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디 임팩트 5권 12화
그는 아직 정확히 무엇을 찾아야지 자신의 폭주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맞닥트리면 그게 무엇이든 해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지하 유적이 정확히 어디에서 발견됐는지는 모르십니까?”
“소문이라는 게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아. 30년 전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쉽지만, 내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야.”
“음.”
도현은 팔짱을 끼며 성의 내부 배치도를 내려다봤다. 소문의 진위 여부를 따져 보려면 직접 들어가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양피지는 제가 가지고 가도 되겠습니까?”
“귀한 거야. 성의 내부가 이렇게 자세히 표시된 걸 구하는 건 정말 어려워. 나나 되니까 가지고 있지.”
생색내듯 말하며 헬구스는 양피지를 둘둘 말았다.
“하지만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주도록 하지. 받게.”
“고맙습니다.”
“근데, 언제 다른 구역장들을 죽일 텐가?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녀석들을 먼저 죽여 줄 수 있나?”
“글쎄요.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창가로 가며 도현이 답했다.
“아니, 왜? 아까는 다른 구역장들을 죽인다고 했잖아?”
“모든 건 때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빙긋 미소를 지은 도현은 2층 창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이봐!”
도현은 헬구스가 보는 가운데 가볍게 뜰에 착지한 뒤, 높은 담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제
며칠 날이 풀린다 싶더니 다시 찬 바람이 불며 추워졌다. 겨울이 끝나려면 아직 먼 상황이었다.
술집과 도박장이 늘어서 있는 노스리어는 밤이 깊도록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주님.”
“왜.”
“그만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싫어.”
“술집 사람들이 자꾸 노려보고 있습니다.”
딘은 건장한 술집 사람들이 다가오자 리드만과 함께 술집 밖으로 나갔다.
휘이잉.
귀를 시리게 하는 찬 바람이 그들 사이를 지나쳤다.
“밖으로 나오니 춥군. 다시 들어갈까?”
술도 안 시키고 일행을 기다린다며 자리를 떡하니 차지했던 딘과 리드만은 아쉬운 눈길로 따뜻했던 술집을 돌아봤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주님.”
“그렇지?”
팔짱을 끼고 술집 입구에 늘어선 술집 사내들의 기세에 둘은 추위에 웅크리며 거리로 나섰다.
“여긴 정말 삭막한 곳이야. 추위 좀 피하려고 들어갔는데 말이지.”
“그들도 장사를 해야죠.”
리드만이 기침을 하며 몸을 달달 떨었다.
“미안하네, 리드만. 자네 말대로 여관에서 오래 머물면 안 되는 건데.”
다크캐슬에 도착해서 멋모르고 여관에 들어간 그들은 며칠 안 돼 수중의 돈을 모두 빼앗기듯 지불하고 여관에서 쫓겨났다.
“아닙니다, 영주님. 저는 오히려 영주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싸우지 않고 녀석들의 횡포를 잘 참으셨잖습니까?”
“그런가?”
딘은 코를 훌쩍였다.
“그래도 자네가 이렇게 추위에 떠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아.”
“저는 괜찮습니다, 영주님.”
흰 수염 가득한 나이 많은 리드만은 기침을 몇 번 더 하더니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영주님, 사실은 그때 영주님이 호통을 치며 여관의 날강도 같은 녀석들을 모두 혼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남은 돈을 그렇게 허무하게 다 내주실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으니까요.”
“자네, 날 원망하는군?”
“제가요? 아닙니다, 영주님. 다만, 추위에 떨며 다니다가 제가 먼저 죽으면 영주님을 누가 모실까 싶어서 그러지요.”
“그러니까 날 원망하는 거잖아?”
딘이 언성을 살짝 높이자 리드만이 쿨럭거리며 건물 벽에 기댔다.
“하아, 하아. 영주님, 저 죽으면 그냥 두고 가십시오. 아시겠죠?”
“그만하고 따라와.”
“어디 가시게요?”
“생각해 보니 여관 녀석들에게 너무 너그럽게 대한 것 같아. 가서 내 돈을 받아 와야겠어.”
“영주님 체면에 그런 녀석들과 손을 섞으시게요?”
“체면 차리기에는 다크캐슬이 너무 추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신을 섬기는 사제도 등을 처먹는 녀석들은 혼을 내 줘야 합니다.”
리드만이 언제 기침을 했냐는 듯 건강한 얼굴로 앞서 가는 딘을 쫓아가려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빠르게 다가온 사내가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깜짝 놀란 리드만이 뒤를 돌아봤다. 눈에 익은 한 사내가 반가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누구신지?”
“접니다, 사제님. 도현입니다.”
“아! 자네!”
리드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들 또 들어왔나?”
딘과 리드만이 술집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자 술집에 고용된 사내가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노스리어 상점가는 뒤편에 바로 스므차의 성이 존재하고, 세금도 그곳에 바친다. 일이 벌어지면 스므차의 병사들이 개입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스리어에서는 싸움이 거의 없다. 일단 스므차의 병사들이 개입하면 혹독한 결과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구역장들도 이곳은 그저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곳일 뿐이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과 도박장에서는 간혹 가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기본으로 집기가 부서지고 피가 사방에 퍼지기 때문에 당일 영업에 큰 지장을 받았다.
그래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술집이나 도박장은 사람들을 고용한다. 작은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아까 봐줬잖아. 그럼 다른 데로 가. 여기가 거지 집합소도 아니고 참나.”
술집 사내의 말에 리드만이 호통을 쳤다.
“어허! 이분이 누구인 줄 알고! 감히 거지라니!”
“나가. 여긴 왕이라 해도 술 안 마시면 거지야. 알았어?”
우락부락한 사내가 탁자에 손을 올리며 지그시 딘과 리드만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나가시오. 다른 손님들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자리에 좀 앉아도 될까요?”
사내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훤칠한 키에 검은 가죽 갑옷을 입고, 허리에 검을 두 자루나 차고 있는 사내가 쳐다보고 있었다.
“일행이오?”
“네, 술을 주문할 테니 여기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도현은 탁자에 금화를 올려놓으며 술집에서 가장 질이 좋고 비싼 술을 시켰다.
“조금 전은 실례했소. 좋은 시간 되시오.”
우락부락한 사내가 가볍게 사과를 하고는 물러가자 도현은 원형 탁자 앞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벽난로에서 올라오는 불길로 술집은 아주 훈훈했다.
“영주님, 정말 신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춥고 힘들 때 이렇게 멋진 사내를 보내셨지 않습니까?”
“신이 아니라 이 친구가 제 발로 찾아온 거겠지. 그렇지 않나, 도현?”
“사제님의 말씀도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래 아까 그 길로 오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신의 계시가 제 머릿속을 관통하더군요.”
“그것 보십시오, 영주님. 이 친구가 아니면 영주님은 여관까지 가서 지저분한 녀석들과 손을 섞어야 했지 않습니까? 그런 거 싫어하시잖아요?”
“알았어. 그만해. 자네 말이 맞아.”
더 듣기 귀찮았는지 딘이 손을 휘저으며 술잔을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리드만이 공손하게 그의 잔에 술을 따라 줬다.
“난 원래 얻어먹는 성격은 아닌데, 자네가 굳이 사겠다고 하니까 받는 거야.”
딘이 헛기침을 하며 말하자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딘이 영주로서의 품위나 행동에 유독 신경 쓴다는 것을 지난번 만남에서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그런 그의 말에 별 거부감은 없었다.
“그래, 이곳엔 언제 왔나?”
딘이 리드만에 이어 도현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물었다.
“그날 영주님과 헤어진 후, 다크캐슬로 바로 왔습니다.”
“흠, 그럼 상당히 오래전에 도착했겠어.”
“그런 셈이지요.”
도현은 술을 한 모금 하며 대꾸했다.
“나와 리드만은 여기 온 지 며칠 안 됐어. 생각보다 춥고, 도시가 아주 넓더군.”
도현도 도시의 규모에 놀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자네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되니, 반갑군. 들게.”
딘이 술잔을 눈높이로 올리자 리드만과 도현이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래, 그동안 여기선 어떻게 지냈나? 사는 게 그리 녹록지 않은 장소 같은데 말이야.”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을 했다.
“이야기가 깁니다.”
“그럼 하지 말게. 난 지루한 얘기는 딱 질색이거든.”
딘이 술을 조금 마시며 잘라 말했다.
“영주님, 저는 궁금합니다.”
리드만이 끼어들며 도현을 쳐다봤다.
“내게 말해 보게. 어떻게 지냈나?”
“이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루드라는 사람 집에서 며칠 묶다가 구역장들과 싸움이 있었습니다.”
도현은 앞에 있는 딘과 리드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별관심 없어 하던 딘조차도 도현이 겪은 커다란 싸움에 흥미가 돋았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귀를 쫑긋 세우고 얘기에 빠져 있었다.
“그럼 자네는 두 달 만에 수련을 마치고 여기로 돌아왔다는 건가?”
“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두 분을 만난 겁니다.”
리드만은 놀란 얼굴로 영주를 봤다.
“영주님, 다크캐슬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소문 기억나십니까?”
“인간 도살자?”
“네. 그 사람이 바로 이 친구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이지 않습니까? 수백 명과 싸운 검사.”
보통 인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폭주를 하지 않고도 이런 무서운 실력을 발휘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리드만은 술을 연신 따라 마셨다.
“잘하면 영주님만큼 악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도살자로는 부족하지.”
지그시 눈을 내리깔고 술잔을 입에 대던 딘은 도현에게 물었다.
“내가 아무래도 자네를 잘못 파악했나 보군. 그때 자네 몸을 봤을 때는 그 정도 실력으론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야.”
“살려다 보니 없는 힘도 생기더군요.”
“겸손할 필요 없네. 어쩐지 자넬 아까 보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검만 보이더군. 아주 날카로운 검 말일세. 사실, 살짝 긴장이 됐어, 하하하!”
크게 한번 웃은 딘은 빈 술병을 가리켰다.
“비었네.”
“또 시키겠습니다.”
술을 더 시킨 도현은 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외람되지만, 저도 아까 영주님을 정면으로 봤을 때 긴장이 됐습니다.”
“그런가?”
딘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말게. 난 자네와 검을 겨룰 생각이 없으니까.”
도현의 생각을 읽었는지 딘이 선을 그었다.
“영주님은 지는 걸 싫어하시네. 그러다 폭주를 하실까 봐 두려우신 거야.”
리드만이 영주의 눈치를 보며 도현의 귀에 속삭였다.
“다 들려.”
딘이 헛기침을 하며 술을 입에 댔다.
“도시 밖에 있다가 오늘 들어왔으면 자네도 아직 폭주와 관련된 조사를 제대로 시작 못 했겠군?”
리드만이 흰 수염에 묻은 술을 훔치며 물었다.
“네.”
그들 모두 폭주를 해결하기 위해 다크캐슬로 왔기 때문에 대화의 흐름은 자연히 그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헬구스라는 구역장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도현이 30여 년 전 스므차 성주가 성을 차지할 때 발견했다는 고대 지하 유적을 언급하자 딘의 눈빛이 달라졌다.
“성안에 지하 유적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조사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에 대한 정보는 있나?”
도현은 시끌벅적한 술집 내부를 가볍게 훑어보며 품 안의 양피지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딘과 리드만이 호기심 짙은 눈빛으로 성 내부의 그림을 들여다봤다.
“성이 상당히 넓어서 조사하는 게 쉽지 않겠군. 드러나는 곳에 지하 유적이 있을 리도 만무하고. 겉핥기식으로는 한계가 있겠어.”
딘의 말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30년 전 일이고, 스므차 성주가 실제로 지하 유적을 폐쇄시켰다면 지상에서는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을 테니까요.”
“건물 하나하나마다 들어가서 내부를 조사해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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