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디 임팩트 5권 21화
골동품 암시장에서 일하는 유금찬은 한석호와 함께 오래된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특정한 날마다 문을 여는 홍콩의 골동품 암시장 가게들은 지하 복도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한 평 남짓의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중국에서 건너오거나 동남아, 혹은 일본과 한국에서 넘어온 오래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도자기부터 쾌쾌한 냄새가 나는 고서적, 불상, 병장기류, 그림 등 공개해서 팔기 어려운 옛 물건들이 진열대마다 가득 했다.
암시장은 한석호가 들어온 출입구 외에도 모두 다섯 곳의 출입구가 더 있었고, 문제 발생 시 지하 출입구를 모두 막고, 비상 탈출구로 모두가 도망갈 수 있는 체계였다.
경찰 일부와도 연계가 되어 있어서, 사실상 단속한다는 게 무의미하기도 했다.
벌써 암시장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 사이를 지나며 한석호는 유금찬에게 물었다.
“내가 흥미를 가질 물건이 확실하지?”
“그럼요. 한 선생님과 제가 맺은 인연이 몇 년인데요.”
한석호는 15년 전 유금찬과 우연히 암시장에서 인연을 맺은 이래 그의 도움으로 상당히 괜찮은 무예 서적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의미가 없는 것들도 그에게는 참고하여 공부할 만한 것들이 많았다.
“한 선생님, 그런데 오랫동안 무예 서적들이나 기공 자료 같은 걸 모으셨는데, 그걸로 뭐 하신 겁니까?”
“연구를 했지.”
앞에서 오는 사람을 피하며 한석호가 가볍게 대꾸했다.
“건강해 보이시고, 나이도 젊어 보이시기는 한데, 돈 아깝지 않습니까? 그런 거 본다고 해서 싸움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유금찬은 한석호가 뛰어난 검술과 내공을 겸비한 고수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암시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처럼 한 가지 분야에 유독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내 걱정을 해 주는 건가?”
“다른 건 되팔아도 본전을 찾을 수 있지만, 선생님이 구입하는 것들은 임자 없이는 대체로 되팔기 어려운 것들이잖습니까? 암시장 상인들도 팔 때는 비싸게 팔아먹으면서도 막상 그런 물건을 매입할 때는 가격을 제대로 쳐주지 않으니까요.”
유금찬은 주위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여기서 일하는 자네가 왜 내게 그런 말까지 해 주나? 어차피 자넨 내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중간에 수고비를 받아 챙기는 입장인데.”
“저야 뭐 그렇긴 한데요.”
암시장을 걷던 그는 걸음을 늦추며 한석호에게 속삭였다.
“사실, 제가 선생님 보는 건,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음, 암시장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을 건가?”
“네. 동생들도 다 공부시켰고, 이제 저는 제 인생을 찾아 떠날 겁니다.”
“아쉽군. 자네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는데.”
잠시 후 둘은 한 가게에 도착했다.
“여기입니다.”
유금찬은 한석호를 가게로 안내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가격을 흥정하는 건 이제 한석호와 가게 주인 사이에 일이었다.
한석호는 가게 주인이 내놓은 누렇게 색이 바래고 일부는 찢어진 몇몇 고서들을 하나하나 매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펴보다가 그중 한 권을 선택해 몇 차례 주인과 가격을 흥정하다 배낭에서 돈을 꺼내 지불했다.
주인이 제공한 얇은 목함에 붉은 천으로 감싼 고서를 보관한 그는 배낭에 목함을 넣었다.
“다섯 권 중 한 권만 내게 필요한 것이더군.”
그는 말을 하며 유금찬의 손에 수고비를 올려놨다.
“고맙습니다, 한 선생님.”
그는 가게에도 들어가 조금 전 한석호에게 물건을 판 주인에게도 똑같이 수고비를 받아 챙겼다.
유금찬이 가게를 나오자 한석호는 담담히 말했다.
“자네와 나 아직 술 한잔 같이 한 적이 없지?”
“그렇죠 뭐.”
“15년 만에 우리 이별주나 할까?”
“슬프네요. 그 긴 시간 동안 만났으면서도 정작 헤어질 때가 되서야 술을 같이 하다니요.”
유금찬은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점점 사람이 늘어나는 암시장을 빙 둘러봤다.
“가시죠, 한 선생님. 제가 술집으로 모시죠.”
그들이 막 가게 앞을 떠나자마자 눈빛이 깊은 사내 세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뭐라고? 그 서적을 팔았다고?”
“그렇소.”
“이런 젠장! 언제 말이오?”
“방금.”
“누구에게?”
“말이 많군. 팔았다고 했으면 그냥 조용히 갈 것이지, 왜 꼬치꼬치 캐물어. 여기서 그런 거 대답해 줄 사람이 있는 줄 아나?”
팔짱을 낀 가게 주인이 여차하면 암시장을 관리하는 패거리를 부르겠다는 눈빛을 보내자, 사내들이 들고 온 돈 가방을 가게 주인 앞에 열어 보였다.
“누군지만 말하시오. 이 돈 다 드릴 테니까.”
가게 주인은 돈 가방을 챙기며 뒤통수만 멀리 보이는 유금찬을 가리켰다.
“저놈 옆에서 함께 걷는 배낭 멘 남자요.”
머리에 붕대를 감고 도장으로 출근한 용주는 도현이 이계에서 입고 왔다는 견습 사제복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도둑도 되고, 사제도 되고. 너도 변신의 귀재다 정말.”
용주의 농담에 도현은 피식 웃으며 사제복을 받아 관장실 철제 캐비닛 안에 넣었다.
“그거 다시 입을 날이 오겠지?”
도현은 캐비닛을 닫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서 있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노력해 봐야지.”
스톤의 희소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희망을 꺾지는 않았다.
한석호의 사진전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스톤을 찾은 것처럼, 스톤은 또 그의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아니, 이젠 적극적으로 찾아보겠어.’
도현은 용주와 홍영의 호심공 수련을 옆에서 도와주다가 차를 타고 가평으로 향했다.
얼마 전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가평 조 박사의 집 마당에 차를 댄 그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 흰돌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다가 집으로 걸어갔다.
“이계에서 타투가 사라지려고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도현은 거실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와 두툼한 서류철들을 보며 대답했다. 그가 집안에 들어왔을 때 조 박사는 어디로 여행이라도 가려는지 한창 짐을 꾸리고 있었다.
“흠,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군. 차원 이동 장치야 기기가 작동하는 그 순간에만 스톤의 힘이 작용하지만, 자넨 걸어 다니는 차원 이동 장치가 아닌가?”
조 박사는 도현이 사 온 귤을 까먹으며 말을 계속했다.
“아마도 이계에서 자네가 머무는 동안 타투에 흡수된 스톤의 힘이 지속적으로 소모된 걸 거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마치 이계에서 차원 이동 장치가 계속 작동하는 것과 같은 이치군요?”
“비슷해. 내가 자네와 용주를 대상으로 처음 테스트할 때 말을 했었지? 몇 분 정도의 시간 세팅을 해서 차원 이동을 시켰다고. 이계에 머물 수 있는 시간만큼 스톤의 힘이 소모가 되는 거였어. 그런데 자네는 이계에서 계속 머물러 있다 보니 자네 타투 속에 스며든 스톤의 힘이 자네를 이계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했을 거야.”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어제 이와 유사한 생각을 했었다.
“게이트를 여는 횟수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머무는 시간까지 고려해야겠군요.”
“자네의 경험을 보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군. 하지만 난 아직 타투를 통한 차원 이동이 우연의 산물인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네. 어쩌면 아직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인가가 더 많을 수도 있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일세.”
조 박사가 소파에서 도현을 지그시 보며 말을 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사실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
“스톤 때문이겠죠?”
조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그렇지. 스톤을 찾는 게 쉬운 게 아니잖나. 스톤을 찾아야 나도 중단된 차원 이동 장치 실험을 계속할 수 있는데 말이야.”
10여 년 넘게 초고대 문명 연구를 해 온 조 박사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아쉬움이 흘렀다.
“제가 왠지 박사님 연구를 방해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죄송하긴. 자네 책임이 아니라고 지난번에 말했잖아. 내가 완벽히 기기를 만들었다면 자네 팔에 타투가 안 생겼겠지. 그로 인해 스톤의 힘이 자네에게 옮겨 가지도 않았을 테고.”
소파에서 등을 뗀 그는 귤껍질을 도현에게 흔들어 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난 자네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네. 껍질 속에 든 알맹이를 자네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맛볼 수 있었잖나?”
도현이 이계를 다녀오며 해 준 흥미로운 이야기에 조 박사는 나름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귤이 달군. 자네도 먹어 보게. 아주 맛있는 걸로 잘 사 왔어.”
“네.”
도현은 귤을 먹으며 거실을 둘러봤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십니까?”
“뉴질랜드에 가네. 나처럼 초고대 문명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초청을 했어. 그래서 당분간 그곳에 가 있으려고.”
조 박사는 소파에서 일어나 도현이 오기 전까지 하던 일을 이어 갔다.
거실에 늘어놨던 옷가지와 서류철 등이 여행 가방 안에 차곡차곡 들어갔다.
“언제 가십니까?”
“내일. 아참, 백 관장, 자네 용주 녀석 보면 흰돌이 좀 틈틈이 챙기라고 하게. 이웃 할머니 집에 맡겨 놓는다고 하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알겠습니다, 박사님.”
등을 보이며 가방에 짐을 넣고 있는 박사를 잠시 바라보던 도현은 찾아온 본론을 꺼냈다.
“박사님.”
“응? 뭔가.”
하지만 도현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말해 보게. 자네답지 않게 뭘 망설이나?”
박사가 가방을 덮으며 뒤돌아서자 도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박사님,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이제는 스톤이 제게도 굉장히 중요한 게 됐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도현이 이계에 가서 힘을 기른다는 것을 조 박사도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네팔에서도 스톤이 발견됐습니다. 그렇다면 의외로 스톤은 세상 곳곳에 퍼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스톤을 산다고 인터넷에 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뭐라고? 인터넷에?”
“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사이트에도 말이죠. 고가의 금액으로 구한다고 하면, 가치 있는 수석 정도로 생각하고 집에 보관하고 있는 소장가로부터 연락이 올 수도 있고, 아니면 가까운 주변을 신경 쓰며 사람들이 찾아보지 않겠습니까?”
이목을 끌어 스톤의 비밀이 밝혀지는 걸 극히 두려워하는 조 박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고는 있지만, 이 넓은 세상을 그들 몇이서 다 살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사님은 연구를 위해서라도 스톤이 필요하고, 저 역시 이계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자네 말 충분히 이해하네. 어떤 의미인지도.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나?”
조 박사는 거실 커튼을 활짝 열며 밖을 내다봤다.
“하지만 쉽사리 그러지 못한 이유는 스톤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서야.”
“그 관심이 박사님과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관심이 아니라면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글쎄, 그럴까?”
신중한 얼굴로 조 박사는 거실 창을 통해 흰돌이가 녹지 않은 눈밭을 뒹구는 걸 보았다.
“찾지 못해 미련으로 남겨 두기보다는, 뭐라도 해 보는 게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음…….”
“허락해 주신다면 박사님과 상관없는 제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스톤을 구해 보겠습니다. 스톤의 구입 비용도 제가 준비하고요.”
그는 조 박사의 허락 없이 일 처리를 할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 박사의 침묵이 길어졌고, 도현은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백 관장.”
“네, 박사님.”
“생각할 시간을 주게.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다음,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기다려 주겠나?”
“고맙습니다,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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