10여 명도 넘게 베어 넘긴 도현은 도끼를 휘두르는 도적의 목에 구멍을 내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그의 얼굴 위로 날이 퍼렇게 선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후우.’

코로 짧게 숨을 들이마신 그는 낙타를 몰며 그의 옆에서 칼을 휘두른 도적의 허리를 그대로 검으로 썰어 버렸다.

“으아악!”

비명과 함께 허리가 잘린 도적이 처참한 모습으로 멀어져 갔다.

잠시 도적의 죽음을 바라보던 도현은 쫓아오는 적들의 공격을 막으며 사선으로 검을 그었다.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상반신이 반듯하게 분리된 적이 낙타 등에 피를 왈칵 토해 냈고, 짧은 단도를 집어 던진 도적은 도현이 검으로 단도를 쳐 낸 뒤 허공에서 받아서 다시 던지자 그 단도에 이마가 꿰뚫려 죽었다.

참혹한 광경이었지만 감상에 젖을 순간이 없었다.

사방에서 그들의 뒤를 쫓아 도적들이 낙타를 타고 맹렬히 추격하고 있었다.

“커헉!”

외마디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도현은 적의 칼을 막아 내며 힐긋 옆을 돌아봤다.

파먼이 쌍검으로 도적을 잘 막아 내고 있었다. 그 옆에 우르틴 역시 피를 얼굴에 잔뜩 묻힌 채 도적들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끝까지 진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잘하면 살 수 있겠어, 하하하!”

파먼과 우르틴의 웃음소리에 도현이 화답하듯 옆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도적의 가슴을 길게 베어 냈다.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한다!”

피를 뒤집어쓴 호위대장의 지시에 맞춰 전 인원이 화살촉 진형을 더욱 공고히 하며 몸을 바짝 낮췄다. 포위망을 뚫는 데 성공하자 도적들이 사용하지 않고 있던 활을 들어 뒤에서 마구 쏘아 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기세를 타고 포위망을 뚫은 도현 일행은 튼튼하고 빠르기로 소문난 얼룩 반점 낙타의 도움을 받으며 점점 그들과의 거리를 벌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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