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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08화 (108/575)

[108] 디 임팩트 5권 8화

칼라치는 한순간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며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도현이 가볍게 친 것 같지만 내공이 주입된 공격이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다크캐슬에서 집을 한 채 마련하고 수련을 할 생각이었는데!”

몸에서 피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카락에 엉켜 붙은 핏덩이는 어제 다크캐슬에서 그의 손에 죽은 어느 누군가의 피일 것이다.

“보라고! 내가 쉽게 죽을 사람 같냔 말이야! 살기 위해서라면 난! 이렇게도 잔인해질 수가 있다고!”

도현은 1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을 뜯어 먹고 있는 파쵸마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꼭 이렇게 나와 싸워야 하나! 앞으로도! 이디언 한 명 때문에!”

지쳐 있는 칼라치의 얼굴을 노려보던 도현은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돌아가.”

“……?”

“돌아가서 이디언과 윌벤슨에게 전해.”

“네가 윌벤슨을 어떻게?”

“닥치고 내 말 들어!”

도현이 화를 내는 순간 그의 주변에 있는 눈들이 훅 하며 사방으로 밀려났다. 그 기세에 칼라치가 주춤했다.

“난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그 결과는 상상에 맡긴다고 전해. 그러니까 날 그냥 놔두라고. 그 말 전하는 조건으로 당신을 살려 보내는 거야.”

해가 졌다.

칼라치도 사라지고, 게걸스럽게 사람의 육체를 먹어 삼킨 파쵸마들도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숲 속에서 한동안 파쵸마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들을 쓸어 보던 도현은 감상에 젖으려는 자신의 마음을 검을 한 번 휘둘러서 싹둑 잘라 내 버렸다.

‘깊게 마음을 빼앗기면 결국 검을 들지 못한다.’

어제부터 이어진 긴 전투는 전쟁과 다름없었다. 버티지 못하면 죽고, 죽이지 못하면 살지 못하는 그런 냉엄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를 곤혹스럽게 했던 일부분은, 적들과 검을 맞대고 싸우면 싸울수록 말초적인 쾌감이 전신을 관통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차가운 흥분이자 전투에 집중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도현은 돌아다니며 죽은 자들이 남긴 가방을 조사했는데, 대부분은 난폭한 파쵸마의 행동에 찢겨지고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다행이다. 이건 멀쩡해.”

어제부터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극심한 체력 소모를 이어 온 그는 가방에서 육포가 나오자 서둘러 입안에 넣으며 으적으적 씹었다.

“이건 식량 가방인가 본데?”

커다란 가죽 가방 안에는 말린 육포와 곡식 가루 등이 반 정도 차 있었다. 기쁜 얼굴로 그는 식량 가방을 등에 단단히 메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런 끝에 그는 불을 피울 때 사용되는 부싯돌, 불꽃이 튀기만 해도 불이 활활 타오르는 나무 기름이 든 기름병, 그리고 수프를 끓일 수 있는 작은 솥단지 등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을 하나둘씩 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그곳에서 한동안 지낼 수 있겠군.”

도현이 향하는 곳은 거대한 숲의 북동쪽으로, 산자락에 위치한 어느 암벽 중간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파쵸마들을 유인하기 위해 숲을 살펴보던 중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암벽 중간에 콧구멍처럼 뚫린 곳으로 직접 들어가 보니 좁은 입구와 달리 안은 제법 널찍했다.

파쵸마의 등장을 경계하며 숨죽이고 이동한 끝에 그는 지상에서 6미터 정도 되는 높이에 위치한 동굴 바로 밑에 도착했다.

절벽과 같은 산자락 귀퉁이의 암벽이라 파쵸마도 웬만해서는 동굴까지 기어 올라가지는 못할 구조였다.

“세 번은 왔다 갔다 해야 될 것 같군.”

무거운 식량 가방을 등에 메고 신법을 발휘해 훌쩍 위로 솟구친 그는 암벽을 몇 번 걷어찬 끝에 동굴 입구에 정확히 착지했다.

식량 가방을 동굴 입구 근처에 내려놓은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암벽을 타고 내려갔다.

기름병과 솥단지 등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이 든 커다란 가방을 두 번째로 옮긴 그는 마지막으로 천에 둘러싼 무기를 옮겼다.

철거덕.

동굴 바닥에 내려놓자 10여 자루가 넘는 검과 도끼 들이 서로 부딪히며 둔탁한 금속음을 냈다.

잠시 숨을 돌린 그는 추적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횃불에 불을 붙여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허리를 약간 구부정하게 숙여야 했던 입구와 달리 동굴 끝은 검을 들고 수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컸다. 오후에 한번 들러 살펴보긴 했지만, 그때는 불이 없어서 지금처럼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었다.

동굴이 무너질 가능성은 없는지 횃불에 비친 동굴 내부 모습을 둘러보며 손으로 벽을 만져 보던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춥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야.”

하얀 입김을 토해 내던 도현은 빈 가방과 도끼를 챙겨 동굴을 나갔고, 얼마 뒤 가방에 장작을 가득 만들어 담아 왔다.

전날 내린 폭설로 인해 습기가 배어든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기름병에 든 끈적끈적한 기름을 약간 붓자 장작은 흰 연기를 내뿜다가 어느 순간 제대로 불이 붙었다.

모닥불을 만든 도현은 그 위에 눈이 가득 담긴 작은 솥단지를 올려놓고 곁에 앉았다.

모닥불이 만든 따뜻한 기운이 천천히 그의 몸을 감쌌고, 얼어 있던 그의 코끝이 녹으며 간질간질했다.

그제야 도현은 팽팽하게 긴장시켰던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으며 길게 숨을 토해 냈다.

강을 건너며 혹한 속에 쫓길 때는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그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결국은 끝까지 버티며 살아남았다.

물론, 지리산 도인이 부친에게 전수해 준 단전호흡법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가만히 응시하던 도현은 솥단지 안의 눈이 녹아 김이 올라오자 더 끓기 전에 모닥불 위에서 내려놨다.

그리고 그 뜨거운 물에 피에 절은 얼굴과 손을 깨끗이 씻어 냈다.

악명

해가 바뀌어 열여덟이 된 에드는 도현이 집을 지으려고 했던 빈 집터에서 오늘도 검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언젠가 돌아오면 발전된 내 모습을 보여 줄 거야.’

두 달 전, 칼라치와 싸우고 사라진 도현의 얘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겨울이 시작된 그날 밤, 도시 남부에서 벌어졌던 수백 대 일의 싸움은 알게 모르게 목격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은 도현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묘사했지만, 가장 가까이서 도현을 지켜보고 함께 생활도 했던 에드는 속으로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분이 얼마나 멋진 분인데. 인간 도살자라니?’

무시무시한 악명이 붙을 만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현의 검 아래 생을 마감한 건 사실이었다.

더구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는 더욱 엄청났다.

칼라치와 몇몇 구역장들이 합세해서 도현을 추적했지만, 되레 큰 망신만 당했다는 소문이다.

칼라치가 그날 이후로 구역을 포기하고 조용히 사라진 것도 그 후유증 때문이라고 했다.

에드네는 보호비를 칼라치가 아닌 다른 구역장에게 바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내가 그분에게 검술을 전수받았다고 하면 모두 놀라겠지?’

흐뭇한 마음이 밖으로 흘러나오자 에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울면서 뛰어오는 동생의 모습에 그는 미소를 거뒀다.

“으아앙! 형!”

“뭐야 너.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토밀의 얼굴은 찐빵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하도 맞아서 팅팅 부은 것이다.

“그게.”

훌쩍이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동생을 보며 에드가 벌컥 화를 내려다 입술을 깨물며 차분히 말했다.

‘그분 같으면 침착하게 말했겠지?’

도현의 여유 있고 진중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에드는 일단 들고 있던 검 먼저 허리에 찼다. 그리고 동생의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숨 크게 들이마시고. 그래, 이제 얘기해 봐. 무슨 일이야?”

“지나가다 몸 부딪혔다고 그냥 막 때렸어.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니가 먼저 부딪혔어?”

“아니, 자기가 먼저 부딪힌 거야. 그런데 막 화를 내면서 이렇게 흐흑, 때렸어. 으앙!”

“그 자식 지금 어딨어?”

“한 번만 더 내 동생에게 손을 대면 죽여 버리겠다! 알겠어!”

도현이 없는 두 달 사이에 검을 수련하며 몸도 배포도 훌쩍 커 버린 에드는 검을 상대방 목에 가져다 대며 차갑게 소리쳤다.

“흐흐흐, 날 죽이겠다고? 진짜 죽일 수 있기나 하고?”

에드와 검을 겨루다 된통 당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었다.

“허튼짓하지 마. 진짜 그러다 죽어.”

에드의 경고에도 사내는 입안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뱉어 냈다.

“죽여 봐, 이 새끼야! 너 같은 순둥이 자식은 딱 보면 티가 나. 네가 사람 살을 베고 뼈를 가르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기나 해?”

사내가 한 걸음 다가오자 에드가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건 여자와 사랑을 나눌 때보다도 더 감미롭고 기분 좋은 느낌이야.”

사내가 씨익 웃으며 수중의 검을 에드를 향해 휘둘렀다.

“나도 다크캐슬 사람이야. 언제 살인을 해야 할지 시기만 기다리고 있었어. 당신이 그 첫 제물이 될 수도 있고.”

“아아, 그래. 난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한번 해 보라고. 어서!”

“빌어먹을!”

에드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주위에서 죽어 간 사람들을 숱하게 목격했고, 아버지로부터 위험하면 지체 없이 상대방을 먼저 죽이라고 배웠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자 손발이 어지러웠다.

“형! 위험해!”

골목길에서 지켜보던 토밀이 냅다 던진 돌멩이에 머리를 맞은 사내가 어이쿠 하며 뒤로 물러났다가 눈을 치켜뜨며 검을 미친 듯이 휘저었다.

“너희 두 놈들 오늘 내 손에 다 죽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당신 정말 내 손에 죽고 싶어!”

“이 망할 도시에서 내가 살 곳은 없어. 흐흐흐, 간만에 피 맛 좀 보지 뭐.”

거친 사내의 기세에 에드는 동생이 있는 곳까지 밀려났다. 실력이 높아도 단호하게 손을 못 쓰니 계속 밀린 것이다.

“네놈 동생부터 죽여 버리겠다!”

사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에드가 돌변했다.

“그래, 한번 해 봐! 내 동생 죽여 보라고!”

몸을 반쯤 숙여 사내의 검을 흘린 에드가 쾌속하게 검을 찔러 넣었다.

“커헉!”

옆구리에 검을 맞은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며 골목 벽에 기댔다.

“형! 잘했어!”

뒤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토밀이 만세를 불렀다.

“하아, 하아.”

피를 흘리며 벽을 따라 주저앉는 사내를 내려다보던 에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만 가자.”

만세를 부르는 동생에게 돌아서던 그때 토밀의 눈이 커졌다.

“형! 뒤에!”

옆구리에 부상을 당한 사내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에드 등에 검을 쑤셔 넣고 있었다.

에드가 몸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 보였다.

그 순간, 강렬한 검광이 골목 안에 휘몰아쳤고, 에드의 등에 검을 꽂으려던 사내의 목이 몸과 분리되어 힘없이 옆으로 떨어졌다.

쿠웅.

목 없는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많은 피로 골목 안은 금세 붉어졌다.

“누가?”

위기를 넘긴 에드가 옆을 쳐다봤다.

낡은 옷을 입고 수염을 제멋대로 길게 기른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달갑지 않은 일인 건 분명하지. 하지만 필요할 땐 냉정해야 돼. 그게 검을 든 검사가 가야 할 길이야.”

시체를 넘어 걸어온 그는 얼떨떨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에드의 어깨를 불쑥 움켜쥐었다.

그 손길이 너무 빨라 눈 뜨고 보면서도 피할 수 없었다.

“에드, 잘 있었냐?”

에드의 몸이 살짝 떨렸다.

머리가 산발되어 눈을 가리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지만, 어쩐지 눈에 익숙한 얼굴 형태와 몸이었다. 목소리도 그랬다.

“수련을 열심히 했구나.”

두 달 만에 다크캐슬로 돌아온 도현은 놀란 에드와 토밀에게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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