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디 임팩트 5권 18화
도현은 단전호흡법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피곤함도 금방 풀리고, 체력도 왕성해지며 상처의 통증을 잠재워 주고 나아가 자가 치료까지 이어 주는 굉장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공을 키워 주는 축기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내공이 늘지 않는 그의 몸 상태 때문에 확실히 테스트하지 못해서다.
다만, 그는 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을 했다.
‘미리 알려 줬다가 내공이 생기지 않으면 크게 실망할 거야. 사람 자질에 따라 내공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순리에 맡기자.’
“그런 놀라운 효과가 있었어?”
용주가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전호흡법을 호심공이라고 이름 붙였어.”
“호심공? 듣기 괜찮은데. 호검술과도 잘 어울리고.”
“조금 있다 호심공을 전수해 줄게. 홍영 씨, 같이 배워요.”
“그럴까요?”
홍영이 웃으며 답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동공이기 때문에 검을 수련하면서 함께 발휘하면 좋을 거예요.”
“야, 근데 그 호흡법 굉장히 까다롭지 않냐?”
고등학교 다닐 때 용주는 도현이 하는 걸 보고 옆에서 잠깐 배워 보겠다고 따라 하다가 머리가 핑 돌고 가슴이 답답해서 포기했었다.
“앉아서 하는 것도 힘든 그 호흡법을 움직이면서 하라는 건, 정말 어려울 것 같은데.”
용주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20년 만에 내공의 씨앗을 얻었다는 그 호흡법이 아니야. 동공을 할 땐 전혀 다른 효과가 있다고. 그런 만큼 앞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세로 접근하는 게 필요해.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어.”
“네, 관장님. 명심하지요. 가르쳐 주시면 죽을힘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용주가 유쾌하게 말을 받으며 포권을 하자, 홍영도 따라서 도현에게 포권을 해 보였다.
“장난들 그만하고. 난 심각해. 호심공 알려 주면, 앞으로 잠잘 때 빼고는 의식적으로 수련해야 돼. 몇 개월이 지나 자연스럽게 호흡이 이뤄지도록.”
이때만큼은 도현의 얼굴에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
“철호 형은? 형에게도 알려 줄 거지?”
“당연하지. 우린 이제 다시 가족이 된 사이잖아.”
“철호 형이 호심공 덕을 좀 많이 봤으면 좋겠다. 몸도 정상이 아니잖아.”
도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 도현은 성에 들어가기 직전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이계에서의 이야기를 모두 마무리했다.
그리고 호심공을 용주와 홍영에게 그 자리에서 전수해 줬다.
“아, 머리 아파.”
들숨과 날숨을 따라 하던 용주가 붕대 감은 머리에 손을 얹고 인상을 썼다. 호심공을 도현의 지도 아래 조금씩 따라 하는데, 익숙하지 않는 호흡법으로 인해 산소가 부족한지 머리가 띵했다.
“도현 씨, 아무래도 오늘 용주 씨는 집에 일찍 들여보내야겠어요. 병원에서 괜찮다고는 했지만, 힘들어 보여요.”
“아니에요, 홍영 씨. 난 괜찮아요.”
“용주야, 홍영 씨 말대로 해. 내가 봐도 오늘은 너 집에 들어가서 그냥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무리하지 마.”
“저녁 교육은?”
“내가 하면 되지.”
“네가?”
언젠가
사장실을 나온 김탁훈은 경기 북부에 계획 중인 프리미엄 아울렛 매장과 관련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다 마주 오는 최태진을 발견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는 최태진을 그가 붙들었다.
“최 팀장님, 바쁘십니까?”
“아니요. 시간 있습니다.”
“잠시 위로 가서 얘기 좀 나누시죠.”
사옥 옥상으로 올라간 김탁훈은 담배를 피우며 뒤따라온 최태진에게 말했다.
“제게 해 주실 말씀이 있을 텐데요.”
“뭘 말입니까?”
최태진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전략기획실을 맡고 있는 김탁훈을 보며 물었다.
“백도현 말입니다!”
신경질적으로 대꾸한 김탁훈은 옥상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이 코를 볼 때마다 그놈을 떠올려야 합니까?”
도현에게 머리채를 잡혀 운전대에 처박혔던 그는 코를 다쳤었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전문가가 기회를 보고 있다고.”
“두 달입니다, 두 달!”
김탁훈이 최태진의 코앞에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윽박질렀다. 아버지의 개인 보디가드로 일을 하는 최태진이 과거에 정보기관에서 일했다는 주변의 말을 믿고 이번 일을 맡겼다.
나름 은밀하고 깨끗하게 처리해 줄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달이 다 되도록 진행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를 보여 주라 이겁니다!”
김탁훈이 침을 튀기며 화를 내자 최태진의 눈썹이 꿈틀댔다.
“먼저 부탁한 사람이 누군지 잊으셨습니까?
최태진이 한 발 다가와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김탁훈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리는 왜 하는 겁니까? 맡았으면 책임을 져야죠.”
“난 책임질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무심한 그의 대답에 김탁훈이 발끈했다.
“이보세요, 최 팀장님!”
“도와주고 있는 사람을 닦달하면 끝이 안 좋습니다.”
그의 나직한 경고에 김탁훈이 한동안 성난 얼굴로 최태진을 노려보다가 한발 물러났다.
“아니, 내가 살인 청부를 한 것도 아니잖아요. 백도현 그놈을 속 시원하게 두들겨 패서 몇 달 병원 신세 지게 만들어 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한 가지 더 요구했죠. 회사에서 퇴사한 전 여직원, 홍영은 다치게 하면 안 된다.”
“그거야, 언젠가 내가 차지할 여자니까.”
입맛을 다신 김탁훈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아무튼 참 속상합니다. 최 팀장님을 믿고 있었는데.”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차분히 제 얘기를 들어 보십시오.”
최태진은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탁훈의 옆에 서서 달래는 어조로 말했다.
“사실, 두 가지 변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백도현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무도인이라는 겁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한 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전문가가 그의 무예에 당해서 실패했습니다.”
“전문가 맞습니까?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요?”
“약간 맹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싸움 실력은 괜찮은 것으로 평이 난 자입니다. 그래서 믿고 일을 맡겼던 거고요.”
김탁훈은 단단한 차창을 주먹으로 깨고 자신을 노려보던 도현의 사나운 눈매를 생각했다.
“사람은 바꿨습니까?”
“그럴까 했는데, 자신을 믿어 달라고 하더군요. 백도현이 싸움에 능한 자라는 걸 알게 됐으니, 다른 방법을 이용하겠다고요.”
“바꿨어야죠.”
“백도현을 주변에서 감시하고 직접 상대까지 해 본 사람입니다. 한 번 정도는 더 기회를 줘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의뢰금으로 준 돈을 다시 토할 수도 없다고 버텨서…….”
김탁훈은 들인 돈이 아까운지 최태진의 대답에 더는 잔소리를 안 했다.
“그것 말고 또 다른 변수는요?”
“백도현이 도장을 비우고 종종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긴 기간 동안요.”
“어디로 가는데요?”
“그게 정확하지 않습니다. 전문가 말로는 무예에 미친 인간이라서 산속으로 수련을 간 것 같다고 하는데 말이죠.”
“홍영은 그런 인간이 뭐가 좋아서 나 같은 사람을 마다하고. 못난 년 같으니.”
혼잣말로 투덜대던 김탁훈은 발로 담배를 비벼 껐다.
“김 실장님, 이런 변수들이 더해져서 자꾸 늦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조금 느긋하게 먹고 기다리십시오.”
“알겠습니다. 일단 더 기다려 보죠.”
“피곤해서 도장 가기 싫다.”
“오늘 하루는 그냥 농땡이 칠까요?”
“둘 다 그러면 도장이 너무 허해 보이잖아. 우리 말고 한명밖에 없는데.”
이호선 피디의 말에 김유진 작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한 사람만 쉬어요.”
“그럴까? 가위, 바위, 보!”
김유진 작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겼다!”
크게 웃으며 기뻐하던 이호선 피디는 옆을 봤다. 김유진 작가가 차창에 머리를 박으며 자학을 하고 있었다.
“너 왜 그래?”
이 피디가 김 작가를 말렸다.
“이마에 멍 만들려고요.”
“그건 왜?”
“접촉 사고로 다쳤다고 하려고요. 그러면 며칠 쉴 수 있겠죠.”
“으이그! 장난 그만하고 내려!”
“장난 아니에요! 더 이상 다리에 무거운 납주머니 달고 교육받기 싫어요!”
“그러니까 나 혼자 도장에 다닌다고 했잖아. 왜 이제 와서 이래?”
“후회해요. 그때 내가 무슨 정신으로 피디님이 불쌍하다고 함께 다닌다고 했는지. 정말 후회된다고요.”
“너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다. 그때 내가 얼마나 감동받았는데. 그리고 너 솔직히, 백도현 관장이 없으니까 가기 싫은 거잖아. 아니야?”
이 피디의 말에 김 작가가 손에 든 모자를 마구 휘둘렀다.
“당장 국장님에게 가서 말해요. 이런다고 백 관장이 방송에 응하지 않는다구요!”
“못 해! 니가 말해!”
둘이 차 안에서 싸울 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날렵하게 생긴 사내가 차로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
이 피디와 김 작가는 말다툼을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인사를 하는 사람은 그들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들어온 호검술 도장 관원으로, 저녁 교육 시간에 그들을 제외한 유일한 관원이었다.
총 세 명.
저녁에 조 사범으로부터 교육을 받는 사람의 수였다. 몇 명의 관원들이 더 있었지만 그들은 힘든 교육에 며칠 버티지 못하고 욕을 하면서 나갔다.
“도장에 안 들어가세요?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차창을 내린 이 피디는 미소를 띠며 답했다.
“들어가야죠. 그렇지, 김 작가?”
“네. 내리자고요.”
모자를 눌러쓴 김 작가와 뱃살이 쫙 빠진 이 피디가 서글서글한 인상의 호태식과 어울려 도장 건물로 향했다.
“태식 씨는 힘들지 않아요?”
이 피디는 힘든 내색 없이 매일 도장에 나오는 호태식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힘들어도 꼭 도장에 나와야 돼서요.”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누군가 저를 응원하고 있어서요.”
“네에.”
이 피디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 호태식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두 분이야말로 정말 꾸준하시네요. 방송국 피디와 작가시잖아요. 저녁마다 시간 내기가 힘드실 텐데.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많이 되고.”
호태식이 계단을 오르며 그들의 열의를 칭찬했다.
“먹고살려니까.”
“예? 도장에 오는 게 먹고사는 일과 관계가 있습니까?”
“운동을 하고 싶다는 뜻이죠.”
옆에서 김 작가가 이 피디의 말을 웃으며 해명했다.
대화를 나누며 5층 도장에 도착한 그들은 문이 활짝 열린 도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평상시 조 사범이 근엄한 얼굴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왠지 그가 보이지 않았다.
“곧 오겠지.”
이 피디는 김 작가와 갈라져 호태식과 함께 남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무거운 납 주머니만 다리에 안 차도 살겠는데…….”
도복으로 갈아입던 이 피디의 시선이 호태식의 등으로 향했다.
등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징그럽게 피부 위로 올라와 있었다. 꼭 칼로 베인 상처 같았다.
하지만 이 피디는 칼에 베인 상처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당한 상처가 너무 끔찍했고, 아파 보였다.
‘그래, 교통사고라도 나서 등에 유리가 길게 지나갔나 보지 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등의 긴 흉터에 이 피디는 몸을 떨며 얼른 도복으로 갈아입고, 지급된 납 주머니를 도복 다리 위에 부착했다.
밴드 형식에 끝에 찍찍이가 있어서 한번 붙으면 웬만해서는 흘러내리지도 않는다. 다만, 가끔 바지가 흘러내릴 뿐이다.
이 피디가 먼저 탈의실을 나갔고, 뒤따라 나가려던 호태식은 사물함에 넣어 둔 휴대폰이 맹렬히 진동하자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댔다.
서지철의 전화였다.
“네.”
-도장이냐?
“네. 형님은요?”
-아직 필리핀.
“잡았어요?”
-그래, 잡아서 돈 회수하고 일 끝마쳤어. 백도현은 아직이지?
“네. 어디 수련 가서 산속에서 굶어 죽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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