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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11화 (111/575)

[111] 디 임팩트 5권 11화

다시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도시로 돌아온 도현은 약간 안심을 했다.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이디언은 이 도시에 아직 있습니까?”

“아! 그 여자 마법사 말이지. 그날 이후로 보이지 않던데. 본토로 돌아갔나 보지 뭐.”

“칼라치는?”

“윌벤슨의 집에 머물고 있어. 둘이 가까운 사이거든.”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유리병을 가지고 와 도현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준 뒤, 자신의 잔에도 술을 가득 담았다.

“근데 어디서 지냈나? 분위기를 묻는 걸 보면, 도시에는 없었던 것 같고.”

“조용한 곳에서 지내고 왔습니다.”

“하아, 나도 조용한 곳에서 여생을 편안하게 살고 싶은데, 다크캐슬은 그게 안 돼. 명색이 왕의 피를 이은 내가 이런 작은 구역의 우두머리 짓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어디 출신인가?”

“고향은 없습니다.”

도현은 말을 아끼며 간단히 대꾸했다.

“고향을 잊고 싶을 만큼 사정이 깊나 보군. 뭐 이 도시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의자에 앉아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던 헬구스는 술잔을 입에 댔다.

“한데, 자네의 실력이면 굳이 이곳으로 오지 않아도 본토 어느 왕국이든 찾아가서 몸을 의탁할 수 있지 않나? 왜 이런 곳으로 왔나?”

“조사할 게 있어서.”

“이곳에서?”

흥미로운 눈길로 헬구스가 도현을 쳐다봤다.

“뭘?”

도현은 대답 없이 헬구스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두 달간의 동굴 수련을 통해서도 내공이 더 이상 늘지 않는 내공의 벽을 깨지 못했다.

이계에 온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몬스터를 잡아 내공을 빠르게 키우는 것이었는데, 아직은 그의 깨달음이 부족해서 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발목이 잡힌 상태였다.

물론, 두 달간의 집중 수련 시간은 그의 검술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나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다크캐슬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한 가지였다.

폭주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딘과 리드만은 혼돈의 마나를 고대인들이 폭주 없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언급했다.

거대한 고대 도시 유적 위에 세워진 다크캐슬에서 그 흔적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폭주의 해결책을 찾을지 막막했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실, 당신을 찾아온 건 분위기나 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다크캐슬에 온 목적과 관련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찾아온 것이죠.”

헬구스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도현을 가까이서 봤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보게.”

“혼돈의 마나를 아십니까?”

“혼돈의 마나라…….”

헬구스가 살이 쪄서 늘어진 턱살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깨어났다.

“그래, 기억이 나는군. 오래전 들은 기억이 있어. 사람을 미치게 하는 저주받은 마나라고. 자극을 받아 감정이 폭발하면 악마처럼 변해 주변을 초토화시킨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지.”

“잘 아시는군요.”

“그럼. 이래 봬도 한때는 왕실 도서관에서 현자들에게 둘러싸여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거드름을 피운 왕의 서자 출신 헬구스가 술을 홀짝였다.

“그런데 그건 왜 묻나? 기록에나 내려오는 사라진 힘을?”

“내가 그 혼돈의 마나를 익힌 사람입니다.”

“뭐라고!”

깜짝 놀란 헬구스가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돼! 혼돈의 마나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 기록에나 나오지.”

“두 달 전, 내가 그렇게 악착같이 당신들의 추적을 피하려 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감정이 폭발해 악마처럼 변하는 내 자신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도현이 솔직히 얘기를 했다.

“당신도 말했듯이 난, 감정이 폭발해 폭주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살의에 빠집니다. 힘도 평소보다 강해지죠. 그 당시 그랬다면 아마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정말 혼돈의 마나를 가졌나?”

“내가 구태여 당신에게 찾아와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헬구스는 도현의 눈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는 숲에서 자신에게 정보를 얻은 뒤, 약속대로 살려 줬다. 그때의 일면만 보더라도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을 인물은 아니었다.

“독에 중독되더라도 사람 한 명은 죽일 수 있다는 말, 이제는 이해하겠습니까?”

술잔을 주고받을 때 했었던 이야기를 도현이 상기시켜 주자 헬구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였군.”

도현도 모른다, 독에 중독되면 어찌 될지는. 하지만 헬구스에게 자신이 불사신과 같은 존재라는 걸 크게 부각시켜 주는 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고대인들은 혼돈의 마나를 이상 없이 사용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크캐슬에 온 겁니다. 그들이 살았다는 이 도시에 오면, 이 불안전한 힘을 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흐음.”

“하지만 막막하더군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조직이 있고,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사람을.”

“그게 나라고?”

“숲에서 만난 당신은 충분히 융통성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요.”

도현은 술잔을 비운 후, 강한 눈빛으로 헬구스를 응시했다.

“혼돈의 마나와 관련된 정보를 모으는 걸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음…….”

헬구스는 의자에 기대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도시는 넓고 자신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윌벤슨과 한번 척을 졌던 사내와 가까이 지내는 게 과연 자신에게 득이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윌벤슨이 도현에게 관심을 끊었다고 해도, 정말 관심을 끊은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성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에 집중을 하기 위해 잠시 묻어 두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렵습니까?”

헬구스가 머뭇거리며 시간을 끌자 도현이 차분한 시선으로 물었다.

“커험, 아니 뭐 어렵다는 건 아닌데. 아니, 그러고 보니 자네 이름도 모르고 있군?”

“도현입니다.”

“그렇군. 도현이라. 술 한잔 더할 텐가?”

술을 따라 준 헬구스는 도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사실, 내가 요즘 바쁘다네. 굉장히 중요한 일을 목전에 둬서 말이야. 자네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 일에 집중을 해야 해서 당분간 다른 일에는 관심조차 둘 수가 없어.”

“부하들 일부는 움직일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게 말이지, 부하들도 하나같이 나처럼 먹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해서 움직임도 둔하고 영 정보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는 녀석들이야. 그리고 혼돈의 마나라는 게 드러내 놓고 물어보고 다닐 성질의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군요?”

도현은 표정 변화 없이 술을 마시며 헬구스를 지그시 응시했다.

“자네를 정말 돕고 싶은데 말이야. 사정이 좀 그래. 이해 해 주게.”

“공짜로 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돈이 필요하면 만들어 올수 있습니다.”

“차라리, 윌벤슨을 만나 보는 게 어떤가? 그는 나보다 많은 영향력이 있어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모아서 자네에게 제공해 줄 수 있을 텐데?”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도현은 왠지 썩 내키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죠. 술 잘 마셨습니다.”

도현은 더는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참, 어떻게 구역장이 된 겁니까?”

“그야, 나보다 힘없는 녀석을 잡아서…….”

별생각 없이 대꾸하던 그를 향해 도현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간단하군요. 도시의 구역장이 모두 몇 명이죠? 당신을 제외하고요. 37명이던가요? 그들을 모두 제거하면 난 어떤 위치에 오를까요?”

헬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신을 찾아오는 길에 고민을 좀 했습니다. 과연 당신 한 명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내가 찾는 정보들이 쉽게 모아질까? 그래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역시 어려운 문제였나 보군요. 그래서 마음이 서서히 기울고 있습니다.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다크캐슬에서는 우스운 일이라고요. 어차피 힘 있는 자가 모두 차지하는 곳이 아닙니까?”

헬구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갔다.

“설마, 진짜로 도시의 구역장들을 모두?”

“악명을 얻을 만큼 이미 손에 적지 않은 피를 묻힌 사람입니다. 피를 더 묻혀서 내가 원하는 일을 시킬 부하들을 많이 얻게 된다면, 한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자네라도 그건 불가능해. 어떻게 이 도시 전체를 다 차지하려는 생각을.”

“차지 안 합니다. 구역장들만 죽이고 조직의 2인자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죠.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찾고자 하는 정보만을 구해 오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역시 그렇게 처리해도 될 문제였군요.”

도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냥 가겠습니다. 오늘은 싸우지 않겠다고 당신과 약속을 했으니까요.”

“이보게 도현!”

헬구스가 한겨울에 땀을 흘리며 도현 앞에 섰다.

“혹시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기분이 상해서 그러는 거면 사과하겠네.”

“아닙니다.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잠시 이 도시의 특성을 내가 망각했을 뿐이니까요. 날 도와줄 구역장들이 없으면 그들을 모두 갈아 치워 버려야죠. 안 그렇습니까?”

“좋아, 도와주겠네! 그러니까 나는 빼 주게!”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요. 부하들은 하나같이 움직임이 둔하고.”

“하하하, 내가 그렇게 말했던가? 에이, 잘못 들었군. 그러고 보니 내가 혼돈의 마나와 관련해 자네에게 말할 게 있었는데, 자네가 가슴을 두근거리는 무서운 말을 하니까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군.”

도현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혼돈의 마나가 가끔 이렇게 불쑥불쑥 이성이 아닌 감정대로 말을 뱉어 내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겠지. 얼른 해결을 해야 될 텐데. 잠시 앉아 있게.”

도현을 의자에 억지로 앉힌 그는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갔다가 잠시 후 둥글게 말린 양피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책상 위의 물건들을 손으로 쓸어버리고 공간을 확보한 헬구스는 가지고 온 양피지를 펼쳤다.

“이게 뭔지 아나? 바로 스므차 성주가 차지하고 있는 성의 내부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네.”

도현은 눈을 반짝이며 책상 위의 촛대를 양피지에 가까이 댔다.

‘배치도다. 성의 주요 건물들에 대한 위치와 통하는 길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어.’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되어 있으리라는 도현의 예상과 달리 성은 높은 성벽을 단일 방어막으로 한 구조였다.

도현의 시선이 성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엔 거대한 대저택이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스므차 성주가 머무는 곳이었다.

‘역시 밖에서 보는 것처럼 안은 대단히 넓구나.’

성의 주요 건물들의 배치와 그 사이에 넓은 주거 구역 등을 보더라도 성의 규모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의 내부 모습이 이렇군요. 한데, 이걸 왜 내게 보여 주는 겁니까?”

도현이 헬구스를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형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한 스므차 성주는 30여 년 전 자신을 따르는 일족들을 데리고 다크캐슬에 왔네. 그때만 해도 이 지역은 몬스터들이 장악하고 있었지. 하지만 스므차는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는 그의 군대를 통솔해 막대한 희생을 치른 끝에 이 성을 차지하게 됐지.”

도현도 루드에게 얼핏 들었던 이야기다.

스므차가 30여 년 전 자리를 잡은 이후로 지금의 다크캐슬이 형성됐다는 것.

“그런데 말이야. 그 당시 스므차가 이 성에서 고대 지하 유적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있어.”

“고대 지하 유적요?”

“그래. 하지만 그곳을 폐쇄시키고 아무도 못 들어가게 했다는군. 그게 30년 전 일이야.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지.”

헬구스는 책상에 손을 얹으며 반대편 도현에게 은밀한 시선으로 말했다.

“어떤가? 자네가 찾는 혼돈의 마나와 관련된 정보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이야기지 않나? 어쩌면 성안에서 발견됐다는 그 고대 지하 유적 안에 자네가 원하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정말 그럴까?’

살짝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도현은 책상 위에 펼쳐진 양피지에 시선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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