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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95화 (95/575)

[95] 디 임팩트 4권 20화

칼라치의 방에서 나온 도현은 집터 비용과 보호세를 합쳐 금화 45개를 내고 작은 체구의 사내로부터 집을 샀다는 증표를 받았다.

“어찌 됐소?”

건장한 사내들 10여 명이 지키고 서 있는 칼라치의 집 앞에서 도현을 기다리던 루드가 물었다.

“샀습니다. 보호세도 냈고요.”

도현의 손에는 집과 보호세를 냈다는 증표가 들려 있었다. 목재로 된 원형의 작은 증표는 위에 구멍이 나 있어 목걸이처럼 걸고 다녀도 되고, 손목에 매도된다. 아니면 품에 지니고 있어도 됐다.

“정말 놀랍군. 돈을 하루 사이에 구하다니.”

루드는 도현의 위아래를 새삼스럽게 살폈다. 어디서 돈을 구해 왔는지 모르겠다.

“집터는 샀지만 집이 완성되려면 돈도 더 필요하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며칠 더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보호세를 냈으니 그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 같고요.”

도현은 루드에게 금화 5개를 내밀었다.

“손이 큰 사람인지 돈 감각이 없는 사람인지 모르겠구려.”

루드는 헛기침을 하며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눈치를 봤다.

하루 만에 큰돈을 구해와 떡하니 집터를 구입한 모양새를 보면, 돈 버는 재주 하나 만큼은 비상한 것 같았다.

“이 정도 돈이면 솔직히 여관 가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돈인데, 왜 우리 집에 머물겠다는 거요?”

“여관으로 갈까요?”

“주시오.”

금화를 받은 루드는 집으로 향하며 도현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왠지 도현의 행동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말투는 점잖고 행동은 의젓하니 무겁고. 거기에다 아까 에드의 검을 쳐 낼 때 보인 빠른 검하며.’

루드는 요 며칠 사이 도현에게 잘못한 게 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다행히 그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행동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일 일을 나갑니까?”

불쑥 묻는 그의 질문에 루드가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렇소.”

몬스터 해체자로 한번 사냥을 다녀오면 다음 날은 보통 쉰다. 몬스터 사냥 중 억눌려 있던 심신의 피로를 풀어 주지 않으면, 오래 이 일을 지속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용했던 칼을 손질도 하고 에드와 대련도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고맙소. 그런데.”

루드가 도현에게 돈을 어디서 구했냐고 막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골목길 벽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강도들이 불쑥 나타나 대뜸 칼을 휘둘렀다.

기겁을 한 루드가 뒤로 몸을 빼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급하게 빼 들었다.

“이 새끼들이!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그러나 그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강도 세 명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도현이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반응을 보이며 나타난 강도를 순식간에 주먹과 발로 제압해 버린 것이다.

누워서 신음을 흘리는 그들에게 루드가 칼침을 한 방씩 나 줬다. 강도들의 다리에서 피가 뭉실뭉실 올라왔다.

“돈 없으면 짐꾼이라도 해, 이 자식들아!”

도현은 어둠 속에서 보이는 강도들의 얼굴이 어딘지 낯익었다.

“먼저 가십시오. 뒤따라가겠습니다.”

“왜 그러시오? 죽이려고 하는 거요? 그러면 같이 죽입시다.”

오래간만에 어둠 속에서 기습을 받은 루드는 까딱하면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이자들에게 따로 볼일이 있어서요.”

루드는 검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먼저 가 보겠소.”

그는 자리를 뜨기 전에 발로 강도들의 엉덩이를 세차게 한 대씩 걷어차며 분을 풀고 갔다.

도현은 루드가 사라지자 조용히 입을 뗐다.

“당신들 나 알지?”

신음을 흘리며 누워 있던 강도들이 고개를 들어 도현을 올려다봤다.

달빛에 도현의 얼굴이 웬만큼 드러났다.

“누, 누군데?”

“나 모르겠어?”

“몰라. 퉤!”

강도들이 하나둘씩 벽을 잡고 일어섰다. 루드가 찌른 칼 때문에 다들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다.

“빌어먹을. 밖에서도 이런 수모를 안 당했는데, 개 같은 이곳에서 당하는군.”

“그러게 내가 아까 저쪽 길로 가자고 했잖아. 다 네놈 때문이야.”

“뭐라고? 이 자식이!”

도현은 자기를 앞에 두고 저들이 티격태격 싸우고 있자 어이가 없었다.

“이쪽 구역을 장악한자 이름이 칼라치야. 밑에 수하들도 있고. 자기 구역에서 사고를 치면 참지 않는다는군. 소리를 크게 몇 번 치면, 그의 부하들이 듣고 달려올 것 같은데, 그 다리로 도망칠 수 있겠어?”

강도들이 움찔했다.

“원하는 게 뭐야?”

“블리잭.”

“어! 그놈을 네가 어떻게 알고?”

사내들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가만, 당신 그때 그 사람이군. 블리잭이 몇 번이나 함께하자고 했는데 거절한 사람.”

“맞아,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야.”

이들은 도현과 같은 배를 타고 온 자들이었는데, 블리잭이 배 안에서 조직을 만들 때 합류한 이들 중 일부였다.

“그자 어디 있지?”

“우리도 몰라.”

“모른다고?”

“젠장, 그 작자 얘기는 꺼내지도 마! 그 새끼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꼴이니까.”

도현은 사내들이 거칠게 블리잭을 욕하자 이해가 안 됐다.

“그날 몬스터를 사람들에게 붙여 놓고 같이 도망치지 않았나?”

“그러긴 했지. 하지만 우리도 그 자식에게 뒤통수 맞고 빈털터리가 됐다고.”

사내들은 하소연하듯 블리잭 얘기를 꺼냈다.

블리잭은 그를 따르던 10여 명의 사람들과 한여관에 같이 머물었는데, 그들에게 좋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며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받아서 종적을 감추었다.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술수로 간신히 몬스터의 위협에서 살아났기에 그들은 그를 철석같이 믿고 다크캐슬에 넘어올 때 준비해 온 모든 돈을 다 넘긴 것이다.

“개자식. 나도 나쁜 놈이지만 그 새끼는 정말 악질 중의 최악질이야.”

“난 그 자식이 벨버스 선착장에서 싸울 때 응원까지 했다고.”

“찢어 죽일 새끼.”

그들의 설명을 들은 도현은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대단한 자야. 어떻게 그 상황에서.’

도현은 사내들과 헤어져 루드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서 에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웬일인지 꾸벅 인사를 했다.

“왜 그러지?”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뭘 말이냐.”

“이제 근처에서 사실 거잖아요.”

에드가 어색하게 답하며 도현의 검을 계속 쳐다봤다.

“그런데.”

도현은 짐작이 됐지만 모른 척하며 집 안으로 향했다. 그러자 에드가 부리나케 쫓아왔다.

“제게 주신 금화 한 개 돌려 드릴까요?”

“그건 왜?”

“생각해 보니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서요.”

“배고프다. 들어가자.”

웃음을 안으로 숨긴 도현이 문을 열자 에드가 얼른 소리쳤다.

“뭐 심부름시킬 거라도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하세요!”

밤이 깊어 가지만 노스리어는 활력이 넘쳤다. 사람들이 붐볐고, 도망자들이 사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다.

후드로 얼굴을 가리며 거리를 걷던 이디언은 노스리어 중에서도 약간 후미진 곳에 위치한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문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이디언을 받아들였다.

상점은 몬스터 사냥꾼에게 독을 파는 곳으로,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윌벤슨을 찾아왔어요.”

“누구요?”

“윌벤슨요.”

“죄송하지만 이곳에 그런 분은 안 계십니다.”

이디언은 상점에 진열된 독병들을 훑어보며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이디언이 왔다고 하면 만나 줄 거예요. 가서 전하세요.”

“오랜만이야, 이디언. 환영하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마법사 윌벤슨이 지팡이를 들고 나타났다.

“안녕하셨습니까, 윌벤슨.”

상점 지하에 존재하는 방에서 그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이디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점점 아름다워지는군.”

“과찬이십니다. 이미 젊음이 사라지고 있는데요.”

이디언이 작게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아니야. 젊었던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아.”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이디언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는 빙그레 미소를 보였다.

“소식을 보내도 답장이 없기에 난 자네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내 앞에 앉아 있군.”

“실망시켜서 죄송하지만,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닙니다.”

“응? 그 일 때문이 아니라고?”

윌벤슨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 잡혔다.

“예. 한 사람을 쫓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크캐슬까지 오게 됐습니다.”

“허허, 이거 실망인데.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자네가 왔다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왔거늘.”

“죄송합니다.”

“궁금해지는군. 누군가. 누구기에 자네가 여기까지 쫓아왔나?”

“사막에서 저를 죽이려 했던 자입니다.”

“응? 자네를?”

윌벤슨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이디언을 바라봤다.

“자네의 표정을 보면 단단히 고생을 했나 보군. 그래서 그 자를 쫓아왔다?”

“네. 그런데 다크캐슬에 왔는지는 확실치 않아서…….”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윌벤슨이 미소를 지었다.

“내 도움을 바란다면 좀 더 상세히 털어놓게.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마법사가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지 않나?”

이디언은 잠시 망설이다가 사막에서 벌어졌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묵묵히 그녀의 얘기를 다 들어 준 윌벤슨은 흰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런 일이 있었군. 자존심 강한 자네가 상처받을 만했어.”

“그때는 낙타들에게 건 마법을 계속 유지시켜야 해서, 쉽게 당할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디언의 눈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내가 어떻게 도와줬으면 하나?”

“그자가 다크캐슬에 왔는지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이곳에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매우 드물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넓은 접시와 물병이 들려 있었다.

물병을 기울여 넓은 접시에 물을 가득 담은 그는 접시를 이디언의 앞으로 밀었다.

“그의 모습을 띄우게.”

이디언이 정신을 집중하자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도 없는데 사방으로 휘날렸다. 입으로 음산한 주문을 외우던 그녀는 손가락을 깨물어 피 한 방울을 물이 담긴 접시 위에 떨어트렸다.

그 순간 접시 위에 파문이 일더니 그녀의 기억을 담은 피가 천천히 한 사내의 얼굴로 변해 갔다.

“흠, 생각보다 젊은 자군.”

윌벤슨은 접시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손으로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흰 종이 위에 접시에 생긴 사내의 얼굴이 스며들었다.

“후우!”

윌벤슨이 젖은 종이를 집어 들어 입김을 불어 넣자 순식간에 마른 종이 위로 도현의 얼굴과 흡사한 생김새의 사내가 자리 잡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동안 내 집에서 편히 쉬게나.”

“고맙습니다, 윌벤슨.”

오늘 산 집터를 빙 둘러보던 도현이 한쪽 무릎을 꿇고 땅을 조금 긁어냈다.

부서진 조각상의 일부분이 보였다. 작은 돌 조각을 이용해 조금 더 파 내려간 그는 손에 약간의 힘을 주고 잡아당겼다. 손바닥만 한 조각상이 딸려 나왔다.

몸통과 얼굴은 사라지고 팔뚝과 손만 남은 기괴한 모습이다.

도현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 주변 땅을 다시 한 번 훑었다. 고대인들의 폐허가 된 도시 유적이다. 이렇게 땅을 조금만 파면 어렵지 않게 이런 물건이 나왔다.

“혹시 땅속에 비밀스러운 지하 유적이 있는 건 아닐까?”

어베인과 짐브리오, 로나와 함께 움직이며 경험했던 동굴 속 고대 신전을 생각해 보면 이 거대한 도시 유적 어딘가에는 그런 게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안 해 볼 수가 없었다.

“설령 있다 해도 이 넓은 도시를 다 어떻게 조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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