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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84화 (84/575)

[84] 디 임팩트 4권 9화

타투를 이용해 게이트를 몇 번 열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조 박사는 예전의 반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물론, 단순한 스톤의 크기를 통한 결론이었지만, 도현은 그 말도 무시하지 않고 있었다.

어찌 됐건 스톤을 다시 찾을 수 없는 한, 아니 그가 스톤의 에너지를 흡수해 타투의 기능을 유지시키지 않는 한은 지금 있는 타투를 잘 이용해야 했다.

사실 항구 도시 벨버스에서 다크캐슬로 직행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이유는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그곳에서의 불가항력적인 위험 때문이었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따라서 그 전에 도현은 홍영과 용주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무사히 돌아올 거죠?”

그녀는 말을 하며 도현의 옆구리를 응시했다. 화살에 죽을 뻔했던 도현이었기에 그녀는 처음 그를 보낼 때처럼 담담한 표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걱정 말아요.”

도현은 말을 하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홍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올려놨다.

짧은 첫 키스를 한 도현은 홍영과 마주 보며 미소 짓다가 관장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용주가 팔짱을 끼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이 키스를 하려면 어제 했어야지. 그래야 진도가 더 나가지, 이 멍충이 자식.”

도현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 그는 홍영이 가까이 다가오자 얼른 말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지하 도장을 잠시 둘러보던 도현은 홍영과 용주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게이트를 열고 안으로 진입했다.

차에서 태선군이 내리자 기다리던 노일문과 주성하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사부님.”

태선군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왕석의 별장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수고들 했다. 그곳으로 가자.”

“예.”

노일문은 앞장서서 별장 밑에 흙과 돌로 메워져 있던 갱도로 들어갔다.

갱도 입구는 인부들을 동원해 제거한 커다란 돌과 많은 양의 흙들이 작은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

조명등이 점점이 불을 밝히고 있는 지하 갱도를 빠르게 걸어 들어간 태선군은 막다른 곳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석문을 보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겠지?”

“감히 어찌 제자들이 사부님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노일문과 주성하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그들의 머리 위로 태선군의 차가운 시선이 스치듯 지나쳤다.

“손전등을 다오.”

“여기 있습니다, 사부님.”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간 태선군은 손전등으로 석문 바닥을 자세히 살폈다.

최근에 문이 열린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내공을 끌어 올린 그는 가로세로 2미터 정도 되는 정사각형 모양의 석문 오른쪽을 가볍게 툭 쳤다.

우르르릉!

석문이 흔들리며 붙어 있는 오래된 흙과 먼지 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태선군은 다시 한 번 손바닥으로 석문의 오른편을 부드럽게 때렸다.

콰앙!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회전문처럼 돌아가며 한 사람이 다닐 공간이 나타났다.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낸 태선군은 뒷짐을 지며 말했다.

“예서 기다려라.”

“네, 사부님!”

태선군이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뒷짐을 지며 석문 안으로 들어가자, 긴장한 채 지켜보던 노일문과 주성하가 그때서야 길게 숨을 토해 냈다.

태선군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석문 뒤에는 또 다른 공간이 길게 이어진 것 같았다.

“사형, 아쉽지 않습니까?”

“아쉽다니?”

“사부님보다 먼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잖습니까?”

“아직도 그 얘기냐? 조금 전 보지 못했어? 그랬다면 사부님에게 발각돼 너와 난 큰 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핀잔에도 주성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사부님이 관심 둘 만한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공 아니겠습니까? 저 안에는 사부님도 탐을 낼 만한 그런 무공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주성하가 바로 옆에서나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계속 속삭였다.

“허튼소리.”

“아닙니다, 사형. 그렇지 않고는 발걸음이 무거운 사부님께서 친히 오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대사형이나 둘째 사형을 시키셨겠지요. 저희가 미덥지 못하다면 말입니다.”

“이미 무공이 절대 경지에 이르신 분이다. 더 이상 탐을 낼 무공이 있을까?”

노일문은 막내 사제를 보며 혀를 찼다.

“오원신공은 어떻습니까?”

“음.”

노일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형, 검선문 최고의 무공인 오원신공을 익히지 못한 사부님께서 무공에 대한 갈증이 없으시겠습니까? 그로 인해 무허 사숙에게 얼마나 고전을 했습니까?”

“주 사제, 말이 심하다.”

“압니다, 사형. 하지만 사실이잖습니까? 다 잡은 줄 안 무허 사숙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지금, 사부님께서는 문주 무공인 오원신공을 익히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실 겁니다. 무허 사숙이 온전히 몸을 회복해 나타나면 사부님께서 그를 다시 제압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노일문은 사부가 들어간 석문을 봤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주보다 무공이 고강한 사람은 우습게도 장로인 무허 사숙이었다.

“이미 그는 사부님께 철저하게 패했다. 다시 나타나도 사부님의 적수는 될 수 없어.”

“하지만 저희들은 다르지요.”

주성하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무허 사숙이 그 칼을 저희에게 돌린다면 어쩌실 겁니까? 그 칼을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노일문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말이 종잡을 수 없구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사부님 춘추 이미 여든을 훌쩍 넘으셨습니다. 무허 사숙 역시 마찬가지고요. 문주 자리를 놓고 견원지간이 된 두 분 때문에 검선문의 제자들이 피해를 보는 건 안 좋다는 뜻입니다.”

잠시 말을 끊은 주성하는 막내답지 않은 얼굴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세상에 나온 검선문은, 이제 열 명의 사형제들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고 싶은 게냐?”

노일문이 주성하의 목덜미에 단검을 댔다.

“사형, 사형만 모르시는가 본데 말입니다. 이미 사형제들 사이에 무수히 흘러나온 이야기들입니다. 아, 대사형은 제외하고요.”

주성하는 목에 닿은 칼날에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사형 손에 죽을 때 죽더라도 할 말은 마저 해야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새로운 문주를 지명하시지 않고, 물러나시지도 않고 계시잖습니까? 이건 옳지 않습니다. 저희 사형제들 사이에서 문주가 새로 나와야 할 시기이지요. 언제까지 저희들이 사부님 때문에 숨죽이며 살아야 합니까?”

“거두어 주고 무공을 전수해 주셨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노한 노일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사형, 무엇이 부끄럽다는 말입니까? 숭고한 정신을 유지해 온 검선문은 이미 사부님 대에 이르러 깨졌습니다. 사부님이 그렇게 만드셨지요!”

“…….”

“사형제들이 변한 게 이상한 겁니까? 타락해 버린 검선문에서요.”

단검을 든 노일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서, 앞으로 어쩌자는 거냐? 어디까지 이야기가 나온 거야?”

“아직 구체적인 건 없습니다. 노 사형께서 홀로 동떨어져 있지 않기를 바라며 드린 말이었습니다. 제가 노 사형을 좀 좋아합니까?”

주성하를 노려보던 노일문은 천천히 검을 거두며 물러났다.

“대사형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면 모두 다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훗, 대사형요?”

주성하는 청선의 무공 수위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적수도 못 됐다. 하물며 다른 사형제들을 어찌 이길까. 전대 문주로부터 사부 대신 오원신공을 전수받은 이가 바로 청선이라는 말이 은밀히 떠돌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말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왜 그런지는 짐작하실 겁니다. 그리고 너무 그렇게 정색하고 계시지 마십시오. 최악의 경우에 그렇다는 거지요. 아직까지 사부님은 저희들의 하늘 아닙니까?”

씨익 웃으며 말을 한 주성하는 얼마 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석문 뒤에서 걸어 나오는 사부를 맞이했다.

콰앙!

석문을 부수어 버린 태선군은 먼지가 차오른 갱도 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빠져나갔고, 그 뒤를 신법을 발휘한 노일문과 주성하가 부지런히 쫓았다.

벨버스 선착장에서 다크캐슬로 가는 여객선에 오른 도현은 배가 출항하기를 기다리며 배 난간 쪽에 서 있었다.

하늘은 화창했고, 강물은 투명하리만치 맑았다. 그 맑은 물속을 검은 물체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보였는데, 블랙리버의 특산물 검은 물고기였다.

블랙리버란 명칭은 강물이 검어서가 아니라 이곳에 사는 검은색 비늘을 가진 어류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배 난간에 팔을 걸치고 강을 묵묵히 내려다보던 도현은 뒤를 돌아봤다.

배 갑판에는 얼핏 봐도 100여 명가량 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상당수는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바로 칼을 뽑아서 휘두를 것처럼 인상이 험악하고 살기등등했다.

‘도망자들, 범죄자들.’

영주나 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다크캐슬로 향하는 사람들의 태반이 그런 부류라고 들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힘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 곳으로 소문난 곳.

“이 개자식들아!”

갑판 위 사람들을 쭉 훑어보던 도현의 시선이 소란스러운 선착장으로 향했다.

두 사내가 다크캐슬로 가는 배를 못 타게 가로막는 다섯 명의 사내들과 거친 칼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크악!”

길을 막은 한 사내의 가슴에 칼을 쑤셔 넣은 곱슬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파란 눈의 사내는 발로 사내를 걷어차며 자신의 검을 회수했다.

이어 몸을 숙이며 뒤에서 날아온 도끼를 피한 그는 도끼를 휘두른 사내의 몸을 강으로 힘 있게 밀어 버렸다.

풍덩!

한 사람을 죽이고 한 사람을 강에 빠트린 그는 자신의 동료 몸을 푸줏간 고기처럼 난도질하는 세 명의 사내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나도 있다, 이 새끼들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로 3명과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그를 향해 배 위의 사내들이 휘파람을 불며 응원을 보냈다.

“이봐! 힘을 내!”

“하하하! 곧 배가 떠나. 얼른 올라오라고!”

다크캐슬로 가는 배 위의 사람들의 일방적인 응원에 힘이 났는지 곱슬머리 사내는 연속으로 두 명을 쓰러트리며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퉤! 끝까지 할 거냐?”

“내 형제들을 죽인 네놈을 용서치 않겠다!”

남은 한 명이 황소처럼 달려들었지만 곱슬머리 사내는 몸을 피하며 그의 다리를 걸었다.

우당탕탕.

넘어진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꺼져, 이 자식아!”

사내를 깊은 강물에 빠트린 그는 엉망이 된 동료 시체를 잠시 바라보다가 짐을 챙겨 서둘러 다리를 지나 도현이 타고 있는 배에 올랐다.

“대단한데!”

“저 자식도 죽여 버리지 그랬나!”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내를 보며 갑판 위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날 쫓아오느라 목이 마를 것 같아서 말이야. 원 없이 물 좀 마시라고 나뒀지.”

사내다운 말투로 좌중의 폭소를 유발한 곱슬머리 사내는 피가 튄 짐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선 도현이 있는 배 난간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빌어먹을 자식들이, 끝까지 쫓아와서는.”

사내들을 물리치긴 했지만 그도 허벅지에 칼자국이 났다.

곱슬머리 사내는 가방에서 꺼낸 약초를 입으로 씹어 침과 함께 부상 입은 곳에 붙였다. 그러고는 누런 천으로 상처 입은 곳을 꽁꽁 둘러맸다.

“바보 같은 자식. 배에 다 와서 죽다니. 그러게 어제 술 좀 적게 마시라고 했잖아.”

혼잣말을 하며 상처를 치료한 그는 도현의 옆에 서서 선착장을 바라봤다. 벨버스 경비병들이 뒤늦게 시체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왜 저들이 당신을 잡으러 오지 않습니까?”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병들이 시체만 치우는 모습에 도현이 궁금했는지 물었다.

이곳은 다크캐슬이 아니었다. 엄연히 룰이 있는 곳이었다.

“이 배에 탄 많은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도현의 시선이 배에 탄 사람들에게 향했다.

‘같은 처지라는 건가?’

“죄 짓고 도망치는 자들만이 갖는 끈끈한 유대감이랄까. 뭐 아무튼 그런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지. 우리 같은 자들도 모이면 큰 힘이 되거든.”

씨익 미소를 보인 그는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죽은 동료를 향해 집어 던졌다.

“잘 가라! 지옥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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