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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90화 (90/575)

[90] 디 임팩트 4권 15화

도현은 불타고 있는 시체 더미를 보며 물었다. 저들은 간밤에 살해당하거나 병으로 죽은 자들로, 구역의 두목들이 정해진 곳에 모아서 소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넓은 길 한쪽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상황에 도현은 마음을 잠시 빼앗기다가 루드가 손짓하는 곳을 바라봤다.

“저기가 다 대장간이요. 아무 데나 가도 다 비슷비슷하니 시간 내서 가시오.”

대로를 따라 대장간들이 드문드문 존재했다.

“그런데 정말 좋은 무기나 방어구는 노스리어 상점가에 있으니, 참고하시오.”

“노스리어 상점가요?”

“저기 보이는 성 주변에 있는 상점들을 말하는 거요.”

도현의 시선이 어젯밤에 본 거대한 성으로 향했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크기가 장대해서 한눈에 들어왔다.

‘스므차 성주의 성.’

햇빛 아래 드러난 성은 높은 성벽을 비롯해 망루와 첨탑까지, 보이는 모두가 검은 칠을 해 놓은 듯 어두워서, 무겁고 답답해 보였다.

“성벽 외곽에 자리 잡은 노스리어 상점가는 이 도시의 중심지요. 몬스터 재료도 다 그곳에서 거래가 되고. 여자가 있는 고급 술집과 도박장도 있어서, 운 좋게 돈이 모이면 사내놈들은 죄다 그곳으로 몰려들지.”

“그곳은 어떤 구역의 두목들이 책임집니까?”

“두목?”

루드가 낮게 웃었다.

“스므차 성주의 성이 바로 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떤 놈들이 겁 없이 그곳을 기웃거리겠소? 도시의 두목들도 노스리어 상점가에서는 그저 손님으로나 가지,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오.”

“상점의 주인들은 스므차 성주에게 세금을 바치겠군요.”

“아마 그럴 거요. 한데, 여긴 어쩌다 온 거요? 말하는 거나 행동거지 보면 나와 같은 족속은 아닌데.”

스스로를 낮추며 루드는 은근슬쩍 물었다.

“몬스터 구경하러 왔습니다. 고대인이 살았다는 다크캐슬이 궁금도 하고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군. 혹시, 반역질을 해서 쫓기다 온 거요? 영주나 명망 있는 가문 소속의 사람은 아니고?”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이면 다른 취급을 받습니까?”

“그건 아니지.”

“그럼 그런 척할 필요가 없겠군요.”

도현의 농담에 루드가 껄껄 웃었다.

‘이곳은 살 만한데?’

빈민가처럼 보였던 수많은 집들과 지저분한 거리를 지나 대형 광장에 형성된 시장을 통과하자 점점 거리가 쾌적해졌고, 집들도 단층이 아닌 2층집이 많았다.

“아침에 내가 말했던 집값 비싼 동네가 여기요. 거리 뒤로도 이런 좋은 집들이 제법 되지. 정원이 있는 저택이 있다면 믿어지시오?”

“정원요?”

“여기도 부자들이 있고, 잘사는 놈들은 아주 잘산다오. 지킬 힘이 있는 놈들이지. 다크캐슬에 와서도 돈을 벌 재주도 있고.”

루드는 부러운 시선으로 잘 지어진 집들을 쳐다보다가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오늘 그를 고용한 몬스터 사냥꾼의 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뜰이 보였고, 탄탄한 몸을 가진 10여 명의 사내들이 그 뜰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사냥을 위해 합세한 몬스터 사냥꾼들이다.

이들 중 리더 역할을 하는 집 주인 왈스가 이마에 깊게 새겨진 주름을 손으로 만졌다. 주름이 얼마나 깊은지 손가락 끝이 푹 들어갈 정도였다.

험난한 인생을 거쳐 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주름이었다.

“짐꾼?”

“어차피 가는 길에 짐꾼들을 구하지 않습니까?”

루드는 말없이 뒤에 서 있는 도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까? 힘도 있어 보이고요.”

왈스는 잠시 도현의 위아래를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이는군. 이봐, 이름이 어떻게 되지?”

“도현입니다.”

“목숨을 걸고 사냥한 결과물들이 나중에 네 등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문제 일으키면 안 될 거야.”

왈스는 도현에게 경고를 한 후, 뜰 주변에 모여 있는 동료 사냥꾼들에게 말했다.

“그만 출발하지.”

도현은 뜰에 놓인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메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가는 도중 그들은 짐꾼 세 명을 더 고용했고, 그 세 명은 사냥꾼들이 짊어지고 있던 몬스터 사냥용 그물과 도구들을 떠안았다. 식량과 물 등 무게가 나가는 것들 역시 짐꾼의 책임이었다.

‘체력 소비를 최소화하고 사냥에 집중한다는 거지.’

도현은 세 명의 짐꾼들을 둘러보다가 앞서 걷는 루드의 등을 응시했다.

그는 집에서부터 가지고 나온 사각 방패를 자신의 분신처럼 들고 다녔다. 그는 사냥꾼이 아니었고, 싸움에 임할 필요도 없었지만, 스스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 비상용으로 늘 휴대하고 다닌다고 했다.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지. 당신도 명심하시오. 진짜 위험하면 짐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

-사냥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나야 가족이 있어서 보복이 두렵다지만, 당신은 혼자 아니요?

도현은 루드의 등에서 시선을 떼고 그 앞에 몬스터 사냥꾼들을 지그시 쳐다봤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질이 우수해 보이는 가죽 갑옷을 입은 그들은 각자 손에 익은 무기 외에 공통적으로 단궁을 하나씩 소지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도 이동 시 거치적거리지 않고, 필요할 때 재빨리 사용할 수 있게 고안된 단궁은 다크캐슬에서 활약하는 몬스터 사냥꾼들의 제일 중요한 무기였다.

‘몬스터에게 독화살을 날리며 상대한다.’

사냥꾼들 옆구리에는 독병이 하나씩 매달려 있어서, 유사시 독화살을 날린다.

하지만 독화살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화살에 묻히는 독액이 워낙 고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화살이라고는 하지만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힘을 약화시키고 잠시 동안 잠을 재울 수 있는 정도. 어떻게 보면 독이 아니라 마취제나 다름없었다.

또한 특이하게도 몬스터 전용으로 제조된 이 고가의 독액은 인간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얼마 뒤, 도현은 도시 북쪽에 위치한 스므차 성주의 성을 바짝 붙어서 지나쳤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벗어나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도시의 대다수 사람들의 일자리가 도시 북쪽과 연결된 곳에 있었고, 루드의 부인 앤도 이 길을 통해 벌목장으로 갔을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도현의 시선은 성에 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웅장했다.

‘성안에 모습은 어떨까?’

20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은 성벽 뒤로 무엇이 있는지 바깥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성의 규모로 보면 수천 명은 머물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 성의 외관과 성벽 위로 솟은 첨탑 등을 자세히 살펴보던 도현은 스므차 성주의 병사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는 도시 북문을 통해 도시 밖으로 나갔다.

몬스터 사냥꾼 11명, 몬스터 해체자 1명, 짐꾼 4명, 도합 16명의 인원들은 서너 시간 만에 도착한 작은 산을 일렬로 은밀히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이야.’

일행의 맨 후미에서 따라가던 도현은 사람의 발길에 의해 개척된 산길을 눈여겨보았다.

이 길은 사냥꾼들이 애용하는 산길로, 돈이 안 되는 몬스터를 피해 가장 빨리 산을 넘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철저하게 돈이 되는 몬스터만 찾아다니고 있어.’

특정 몬스터 몇 종류만이 돈이 되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 몬스터가 지나가도 이들은 잡지 않고 피한다.

어쩔 수 없이 맞닥트리면 몰라도 그 전까지는 최대한 회피해서 안전을 꾀하고 시간을 절약한다.

머리에 붉은 털이 난 침팬지처럼 생긴 몬스터 무크람도 그래서 이들은 피해 가고 있었다.

“에이취!”

아까부터 코가 간질간질한 걸 참고 가던 선두의 한 사내가 재채기를 했고, 그 소리에 무크람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일행을 노려봤다.

“미안합니다, 왈스. 참을 수가 없었어요.”

리더인 왈스를 향해 사냥꾼 중 한 명이 변명을 했다.

“도움이 안 되는 친구군. 사냥 준비!”

왈스의 지시에 사냥꾼들이 덤벼 오는 무크람을 포위하며 달려들었고, 도현을 비롯한 짐꾼들과 루드는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며 지켜보기만 했다.

‘독화살은 사용 안 하는군.’

2미터는 넘어 보이는 무크람이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손으로 위협적으로 달려들었지만, 무크람과 싸워 본 경험이 풍부한 사냥꾼들은 방어와 공격을 조화롭게 하며 무크람을 지치게 한 뒤에 결정적으로 뒤에서 창을 날려 등을 꿰뚫어 버렸다.

철퍼덕.

무크람이 나무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주위에는 무크람이 흘린 피가 가득했다.

‘몬스터의 행동 패턴을 잘 이해하고 있어.’

그러나 개별적으로는 무크람의 상대가 되지 못할 수준이었다. 아마 무크람 여러 마리가 나타났다면 이들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 몬스터용 독화살을 사용했을 것이다. 아무리 독액이 비싸더라도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 뒤로도 무크람 한 마리를 더 잡은 그들은 작은 산을 넘어 음산한 분위기의 드넓은 숲에 진입했다.

여기서부터는 노련해 보이는 몬스터 사냥꾼들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루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은 자들의 무덤 같군.’

도현은 발에 밟히는 사람의 뼈에 흠칫하며 조용히 발을 뗐다. 사람의 해골 수십여 개가 근처에 굴러다녔고, 인체를 이루는 각종 뼈들은 부러지고 손상된 모습으로 가을 낙엽처럼 도처에 깔려 있었다.

거대한 인간의 학살 현장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숲을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많은 사람의 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몬스터들의 뼈도 적지 않아.’

인간의 뼈 구조와는 확연히 다른 모양의 거대한 뼈나 두상이었다.

이 숲에서 인간과 몬스터가 죽고 죽이는 싸움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아아악!”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고, 그 비명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쪽 방향으로 누군가 도망쳐 오는 것 같았다.

왈스는 뒤를 돌아다보며 좌우로 손짓을 했다.

“화살 준비!”

독병에 화살촉을 적신 사냥꾼들이 나무와 바위 뒤에 숨어서 전방을 보며 활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일부는 후방을 경계하며 활을 겨누고 있었다.

“소리에 민감한 몬스터들이 저 비명 소리를 듣고 몰려올 때가 있거든. 그래서 뒤도 철저히 경계하는 거요.”

도현과 함께 바위 뒤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루드가 도현에게 설명해 주었다.

“독화살은 효과가 바로 나타납니까?”

도현이 바위 뒤에서 고개를 내밀어 사냥꾼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물었다.

“몬스터에 따라 다르고, 맞는 부위에 따라 다르니, 뭐라 말은 못 하겠소. 하지만 효과는 나쁘지 않지. 안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와서 사냥을 하겠소? 전에는 독화살이 없어서 이런 사냥을 꿈도 못 꿨다오.”

“독화살이 만들어진 게 얼마 안 됩니까?”

“한 10년 됐나? 어떤 마법사에 의해 다크캐슬 주변의 몬스터에 통하는 독액이 처음 제조됐고, 그게 퍼진 거요.”

“쫓아오지 마, 이 자식아!”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리자 도현과 루드는 대화를 멈추고 전방을 응시했다.

팔이 통째로 뜯겨진 사내가 피투성이 몰골로 허겁지겁 괴성을 지르며 그들이 있는 공터로 뛰어오고 있었고, 그 뒤로 도마뱀처럼 생긴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 우스트랄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쫓아왔다.

‘크다.’

사람을 한입에 삼킬 정도로 큰 입과 개구리눈처럼 툭 튀어나온 두 눈.

우스트랄의 몸 곳곳에는 화살 몇 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쫓기는 자들이 사용한 화살 같았다.

두다다다다. 풀쩍.

녀석이 큰 입을 벌리며 점프를 했다.

그 순간 화살 10여 개가 시간 차를 두고 날아갔다. 왈스의 손짓에 후방을 경계하던 자들까지 합세한 것이다.

일부는 몬스터의 몸을 스치며 뒤로 날아갔지만, 대부분은 목울대와 몸통 아랫부분에 박혀 들어갔다.

쿠웅!

바닥을 울리는 큰 소리와 함께 우스트랄이 쫓는 사내를 바로 앞에 두고 뚝 떨어졌다.

캬아아아아!

우스트랄이 몸부림을 치자 목울대와 배 부분에 박혀 있는 화살대가 산산조각이 났고, 화살촉은 더욱 깊숙이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분노한 우스트랄은 원래 쫓던 사내를 놔두고 자신에게 화살을 쏜 근처의 사냥꾼들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해 왔다.

“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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