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디 임팩트 3권 25화
그러나 그가 막 움직이기 직전, 그의 주변 곳곳에서 여러 마리의 럼스가 툭툭 튀어나왔다.
캬아아아! 크캬캬캬캬!
여러 마리의 럼스들이 둥글게 포위를 하자, 도현은 처음 반가워하던 얼굴을 거두며 어색하게 웃었다.
“천천히 하지, 한 마리씩.”
말을 끝내자마자 도현은 모래를 박차 올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럼스에게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타투를 통해 흡입되는 험벨 급의 몬스터 기운에 도현은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며 럼스와의 전투에 몰입해 갔다.
국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호선 피디는 꼭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부르셨습니까, 국장님.”
“왔어? 거기 앉아.”
곰처럼 체격이 우람한 최 국장의 목소리는 생긴 것과는 전혀 안 어울리게 여자처럼 가늘고 높았다.
이 피디를 소파에 앉혀 놓고 최 국장은 잠시 딴 일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전체적으로 시청률이 안 나와서 큰일이야.”
이 피디가 앉아 있는 소파 맞은편에 앉으며 최 국장이 분위기를 잡고 말했다.
“다른 채널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 피디는 무심코 말하다가 얼른 입을 다물며 최 국장을 쳐다봤다.
은단을 꺼내 씹으며 최 국장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게 정상인가?”
“아, 아닙니다, 국장님.”
“난 자나 깨나 시청률 걱정에 밥이 안 넘어가던데, 자네는 그렇지 않은가 보지? 회사가 문 닫고 이력서 들고 다녀 봐야 정신이 들지? 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이 피디는 실컷 갈굼을 당해야만 했다.
“어떻게 됐어, 그 사람은?”
“백도현 씨 말입니까?”
“그래.”
이 피디는 은단을 씹으며 노려보고 있는 최 국장의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연락이 없습니다.”
“없으면? 그냥 기다리면 끝이야?”
이 피디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만났지만 정말 그 사람은 방송을 하기 싫어했습니다. 차라리 일본 방송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이게 얼마나 흥미로운 소재인데. 자네 감 안 와? 일본 쪽 애들도 그걸 꿰뚫어 보고 연락을 해 온 건데.”
“저도 시청률이 아주 높게 나올 거라는 건 예상이 됩니다. 이미 사과 베기 검객으로 화제의 대상이 됐으니까요. 하지만 당사자가 싫다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 제작은 포기해야 한다, 그 말이지?”
최 국장의 으스스한 눈빛에 이 피디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포기가 아니라, 당사자가 싫다고 하니까…….”
“정말 못 하겠어? 사람 한 명 설득시키는 게 그렇게 어려워?”
이 피디는 점점 강해지는 최 국장의 압박에 마음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다시 한 번 만나 보겠습니다.”
“젠장, 연락도 안 되고, 사람도 없고.”
이 피디는 문이 잠긴 지하 도장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도현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 봐도 받지 않자 직접 찾아왔지만, 도장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땐 좋았는데 말이야.”
도현의 환상적인 사과 베기를 방송에 내보내고 높은 시청률을 얻었지만, 그 뒤로 최 국장이 그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지하 계단에 앉아 어쩌다 자신의 신세가 이렇게 됐는지 한탄을 하던 그는 담배를 계단에 버리고 발로 비벼 껐다.
“아저씨, 담배꽁초를 왜 거기에 버려요?”
때마침 나타난 용주가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한 소리 하며 내려왔다.
“예?”
“담배꽁초 주우세요.”
“아, 네. 죄송합니다.”
이 피디는 담배꽁초를 주우며 계단 위에 서 있는 용주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어디서 본 얼굴이다 했는데, 전에 사과하러 왔을 때 미모의 여성과 함께 도장 안에 있던 사람이었다.
“저어, 혹시 백 관장님 친구분 아니세요?”
“예, 맞아요. 이 피디님이시죠?”
용주가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하자 이 피디는 웃으며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그렇습니다. 이호선이라고 합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명함을 받은 용주는 새로 판 자신의 명함도 슬쩍 내밀었다.
성진빌딩 부장 조용주라는 그의 명함에 이 피디는 어리둥절했다. 성진빌딩은 이 상가 건물 이름이었는데, 난데없이 부장 타이틀을 붙여 놓은 용주가 이상한 것이다.
“험, 여기 빌딩 관리를 해서요.”
그의 한마디에 이 피디는 바로 알아들었다.
‘빌딩 주인하고 가까운 사이인가?’
젊은 사람이 건물을 관리한다는 말에 이 피디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용주를 쳐다봤다.
“백 관장님하고 연락이 안 돼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도장 문이 닫혔네요.”
“도현이는 당분간 만나기 어려울 겁니다. 수련하러 갔거든요.”
“수련요? 어디로요?”
“그런 곳 있어요. 연락 안 되는 곳요.”
이 피디는 깊은 산속이라도 들어갔나 싶었다.
“언제 오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도현이 마음이라서요. 근데, 무슨 일로 도현일 찾으세요?”
“아, 그게.”
“방송 출연 문제로 오셨다면 마음 접으세요. 도현인 방송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용주는 말을 하며 도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홍영 씨가 없으니까 허전하네.’
홍영이 며칠 전 상해로 떠나고 나서 조용해진 도장이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친척의 연락을 받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다.
‘도현이는 잘 있겠지?’
용주는 도장 중앙을 쳐다봤다. 도현이가 사라졌던 공간이었다. 언젠가 저곳에서 뿅 하고 나타날 것이다.
문을 빼꼼히 열고 용주의 등을 바라보던 이 피디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산으로 수련을 가셨는지 알려 주시면 제가 찾아가 보겠습니다.”
이 피디의 말에 용주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몰라요.”
용주는 도장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계단 위로 올라가자 이 피디는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주변을 공략하는 방법도 하나의 계책이지.’
그는 철옹성 같은 도현을 무너트리는 방법으로, 가까운 사이로 보이는 용주와 친해져 보기로 했다.
용주는 5층으로 올라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옛 스포츠 댄스 학원 자리를 둘러봤다. 샤워실을 손보고, 바닥을 운동하기 좋은 마룻바닥으로 교체하고 있었다.
“새로 체육관이라도 들어오나 보죠?”
뒤따라온 이 피디가 은근슬쩍 물었다.
“안 가셨어요?”
용주는 뒤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를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곧 가려고요.”
“기다리셔도 도현이 만날 수 없어요. 정말 수련 갔으니까요.”
용주는 잠시 말이 없다가 그래도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해 줘야겠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엔 호검술 도장이 차려질 겁니다.”
“예? 호검술 도장요? 그럼 지하 도장은?”
“거기는 거기대로 있고요. 여긴 새로운 관원들을 모집해서 가르칠 곳이죠.”
“백 관장님이 가르치시는 겁니까?”
“아니요. 제가 가르칩니다. 호검술 도장의 사범 조용주가 말이죠.”
용주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어깨에 힘을 줬다.
“아! 사범님이셨군요?”
이 피디가 감탄을 하며 쳐다보자 용주가 헛기침을 했다.
“호검술이 배우기 쉬운 게 아니에요. 이 피디님도 도현이 검술 솜씨를 봐서 알겠지만요. 사범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습니다.”
“어쩐지 몸에서 예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범상치 않더라구요.”
“놀리지 마세요.”
“아녜요, 조 사범님. 여름 내내 검술 관련 프로그램을 촬영하느라 전국에 검객들을 상당히 만나 봤는데, 그들 태반은 조 사범님보다 못했습니다. 딱 보면 느껴지거든요.”
“그런 말을 제가 좋아할 것 같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용주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라는 걸 그라고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 쪽으로는 그도 눈치가 빠삭하기 때문이다.
“저어, 조 사범님.”
“말끝마다 그렇게 사범님, 사범님 하지 마십시오. 나이도 저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시는 분이. 부담되네요.”
“그럼 동생이라고 부를까……요?”
이 피디는 말을 하다가 용주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자 재빨리 ‘요’ 자를 붙였다.
“뭐든지 적당히 거리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적당히.”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도현이가 돌아오면 찾아왔다고 전하겠습니다.”
용주가 말을 하고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하자 이 피디가 재빨리 따라가며 물었다.
“호검술 도장은 언제 문을 엽니까?”
한강 고수부지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말없이 바라보던 최태진은 옆에 모자 쓴 사내가 쓱 나타나자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요?”
“면목 없습니다. 목표물이 갑자기 증발해서.”
“혹시 낌새를 차린 건 아니고?”
“내가 쉽게 노출될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게 아니면 그가 왜 갑자기 사라졌겠소.”
“무도인이니까, 갑자기 산속이라도 들어갈 수 있지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최태진이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려 서지철을 응시했다.
“기회는 많았습니다. 당신이 여자를 건드리지 말라는 요구에 그 기회가 무산됐을 뿐.”
서지철의 말에 최태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프로답지 않은 변명이군. 돈을 받았으면 알아서 해결해야 하지 않나?”
“애초에 이런 짜증 나는 의뢰였다면 받지도 않았을 거요.”
“그럼 포기하시오. 돈은 내놓고.”
“그럴 수 없지.”
서지철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은 그는 최태진을 보며 말했다.
“맡은 일은 반드시 해낸다는 게 내 철칙입니다. 미안하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주시오. 놈이 나타나는 순간, 녀석에게 지옥의 몽둥이맛이 뭔지 똑똑히 알게 해 줄 테니까.”
사막을 무사히 통과해 동남쪽으로 길을 잡고 열흘 넘게 이동을 한 도현은 블랙리버 옆에 세워진 도시 벨버스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가득했는데, 바다와 같이 거대한 블랙리버의 풍부한 물고기들을 잡는 어선들과 블랙리버를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는 무역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 돋보이는 거대한 배 한 척이 있었는데, 바로 블랙리버를 건너 반대편 죽음의 대지에 위치한 다크캐슬로 가는 정기 여객선이었다.
‘결국 도착했군. 저 배만 타면 다크캐슬이야.’
먼지가 가득한 옷차림의 도현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매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딘과 헤어지고 무려 40일 가까운 긴 여행이었다. 중간에 길을 잃기도 하고, 사막에서 큰 전투를 벌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밤낮없이 말을 타고 이동하기도 했다.
그런 끝에 마침내 검은 물고기들이 산다는 블랙리버에 도착한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벨버스의 선착장을 바라보던 도현은 다시 벨버스 도심지로 향했다.
그는 보석 상점에 들어가 호위대장이 준 사파이어 원석을 꺼냈다.
“이걸 목걸이로 교환하고 싶은데요.”
“어디 봅시다. 흠, 품질이 괜찮군.”
보석 상점 주인은 자신의 가게에서 세공해 팔고 있는 목걸이 몇 종류를 보여 줬다.
그중 도현은 하나를 골랐다. 황금빛 고리가 연속해서 연결된 줄 위에 그가 가지고 온 사파이어보다 작은 사파이어 하나가 포인트로 박혀 있는 목걸이였다.
현대 세공 기술이 적용된 목걸이보다는 정교함이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그게 금화 30개 가치의 목걸이입니다. 손님께서 가지고 오신 보석이 금화 37개짜리니까, 그걸 사시면 금화 일곱 개를 거스름돈으로 돌려 드리지요.”
“이걸로 하겠습니다.”
도현은 상점을 나와 여관에 방을 잡았다. 창문 밖으로 멀리 강 위에 떠 있는 배들이 보였다.
저 강만 넘으면 강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린다는 죽음의 대지와 그 속에 위치한 도시 다크캐슬이 나온다.
그곳에 도착하면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이쯤에서 집을 한번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게이트가 생성되자 도현은 오래도록 못 본 홍영과 용주의 얼굴을 그리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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