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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19화 (119/575)

[119] 디 임팩트 5권 19화

호태식은 조용히 말하며 탈의실 문을 힐끔 쳐다봤다. 서지철의 요청으로 내부의 적으로 침투한 그는, 꾹 참고 도장에 관원으로 다니고 있었다.

“오시면 제 몫도 챙겨 주실 거죠?”

-당연하지. 너 때문에 내가 다른 의뢰를 받아서 움직일 수가 있었잖아.

“고맙습니다, 형님.”

-근데 태식아.

“예.”

-여기 필리핀에 일거리가 많다. 한국에서 도망 온 놈들 잡으려는 사람들 천지야. 아무래도 영업 무대를 한국과 일본에서 이쪽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

“괜찮죠, 거기도. 근데 여기가 빨리 정리가 돼야지 제대로 뭘 하죠.”

-그러게 말이다. 아무튼 도장에서 수고 좀 해라. 내일 보자고.

“예, 형님.”

전화를 끊은 호태식은 탈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뒤통수에 격한 충격을 받은 얼굴로 눈이 커졌다.

백도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굉장한 분위기를 주변에 발산하며 천천히 도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저 사람이 백도현!’

사진에서만 봤던 백도현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도장에 들어오며 호태식과 눈이 마주친 도현은 단정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먼저 해 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관장 백도현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호태식입니다.”

“조 사범으로부터 열심히 배우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호태식은 자신을 지나쳐 김유진과 이호선에게 걸어가는 그의 넓은 등을 눈이 부신 듯 쳐다봤다.

‘아, 새끼. 아우라가 장난이 아닌데? 형님 말대로 잘못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어.’

호태식은 상대가 자신보다 고수인지 하수인지 구별해 내는 나름의 육감이 존재했다.

그 육감이 도현은 매우 위험한 자라고 그에게 끊임없이 경고를 하고 있었다.

‘형님에게 이 일 못 한다고 말할까?’

그는 갑자기 목이 말랐다.

힘들어서 못 버티겠다며 차 안에서 이 피디와 싸웠던 김 작가는 도현이 용주 대신 지도를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힘든 기초 수련 과정을 군말 없이 받았다.

이 피디 역시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도장 바닥에 찍힌 흰 점들을 따라 무거운 두 다리를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하체의 힘과 중심을 잡아 주는 운동이었다.

“관장님, 저 정말 열심히 수련하고 있지 않습니까?”

구슬 같은 땀을 흘리던 이 피디가 지나가는 도현에게 말했다.

“운동 중 쓸데없는 잡담은 금지입니다.”

“죄송합니다.”

이 피디를 혼낸 도현은 움직일 때마다 좌우로 흔들거리는 그의 어깨를 바로잡아 주며 지나쳤다.

김 작가 앞에서 선 도현은 그녀의 허리를 곱게 펴 줬다.

“지치고 힘이 들어도 어깨는 좌우로 치우지지 않아야 하고, 허리는 반듯해야 합니다. 양손은 가볍게 말아서 허리에 밀착시키고, 흰 점들이 가리키는 기초 보법의 간격을 납 주머니를 착용한 무거운 다리 상태에서도 정확히 유지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관장님!”

김유진의 씩씩한 대답에 도현은 속으로 웃으며 호태식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 피디나 김 작가보다는 훨씬 안정된 자세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합니다.”

“예?”

“누구에게 쫓기고 있습니까? 자세는 안정되어 있지만, 움직이기 바쁩니다. 그래서는 제대로 하체에 힘이 모이지 않습니다.”

도현은 말을 하며 들고 있는 목검으로 호태식의 다리를 슬쩍 밀었다.

가볍게 밀었는데도 불구하고 호태식은 별 저항도 못 하고 옆으로 픽 쓰러져 버렸다.

얼굴이 붉어진 호태식이 서둘러 일어났다.

“나중에 진짜 호검술을 펼치게 되면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호검술의 가장 기본은 하체의 강력한 기세에 있습니다. 검을 한 번 휘두르기 위해서 하체의 다리는 수만 번 단련을 거쳐야 합니다. 안정된 자세 속에 마음을 담아서 다리를 움직이세요.”

“명심하겠습니다, 관장님.”

호태식은 도현의 눈치를 보며 크게 대답했다.

세 명을 지도하며 도장 뒤편으로 간 도현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철호에게 다가갔다.

“철호 형.”

“어? 도현아.”

막노동을 끝내고 검을 수련하러 온 철호가 반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수련은 잘 마치고 왔냐?”

“네.”

도현은 그에게 조용한 곳에 가서 개인 수련을 하고 온다고 말해 두었었다. 이계 얘기를 하게 되면 아버지의 죽음까지 언급이 되기 때문이다.

고시원에서 폐인처럼 지내다 이제 막 막노동을 하며 다치지 않은 왼팔 하나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그에게 많은 이야기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철호는 반가운 마음에 할 말이 많았지만 조용히 수련에 집중하는 세 명의 수련생들을 위해 말을 줄였다.

“끝나고 얘기하자.”

“그래요, 형.”

도복으로 갈아입은 장철호는 도장 한구석에서 왼팔만으로 팔굽혀펴기를 묵묵히 한 뒤, 일어나 목검을 들고 호검술의 기초부터 다시 철저히 익혀 나갔다.

양손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현과 달리 그는 익숙지 않은 왼팔로 처음부터 검술을 다시 익히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도장을 나가는 호태식에게 도현은 꾸밈없는 얼굴로 부드럽게 인사를 했다.

교육 시간 동안 보이지 않던 부드러움이었다.

“관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호태식이 도장을 나가고 얼마 뒤, 이 피디와 김 작가가 옷을 갈아입고 다가왔다.

한 시간 동안 진이 다 빠질 정도로 수련을 한 두 사람의 얼굴은 힘이 들어 보이면서도 어딘지 밝아 보였다.

“도장에 오면서 두 분이 계실지 궁금했습니다. 교육이 두 분에게는 버겁지 않을까 했거든요.”

“솔직히 힘들어서 그만둘까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둘이 나가면 도장에 남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잖습니까? 호태식 씨요. 그래서 차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맞아요. 우린 방송을 함께 한 사이잖아요. 의리가 있죠.”

김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흠, 전 두 분이 검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대단해서 어려움을 이겨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오해였군요? 단순히 도장의 입장을 생각하고, 저와의 의리 때문이었습니까?”

도현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하자 이 피디와 김 작가가 화들짝 놀라며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백 관장님. 당연히 호검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먼저죠. 안 그래, 김 작가?”

“그럼요. 호검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놓치겠어요. 몇 개월이 걸린다는 이 기초 수련 과정을 꼭 버텨서 목검이라도 붙잡고 말겠어요.”

의지가 보이는 그녀의 대답에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말은 농담이었습니다. 두 분이 계셔서 기쁜 마음에 잠시 장난을 친 겁니다.”

“그럼 사과하시는 마음으로 방송 섭외에 응해 주시겠습니까?”

분위기가 좋아서 어쩌면 오케이 사인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희망에 이 피디가 은근슬쩍 방송 얘기를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 문제 때문에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이 피디와 김 작가의 얼굴이 환해졌다.

도현은 장철호에게 조금 있다 오겠다는 말을 남겨 놓고 그들을 데리고 지하 도장으로 향했다.

홍영은 도현이 알려 준 호심공을 지하 도장에서 연습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오자 알은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5층에 안 오셨네요?”

홍영의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외모에 빠진 이 피디가 말을 붙였다.

“할 게 있어서요.”

홍영은 차를 타서 이 피디와 김 작가에게 대접 한 후, 다시 앉아서 호심공을 연습했다.

움직이며 호심공을 발휘하기에는 호흡법이 그리 간단치 않았고, 당분간 앉은 채로 들숨과 날숨으로 숨을 쉬는 연습을 해야 했다.

관장실에서 그녀가 하는 행동을 잠시 바라보던 도현은 차를 한 모금하며 천천히 입을 뗐다.

“이 피디님.”

“네.”

“낮에 이런 분이 찾아왔었습니다.”

도현은 책상 위에 놔둔 명함을 이 피디에게 건넸다.

“어? 이 사람은?”

“아시는 분입니까?”

명함을 보던 이 피디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토 야스오 씨와는 몇 차례 통화를 했습니다. 한데, 이 사람이 낮에 여길 찾아왔다고요?”

“네.”

“이상하군요. 왜 그가 여기에? 한국에 왔으면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게 순서인데.”

“혹시, 이 사람이 와서 무슨 문제를 일으켰나요?”

김 작가가 물었다.

“스기하라 마사키. 그 사람과 같이 왔습니다.”

“예에? 일본인 검객과요?”

이 피디와 김 작가가 동시에 놀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지난번 검객 열전을 만들 때 시작점은 스기하라 마사키의 눈 가리고 사과 베기 동영상이었다. 피디와 작가인 그녀가 그 사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사람이 여길 왜?”

“제가 없는 사이 5층에서 문제를 일으켰더군요.”

도현은 낮에 있었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것들이!”

이 피디가 분노하며 들고 있던 찻잔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은 어떡하든 도현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업무 때문에 밤샘을 해도 저녁마다 찾아와 꼬박꼬박 힘든 교육을 버티고 있었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나타나 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최악이었다.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방해는 말아야지.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국장님께 말씀드려야지. 단단히 따지라고 해야겠어.’

이 피디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백 관장님.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앉으십시오. 피디님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차분히 말을 한 도현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제가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해도 섭섭하시지 않겠죠?”

이 피디와 김 작가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 묻고 싶습니다.”

도현은 둘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직도 호검술 도장에 나오고 싶습니까?”

“용주가 없는 게 그 이유 때문이야? 마사키란 자식에게 당해서?”

한 인상하는 장철호가 눈을 치켜뜨자 악귀처럼 변했다.

“제가 기어서 가게 만들었어요, 형.”

“아니지, 아니야. 놈의 머리를 박살 내 버려야지. 이 자식을 그냥!”

격투계에서 한때 이름을 날렸던 장철호가 앉은 자세에서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플라잉니킥으로 허공을 강하게 찍었다.

그러나 착지를 하는 순간 다친 오른쪽 어깨에 충격이 도달했다. 예리한 송곳으로 뼈 사이를 콕콕 찌르는 심한 통증이었다.

“음.”

그는 묵직한 신음을 입안으로 씹어 삼키며 도현 앞에서 체면을 유지했다.

“뻔히 통증이 올 걸 알면서 바보같이 왜 그래요?”

도현의 타박에 장철호가 사각 턱에 난 수염을 손바닥으로 쓱쓱 밀며 히죽 웃었다.

“내가 그래도 큰형 아니냐. 과거에 못난 짓은 좀 했지만, 말이야. 이렇게라도 해야지 너희들에게 미안하지 않지.”

“별게 다 미안하네.”

도현은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장철호의 도복을 벌려 다친 어깨 부위를 육안으로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손으로 눌러 봤다.

“아파요?”

“아니.”

“이쪽은요?”

“아……니.”

식은땀을 흘리며 장철호가 대답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요. 참는다고 여기서 누가 알아주나.”

도현은 장철호에게 친형처럼 말을 편하게 했다. 과거 몇 년간 같이 살며 든 정이 도현의 인간적인 모습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렸다.

젊은 나이에 보이기 어려운 진중함과 차분함, 그리고 무게감은 이 순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아! 아파, 인마!”

도현이 손가락으로 깊게 꾹 누르자 결국 고통을 참아 내며 버티고 있던 장철호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몸을 피했다.

“그쪽이 제일 아픈가 보네.”

도현이 손을 털며 피식 웃었다.

“이 자식, 너 왜 이러는 거야. 나 골려 주는 게 그렇게 좋냐?”

“아니에요, 형. 하나도 재미없어요. 형이 아파하는 게 마음이 아프네요.”

“자식이, 이제 와서 분위기 잡기는.”

장철호는 돌아앉아서 손으로 눈가를 찍어 냈다. 이렇게 편하게 말을 할 동생이 그의 인생에 다시 찾아왔다는 게 행복했다.

“덩치는 산만 해서 우는 거예요?”

“아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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