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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92화 (92/575)

[92] 디 임팩트 4권 17화

자신의 실력으로 사냥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지만, 강한 몬스터가 많다는 건 그에게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당장 안 되더라도 그 밑에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내공을 키우고, 검을 깨닫는 시간을 갖다 보면 슈빅타이런과 그 이상의 존재감 있는 몬스터들도 결국에는 상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는 게 참 많으십니다.”

도현의 칭찬에 루드는 인상을 살짝 썼다.

“이 얼굴에 칼자국 보이시오?”

“네.”

“나 원래 이렇게 말 많고, 부드러운 사람 아니오. 아이들과 격의 없이 말하는 당신이 약간 신기하고 보기 좋아서 그러는 거지. 하지만 날 너무 이용하려고 한다면, 내 진면목을 보게 될 거요. 아시겠소?”

그가 다시 한 번 얼굴에 힘을 주자 긴 칼자국이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알겠습니다. 명심하지요.”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앞을 봤다.

왈스가 전방에 몬스터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 왜 방을 비워 달라는 거요?”

여관에 머물던 여행객이 항의를 하자 여관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손님, 맛좋은 술을 한 병 드리지요. 이해해 주시고, 옆방으로 옮겨 주십시오.”

“술 꼭 주는 거요.”

“물론이죠.”

여행객은 투덜대며 짐을 챙겨 복도로 나가다 문밖에 서 있는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

풍만한 몸매와 사내를 녹일 듯한 요염한 눈빛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그가 계속 쳐다보자 중년 여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 볼일 있어요?”

“아는 사람과 좀 닮아 보여서. 실례했소.”

여행객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옆방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잠시 여행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가 비워 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을 훑어본 그녀는 한쪽에 서 있는 여관 주인을 쳐다봤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손님. 편히 쉬십시오.”

웃돈을 받고 이 방을 내준 여관 주인은 기분 좋은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고 돌아선 그녀는 도현이 사용했을 방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보고 침대에도 걸터앉았다.

“여기까지는 그 녀석의 흔적이 남아 있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사막에서 도현의 검에 부상을 입었던 그녀는 하루 만에 부상을 치료하고 미친 듯이 도현을 추적해 왔다.

베일 가문과의 인연도 끝을 내고 도현을 쫓아올 만큼 그녀의 분노는 대단했다.

“감히 날 죽이려 하다니.”

마법을 배우며 여러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악귀처럼 쫓아오던 도현의 냉정한 눈빛과 차가운 검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아끼던 마법 지팡이도 도현의 검에 잘려서 쓸모없게 돼 버렸다.

이디언은 도현의 검에 부상을 입었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창가에 섰다.

열린 창문 밖으로 멀리 강 위에 떠 있는 배들이 보였다.

추적에 유용한 마법을 배운 그녀는 도현의 검이 어깨를 스치는 순간 자신의 피에 마법을 부렸다.

자신의 피가 묻은 검을 도현이 소지하고만 있다면 그녀는 마법으로 멀리서도 그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검을 아무리 씻어 피가 닦이더라도 한번 발동된 마법은 일정한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도현의 흔적이 항구도시 벨버스의 한 여관에서 뚝 끊긴 것이다. 정확히는 이 방이다.

“마법사의 도움이라도 받은 걸까? 함부로 해제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닌데.”

그녀는 몸을 반쯤 돌려 빈방 허공을 노려봤다.

“뭔가가 벌어졌어.”

방 안에서 그녀의 마법이 어떤 식으로든 풀렸고, 도현이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추적할 수 있는 마법이 사라졌지만 그녀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곳으로 온 걸까? 그것도 쉬지 않고서.”

곱씹어 보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강으로 향했다.

“설마? 다크캐슬로 가기 위해서?”

짐꾼으로 이틀간의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도현의 손에 쥐어진 돈은 금화 한 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치고는 많다고, 또는 적다고 하기도 애매한 돈이다.

왈스의 사람들은 도현과 루드, 다른 짐꾼들을 뒤로하고 자기들끼리 웃으며 노스리어 상점가로 향했다.

“고생하셨소.”

짐꾼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남은 사람은 도현과 루드밖에 없었다.

“만족하십니까?”

금화를 단단히 챙기는 루드를 보며 도현이 물었다.

“재수 없으면 몬스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올 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네 마리나 잡지 않았소?”

루드는 몬스터 가죽을 벗긴 만큼 보수를 받는다. 사냥꾼들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 그도 손해를 보는 것이고, 많이 잡으면 그만큼 그도 돈을 번다.

이번엔 괜찮은 상태의 우스트랄 네 마리를 잡고, 그 등가죽을 흠집 없이 벗겨 냈다. 그 대가로 그는 금화 네 개를 받았고, 힘든 이틀의 긴장감을 말끔히 벗어 버릴 수 있었다.

“저들이 가지고 간 가죽은 얼마에 거래가 됩니까?”

“크기와 상태에 따라 다른데, 아마 개당 금화 20개 정도는 받을 거요.”

“그럼 합해서 대략 금화 80개 정도군요.”

한 사람이 독식하면 큰돈이겠지만 왈스를 비롯한 사냥꾼들의 수가 열 명이었다.

독병의 값과 앞장서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위험도를 계산하면 한 사람당 나눠 가지고 가는 돈이 많지만은 않았다.

“짐꾼은 할 만했소?”

루드가 집으로 향하며 물었다.

“몬스터 구경도 잘하고 왔으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계속 구경하고 싶으면 나랑 같이 다녀도 되고.”

루드가 큰 선심 쓰듯 도현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틀을 같이 지내다 보니 도현이 겁이 없고 배포가 있어 보여 아주 마음에 들었다. 위험해도 배신 때리고 혼자 도망갈 것 같지도 않았다.

고작 만난 지 며칠 안 되는 사이에 그런 감정이 든 게 이상할 정도로 루드는 도현에게서 다크캐슬로 오는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당신 하는 거 봐서 몬스터 가죽 벗기는 것도 내가 전수해 줄 수 있지. 아무에게나 알려 주는 게 아닌데 말이야. 고급 기술이거든.”

“말씀은 고맙지만, 짐꾼을 계속할 생각이 없어서요.”

“하긴, 위험하긴 하지. 나도 나갈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닌가 싶으니까.”

루드는 어쩐지 실망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오늘은 어디서 잘 거요?”

“하루 더 신세를 져도 됩니까?”

“뭐, 그렇게 하시오. 그런데 자꾸 우리 집에 머물려고 하면 곤란하오. 보는 눈들이 있어서 두목에게 내는 보호비가 더 올라가니까.”

“사람 수에 따라 보호비가 늘어납니까?”

“그렇소. 섭섭하다 생각하지 말고 이왕 다크캐슬에 온 이상 적응해서 살 생각을 빨리하시오.”

“알겠습니다. 이거 받으시죠.”

도현이 왈스에게 받은 금화 한 개를 내밀었다.

“뭐요 이게?”

“오늘 숙식비입니다.”

“터무니없게 많이 주네. 거 됐소. 오늘은 공짜요. 푹 자고 내일은 우리 집에서 나가시오. 그 돈 아껴서 얼른 집 구하고.”

“부탁할 것도 있으니 받으세요.”

도현은 루드의 손에 억지로 금화를 쥐여 줬다.

“거참, 괜찮다는데도. 알았소.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러는 거요?”

“몬스터 사냥꾼들과 오랫동안 다니셨으면 이곳 지형과 몬스터들에 대해 잘 아시겠죠?”

“두말하면 잔소리지. 한데 그건 왜?”

루드가 의아한 눈빛으로 걸음을 늦추며 물었다.

“몬스터 지도가 필요합니다.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어제오늘 다녀온 곳은 넓은 땅에서 극히 일부. 일일이 짐꾼으로 돌아다니며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무리였다.

생각해 보니 에드의 아버지처럼 이 일대 지형과 몬스터의 분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 같았다.

“흠, 몬스터 지도라.”

루드가 광장에 펼쳐진 시장으로 들어서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렵습니까?”

“어렵지, 아주 어려워. 난 그림을 잘 못 그리니까.”

“네? 하하하!”

도현이 웃음을 그치며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됩니다.”

“뭐 그렇다면 좋소. 집에 가서 만들어 주지.”

루드는 시장에서 제법 커다란 멧돼지 고기를 샀고, 도현은 인상이 험악한 사람들이 시장에서 이리저리 물건을 흥정하고 가격을 깎는 모습이 재밌어서 한참을 둘러보다 말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전 대장간에서 검을 좀 손봐야겠습니다.”

“그러시오. 집이 어딘지 기억하겠지?”

칼라치

챙그랑!

“보셨소? 손을 봐도 끝난 검이오.”

부러진 검을 구석에 집어 던지며 늙은 거한이 도현을 돌아봤다.

“어쩔 거요? 새로 검을 살 거요 말 거요?”

도현은 어이가 없었다.

보망을 잡느라 날이 많이 상하긴 했지만 날을 다시 세우면 못 쓸 검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머리 늙은 거한이 보란 듯이 뾰족하고 커다란 망치로 도현이 건네준 검을 두 동강이 낸 것이다.

‘옆 대장간으로 갈 걸 그랬나?’

이 사기성 짙은 늙은 거한을 손봐 줄까 하다가 도현은 꾹 참고 부러진 자신의 검을 응시했다.

늙은 거한이 꼼수를 부렸든 어쨌든 모루 위에서 망치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면 날을 세워도 오래가지 못할 검이긴 했다.

아무래도 사막에서 베일 가문의 케일 경과 싸울 때 검의 생명이 약화된 것 같았다.

그날, 내공을 가득 담아 케일 경의 검과 정면으로 부딪쳤는데, 검에 큰 충격이 온 것이다.

“기분 나빠 하지 마. 당신 검이 약하다고 알려 준 거야. 안 그랬으면 날이나 세워 주고 말았지.”

늙은 거한이 뒤늦게 변명하듯 말하며 대장간 안의 물건들을 가리켰다.

“골라 봐. 싸니까.”

도현은 늙은 거한이 운영하는 대장간을 나와 에드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허리에는 새 검이 흔들거렸다.

늙은 거한의 행동이 거침없긴 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냥 그곳에서 적당한 검을 하나 샀다.

대장간에서 만든 검은 아니고, 다크캐슬에서 죽은 자의 검을 날을 잘 세워 놓은 것에 불과했다.

‘밤에 검을 휘둘러 봐야겠는데.’

새 검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검은 미묘해서 약간의 어색함만으로도 제 기량을 다 발휘 못 할 경우가 있었다.

전에 다혜의 사부인 한석호와 진검 승부를 벌일 때도 그 점을 여실히 깨달았다.

손바닥에 잡히는 검 손잡이의 감촉까지 내 피부처럼 익숙해질 때만이 의도한 대로 약간의 오차도 없이 검은 부드럽고 힘차게 뻗어 나가 제 위력을 발휘한다.

내공을 사용해 감각을 극대화하고 힘을 분출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고수와의 싸움은 미묘한 차이로 생사가 결정된다.

보검보다 때로는 손때 묻은 자신의 낡은 검이 더 위력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잡아!”

“죽여 버려!”

거리를 걷던 도현은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수십여 명이 어울려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10여 명 정도 되는 사내들이 그보다 배는 많은 인원에 가로막혀 악착같이 도끼와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다 죽여 버리겠어!”

“한번 해 봐 자식들아, 흐흐흐. 커억!”

비웃던 사내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고, 주변으로 피가 튀었다.

흉험한 싸움인데도 사람들은 피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서 구경하기 바빴다.

“다크캐슬에 오기 전에 나도 저런 적이 있었는데.”

“뒤에서 검을 찔렀어야지, 병신들.”

한마디씩 하며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싸움을 잠시 지켜보던 도현은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구역들의 싸움인가?’

두 패의 무리들은 각기 모양과 색이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칼라치 두목이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도현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쏠렸다.

대로 위로 한 필의 말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위의 사내는 타는 듯한 적발에 말이 작아 보일 정도의 거한이었다.

길게 기른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온 칼라치는 도현이 보는 가운데 말 위에서 훌쩍 점프를 했다.

“칼라치의 방패다!”

사람들의 탄성이 끝나기 전에 칼라치는 양손에 하나씩 든 거대한 두 개의 직사각형 방패를 무자비하게 휘두르며 자신의 부하들을 포위 공격하는 사내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퍼퍼벅벅!

상대방의 검이든, 도끼든, 창이든, 방패든 칼라치는 가리지 않고 그의 방패로 날려 버리며 그 뒤에 있는 사람 몸까지 박살을 내 버렸다.

뇌수를 흘리며 뒤로 날아가는 사내들이 태반이었고, 위에서 내려친 방패 날에 몸이 절단돼 즉사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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