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디 임팩트 4권 25화
도현은 맞받아치지 않고 힘을 아꼈다.
순식간에 도현의 몸이 옆으로 이동을 했고, 간발의 차이로 그가 있던 자리에 방패가 내리꽂혔다.
쿠우웅!
사방으로 흙과 돌 들이 비산했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약간 흔들렸다.
“쓸데없는 힘자랑이군.”
차가운 냉소와 함께 도현의 검이 칼라치의 목을 노리고 들어갔다. 섬전 같은 속도로 찔러 오는 검에 놀란 칼라치가 급히 방패로 앞을 가렸다.
그러나 그것은 허초.
사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칼라치의 다리에 붉은 실선이 하나 생겼고, 잠시 뒤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죽여 버리겠다!”
흥분한 칼라치가 두 개의 방패를 하나로 만들며 도현을 향해 달려왔다.
도현이 검을 눈높이로 올렸다. 그리고 어느 한 지점을 찔렀다. 그 지점은 두 개의 방패가 맞닿은 부분으로 칼라치가 뛰어올 때마다 조금씩 벌어지는 지점이었다.
차아아앙!
종이 한 장 넓이로 벌어졌던 그 미세한 지점에 도현의 칼끝이 비집고 들어가자 쇠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칼라치는 방패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그 놀라운 검술 솜씨에 경악하며 재빨리 손에 힘을 주었다.
차앙!
방패 두 개가 검을 붙잡고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얼굴 바로 앞에 멈춘 도현의 검 끝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던 칼라치가 팔을 부들부들 떨며 뒷걸음질 쳤다.
도현의 검이 다시 움직이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얼굴로 서서히 다가오는 도현의 검은 짙은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용감하게 이곳에서 죽으시오.”
도현의 차가운 말소리에 칼라치는 더 견디지 못하고 몸을 뒤로 젖히며 크게 외쳤다.
“공격해!”
그가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순간 도현의 검이 빛살처럼 쑥 들어왔다.
“크아악!”
왼쪽 눈을 찔린 칼라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도현은 쫓아가 그의 목을 베려 했지만 쏟아지는 화살에 급히 뒤로 물러나며 몸을 보호했다.
피피피핑!
몬스터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단궁을 든 수십여 명이 도현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계속 화살을 쏟아 댔고, 도현은 감히 그 모든 화살에 안전을 자부할 수 없어서 집터에 남아 있는 벽 뒤로 잠시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곳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도현이 도주할 것을 대비해 사방에 깔아 놓은 칼라치의 부하들이 많았는데, 그중 일부가 그가 있는 뒤쪽에서 나타나 활을 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수가 수십이 넘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온 거야?’
사방을 대낮같이 밝히는 횃불들의 수만 보더라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의 부하들이 이렇게 많았나?’
처음엔 백여 명 정도였는데 지금 보니 수백여 명은 되어 보였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전부 다 동원된 것 같았다.
“기름병을 던져라!”
콧수염 사내가 부상당한 칼라치를 대신해 명령했다.
휘이익. 휙휙.
도현이 움직일 만한 주변 일대에 나무에서 짜낸 기름이 든 병이 수없이 날아가 깨졌다. 바닥에 눈이 깔렸어도 기름이 어찌나 불과 어울리기 좋아하는지 불씨 하나에 불길이 금방 활활 타올랐다.
화르르르.
반경 20여 미터 정도가 불바다로 변했고, 활을 든 사내들은 도현이 불속에서 뛰쳐나오기를 기다렸다.
“괜찮으십니까?”
이디언이 눈을 다친 칼라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왼쪽 눈을 못 쓰게 될 것 같소.”
천으로 피를 막으며 그는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 잘못이 큽니다. 당신 말대로 함께 공격했더라면 일이 수월했을 텐데.”
이디언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그녀가 자존심을 내세우느라 일이 어렵게 됐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지 않소.”
그는 천으로 한쪽 눈을 가린 뒤 방패를 들었다.
“그놈을 내 반드시 죽일 것이오!”
칼라치가 말을 하는 순간, 도현이 불길을 뚫고 그와 이디언이 있는 방향으로 바람처럼 뛰어왔다.
즉각, 단궁에서 쏜 화살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약간의 부상은 감수한다.’
도현은 각오를 다지며 적들을 향해 더욱 속도를 높였다. 몸을 사리기만 해서는 현 상황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자른다!’
그의 시선이 수많은 부하들에 둘러싸인 칼라치에게 향했다.
구심점이 없으면 조직의 힘은 약화된다. 수백은 되어 보이는 자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더 이상 불필요한 피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자는 반드시 먼저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디언.
그녀는 이번 일을 초래한 여자로 그냥 놔두면 언제 또다시 이런 위기를 불러올지 모른다.
손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리된 이상 저 여자도 끝을 내야 했다.
‘힘이 정의인 다크캐슬. 당신들을 물리치고 난 여기서 살아남겠어.’
다리가 화끈했다. 화살이 살점을 한 움큼 뜯으며 뒤로 날아갔다.
몸 곳곳이 화살로 피해를 보긴 했지만, 화살이 제대로 박힌 건 없었다.
‘됐어! 다 왔어!’
검을 잡은 도현의 손등에 푸른 힘줄이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막는 자는 다 죽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갔다.
루드는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고함 소리에 흠칫하다가 다시 술잔을 입에 댔다.
침울한 표정으로 술을 연신 들이켜는 아버지의 모습에 에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싸우고 있나 봐요.”
“그럴 리 없다. 벌써 죽었지.”
“아니에요. 조금 전 집 밖에 나갔다 왔는데요, 횃불을 든 칼라치의 부하들이 저 뒤쪽으로 몰려 있었어요. 접근하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요.”
“위험하니까 밖에 나가지 마.”
“그 사람도 그렇게 말했어요. 오늘은 절대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요.”
루드는 아들의 말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그는 문틈으로 도현이 칼라치와 함께 빈 집터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가는 걸 봤다.
조용히 나가 칼라치의 무리 중 한 사람에게 돈을 쥐여 주며 물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그의 대답은 도현을 죽이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살아 있을 리가 없지.’
그는 에드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만 가서 자.”
“네에…….”
에드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도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아들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루드는 잠시 뒤에 조용히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
얼마 걷지 않아 비명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는 도현이 샀던 빈 집터 쪽으로 갈수록 더욱 커져 갔다.
‘설마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심장이 두근거린 루드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술기운에 한 발 한 발 걸었다.
횃불을 든 칼라치의 부하들 몇이 골목 앞에서 그를 제지하자 그는 더 들어가지 못했지만 바람에 실려 오는 비명 소리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루드는 그 비명 소리가 도현의 것이 아니기를 기원했다.
“크아아악!”
도현의 검에 가슴이 반쯤 베인 칼라치 부하가 검을 떨어트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도현은 좌우에 하나씩 든 검으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들을 거침없이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의 경고에도 적들은 꾸역꾸역 그의 앞을 가로막고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칼라치가 평소에 어떻게 이들을 관리했는지 모르지만, 충성심이 다크캐슬로 도망 온 자들로 보이지 않을 만큼 열렬하고 맹목적이었다.
‘나도 물러나지 않아!’
챙그랑!
칼이 부러지자 그는 바닥에 떨어진 적의 검을 다시 주워 냉정한 얼굴로 적의 목에 구멍을 냈다.
왼편에서 창으로 찌르면 그는 좌수 검으로 그를 처리하고 오른편에서 도끼를 내려치면 우수 검으로 상대방의 명줄을 끊어 놨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널려 있어서, 마치 그가 죽음의 사신으로 보였다.
촤악.
질퍽한 핏물이 도현의 얼굴로 튀었다. 뜨끈한 피의 느낌에 도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는 다시 본래의 냉정한 눈빛으로 돌아와 그를 껴안고 죽은 사내의 몸을 방패 삼아 또 다른 자의 팔을 잘라 내고, 목을 베었다.
“놈을 죽이는 사람에게 금화 100개를 주겠다!”
조직의 2인자 콧수염 사내가 칼라치 옆에서 큰 소리로 외치자 분위기가 더욱 흉흉해졌고, 도현의 몸에도 하나둘씩 상처가 늘어 갔다.
멀리서 포위만 하던 자들까지 긴 창을 불쑥불쑥 찔러 와 도현으로서는 정말 매 순간순간이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도현이 죽은 자의 몸을 잘못 밟아 한순간 휘청거렸다.
“놈이 지쳤다!”
“죽일 수 있다! 금화 100개를 받을 수 있어!”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던 그자는 도현이 휘두른 번개 같은 검에 옆구리를 찔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퍼억!
주저앉은 그의 얼굴을 걷어찬 도현이 싸늘하게 외쳤다.
“아직 지치려면 멀었어!”
그의 괴물 같은 언행에 순간 주변 적들이 움찔했지만, 다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도현은 슬슬 고민이 되었다. 계획과 달리 이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서 이대로 가다간 모두를 죽여야 할 판이었다.
애초에 그가 세운 머리를 자른다는 계획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예상과 다른 칼라치에 대한 부하들에 충성심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물러나야 하나?’
이디언과 칼라치의 오늘 행동을 보면 자신이 피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들과 자신 중 어느 한쪽은 죽어야지만 해결될 사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두 부상을 입고 약해진 지금, 위험하더라도 둘을 제거해야겠다고 도현은 불길 속에서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상황이 정말 여의치 않다.
몸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상처가 계속 늘고 있었고, 적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지치지 않았다고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디언과 칼라치를 연속해서 상대하고 많은 적들과 싸우느라 솔직히 많이 지친 상태였다.
내공도 많이 소모가 됐다.
채채챙! 챙챙챙!
밀집된 적들의 집중 공격에 도현은 적들의 무기를 빠르게 쳐 내며 그들의 손목과 목을 물 흐르듯이 베어 냈다.
‘빨리 결정을 해야 돼.’
도현은 눈 안으로 들어가는 핏물을 닦아 낼 사이도 없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잠시도 쉴 틈이 없어서 전진이냐 후퇴냐 고민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살짝 공중으로 뛰어올라 앞을 살폈다.
영악하게도 칼라치와 이디언은 그가 가까워질 때마다 저만큼 이동하며 자리를 잡았고, 그는 다시 그 뒤를 쫓는 형국이었다.
아마도 그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디언이 기운을 회복하고 칼라치와 함께 뛰어든다면 지금 내 몸 상태로는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칼라치의 부하들도 많고.’
도현은 결국 둘을 놔두고 피하기로 결정했다.
“칼라치! 이디언! 경고한다! 날 다시 쫓는다면 그땐 반드시 너희들을 죽이러 오겠다!”
콰앙!
바닥에 떨어진 방패를 발로 걷어차 뒤를 공격하던 자들을 물러나게 한 도현은 쌍검으로 적들을 베어 내며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칼라치 주변으로 적들이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반대편은 포위망이 느슨했다.
“커헉!”
적의 목에 검을 박아 넣은 도현은 그가 들고 있던 방패를 빼앗아서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막아 내며 북쪽으로 몸을 피했다.
“잡아라!”
“놓치지 마라!”
괴물 같은 도현이 도주하자 칼라치의 부하들이 함성을 지르며 도현의 뒤를 쫓기 시작했고, 도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정말 이자들이 다 죽고 싶은 건가?’
사실, 도현이 뒤로 물러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폭주 때문이었다.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 속에 잠기게 되면, 그는 이성 없는 살인귀가 된다.
원 없이 피의 폭죽을 터트리다가 기운이 소진되면 정신을 잃을 것이고, 지나가는 개가 그의 목을 물어뜯어 죽여도 그는 반항을 못 하게 될 것이다.
적들에나 본인에게나 가장 끔찍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칼라치의 부하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뒤에서 계속 쫓아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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