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디 임팩트 4권 19화
도현은 검을 거두고 주먹에 내공을 주입해 마주 달려가 휘둘렀다.
콰앙!
무크람이 뒤로 주춤거렸다.
퍼엉! 팡팡팡!
마치 복싱을 하듯 무크람의 주먹을 바로 눈앞에서 피하며 내공이 깃든 주먹으로 연속해 녀석의 가슴을 집중 타격했다.
‘라스트!’
허공으로 떠오른 도현은 무크람을 뛰어넘으면서 양 발목 사이에 무크람의 목을 끼고 뒤로 확 잡아당겼다.
우드드득.
목이 부러진 몬스터가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몬스터를 격투만으로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몸에 묻은 흙을 털어 내던 그는 뒤에서 스윽 출몰한 우스트랄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잘 왔다. 어디 한번 붙어 볼까?”
쓱쓱.
도현은 날이 잘 선 단검으로 조금 전 잡은 우스트랄의 등가죽을 벗겨 내고 있었다.
루드가 하는 것처럼 꼬리 부근부터 조금씩 가죽과 질긴 살점 사이를 떨어트리며 흠집 내지 않기 위해 조심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가죽에 구멍이 났다.
“이런!”
칼 다루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그 칼과 가죽을 벗기는 칼은 달랐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지만, 칼날이 살점을 넘어 가죽까지 베어 버렸다.
샤샤샤삭.
단검 끝에 검기를 맺어서 했을 때는 너무도 부드럽게 가죽과 살이 분리됐다.
문제는 등가죽 하나 벗겨 낼 동안 검기를 유지하려면 단전의 내공을 일시적으로 다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몬스터 숲에서 죽으려고 작정하지 않은 한 벌일 수 없는 무분별한 행동이다.
“오늘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된 몬스터 등가죽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한참 만에 겨우 등가죽을 떼어 냈는데, 가죽 곳곳이 찢어지고 구멍이 났다.
다양한 종류의 칼을 준비 못 한 점도 이런 결과에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검술을 펼치는 검과 가죽을 벗기는 검이 달랐다.
루드가 하는 것만 보고 쉽게 접근했던 그는 반성하며 다시 우스트랄을 찾아 나섰다.
“이럴 때 초대형 우스트랄을 만나면 곤란한데.”
우스트랄의 등가죽도 엄연히 등급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초대형 우스트랄이면 그 가치가 남다를 테고, 잘 벗겨 내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잡을 때 잡더라도 등가죽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 무렵에 다크캐슬로 돌아온 도현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성 주변에 여러 블록으로 조성된 노스리어 상점 거리로 향했다. 평평한 돌이 깔린 거리는 널찍널찍했고 좌우로 2층, 3층의 석조 건물과 목조건물이 뒤섞여 있었다.
‘여기만 보면 이곳이 다크캐슬처럼 보이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여자들과 다니고 있었다. 술집도 많았고, 도박장으로 여겨지는 곳도 보였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소리를 치며 싸우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통제가 잘되고 있다는 뜻이겠지?’
도현의 시선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크캐슬로 향했다. 2미터가 넘는 창을 들고 성벽 위를 오가는 병사들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이 도시를 유지시키는 존재는 바로 저 성일 수도 있었다.
도현은 시선을 다시 돌려 몬스터 재료를 매입하는 곳을 찾아다녔고, 잠시 뒤 몇몇 몬스터 사냥꾼들이 막 나오고 있는 상점으로 들어갔다.
몬스터 재료 상점이 서너 곳이 된다고 들었는데, 대부분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뭘 도와 드릴까요?”
옷을 잘 차려입은 중년 사내가 다가오는 도현에게 말했다.
“몬스터 재료를 팔려고 왔습니다.”
“어떤 재료죠? 한번 볼까요?”
도현은 등에 메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상점 안을 둘러봤다.
상점 벽에는 거래가 되는 여러 몬스터의 특정 부위를 설명해 놓은 몬스터 해부도가 있어서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 놨다.
우스트랄의 등가죽은 거래가 되는 재료 중 일부에 불과했다.
“손님?”
“아, 네.”
몬스터 해부도를 둘러보던 도현이 정신을 차리며 커다란 가방 안에서 우스트랄의 등가죽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우스트랄 등가죽입니다.”
둘둘 말린 등가죽을 풀어서 책상 위에 펼쳐 확인을 하던 상점 주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흐음, 아니 누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등가죽을 벗긴 겁니까? 아주 솜씨가 형편없는 몬스터 해체자군요. 몹쓸 사람이군, 그 사람.”
도현을 몬스터 사냥꾼으로 생각한 상점 주인이 혀를 차며 가죽을 벗긴 사람 욕을 계속 해 댔다.
듣고 있던 도현이 헛기침을 하며 점잖게 물었다.
“얼마 쳐주시겠습니까?”
“원래 이 크기의 흠집 없는 등가죽이라면 금화 20개 정도 하는데 말입니다. 도저히 이건…… 금화 10개 드리지요.”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적다니요. 다른 데 가도 이 이상 주지 않을 겁니다. 당장 나가서 확인해 보면 압니다.”
도현은 금화 20개짜리가 반으로 줄어드는 참담한 상황에 그저 입맛만 다시다가 다시 가방에서 등가죽 하나를 더 꺼냈다.
“이건요?”
“이것도 금화 10개짜리입니다.”
“그럼 이건?”
“역시 동일합니다.”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좀 양호한 편인데요?”
도현이 가죽 벗기는 솜씨가 조금 늘어서 잡은 우스트랄의 등가죽이었다.
상점 주인은 자세히 살피더니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조금 나으니 금화 11개 드리지요. 한데 얼마나 더 있는 겁니까?”
“한 개 더 있습니다.”
도현은 가방 안에 남은 등가죽을 마저 꺼내 펼쳤다.
그는 오늘 총 다섯 마리의 우스트랄을 잡아서 가죽을 벗겼는데, 제값 받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루드를 데려갈 수 없었던 건, 그의 안전을 책임지며 다닐 입장도 아니었고, 그가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해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많이 가지고 오신 걸 보면 손님과 다니는 사냥꾼들이 제법 실력이 괜찮은 것 같은데, 어쩌다 이런 가죽을 가지고 온 겁니까?”
안타깝다는 듯 혀를 계속 차면서 상점 주인은 가격을 산정했다.
“다해서 금화 52개 드리지요.”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주인이 내미는 돈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다른 곳으로 가서 조금 전 주인에게 들었던 잔소리 비슷한 소리를 또다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상점 안에 붙어 있는 몬스터 해부도 말입니다. 작게 축소된 건 없습니까?”
“금화 한 개에 팝니다.”
“금화 한 개요?”
“양피지에 정보가 담겨 있으니, 필요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지요.”
“한 장 주십시오.”
폭설
상점에 우스트랄 가죽을 팔고 루드의 집으로 온 도현은 금속성이 들리는 집 뒤로 돌아갔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서 에드가 아버지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망설이지 말고 덤비란 말이야!”
“아버지 다칠까 봐서 못 하겠어요.”
“젊었을 때 다섯 명과도 싸워 봤어. 잔말 말고 덤벼!”
채챙. 챙챙.
늘 끼고 다니던 사각 방패를 내려놓고, 루드는 아들의 검 실력을 높여 주기 위해서 직접 맞상대가 돼서 싸웠다.
어느새 체격이 비슷해진 열일곱 아들이었지만, 아직 사람 한 명 죽여 보지 못한 아이라 검에 날카로움이 부족했다.
“그래서 어디 몸을 지킬 수 있겠냐!”
루드는 에드의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놀란 에드가 간신히 검을 걷어 냈다.
“아버지 살살해요!”
“다크캐슬에 오는 놈들이 보통 놈들이냐?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으로 아는 놈들이다. 시비가 붙으면 인정사정 안 봐준다고!”
차앙!
아버지의 강한 일격에 에드의 검이 뒤로 날아갔다.
“어?”
“피해요!”
루드와 에드가 동시에 소리쳤다. 검이 회전하며 날아가는 곳에 도현이 서 있었다.
그 순간 도현의 허리에서 검광이 번뜩이며 솟구쳤고, 에드의 검은 철벽에 부딪힌 듯 큰 소리를 한번 내더니 아래로 뚝 떨어졌다.
스르릉.
검을 거둔 도현은 허리를 숙여 땅바닥의 검을 들어 앞을 응시했다.
루드와 에드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보셨어요? 어, 언제 검을 빼서 휘두른 거죠?”
“언제긴 방금 전에 그랬겠지.”
루드도 보지 못한 건 마찬가지. 저 정도 빠른 검이라면 웬만한 상대들은 눈 뜨고 당할 것 같았다.
“손아귀 힘을 조금 더 길러야겠다.”
도현이 검을 건네주며 말하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에드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제 본 집터를 사야겠는데, 어디로 가면 될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돈을 마련한 거요?”
루드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크캐슬 남서쪽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구역장 칼라치는 넓은 방 안의 의자에 앉아, 전면에 서서 말하는 부하를 묵묵히 쳐다봤다.
“노스리어에 도박장을 하나 우리 것으로 하자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칼라치 님.”
콧수염 사내가 눈을 빛내며 답했다.
“팔려는 사람이 있을까?”
“다크캐슬 생활을 정리하고 본토로 넘어간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안사람이 다시 영주가 됐다고 하는데, 아무튼 빠른 시일 내에 떠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접촉해 봐.”
“네.”
“칼라치 님!”
문밖에서 들어온 작은 체구의 사내가 허리를 숙였다. 그는 구역 내에 집을 파는 자였다.
“들어오라고 해.”
묻지도 않고 칼라치는 손짓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일이다. 집을 사려는 자들은 그의 힘에 의지하는 자들이고, 그가 누군지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저어 그런데, 이번에 온자는 금화 40개짜리 집터를 사려고 왔습니다.”
작은 체구의 사내가 공손히 말했다.
“금화 40개짜리면.”
칼라치가 도박장을 사자고 제안한 콧수염 사내를 쳐다봤다.
“넓어서 잘 팔리지 않는 집터들 중 하나입니다.”
“자네 같으면 그 집터를 사겠나?”
“안 삽니다. 하지만 거주할 사람이 많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겠지요.”
콧수염 사내는 집 담당자에게 물었다.
“몇 명이 살 거라고 하던가?”
“혼자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호세도 적게 물려야 할 형편입니다.”
“안 되지. 그 정도 집터를 금화 40개에 판다는 것도 밑지는 것인데, 보호세는 집에 걸맞게 매겨야지.”
“하오면?”
“매달 열 사람 보호세를 내라고 해.”
“예?”
놀란 사내에게 콧수염 사내가 턱짓을 했다.
“시키는 대로 해.”
사내는 의자에 앉아 있는 칼라치를 힐끔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하고 이곳으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사내가 나가자 말없이 듣고만 있던 칼라치가 두툼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내 명성이 있는데…… 조금 과하지 않나?”
“명성이 있으니 그 정도는 받아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콧수염 사내는 조직의 2인자로, 대부분 돈과 관련된 일은 그의 손에서 결정된다.
이미 그렇게 일을 하도록 맡겨 놓은 칼라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해.”
얼마 뒤 도현이 작은 사내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방 끝에 앉아 있는 적발 거한 칼라치를 보며 도현은 가볍게 인사를 했다.
“도현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집을 산다고?”
“예.”
“혼자 살 거라고 들었는데, 왜 그리 큰 집이 필요하지?”
“넓은 집이 좋습니다.”
도현은 대답을 하며 칼라치의 주름 접힌 눈매를 보았다. 처음 거리에서 봤을 때는 상당히 젊게 봤는데, 가까이서 보니 나이가 적지 않게 먹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마흔은 넘어 보였다.
칼라치는 자신의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어딘지 여유가 느껴지는 도현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아 두다가 의자 팔걸이에 올려 둔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만 가 보게. 말썽만 부리지 않으면 자네 집은 우리가 보호해 주지.”
“감사합니다. 한데, 보호세가 매달 금화 5개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듣기론 한 사람이 내는 보호세는 매달 은화 5개라고 들었는데, 어떤 게 잘못된 겁니까?”
“둘 다 맞소.”
콧수염 사내가 나섰다.
“혼자 살아도 보호세를 더 내는 자들이 있으니, 내라면 내시오.”
도현은 잠시 콧수염 사내를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죠.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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