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디 임팩트 4권 3화
조폭들이 일어섰다. 덩치가 옆으로 퍼진 녀석들은 서지철을 체격에서 압도했다.
“눈깔 안 까나? 확, 이 개자슥이.”
두 녀석 중 한 놈이 서지철의 가슴을 손으로 밀치는 순간 서지철이 주먹으로 녀석의 손을 후려쳤다.
빠각!
손목이 탈골된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퍼억!
발등으로 주저앉은 녀석의 얼굴을 걷어찬 서지철은 다른 한 녀석이 덤벼들자 팔꿈치로 턱을 올려 쳤다.
눈이 돌아가며 뒤로 쓰러지는 사내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서지철이 천천히 기절한 사내의 머리를 안전하게 대리석 위로 올려놨다.
그대로 넘어갔다면 머리가 부서질 상황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
서지철의 으름장에 손목이 탈골된 사내가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그의 코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실패했다고?”
최태진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흐르는 한강 물을 바라봤다. 시간만 끌더니 기껏 와서 한다는 소리가 실패했다고 한다.
“이거 실망인데. 믿고 일을 맡겼더니, 상대방에게 경각심만 심어 준 꼴 아닌가?”
최태진의 힐난에 서지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 잘못만은 아닙니다. 그는 당신이 말한 것처럼 평범한 검도 관장이 아니었으니까요.”
“평범하든 비범하든 그 정도는 감안해서 일을 처리했어야지. 그게 프로 아닌가?”
“프로도 가끔은 실수하는 겁니다.”
“실수라…… 지옥의 몽둥이맛을 보여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최태진이 그늘진 눈빛으로 서지철을 응시했다.
“나도 웬만하면 핑계 대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할 말이 많습니다. 그는 정말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인물이었어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접근 방법을 달리했을 겁니다. 쿨럭, 쿨럭.”
서지철이 병자처럼 기침을 심하게 하자 최태진이 그와 거리를 약간 두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마음에 안 든다는 시선으로 한동안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서지철을 응시하던 최태진은 왜 이런 사람을 고용했는지 후회가 됐다.
“받은 돈 내놓고 이 일에서 손 떼시오.”
“뭐요?”
기침을 간신히 멈춘 서지철이 발끈하며 최태진을 노려봤다.
“내가 이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와 빼앗긴 시간이 얼마인데.”
“그럼 성공했어야지. 당신의 어설픈 행동을 더는 신뢰하지 못하겠소.”
“말을 너무 쉽게 하는군. 어설프다니. 내 화려한 전적을 일일이 말해 줘야…….”
“관심 없어. 지금 일이 중요하지.”
최태진이 냉정한 말투로 그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나도 중요해! 당신만 이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받은 의뢰금을 다 써 버렸나? 그래서 그러는 거야?”
“천만에. 내 자존심을 위해서야. 내 뭉개진 자존심.”
서지철은 손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난, 단 한 번도 의뢰받은 일을 중간에 포기한 적이 없어. 그 기록을 끝까지 유지할 거야.”
“별난 집착이군.”
최태진은 피식 웃으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지철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과연 이 사람을 끝까지 믿고 일을 맡겨야 하는지 고민이 된 것이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서지철은 기침을 계속하고 있었다. 신경이 쓰인 최태진이 한 소리 했다.
“기침 좀 그만하면 안 되겠나?”
“나오는 걸 어떡하란 말이오.”
“당신은 지금 내게 미안해서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사람이야. 한 달간 도대체 한 게 뭐냐고!”
최태진이 검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참았던 화를 터트렸다.
“냉정해집시다.”
“뭐야?”
“우리는 지금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의뢰인과 해결사라는 입장을 떠나서 말입니다. 우리끼리 싸워 봤자 득이 될 게 없다는 거죠.”
“난 아직 당신을 그대로 고용해야 할지 결정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당신은 내게 투자한 돈을 날리는 겁니다. 왜냐하면 돈을 돌려주지 않을 테니까요. 쉽게 갑시다. 내게 시간을 더 주시오. 백도현 그자의 똥구멍에서 똥이 줄줄 새어 나올 때까지 손을 봐 줄 테니까.”
“그쪽 동네 정말 살벌하다. 죽고 죽이고.”
사막에서 최후를 맞은 릴리아의 호위대 얘기를 들은 용주는 소주잔을 비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주에 삼겹살을 먹으며 듣는 도현의 무용담 아닌 무용담은 들을수록 흥미진진해서 고기와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아침에 짧게 들었던 이계에서의 이야기와는 또 달라서 용주의 입에서는 추임새 짙은 여러 말들이 쉼 없이 튀어나왔다.
“너하고 맞짱 뜬 노인네 말이야. 아주 간담이 서늘했겠다. 흐흐흐, 용병이라고 같잖게 봤다가 마법사도 다치고 낙타도 죽었으니 말이야.”
“간담이 서늘했던 건 오히려 나였어. 그 사람의 검에 깃든 힘이 다혜 씨 사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았거든.”
도현은 용주의 빈 잔에 소주를 부어 주며 분한 눈빛으로 멀리서 지켜보던 케일 경을 떠올렸다.
그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마법사를 보호하려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긴장 좀 해야겠다.”
“좋지, 그런 긴장감은.”
눈을 빛내며 답하는 도현의 호기로운 모습에 용주가 혀를 찼다.
“조심해, 인마. 강해지러 가는 거지, 죽으러 가는 거 아니니까. 이모! 여기 삼겹살 3인분 더 주세요! 마늘도 더 주시고요!”
주문을 한 용주는 시끌벅적한 식당 안을 잠시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쪽 동네 마나 수련법이 내공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까?”
낮에 도현은 기회가 되면 이계에서 마나 수련법을 구해서 연구해 보겠다고 했다.
“우리 주위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질이 다른 수많은 기운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이 기운들 중 사람의 몸에 이롭고 힘이 되는 것들을 축기를 통해 모아서 신비로운 힘, 내공을 만들지. 그쪽의 마나 수련법도 결국은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계의 기운을 몸속에 축적하는 방법이 이곳에서도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도현은 용주와 홍영에게도 내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태선군을 향해 복수를 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공을 이용해 고차원의 무예를 펼치는 무도가로서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지금 그가 아는 내공심법은 한석호가 사용하고 있을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지리산 도인이라는 노인에게 술을 사 주고 얻은 양생술 같은 단전호흡법 하나.
나쁘지 않았지만, 내공의 씨앗을 얻는 데 무려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용주와 홍영에게 무작정 권할 수 없는 이유였다.
효과적이면서도 내공 형성이 바로 이뤄질 수 있는 방법.
용주와 홍영에게도 필요했고, 자신 역시 언젠가 이계와의 인연이 끊어질 때를 대비해서라도 갖추어야 한다.
“잘되면 좋겠다. 내가 내공이 생기면 태선군을 그냥! 야, 마셔! 아무튼 무사히 돌아와서 고맙다. 계속 이렇게 와야 돼. 알았지?”
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용주의 소주잔에 자신의 잔을 소리 나게 부딪쳤다.
“근데 차는 왜 안 샀어?”
2년 전 빚 때문에 차를 팔고 걸어 다니는 용주였다.
“똥차 타고 다니는 네가 차를 안 바꾸는데 내가 어떻게 새 차를 사겠냐?”
통장 관리는 용주가 하고 있었다. 내 돈 네 돈 가리지 않는 둘 사이였지만, 통장의 돈을 필요하면 마음껏 사용하라는 도현의 말을 용주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했잖아. 난 나중에 바꾼다고.”
“통장에 한 100억 있으면 내가 눈 딱 감고 펑펑 쓰고 다니겠지만, 5층 공사비 나가고 남은 돈이 5000 남짓인데, 어떻게 써, 인마.”
용주는 쌈을 싸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말을 이었다.
“얼른 이계에 가서 돈 벌어 와라. 형님 좋은 놈으로 새 차 한 대 뽑게.”
“홍영 씨 주려고 가지고 온 목걸이 팔까? 그 돈으로 차 살래?”
“미친놈. 말하는 거 봐. 됐어, 자식아. 이 형님은 3억짜리는 타고 다닐란다.”
용주의 장난스러운 말에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술을 입에 댔다.
“5층 도장 말이야. 너 이계로 다시 가기 전에 열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자. 건물 앞에 현수막도 하나 걸고, 전단지도 좀 뿌리고.”
“어? 너 웬일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냐?”
“이계로 가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관원 있는 거 보고 가고 싶어서 그런다. 오면, 또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야, 걱정 마. 벌써 확실한 관원 한 명은 확보했으니까.”
용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누군데?”
“이호선 피디. 5층에 문 연다니까 관원으로 등록하겠다고 했어.”
“음.”
“알아, 자식아. 무슨 말 하려는지. 의도가 있을 수 있겠지. 그래도 그게 무슨 상관이냐? 도장에서 흘리는 땀은 진짜 가짜가 구분 없는 순수한 땀인데.”
“오래 버텼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말하며 술잔을 비우던 도현의 시선이 벽걸이 TV로 향했다. TV에는 국내 격투기 대회를 중계방송하고 있었다.
케이지 안의 성난 두 맹수가 피를 튀기며 싸우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흥분시키겠지만, 안에서 싸우는 이들은 고독해 보였다.
한동안 말없이 격투 장면을 지켜보던 도현이 용주에게 조용히 물었다.
“철호 형은 잘 지내고 있을까?”
“누구?”
“장철호.”
“에이, 그 인간 얘기는 왜 꺼내냐? 술맛 떨어지게.”
용주가 인상을 팍 썼다.
“관장님이 그렇게 잘해 줬는데, 배신 때리고 간 인간.”
“격투기가 좋다고 갔잖아. 그렇게 미워하지 마라.”
“갈 때 가더라도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갔어야지. 오갈 데 없는 사람, 관장님이 자식처럼 돌봐 주고 너랑은 한집에서 몇 년을 살았냐?”
도현은 무거운 표정으로 술잔을 들여다봤다.
보육원 출신인 장철호는 그보다 다섯 살 많았고, 한집에서 3년을 살았다. 그는 검이 좋다며 열심히 배웠고, 후에는 아버지가 없을 때 사범 노릇을 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별안간 검을 놓고 격투 선수로 나섰다. 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그리고 그는 짐을 싸서 나갔다.
친형처럼 그를 따랐던 도현은 실망했고, 용주는 장철호의 행동을 배신으로 보고서 욕을 해 댔다.
그때가 도현과 용주가 고 2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호검술 도장의 유일한 사범을 잃었지만, 오히려 TV에서 가끔 장철호의 경기 모습을 볼 때면 술을 마시면서 응원을 하셨다.
미우면서도 정이 든 사내.
도현은 소주를 따라 마시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나갔으면 잘되기라도 해야지.
“내가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관장님 정신병원에 계실 때 코빼기 한번 내비치지 않은 건 절대 용서 못 한다.”
“장례식 때 왔었잖아.”
“빌어먹을!”
어떻게 소식이 들어갔는지 그는 수척한 얼굴로 나타나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서 한동안 오열을 했다. 그리고 조의금으로 100만 원을 놓고 갔다.
반년 전 어깨 부상으로 격투 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가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은 그가 사라진 뒤에나 누군가로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내부 장기가 으스러지고 조각나 돌아가신 아버지 일로 인해, 모든 정신이 다 그쪽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저 격투 화면을 보기 전까지는.
“철호 형, 연락처 알아볼까?”
“됐어, 인마. 뭐하려고.”
용주가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가 호검술을 배울 때 웃으며 격려해 주던 사람이 장철호였지만, 그만큼 더 미웠다.
해가 지도록 비좁은 주택가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한 장철호는 반장이 모는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양손이 멀쩡한 다른 인부들과 달리 한 팔을 사용할 수 없었던 그는 남들이 간식을 먹으며 쉴 때도 꾸준히 일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같이 일하는 인부들 사이에 꼭 말들이 새어 나왔다.
실상, 그는 다른 인부들보다 작업량이 훨씬 많았다. 그도 알고, 동료 인부들도 알고, 심지어 차를 모는 나이 지긋한 반장도 안다.
-요즘 누가 팔 병신에게 자리를 내주나? 일할 사람 천지인데.
자극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반장이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장철호를 계속 데리고 다닌 사람은 다름 아닌 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