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76화 (76/575)

[76] 디 임팩트 4권 1화

장철호

밤이 깊어지는 시각, 모자를 깊게 눌러쓴 서지철은 지그시 손에 힘을 주었다.

파삭!

단단한 호두 껍데기가 과자처럼 부서졌다.

‘저놈이라도 잡아서 알아내야 하나?’

길 건너 상가 건물에서 용주가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전화 통화를 하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웃는 모습이 꼭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아, 순간 울컥할 뻔했다.

‘도대체 며칠이야.’

사라진 도현을 기다리며 호검술 도장 건물과 도현의 집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데, 도통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태진에게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정작 그는 매일매일이 그렇게 지루하고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백도현! 묵사발을 만들어 주마!’

이를 갈던 그는 크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요 며칠 늦가을 찬 바람을 밤새워 맞으며 지냈더니 기가 막히게도 감기에 걸린 것이다.

‘기침이 멈추지 않아.’

사라진 도현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인지 일본 삿포로의 눈 속에서 이틀을 버티며 의뢰를 완수했을 때도 걸리지 않았던 감기가 걸려 버렸다.

“으엑. 쿨럭, 쿨럭.”

몸을 웅크리며 심한 기침을 하던 그의 옆에 용주가 섰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에 서 있던 용주는 서지철이 계속해서 심하게 기침을 해 대자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아저씨, 괜찮아요?”

“…….”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던데, 쉽게 보지 말고 병원에 가 보세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침을 하던 서지철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쌍놈의 새끼가.’

뺀질뺀질하게 생긴 용주가 그렇게 얄밉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걱정돼서 한 소리예요.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눈치 빠른 용주는 얼굴을 가린 사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려 하자 서둘러 말하며 바뀐 신호를 타고 후다닥 횡단보도를 건너가 버렸다.

“하나같이 짜증 나는 것들이야. 백도현도, 저놈도! 으엑, 쿨럭, 쿨럭!”

한번 시작된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몸에서 열이 올라와 어질어질했다.

그는 유료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자신의 차로 돌아와 식은땀을 닦아 내며 한동안 숨을 돌렸다.

“피곤하군.”

전문 해결사로 일한 지 여러 해가 됐지만, 이번 의뢰처럼 별거 아닌 일에 심력을 쏟은 적은 없었다. 젊은 무도인 한 명을 몇 개월 병원 신세 지게 하는 손쉬운 의뢰였는데,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꼬였는지.

치이익.

가스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차창을 열어 담배 연기를 내보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하 도장이 문제야…… 지하 도장이.”

어떻게 된 녀석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도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자도 함께 붙어 다녀서 기회를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여자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에 어쩔 수 없는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도장에서 죽치고 있는 도현이 문제였다.

“검에 미친놈도 아니고.”

쓴 입맛을 다시던 그는 담배 연기를 깊숙이 흡입하다가 안에서 터지는 기침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다시 기침을 세차게 했다.

“도대체 어떤 도장인지 확인해 봐야겠어.”

새벽의 고요함을 만끽하며 서지철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잠긴 호검술 도장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안은 깜깜했고, 사람의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철컥.

문을 닫고 돌아선 그는 손바닥만 한 손전등을 꺼내 어두운 도장 내부를 비췄다.

오래된 마룻바닥과 벽면 한쪽을 장식하는 커다란 거울. 여기저기 손때가 많이 간 벽.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호랑이 눈의 사내.

백남식 관장의 액자 사진에 찔끔한 그는 멈췄던 기침이 다시 터져 나왔다.

“특별한 곳은 아닌데.”

호검술 도장 내부를 손전등에 의지해 살펴보던 그는 관장실로 보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흠, 진검이군.”

서지철은 벽에 걸린 도현의 수련용 진검을 장갑 낀 손으로 어루만져 보다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쿵!

별안간 들려오는 관장실 밖의 소리에 그는 깜짝 놀라 검에서 손을 떼며 재빨리 몸을 숙이고 밖을 살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서지철은 손전등으로 관장실 밖을 비춰 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코트 소매에서 곤봉을 빼냈다.

저벅저벅.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고요한 도장 내부를 흔들어 놨고, 그 소리는 어딘가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분명했고, 서지철은 굳은 얼굴로 곤봉을 손에 말아 쥐었다.

파앗!

도장 내부가 환해지면서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서지철은 똑똑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저자는!’

그토록 목메어 기다리던 도현이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는 속으로 꾹 참고 있던 기침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만 발산하고 말았다.

“쿨럭! 쿨럭!”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긴장의 끈을 풀어 놓고 있던 도현은 관장실에서 들려오는 큰 기침 소리에 천천히 몸을 돌려 바라봤다.

“거기 누굽니까?”

용주가 이 시간에 있을 수도 있었지만 기침 소리는 낯선 사람의 음색이었다.

스윽.

모자로 얼굴을 가린 적당한 키의 사내의 등장에 도현의 눈이 반짝였다.

체형이나 분위기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누구지?’

자신이 자리를 비운 그사이에 용주나 홍영이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었을지도 몰라서 그는 벽시계의 시각을 확인하며 조용히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의 물음에 대꾸 없이 서지철은 도현에게 걸어갔고, 도현은 가만히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다시 묻죠. 누구십니까?”

“지옥의 불방망이. 쿨럭, 쿨럭.”

서지철은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한 한마디를 뱉어 내고 그동안 참고 참아 왔던 인고의 세월을 한 번에 터트리며 번개처럼 곤봉을 휘둘렀다.

꼬맹이 시절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그에게 젊은 도현은 한주먹거리도 안 될 인물로 비쳤다.

설령, 지금 그가 중세 시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가죽 갑옷 차림에 허리에는 검을 매고 있어도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일본에서 야쿠자들이 휘두르는 칼에도 맞아 본 적이 없었다. 날렵하게 피한 후, 매서운 매질로 녀석들을 초죽음 만들어 버린 그에게 칼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휘이익!

바람처럼 날아오는 서지철의 자신감 넘치는 곤봉엔 강한 힘이 서려 있어서 그 기세가 도끼질을 하듯 힘차고 위압감이 넘쳐 났다.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지?’

이계에서 죽고 죽이는 실전을 여러 번 경험한 도현에게 기습이라고는 하지만 서지철의 공격은 아주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검을 뽑지도 않고 그는 몸을 반쯤 틀어서 곤봉 공격을 흘려 버린 후, 뒤따라 펼치는 서지철의 주먹질을 손바닥을 활짝 펼쳐서 막아 냈다.

퍼억!

벽돌도 박살 낼 만큼 주먹을 수련해 온 서지철은 곤봉도 피하고 자신의 주먹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 내자 깜짝 놀라며 재차 곤봉과 주먹을 섞어 날렸다.

마치 복싱 선수처럼 스텝을 밟으며 도현을 가운데 두고 정신없이 움직이며 공격을 가하는 서지철에게 도현이 말했다.

“하는 짓 보면, 내 친구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은 아니군요.”

“…….”

“무술을 배운 티가 나는데, 왜 이러는 겁니까? 끝까지 말 안 할 겁니까?”

“쿨럭, 쿨럭.”

도현은 잔기침을 계속하며 공격을 가하는 서지철의 행동에 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나 그렇게 성격 좋은 사람 아닙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니까요.”

번쩍! 파앙!

도현이 복부에 일격을 가하자 서지철은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몸이 뒤로 날아갔다.

쿠웅!

벽에 크게 부딪힌 그는 오장육부가 비비 꼬이는 심각한 통증에 인상을 잔뜩 쓰다가 벌떡 일어나 다시 도현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쿨럭, 쿨럭!”

짐승 같은 울부짖음 속에 잔기침을 섞으며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도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릎을 반쯤 구부려 서지철의 양손 공격을 피한 도현은 양 손날로 그의 좌우 옆구리를 짧게 끊어 쳤다.

퍼벅! 퍼벅!

“허억!”

서지철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토해 내며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옆구리를 통해 전해져 오는 충격에 전신의 힘이 한 번에 쫙 빠져 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내가, 이 서지철이, 이딴 애송이에게.’

엉덩이를 치켜들고 상체와 머리를 도장 바닥에 대며 헐떡거리던 그는 눈동자만 움직여 위를 쳐다봤다.

도현이 그가 사용하던 곤봉을 손에 쥔 채 무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 누구지? 말 안 할 겁니까?”

서지철이 묵묵부답이자 도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꽤 아플 겁니다.”

곤봉이 주인의 엉덩이에 벼락처럼 꽂혔다.

철썩!

“허억!”

엎드려 있던 서지철의 몸이 활처럼 꺾였다. 세상에서 제일 아픈 부위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엉덩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일 만큼, 엉덩이를 통해 몸 구석구석 퍼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그런 큰 고통 속에서도 서지철은 신음을 흘릴 뿐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괜한 자존심 세울 필요 없습니다. 그래 봤자, 당신만 더 고달파질 뿐이니까요.”

철썩!

“허억!”

서지철의 몸이 허공으로 잠시 떴다 가라앉았다. 매질하면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도현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나 다름없었다.

도현은 고통을 참느라 도장 바닥을 손톱으로 마구 긁고 있는 서지철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다시 곤봉을 위로 치켜들었다.

“잠깐! 말하겠습니다. 쿨럭, 쿨럭.”

기침을 연신 뱉어 내며 서지철이 급히 소리쳤다.

“사정이 급해 도둑질을 좀 하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서 당황해서 그만…….”

“그 말,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린 아니지요?”

“정말입니다!”

코 옆에 작은 사마귀가 난 서지철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런 도장에 돈 될 만한 게 뭐가 있다고요? 다른 의도로 도장에 온 게 아닙니까?”

도현이 추궁하듯 물었다.

“차마 집을 털 수는 없었습니다. 고민하다가 그만 눈에 보이는 도장 간판에 시선이 가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래서는 안 됐는데요, 흐흐흑! 제발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의 행동에 도현은 반신반의 했다. 조금 전 자신을 쳐다보던 눈빛은 도둑질하다 당황한 눈빛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현의 시선이 한쪽에 떨어져 있는 서지철의 갈색 지갑으로 향했다. 싸우는 와중 떨어진 모양이다.

지갑 안에는 그의 신분증과 얼마간의 돈, 그리고 사진 한 장이 반으로 접혀 있었다.

펼쳐 보니, 열 살 전후로 보이는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를 가운데 두고 서지철과 한 여성이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누구죠?”

도현이 사진을 보여 주며 물었다.

“제 딸과 아내입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하는 서지철의 모습에 도현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정스러운 얼굴로 서지철의 허리를 감싸고 서 있는 여자아이의 행복한 모습에 감정이 크게 흔들린 것이다.

“일어나세요.”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서지철이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난 당신 말을 다 믿지 않습니다. 반반입니다.”

도현의 다소 냉정한 말에 서지철의 눈꺼풀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이…… 조금 더 당신 말을 믿고 싶도록 만드는군요.”

사진을 접어 지갑에 다시 넣은 도현은 서지철에게 지갑을 돌려줬다.

“경고합니다. 아니, 부탁하죠. 오늘 도둑질하기 위해 우연히 들렀다는 당신의 말, 그대로 믿고 싶습니다. 그 사진 속 아이가 당신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도록 신경 쓰세요.”

서지철은 도현의 시선이 자신의 폐부를 꿰뚫어 보는 듯해서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서지철은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 똑바로 걸을 수 없어서 어기적거리며 도장을 빠져나갔고, 도현은 그런 서지철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