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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22화 (122/575)

[122] 디 임팩트 5권 22화

도현은 조 박사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닌 것 같으면 그 자리에서 칼로 무를 베듯 싹둑 잘라서 말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을 했다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잘 다녀오십시오, 박사님.”

“연락하겠네.”

조 박사 집을 나선 도현은 껑충껑충 뛰며 달려드는 흰돌이와 잠시 장난을 치다가 차에 올랐다.

차를 몰아 국도로 접어든 그는 오전에 통화가 되지 않았던 한석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있나?”

여전히 통화가 안 됐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는 차창을 열어 찬 바람을 얼굴에 맞았다. 이천만 원에 사진을 산 이후로 그와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아직도 도현은 치열하게 노력해서 지금의 실력을 갖췄다는 그의 자부심 강한 눈빛과 말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타투의 도움을 받아 내공을 쌓았다면 그는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금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그렇기에 대련을 하고 싶으면 천만 원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던 그를 도현은 비웃지 않았다.

“한 선배님은 내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까?”

도현은 한계에 도달한 내공의 성장과 관련해서는 전혀 도움받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사부도 없고, 서적도 없고, 오로지 스스로 그럴 것이라는 유추만이 전부였다.

깨달음이 있어 경지가 오르면 단전의 그릇이 커져 내공이 다시 늘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조차도 막연했다.

그는 조언에 목말라 있었다.

차창을 닫은 그는 던져 놓은 휴대폰을 다시 잡고 과자 좋아하는 스쿠터 마니아, 다혜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간지 얼마 안 돼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다혜 씨. 백도현입니다.”

-오랜만이에요, 관장님.

“네, 그러네요.”

다혜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그녀의 사부인 한석호에게 돈을 잘 전달했다고 말하기 위해 통화하던 그때였다.

그 이후로는 연락할 일이 없었다.

“할아버지와는 잘 지냅니까?”

도현은 예의상 물었지만 다혜는 옳거니 하면서 도현의 물음에 대해 길게 답변을 했다. 긴 답변 속에 핵심은 금산에서 혼자 살 때가 좋았다는 것이었다.

-이게 다 나를 버리고 혼자 자유롭게 살려는 사부님의 술수였던 거예요.

그녀의 음성은 여전히 밝고 경쾌했다.

“그렇군요.”

-제 얘기가 이상하게 들리죠?

“아니에요.”

-얘기 들었어요. 그때 사진전 끝나고 사부님 작품 중 하나를 거액에 구입했다면서요. 사부님이 껄껄대고 좋아하시던데요.

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커브를 돌았다.

-근데 왜 그렇게 비싸게 주고 샀어요? 정말 우리 사부님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예요?

“사부님이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제가 그 사진을 왜 샀는지요?”

-별말씀 없이 그냥 사진 보는 안목이 높은 사람이라고만 하시던데요.

냉정하고 계산이 철저한 사람으로만 알았는데, 다혜 말을 들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제자에게 사진을 비싸게 팔았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맞아요. 돌과 독수리라는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그래서 샀어요.”

-좀 이상해.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백 관장님은 그동안 어떻게 잘 지내셨어요?

“네, 좀 바쁘게 보냈어요.”

-다시 만나서 재대결을 해야 하는데. 그날 백 관장님에게 패하고 절치부심하며 마음속에 칼 가는 것 모르고 있죠?

“속마음까지 내가 알 수 있나요?”

도현의 여유 있는 대답에 다혜가 큭큭 웃으며 대답했다.

-언제 우리 만나서 다시 대결해요.

“그렇게 해요. 근데, 다혜 씨, 사부님 휴대폰 번호 혹시 바뀌었습니까?”

-전화번호요? 아니요. 예전 번호 그대로인데요. 며칠 전에도 제가 통화했어요.

그녀는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라며 빠르게 번호를 말해 주었다.

“번호는 맞아요.”

-사부님이 전화를 안 받아서 내게 전화한 거였어요?

“네. 번호가 바뀌었나 해서요.”

-사부님이 외국에 계실 때는 전화 안 받으실 때가 자주 있어요. 중요한 일이 있거나 뭐 그러실 때에요. 전화를 꺼 놓기도 하고요.

“아, 그럼 지금 외국에?”

-아마 그러실 거예요. 그러니까 나중에 전화해 보세요. 아니면 음성 사서함에 메시지 남겨 놓든지요.

“음성 사서함에는 남겨 놓았는데, 혹시나 해서 확인차 전화한 거예요.”

-그렇구나.

“고마워요, 다혜 씨. 다음에 또 통화해요.”

-잠깐만요, 백 관장님. 통화 한 김에 우리 약속 잡아요. 내일 시간 되면 낮에 그쪽 도장으로 제가 갈게요. 재대결해요.

도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승낙을 했다.

“준비할게요. 내일 오세요.”

주성하는 시력이 너무 좋아서 굳이 안경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평상시 안경을 착용하고 다녔다. 단정한 외모에 안경이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안경을 벗는 경우는 사람을 죽이거나 화가 났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예, 사형, 잠시 일이 있어서요. 별일 아닙니다. 저녁때 찾아뵙겠습니다.”

둘째 사형인 섭상과 전화 통화를 끝낸 주성하는 은테 안경을 벗어 정장 상의에 꽂은 다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홍콩의 교외 주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여러 명의 사내들이 제각기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그가 들어오자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입 다물어.”

주성하는 소파를 훌쩍 뛰어넘어 오더니 팔다리에 붕대를 감고 서 있는 사내들의 안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넓은 거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사내들은 거의 동시에 뒤로 튕겨져 나갔다.

와장창!

거실 창문을 통해 몸이 날아간 사내도 있었고, 대형 TV와 함께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진 사내도 있었다.

어떤 사내는 벽에 걸린 벽시계를 박살 낼 정도로 크게 튀어 올라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 여러 명에게 손을 쓴 그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꿈틀거리며 일어서던 사내의 안면을 구둣발로 걷어찼다.

“야 이 자식들아, 너희들이 그러고도 내 부하라고 할 수가 있어! 뒷골목 전전하던 새끼들을 거둬 주고 무공까지 가르쳐 주었더니, 고작 암시장 가서 내가 찾는 물건 하나 구해 오지도 못하고, 병신같이 당하고 와?”

“회, 회주님.”

“닥쳐, 이 새끼야! 회주는 무슨 얼어 죽을 회주야!”

거실 창문을 박살 내며 저만큼 날아갔던 사내가 피를 흘리며 다가왔지만 주성하는 인정사정없이 다시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가볍게 찬 듯 보였던 발길질에 얼마나 큰 힘이 담겼는지 맞은 사내는 정원에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까지 몸이 날아갔다.

정신을 잃은 사내의 몸이 수영장 안에서 축 늘어지자 주성하는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수영장을 비행하듯 스친 다음 사내를 건져 내 패대기쳤다.

“밖으로 다 나와!”

성난 주성하의 고함에 거실 이곳저곳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던 사내들이 고통을 참으며 서둘러 그의 앞에 도열했다.

“그 자식들 어디로 갔는지 찾아내. 못 찾으면 너희들이 내 손에 죽는다. 알겠어?”

“예! 회주님!”

사내들이 뛰어서 집을 나갔고 홀로 남은 주성하는 손에 묻은 피를 수영장 물에 닦아 냈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내 부하들이 손쓸 새도 없이 당한 거지?”

그의 부하들은 그의 지도 아래 수련을 해서 일반인들은 적수가 될 수가 없었다. 검술도 제법이었는데, 암시장에서 물건을 사 갔다는 녀석에게 오히려 칼을 빼앗기고 팔다리에 자상을 입기까지 했다.

“설마 섭 사형의 부하는 아니겠지?”

주성하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랬다면 직접 내게 지시가 내려왔겠지.”

사문인 검선문의 일과는 별개로 독단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는 그는 안경을 다시 착용하고 집을 나섰다.

“어떤 놈인지 얼굴을 보고 싶군.”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이호선 피디의 보고를 듣던 최 국장은 습관처럼 꺼낸 은단을 입안에 넣고 어금니로 으깼다.

“건방진 자식들.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 와서 결국은 백 관장에게 깨졌군.”

“백 관장이 스기하라 마사키에게 졌다면 진짜 화가 날 뻔했습니다.”

“그럼, 그럼. 우리 방송국을 믿지 못하고 단독 플레이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한 것 같은데……. 딱 보여, 백 관장을 자극해서 방송에 응하게 하려 했던 수작질이 말이야.”

“아, 그래서 야스오가 일본 검객을 데리고…….”

이 피디가 몰랐다는 듯이 눈을 조금 크게 뜨자 우람한 덩치와 달리 목소리가 가냘픈 최 국장이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눈은 못 속이지. 그런데 아쉽군.”

“뭐가 말입니까?”

“백 관장에게 깨지는 일본 검객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방송을 내보냈으면 시청률이 대단했을 텐데.”

“그건 그렇습니다.”

둘 다 아쉬운 마음에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수고했어. 한일 검객 열전 제작은 취소야. 이 일에 관심을 갖고 계신 사장님께는 내가 직접 상황 보고를 하겠네.”

“일본 측에 강력히 항의를 해야 합니다. 그자들 때문에 우리 회사와 백 관장 사이도 서먹하게 됐잖습니까?”

“걱정 마. 그렇게 할 테니까.”

최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이 피디 앞에 섰다.

“이 피디.”

“예, 국장님.”

“자네 그동안 살이 많이 빠졌군. 뱃살은 아예 사라지고 얼굴엔 턱 선이 보여. 호검술 도장 다니느라고 그런 거지?”

어깨를 토닥이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최 국장의 행동에 감동한 이 피디는 코끝이 빨개졌다.

“국장님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로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래, 그래. 다 알아.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굳이 도장에 나갈 필요 없어. 자넨 해방이야.”

“해방!”

이 피디의 얼굴 잔주름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환한 그의 미소에 최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방. 그만 나가 봐.”

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귀환 병사처럼 이 피디는 어딘가 허탈한 얼굴로 자판기 앞에 섰다.

동전을 찾다가 없어서 지폐를 꺼내던 그의 옆에 김 작가가 나타났다.

“국장님이 뭐래요?”

커피를 뽑아 그녀가 건네며 물었다.

“해방.”

“예?”

“드디어 백 관장 섭외에서 해방됐다고. 한일 제작은 취소됐고. 난, 승리했어!”

“결국 그렇게 됐네요.”

김 작가는 자신의 커피를 뽑아 이 피디와 함께 빈 회의실로 들어갔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홀짝이며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동시에 말을 꺼냈다.

“김 작가.”

“이 피디님.”

“먼저 말해.”

“아니에요, 피디님. 먼저 말씀하세요.”

이 피디는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좋아, 그럼 내가 먼저 말할게. 호검술 도장을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어졌어.”

“알아요, 저도.”

“넌 어떻게 할래?”

“피디님은요?”

“내가 먼저 물었잖아. 말해 봐.”

이 피디는 김 작가가 남긴 커피를 자신의 커피 잔에 담으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녀가 잠시 뒤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검을 배우러 다니게 됐는데, 솔직히 힘도 들고, 내가 왜 이걸 배워야 하나 가끔 집에서 머리를 쥐어뜯기도 해요.”

“백도현 관장, 넌 그 사람 때문 아니냐?”

“그렇긴 해요. 근데 피디님도 보셨잖아요. 그 중국 아가씨. 저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예쁘고 늘씬하고.”

“홍영? 하긴 너하고 비교하긴 그렇지.”

“뭐라고요!”

“아니야. 계속해 봐.”

이 피디를 째려보던 그녀는 턱을 괴며 멍하니 맞은편 흰 벽을 응시했다.

“어제 관장실에서 둘이 마주 볼 때 난 느꼈어요. 난 저 사이에 끼일 수 없는 공기 같은 존재라고요. 그래서 밤새워 고민했어요. 조금 전까지.”

“결론은 도장 그만두고 싶다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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