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디 임팩트 5권 13화
밤에 잠입해 짧은 시간 동안 둘러봐서는 흔적을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성 내부에 들어가서 지하 유적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게 필요합니다.”
“방법은 있나?”
딘이 턱을 만지며 도현을 봤다.
“저도 아직은 생각 중입니다.”
떳떳이 넓은 성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도 접촉하고, 지하 유적과 관련된 정보들을 조용히 구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신분이 필요한데, 도현은 당장 생각나는 방법이 없었다.
성내에 거주하는 것은 외부인은 불가능했고, 그 출입도 엄격히 통제됐다.
도현이 탁자 위에 펼쳐 놓은 양피지를 다시 말려 할 때,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고 있던 리드만이 양피지 위에 손을 올려놨다.
“성에 들어가 머물 신분이 필요한 거지?”
“왜 그러나 리드만? 옆에서 지금껏 얘기 다 들었으면서.”
“아니, 어쩌면 자연스럽게 성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말입니다.”
도현과 딘이 눈을 반짝이며 동시에 리드만을 응시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사제님?”
“신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 같아.”
“맞고 싶나, 리드만?”
딘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술잔을 입에 댔다.
“신을 무시하면 큰일 납니다, 영주님. 제게 계획이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한낮에 후드를 뒤집어쓴 리드만이 허리에 가죽 가방을 메고 성의 입구로 걸어갔다.
노스리어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의 입구는 마차 서너 대가 동시에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고 높이도 높았다.
칼로 흠집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철판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창과 검, 방패로 중무장한 수십여 명의 병사들이 성의 입구를 지키며 오가는 사람들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못 들어간다.”
“한 번만 구경 좀 합시다.”
낮부터 술에 취한 사내가 추위에 살짝 언 얼굴로 제지하는 병사들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돌아가.”
병사의 차가운 말에도 사내가 미적거리자 병사가 옆에 동료에게 눈짓을 했다.
검을 빼 들고 다가온 병사는 술 취한 사내의 목을 단번에 잘라 내고 그 시체를 질질 끌어서 옆의 수레 더미에 던져 버렸다.
수레 더미에는 신분을 숨기고 성으로 들어가려던 몇몇 사람의 시체가 담겨 있었다.
“다음!”
병사의 외침에 리드만이 스윽 앞에 섰다.
“증표.”
“없습니다.”
“돌아가.”
“저는 신의 뜻을 따라 세상을 떠도는 수행 사제입니다. 성안에 있는 일곱 신의 신전에 들러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사제라고요?”
병사의 말투가 약간 공손해졌다. 스므차 성주의 부인은 일곱 신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 성안에 신전을 짓고 그 사제에 대해 깊이 예우했다. 그러니 그 밑에 있는 병사들은 신을 믿든 안 믿든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미안하지만 증표 없이는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는 게 이곳의 법칙입니다. 돌아가십시오.”
병사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사제를 이리 대하면 안 됩니다.”
리드만은 머리를 뒤덮고 있는 후드를 뒤로 넘기며 흰 수염이 가득한 얼굴로 근엄하게 병사를 쏘아보았다.
“신전에 가는 사제를 막는 건 그 신을 모욕하는 것인데, 그 화를 감당할 자신이 있습니까?”
“음.”
병사가 고민할 때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거한이 다가왔다. 성의 출입을 관리하는 지휘관이었다.
“무슨 일이냐?”
“지휘관 님, 이 사람이 일곱 신을 섬기는 사제라며 성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겠답니다.”
“증표는?”
“없었습니다.”
“뭐야?”
손가락 굵기만 한 두 눈썹을 가진 지휘관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덩치만큼 커다란 검이었다.
도끼처럼 넓적한 칼날을 허공에 휘휘 저으며 다가온 그는 머리를 숙여 리드만을 내려다봤다.
“이보시오, 사제,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나?”
“스므차 성주님이 다스리는 다크캐슬이 아닙니까?”
“그래, 맞아. 여기는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절대 들어갈 수가 없어. 아무리 당신이라도 말이야. 그만 돌아가.”
“그럴 수 없습니다. 난 꼭 성안에 있는 신전에 가야만 합니다.”
“왜 그렇지?
“사제가 가까이 있는 신전을 무시하고 갈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고집부리지 말고 돌아가시오. 내가 이만큼 말을 해 주는 것도 당신이 사제라서 그런 것이니까.”
“그리는 못 합니다.”
“죽고 싶나!”
지휘관이 검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단번에 몸을 두 조각 낼 것 같은 그의 기세에 리드만이 겁을 먹기는커녕 양손을 어깨높이로 올리며 신께 기도를 올렸다.
“무식한 자를 용서하소서.”
“무식해?”
눈썹을 파르르 떨던 지휘관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검을 힘차게 내리그었다.
‘무모했어.’
성의 입구가 보이는 곳에서 딘과 함께 지켜보던 도현의 낯빛이 바뀌었다. 헬구스가 준 성 내부 그림에는 일곱 신의 신전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보며 리드만이 제안한 계획이었는데, 저렇게 막무가내로 리드만이 막갈 줄은 몰랐다.
거리가 있어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하던 도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지휘관의 검이 리드만의 코앞에서 딱 멈춰 있었다.
“정말 죽을 생각이었나?”
“난 죽음이 두렵지 않소. 신을 위해 순교했다는 기쁨밖에는.”
차분히 말을 하며 리드만은 손가락으로 신의 별자리를 그리며 신을 찬양했다.
“당신이 진짜 사제라면 치료의 권능이 있겠지?”
지휘관이 붕대를 감고 있는 병사를 불렀다.
“훈련 중 칼에 베인 병사다. 치료하지 못하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목을 벨 것이다.”
주변은 물론 성벽 위의 병사들까지 지켜보는 가운데, 리드만이 허공에 신의 별자리를 그리자 그 자리에 생긴 하얀 빛들이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손을 병사의 팔에 가져다 댔다.
“크으으으.”
칼에 베인 작은 상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 갔다.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을 흘리던 병사는 눈을 깜빡이며 환한 얼굴로 지휘관을 쳐다봤다.
“지휘관님, 부상이 거의 다 나았습니다!”
“나도 눈이 있다.”
상처가 단번에 아문 놀라운 상황에 지휘관이 리드만을 감탄 어린 시선으로 봤다.
검을 거둔 지휘관은 피곤한 얼굴로 서 있는 리드만에게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시험을 해서 죄송합니다, 사제님. 워낙 흉악한 녀석들이 사는 도시라서 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계가 철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주어진 직무를 다하는 것을 어떻게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
치료를 하기 위해 힘을 많이 소진한 리드만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을 했다.
“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제님.”
치료를 할 수 있는 사제는 굉장히 드물었다. 성안의 신전에 있는 사제들 가운데서도 치료를 할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휘관인 그가 치료의 권능을 요구한 것은 사실 리드만을 죽이기 위한 핑곗거리에 불과했다. 그는 리드만을 사제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성안의 신전에 있는 대사제보다도 치료 능력이 더 뛰어나 보였다.
“받으십시오. 성을 드나들 수 있는 증표입니다.”
성주의 문장이 찍힌 작은 동판을 받은 리드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사제님을 신전까지 안내해 드려라!”
리드만은 앞서 가는 병사를 따라 육중한 성문이 입을 벌리고 있는 성내로 들어갔다.
“다행히 무사히 들어갔군요.”
가슴 졸이며 뒤에서 지켜보던 도현이 딘과 함께 성 입구에서 물러나며 말했다.
“자네 꽤 긴장을 했나 보군?”
“그럴 수밖에요.”
가차 없이 목을 베는 병사들의 행동을 목격한 도현은 리드만이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가 컸다.
“걱정 말게. 리드만은 그렇게 쉽게 죽을 인물이 아니니까.”
믿음이 진하게 느껴지는 그의 미소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다봤다.
성에 들어간 리드만이 과연 그들을 성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지 기대가 됐다.
기부로 들어온 금화와 은화를 세고 있던 대사제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천으로 탁자 위를 황급히 덮었다.
“대사제님.”
“무슨 일이냐?”
문을 열고 들어온 젊은 사제에게 대사제가 위엄 있게 말했다.
“신전에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예, 수행 사제라고 스스로를 밝혔습니다.”
“수행 사제? 그럼 성밖에서 들어온 사람이란 말이냐?”
“예. 병사들이 직접 신전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한데, 치료 능력이 굉장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소상히 말해 봐라.”
젊은 사제는 병사들이 해 준 말을 그대로 전해 주었고, 나이 지긋한 대사제는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알았다. 곧 나가마.”
젊은 사제가 나가자 대사제는 탁자 위의 금화와 은화를 마저 센 뒤에 침상 밑에 숨겨 놓은 궤짝을 열어 금화와 은화를 쓸어 넣었다.
석조 건축물로 된 일곱 신의 신전은 24개의 돌기둥이 내부를 떠받치는 웅장한 모습이었다.
각각의 기둥에는 일곱 신의 부조가 새겨져 있었고, 천장에서 내려온 촛대에서 수십여 개의 촛불들이 신전 내부를 밝히며 경건한 느낌을 자아냈다.
신전의 안쪽에 위치한 제단 앞에 두 무릎을 꿇고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하던 리드만이 소리 없이 일어나 옆을 봤다.
“리드만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떠돌며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환영합니다, 형제여. 난 다크캐슬에서 일곱 신을 모시는 충직한 종, 대사제 휴고스요.”
주름살 가득한 대사제가 보기 좋은 미소를 지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크캐슬은 오기가 쉽지 않은 곳인데, 큰마음 먹고 오셨구려.”
“신께서 제 발걸음을 인도하셨을 뿐입니다.”
“와 보니 어떠시오?”
대사제가 신전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묻자 리드만도 그 옆을 함께 하며 대꾸를 했다.
“신전에 성스러움이 가득한 게 평소에 대사제님께서 얼마나 신을 충직하게 섬겼는지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감동받았습니다.”
“으허허허!”
리드만의 칭찬이 싫지 않은지 대사제가 몇 개 안 남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형제여, 그대도 신의 은혜로움이 몸에서 넘쳐 나는 것 같소이다.”
“별말씀을요.”
“아니오. 성 앞에서 벌인 일은 이미 들었소. 대단합니다.”
“대사제님 능력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 보아주니 고맙지만, 내 능력은 당신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오.”
대사제는 말을 하며 신전 문을 넘어 외부로 나갔다.
흐릿한 하늘이 눈이라도 올 것 같았다.
“잠은 어디서 잘 거요? 특별히 정해 놓은 곳이 없다면 오늘은 내 집에서 머무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편히 쉬다가 내일 성을 떠나시구려.”
“저는 당분간 성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넉넉한 미소를 짓던 대사제가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무슨 말이오?”
“조금 전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는데, 신의 계시를 들었습니다.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사람들에게 신의 섭리를 설파하라고요.”
“그것 참 이상하군. 성내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곱 신을 믿는 신자들인데, 그런 계시가 내려왔다는 것이오?”
“저도 이런 계시는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대사제는 미간을 좁히며 신전 주변에 퍼져 있는 수많은 석조 건물들을 바라봤다.
“진짜…… 신께서 그리 계시를 내렸소?”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말이오?”
“겨울이 끝날 때까지요.”
“흐음, 겨울이 끝날 때까지라. 두세 달 정도로군.”
“내키지 않으시면 그냥 떠나겠습니다.”
대사제는 좌우를 살폈다.
젊은 사제 두 명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계시는 다 필요하니 내려온 것이겠지. 허락하오. 그대가 성에 머물 수 있게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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