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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24화 (124/575)

[124] 디 임팩트 5권 24화

그녀는 과거 도현과 목검 대결 중에도 펼치지 않았던 몇 가지 검술을 황급히 펼쳐 나갔다.

채챙채챙!

간신히 도현의 검을 막은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내공을 섞어 저돌적으로 돌진해 갔다.

손에 무인의 흔적을 깊게 남길 만큼 정직하게 수련해 온 그녀의 검은 진검 속에서 화려하게 타올랐지만, 야속하게도 도현은 그런 그녀의 검을 쉽사리 끊고, 막아 버렸다.

휙!

도현의 몸이 분신술을 쓴 것처럼 그녀의 검을 유유히 통과해 옆에서 번쩍 검을 찔러 넣자, 다혜는 재빨리 검신을 틀어서 아슬아슬하게 도현의 검을 막아 냈다.

차앙!

두 개의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채 사라지기 전에 도현과 다혜의 검이 또다시 서너 번 격렬하게 부딪쳤다.

채챙챙챙!

긴 머리를 한데 묶어 위로 올렸던 다혜는 머리 끈이 사악 하는 소리와 함께 잘리자 솜털이 모두 곤두설 만큼 소름이 돋았다.

찌이이이익!

도현이 휘두른 검이 벽면 거울을 스치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고, 잠시 후 거울이 반듯하게 잘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챙그랑!

거울이 깨지는 소리에 다혜가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급히 외쳤다.

“자, 잠깐만요. 우리 너무 심하게 싸우는 것 같아요!”

거의 일방적으로 몰리는 다혜가 창백하게 변한 얼굴로 소리쳤다.

“괜찮아요. 다시 사면 되니까.”

도현은 그의 검을 피해 바닥을 구르는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아!”

비명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구석진 곳으로 처박혔다.

인상을 쓰며 반쯤 일어서던 그녀의 머리 위로 도현의 검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차앙!

간신히 도현의 검을 막은 그녀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위에서 도현이 검을 내리누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강해졌어요! 고작 두 달 사이에?”

금산에서 그녀와 목검을 들고 치열하게 싸웠던 도현이 아니었다. 물론, 사부는 도현의 검술 솜씨가 뛰어나서 당신과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금산에서 목검을 들고 싸울 때의 도현이 아니었다.

“반칙이라고요! 난 그때의 당신을 생각하며 진검을 겨루자고 한 건데!”

도현의 검이 목 부위까지 내려오자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누구도 자신의 지금 실력이 이렇다고 말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냉정히 말한 도현은 반쯤 일어선 자세로 그의 검을 간신히 막아 내며 버티고 서 있는 그녀의 턱을 무릎으로 가격했다.

기절했다 깨어난 다혜는 도장 바닥에 누워 멀뚱멀뚱 천장을 올려다봤다.

“괜찮아요?”

도현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턱이 아파서 죽을 것 같아요.”

인상을 쓰며 턱을 매만지던 그녀는 도현이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섰다.

“심했다면 미안해요.”

“아니에요. 당연히 맞을 짓 했죠.”

그녀는 자신의 몸에 칼자국이 없는 걸 안도하며 말했다.

“백 관장님 정말 무서운 분이네요? 두 달 전 금산에서 보던 분이 아니에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진검으로 대결을 벌이자고 했으니.”

“다혜 씨도 많이 발전했어요.”

“그래요?”

도현의 칭찬에 유쾌한 미소를 띤 그녀는 깨진 벽 거울을 가리켰다.

“유리집에 내가 주문할게요.”

“됐어요. 이미 주문했으니까요.”

“벌써요? 얼마나 내가 기절해 있었던 거죠?”

“몇 분 안 됐어요.”

“검만 빠른 게 아니라 주문도 빠르시다 정말…….”

잠시 몸을 추스른 다혜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 뒤에는 검이 든 통이 매여 있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백 관장님 덕에 오랜만에 제대로 검을 휘두른 것 같아요. 또 연락해요.”

하지만 다혜는 곧 다시 돌아왔다.

“백 관장님, 사부님 전화예요. 통화하고 싶다고 했죠?”

깨진 거울 조각들을 정리하던 도현이 청소 도구를 놓고 그녀가 내미는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백도현입니다.”

-오랜만이군. 무슨 일로 내게 연락을 했지?

“여쭤 볼 게 몇 가지 있어서요.”

-대련을 하고 싶어서 연락을 했던 건 아니군.

“네, 다른 일 때문입니다.”

-무슨 일?

“죄송하지만 전화상으로 말씀드리기보다는 직접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님.”

-내가 지금 외국이야. 만나기 어려워.

“그러시면 언제 귀국을 하십니까?”

-글쎄, 한 달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아. 어쩌면 더 늦어질 수도 있고.

한 달이라는 그의 말에 도현은 난감해졌다.

-그냥 전화로 편히 말해.

전화상으로 말했다가는 또다시 쉽게 고수가 되려고 한다느니, 쉽게 인생을 사느니 하는 호통이 날아올 것 같았다.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도현은 호통을 듣더라도 그의 면전에서 듣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켜야 했다. 물론, 그도 모를 수 있겠지만.

“전화상으로는 정말 곤란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기다려. 한 달 뒤에나 보자고.

“선배님, 외국 어디십니까?”

-왜? 어딘지 말하면 오려고?

물은 목마른 자가 찾는 법이다.

“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사람 귀찮게 하지 마.

그의 말에 무안해진 도현은 옆에서 듣고 있는 다혜를 힐끔 쳐다보며 헛기침을 했다.

“죄송합니다. 귀찮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내 제자나 바꾸게. 몸이 피곤해서 오래 전화할 힘도 없으니까.

“선배님.”

-바꾸게.

“사부님 지금 홍콩에 계세요.”

옆에서 다혜가 툭 말을 뱉어 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한석호가 앓는 소리를 냈다.

-다혜야, 너 정말. 지난번 사진전 때도 그러더니.

도현은 다혜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한 후 입을 뗐다.

“선배님, 홍콩이라면 멀지도 않군요. 내일이라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잠시 말이 없던 한석호가 짧게 승낙을 했다.

-돈 들여서까지 굳이 오겠다면 좋아. 오게. 대신, 내게 할 말이라는 게 별거 아니면 가만두지 않겠어.

“감사합니다, 선배님.”

도현이 기쁜 얼굴로 대답을 했다.

전화를 끊은 한석호는 붕대가 감긴 허벅지를 차가운 얼굴로 내려다봤다. 허벅지에 박힌 총알을 무사히 제거했지만, 정상으로 움직이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이틀 전, 암시장을 나와 유금찬과 술집이 있는 골목으로 향하는데 정체불명의 사내들로부터 다짜고짜 습격을 받았다.

그자들의 몸놀림이나 단검을 사용하는 솜씨를 보면 일반 강도들이라고 보기가 어려워 녀석들을 제압하고 왜 공격했는지 알아보려는 순간 녀석들의 동료가 나타나 뒤에서 소음기가 달린 총을 쐈다.

유금찬만 아니면 총을 맞을 일이 없었는데, 그를 구하다 다리에 총을 맞았다.

사람들이 모이자 녀석들은 도망가고 그는 유금찬이 개인적으로 아는 병원에 가서 총알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유금찬이 비밀스럽게 사는 집에 머물며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자신을 공격한 자들에 대한 분노와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져만 갔다.

“죄송합니다, 한 선생님.”

유금찬이 쟁반에 음식을 담아 와 침상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가 말인가?”

“절 구하시려다가 총에 맞았잖습니까?”

“누구 탓도 아니야. 상황이 그렇게 전개된 것뿐이지.”

음식을 먹으며 그는 담담히 대꾸했다.

“한 선생님, 그들이 왜 공격했을까요?”

“나나 자네를 노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저 물건 때문일 수도 있지.”

한석호는 침상 머리맡에 던져 놓은 고서를 가리켰다. 그는 몇 번이나 저 서적을 훑어봤다. 명나라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기예 잡술서’라는 책인데, 안에는 외공의 일종인 근력 강화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현대의 차력사들이 연구해 보면 좋을 법한 내용들을 한석호는 흥미가 돋아 산 것뿐이다.

“저 책이 선생님과 저를 죽일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 정도 가치면 암시장 가게 주인이 그런 가격으로는 팔지 않았을 텐데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가 않은가 보지.”

“네에.”

“며칠만 더 자네 집에서 신세를 지겠네.”

“아닙니다, 한 선생님. 더 계셔도 됩니다.”

유금찬은 이틀 전 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취미 삼아 무예서와 기공 서적 등을 수집하는 줄로만 알았던 한석호가 날쌔기가 보통이 아닌 무서운 사내들의 공격을 쉽게 격파하며 검도 빼앗아서 그자들의 팔다리에 순식간에 상처를 만들어 버렸다.

아마 자신이 위기에 처하지만 않았다면 한석호는 벽을 차고 하늘 높이 떠오르는 신기한 재주로 그 현장을 쉽게 피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내일 한국에서 날 보려는 젊은 친구가 찾아오는데, 이곳 주소를 알려 줘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고민이네, 고민이야.”

눈앞에 펼쳐진 공항 건물들을 보며 호태식은 주문이라도 외우듯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형님 일을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백 관장을 손보는 데 힘을 보탤 수도 없고.”

회식 때 백도현과 술잔을 부딪치며 즐겁게 보냈던 순간이 떠오르자 그의 고민은 더욱 깊어 갔다.

“아니, 그냥 대충 포기하지, 뭐 원수졌다고 그러시나 몰라 정말.”

입에 문 담배를 질겅질겅 씹은 그는 담배 맛이 없는지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차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공항 여객 터미널과 가까운 지상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인천국제공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던 호태식은 눈에 익숙한 사람이 보이자 화들짝 놀랐다.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그 사람은 호태식을 봤는지 그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도현은 우연히 공항 주차장에서 마주친 호태식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 이런, 백 관장님 아니십니까?”

전혀 몰랐다는 듯이 능청을 떤 호태식은 자신보다 대여섯 살은 어린 도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밖에서까지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러면 안 되죠. 학교 선생님을 밖에서 봤다고 버릇없이 대하는 학생은 없잖아요.”

“제가 학교 선생님과 비교될 정도의 위치는 아니잖습니까.”

“겸손의 말씀도 참. 아니,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일이 있어서 홍콩에 갑니다.”

“아, 홍콩요. 좋죠, 홍콩.”

호태식이 아련한 눈빛으로 변하자 도현은 무슨 추억이 있나 싶었다.

“홍콩에서 좋은 일이 있으셨나 보죠?”

추억에서 깨어난 호태식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비즈니스 때문에 갔다가 그쪽 아가씨하고, 하하하!”

“네에. 호태식 씨는 공항에 무슨 일로?”

“아는 분이 필리핀에서 오신다고 해서 마중 나왔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관장님, 홍콩에 오래 머물다 오십니까?”

저만치 걸어가는 도현이 그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럴 것 같지는 않고요. 아마 금방 돌아올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유치하게 손까지 흔들어 준 호태식은 도현이 등을 보이고 사라지자 숨을 크게 토해 내며 심호흡을 했다.

“야아, 이거 기가 장난 아니게 센데? 마치 내 속을 다 들여다보는 것 같잖아.”

호태식은 공항 약국에 가서 우황청심환을 사 먹은 뒤 입국장에서 서지철을 기다렸다.

필리핀에서 오는 비행기가 연착이 돼 한 시간 넘게 기다렸을까, 서지철이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나타났다.

“오셨어요.”

“표정이 그게 뭐냐? 마중 좀 나오라고 한 게 그렇게 싫어?”

“말씀도 참. 가방이나 이리 줘요.”

가방을 건네받은 호태식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천천히 가. 다리 아프다.”

“총에 스친 거치고는 부상이 심한가 보네요? 목발을 짚고 다니게.”

“며칠 지나면 다 나을 거야.”

지난번 통화 이후로 서먹서먹해진 둘은 별말 없이 주차장으로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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