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88화 (88/575)

[88] 디 임팩트 4권 13화

“에드, 거기서 뭐 하는 거냐?”

앞치마를 두르고 여관 밖에 서 있던 중년인이 에드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에드가 당황한 얼굴로 도현에게서 살짝 멀어졌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누런 앞치마를 두르고 휘적휘적 걸어온 중년인은 에드 옆에 서 있는 도현의 행색을 위아래로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복장을 보니 이제 막 다크캐슬에 온 사람 같구려. 잠자리는 정했소?”

“생각 중입니다, 어디서 잘지.”

“우리 여관이 아주 깨끗하고 좋은데. 다른 데는 더러워서 자지도 못해. 음식도 불결하고. 들어갑시다. 배고플 테니 내가 맛좋은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두둑하게 채워 주겠소.”

앞치마 사내는 도현의 팔을 잡아 여관 쪽으로 끌어당겼지만 도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버텨?’

다시 힘을 썼지만 도현은 미동조차 안 했다. 그제야 도현이 보통 인물이 아니란 걸 깨달은 앞치마 사내는 도현의 바지에 잔뜩 묻어 있는 핏자국을 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에드야, 이분 어디서 오셨냐?”

“밖에서 만났어요. 안내 좀 해 달라고 해서요.”

“다른 말 한 건 아니지?”

“네? 네, 안 했는데요.”

앞치마 사내는 에드를 살짝 노려보다가 여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는 사람이야?”

“옆집에 사는 아저씨예요. 여기 여관에서 일을 하고 있죠.”

“그래?”

도현은 왠지 웃음이 나왔다.

“여관 하룻밤에 금화 한 개라. 분명 과한 면이 있어.”

“그렇죠? 게다가 하룻밤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머물 곳이 필요하니까요.”

집이라는 말에 도현은 조금 전 거쳐 왔던 수많은 집들이 떠올랐다. 이곳의 사람들은 과거 고대인들이 살던 집터에 판자를 이리저리 올려 거주하고 있었다.

어떤 곳은 벽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지붕만 목재였지만, 어떤 곳은 목재가 상당 부분 차지한 곳도 있었다.

“대안이 있어?”

“여관에서 며칠을 머물며 낭비할 돈이면 집터와 재료를 구할 수 있어요. 여기서는 집이 없는 자들은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하니까, 돈이 떨어지기 전에 집을 마련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게 무슨 말이지? 보호를 못 받다니? 또 그게 왜 집과 관련이 되어 있지?”

도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을 사면 그 집이 위치한 구역 두목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거든요. 대신, 처음 집을 살 때 두목에게 돈을 줘야 하고, 매달 보호비를 일정 부분 내야 해요.”

‘세금이군, 보호를 빙자한.’

범죄자들이 많이 모인 이곳에서 당연하게 벌어질 일이긴 했다.

“어떻게 보호해 주지?”

“일을 하러 갔을 때 도둑으로부터 빈집을 지켜 주고, 만약 도둑이 들어서 뭘 훔쳐 가면 끝까지 추적해서 응징을 해 줘요. 못 찾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다 잡히거든요. 아시겠지만, 이 도시가 지저분해요. 집을 비우면 아마 지붕까지 다 뜯어 갈걸요?”

“맞아. 다 훔쳐 간다.”

토밀이 맞장구를 쳤다.

“넌 가만히 있어.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말고.”

“형도 어른 아니잖아. 열일곱 살밖에 안 됐으면서.”

“조용 안 해!”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서 그렇지 에드의 실제 나이는 이제 겨우 열일곱이었다. 동생의 입을 막은 에드는 다시 도현에게 말했다.

“그뿐 아니라, 다른 구역의 사람들에게 죽으면 대신 복수도 해 줘요.”

“복수까지?”

도현은 거창한 에드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에요. 어제도 다섯 명이나 대신 죽여 줬다고요.”

“만약 내가 죽으면 그 두목이라는 사람이 복수를 해 준다고?”

“네. 죽은 당신은 못 보겠지만 틀림없이 해 줘요. 대신, 당신의 집과 재산들은 두목이 그 대가로 가지고 가지만요.”

“그것참, 수지맞는 장사구나.”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버틸 수 있다고요.”

“넌 두목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가 보다.”

도현이 넌지시 묻자 에드는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당연하죠. 구정물 같은 이 도시에서 의리 있는 두목은 우리 두목밖에 없어요. 다른 구역의 많은 두목들과 비교가 안 된다고요!”

단단히 두목을 믿고 의지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난 네가 말한 두목의 구역에 자리를 잡는 게 좋겠구나?”

“제 말이요.”

에드가 씨익 웃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여관에서 잠을 자야겠다. 달리 갈 곳도 없잖아.”

“저희 집으로 가요. 여관보다 훨씬 싸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할게요.”

“뭔가 속는 기분인데?”

도현이 에드의 뒤를 쫓아가며 키 작은 토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토밀이 움찔했고, 에드는 어색하게 웃었다.

“여관보다 싸다는 말이지 정말 싸다는 말은 아니에요.”

낡은 식탁에는 다섯 명이 둘러앉아서 말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에드와 토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도현.

달그락거리는 나무 접시와 음식을 씹는 쩝쩝거리는 소리만 나는 식탁에서 도현은 조용히 손을 움직여서 자신의 배를 채웠다.

‘체하겠어.’

숨 막이는 침묵이 내리누르는 식탁이었지만 그는 돈을 지불했고, 몬스터와 싸우며 소비한 에너지를 보충해야 했다.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에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수프 좀 더 있습니까?”

도현이 접시를 내밀자 얼굴에 긴 칼자국이 있는 에드의 아버지 루드가 들고 있던 감자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며 옆을 봤다.

“갖다 줘.”

남자처럼 어깨가 넓고 힘이 세 보이는 뚱뚱한 어머니 앤은 의자를 뒤로 밀치며 일어났다.

걸을 때마다 바닥이 울릴 정도로 체중이 많이 나가는 앤은 국자로 마지막 남은 수프를 박박 긁어서 도현 앞에 내려놨다.

“고맙습니다. 맛이 좋네요.”

“많이 드시우.”

여자답지 않은 걸걸한 목소리로 앤이 답했다.

“운이 좋았나 보오. 수백 명이 죽은 데서 살아남다니.”

도현이 집 안에 들어설 때부터 경계의 시선으로 지켜보던 루드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그런 셈이죠.”

“갑옷과 옷에 피가 잔뜩 묻어 있던데, 몬스터와 싸웠소?”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도현의 대답을 기다리며 일제히 쳐다봤다.

주먹만 한 삶은 감자를 껍질째 씹던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겁쟁이는 아니었군. 몬스터에게 칼이라도 휘두르고 왔으니. 그 정도 용기면 이곳에서 굶어 죽지는 않겠어. 토밀, 가서 술하고 술잔 가지고 와.”

“네, 아빠.”

그동안 형과 눈치를 보며 늦은 저녁을 먹던 토밀이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 몬스터 숲의 열매로 담근 술과 술잔을 가지고 돌아왔다.

“받으시오. 다크캐슬에 왔다면 이 술에 적응해야 할 거요.”

루드가 붉은 빛깔의 술을 작은 술잔에 담아 도현 앞에 내려놨다.

“감사합니다.”

식초 향처럼 톡 쏘는 향이 강하게 풍겨서 마시기 꺼려졌지만, 루드는 물론 옆에 앉은 앤도 통 크게 한 번에 술잔을 비우는 모습에 도현은 속으로 웃으며 별수 없이 술을 마셨다.

“흡!”

응축시킨 레몬 원액을 마신 것처럼 시고 톡 쏘는 맛에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기침을 몇 번했다.

그 모습에 에드와 토밀이 큭큭댔고, 루드와 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성공했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하! 축하합니다. 다크캐슬에 온 걸! 그걸 마시면 이제 외지인이 아니지. 난 루드요.”

도현은 몇 번 더 쿨럭거린 다음 얼굴에 긴 칼자국이 있는 루드를 쳐다봤다. 그는 흰머리가 제법 많은 50대 사내였다.

“도현입니다.”

“난 앤이라우.”

지금껏 도현을 경계하며 살펴보던 루드와 앤이 이제야 이름을 밝히며 가깝게 다가왔다.

“미리 말해 두지만, 오늘 밤 잠잘 때 허튼짓하지 마시오. 오늘 나는 잠을 안 자고 당신이 잠든 옆을 지키고 서 있을 테니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눈빛을 보면 진심이었다. 이름을 교환하고는 있지만 아직 그는 도현에 대해 일말의 경계심까지 모두 푼 건 아니었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하시오. 이곳에 오는 놈들치고 좋은 놈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오. 나 역시 아주 악랄한 자였거든.”

그의 말에 아내와 아이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도현은 루드가 따라 주는 술을 받으며 작게 미소를 보였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저도 한 말씀드리죠. 전 잘 때도 검을 옆에 두고 잡니다. 옆에서 지켜만 보시고 가까이는 다가오지 마십시오.”

“오호! 오늘 밤이 기대되는데?”

루드의 장난기 가득한 말에 옆에 있던 앤이 옆구리를 툭 쳤다.

“그만해요. 그러다 이 사람 한숨도 못 자겠어요. 돈을 받았으니 오늘 밤 푹 자게 해 줘야죠.”

앤은 그러면서 바닥에 놓아둔 커다란 도끼를 어깨에 걸치며 도현을 노려봤다.

“날 우습게 보고 덤빈 사내놈들이 이 도끼 한 방에 모두 죽었다우. 명심하시우.”

“명심하죠.”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루드에게 잔을 내밀었다.

“한 잔 더 주시겠습니까?”

깊은 밤.

에드와 토밀, 앤은 자고 있었지만 루드는 의자에 앉아 도현이 누워 있는 곳을 주시했다.

그의 손에는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는 검이 들려 있었다. 식탁에서 한 말대로 그는 정말 잠을 자지 않고 도현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먼저 제안을 해서 데리고 온 사람이었지만, 웃으며 칼을 찌르는 곳이 다크캐슬인 이상, 조심해서 나쁠 게 없었다.

다만, 피곤했다.

도현이 편하게 늘어져서 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고, 어느새 그의 숨소리는 도현의 옅은 코 고는 소리를 따라 함께 위아래로 움직였다.

툭.

손에 들린 검이 바닥으로 미끄러졌고, 그는 의자에서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 잘 자던 그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도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허억!”

깜짝 놀란 그는 급히 검을 찾았지만, 검은 도현의 손에 있었다.

“다, 당신!”

“누워서 편하게 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도현이 검을 돌려줬다.

“제가 손을 쓰려고 했으면 벌써 썼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안해진 그는 검을 들고 일어났다.

“당신도 푹 자시오. 나 신경 쓰지 마시고.”

헛기침을 한 그는 의자를 들고 일어나 도현이 있는 방에서 나갔다.

도현은 가죽이 깔린 바닥에 가부좌를 틀었다.

단전호흡을 하던 그는 단전의 기운을 몸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전날 잡은 많은 몬스터의 기운이 단전에 자리 잡아 어느 때보다도 힘찬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침은 간단했다. 어젯밤에 먹다 남은 식은 감자와 물.

“우리는 다 이렇게 먹으니, 대충 먹으시우.”

뚱뚱한 앤이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는지 말없이 감자를 입에 넣는 도현에게 한마디 했다.

어제 받은 숙식비에 비하면 아침이 너무 성의 없어 보여 한 말이다.

“그래도 어젯밤에는 고기 넣은 수프를 대접했잖아.”

간밤에 잠을 설친 루드가 눈곱 낀 얼굴로 도현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당신도 여기서 지내다 보면 알겠지만,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그리 만만치 않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도현은 말을 하며 빈자리를 쳐다봤다. 에드와 토밀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다란 물동이를 지고 물을 길으러 나갔다. 그것이 그들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장난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미안해, 형.”

에드가 동생을 혼내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야?”

“물통이 부서졌어요.”

“뭐야?”

루드가 먹던 감자를 탁 내려놨다.

다크캐슬에서 나무는 귀했다. 도시 주변의 나무는 이미 오래전에 벌목해서 다 사라졌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나무들은 모두 몬스터가 출몰하는 지역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벌목하고, 운반해 온 것들이다.

물통이라고는 하지만, 가난한 그들에게 있어 물통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재산이었다. 도시에 있는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기르려면 당장이라도 다시 마련해야 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