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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25화 (125/575)

[125] 디 임팩트 5권 25화

“왜 이렇게 멀리 차를 댔어?”

“빈자리 있는 곳 찾아서 최대한 가깝게 차 댄 겁니다.”

“저기 비었잖아.”

“이후에 차가 나갔나 보죠.”

“까칠하다 너.”

둘은 더욱 말이 없어졌다.

공항을 벗어나 서울로 향하는 길에 호태식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형님, 백 관장요, 꼭 작업해야겠어요?”

“또 그 소리냐?”

서지철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형님은 정말 모르세요. 백 관장,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라니까요.”

“아주 추종자가 다 됐네. 너 거기 가서 내부 염탐하라고 했지, 그 인간 편 되라고 했냐?”

“형님, 난 당연히 형님 편이에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고요. 제 육감이 그 사람과는 척지지 말라고 계속 경고 신호를 보낸다니까요.”

“일 접고 점집이나 차려라. 나중에 가서 복채는 후하게 줄게.”

“농담 아니라니까요!”

“나도 아니야, 새끼야!”

서지철이 버럭 고함을 쳤다.

“넌 아무것도 몰라, 인마! 내가 그놈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리고 한 번 실패했으면 이 바닥에서는 조용히 그 일 접는 게 불문율이잖아요. 이미 얼굴도 백 관장에게 팔렸고. 안 그래요?”

“알아 나도. 그렇지만 내 해결사 인생에 실패라는 오점을 남길 수가 없어. 은퇴할 때까지는. 실패를 바로잡아 놔야지.”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호태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운전을 했다.

“마가 꼈군, 마가.”

“뭐 인마?”

“부자들이 한순간에 거지꼴이 되는 게 순간적으로 마가 껴서 그렇거든요. 쳐다도 안 봤던 사업 아이템이 갑자기 눈에 크게 들어오고. 그때 홀라당 다 날리는 거예요. 내 눈에 지금 형님이 딱 그 짝입니다. 큰누나 오라고 해서 굿판이라도 벌려야겠어요.”

“시끄럽고. 너 결정해. 나랑 이 일 끝까지 맡을 거야, 아니면 갈라설 거야.”

서지철이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호태식을 지그시 노려봤다.

잠시 말없이 운전을 하던 호태식은 차창을 열어서 담배 연기를 환기시켰다.

“백 관장 지금 서울에 없어요.”

대답을 회피하며 그는 도현이 얘기를 꺼냈다.

“뭐라고? 그럼 또 사라진 거야?”

“사라진 건 아니고요. 홍콩 갔어요.”

“홍콩? 언제?”

“아마 지금쯤 비행기가 이륙했을걸요.”

“뭐야?”

쫓던 자들을 찾았다는 수하의 긴급 연락에 주성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 지금.’

상해에 머물던 사부가 낮에 홍콩에 도착해 둘째 사형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사부인 태선군이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해서 그는 꼼짝없이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빌어먹을, 어쩔 수 없지.’

그는 휴대폰에 대고 작게 지시를 내렸다.

“멀리서 감시만 하고 있어. 내가 갈 때까지.”

주성하는 이번엔 직접 자신이 나서서 암시장에서 책을 사 간 자를 처리하고 책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는데, 청선이 언제 왔는지 조용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은밀히 전화를 하는 것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사형.”

흠칫 놀란 주성하가 얼버무렸다.

“쯧쯧, 네 눈 속에 온갖 것들이 다 돌아다녀.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공손히 대답한 주성하는 청선이 다른 말이 없자 고개를 한번 숙인 후, 잘 꾸며진 둘째 사형 섭상의 저택 정원을 지나 사부가 있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음…….”

도포를 입고 관을 쓰던 도인 청선이 아니었다. 현대식 정장에 머리는 짧게 잘라 단정히 좌우로 빗어 넘긴 상태였다.

그는 손바닥 반만 한 작은 사이즈의 은색 술병을 상의 주머니에서 꺼내 입에 댔다.

“크하, 좋구나.”

정원석에 엉덩이를 걸친 그는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는 정원의 조명등을 안주 삼아 한동안 술을 마셨다.

“벌써 떨어졌군.”

빈 술병을 버리고 그는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또 한 병의 술을 꺼냈다.

막 입에 대려는데 노일문이 다가왔다.

“대사형, 예서 뭐 하십니까?”

“보면 모르냐, 술 마신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저녁 식사가 곧 시작됩니다.”

“나 없다고 음식 맛이 달라지기라도 하냐?”

“자꾸 이러시면 둘째 사형 입지만 높여 주는 꼴입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사부님 눈 밖에 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요.”

“일문아.”

“네, 대사형.”

“나는 다시 등선궁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곳이 그리워.”

노일문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런 약한 말씀 하시려고 산속에서 내려온 겁니까?”

“이것 봐라? 너도 이제 날 무시하려는 것이냐?”

술기운 때문인지 청선이 비틀거리며 정원석에서 일어났다.

“무시할 게 있어야 무시하지요!”

노일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사형제들이 하나같이 다 딴 주머니를 차고 호시탐탐 문주 자리를 노리는데, 어찌해서 대사형은 이리도 술에 의존하며 도가 어떻고 예가 어떻고 떠들어 대는 겁니까? 그런다고 뭐가 바뀝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그래서? 나보고 어찌하란 말이냐?”

청선이 술을 다시 입에 대며 흐릿한 눈빛으로 노일문을 쳐다봤다.

“다 죽일까?”

노일문은 청선의 흐릿한 눈빛 속에 보이는 차가운 기운에 순간 오한이 들었다.

“왜 말을 못 하는 것이냐. 다 죽이고 그들의 목을 허리에 차고 등선궁으로 귀환을 할까?”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하십시오.”

“뭐라? 크하하하!”

청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리를 비틀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새로운 검선문을 여십시오. 대사형의 진짜 속마음, 그게 아닙니까?”

청선은 잠시 말이 없더니 노일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농이 너무 심했나 보군. 그만 가자. 사부님 오래 기다리시겠다.”

답답한지 정장 상의를 벗어 어깨에 걸친 그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저택으로 향했다.

사부가 참석한 저녁 식사 자리가 의외로 짧게 끝나자 주성하는 서둘러 섭상의 집을 나섰다. 자신의 차에 오른 주성하는 감시하는 수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일 없지? 좋아.”

차 속도를 올린 그는 얼마 후 낡은 아파트 근처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 서 있는 아파트를 보며 그는 차로 다가온 부하에게 물었다.

“어디야?”

“5층 끝 집이 유금찬의 집입니다.”

그들은 한석호의 신원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유금찬의 신원은 파악했고, 여러 루트를 통해 그가 비밀리에 살고 있는 집을 찾아냈다.

“수고했어. 너희들은 그만 다 물러나.”

“네!”

군말 없이 유금찬의 집을 감시하던 부하들이 썰물 빠지듯 현장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그는 차 안에서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복면까지 착용했다. 허리에는 검 한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

‘날 번거롭게 한 놈이 어떤 녀석인지 낯짝을 볼 수 있겠군.’

그가 지나치기 직전에 아파트 주변의 가로등들이 퍽퍽 소리를 내며 하나둘씩 꺼졌고, 주변은 더욱 어두워졌다.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로 유령처럼 움직이며 이동을 한 그는 아파트에 도착해 몸을 훌쩍 띄웠다.

파앙. 파앙.

각층의 아파트 베란다 구조물을 발끝으로 밀어내며 너무도 손쉽게 위층으로 솟구친 그는 순식간에 5층 유금찬의 집에 도달했다.

베란다에 매달린 상태로 그는 잠기지 않은 창문을 소리 없이 열고 안으로 잠입했다.

곧바로 거실에서 TV를 보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어!”

깜짝 놀란 유금찬이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주성하의 발이 그의 턱을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와작!

턱뼈가 으스러진 유금찬이 소파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이놈은 아니고.”

주성하는 자신의 부하들을 다치게 했던 자를 찾아 나섰다. 책도 그자의 손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파트 내부를 눈 깜짝할 사이에 확인한 그는 하나 남은 방 앞에 멈춰 섰다

콰앙!

닫힌 방문을 통째로 부수고 들어간 순간, 벽에 붙어 기척을 감춘 한석호가 기습을 가했다.

“어딜?”

이미 눈치채고 있던 주성하가 비릿하게 웃으며 한석호의 파괴적인 권법을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피해 냈다.

“당신이로군.”

“이얏!”

내공이 실린 주먹이 여러 개의 허상을 만들며 비웃고 있는 주성하의 상체를 휩쓸어 갔다.

쿠웅!

벽이 울릴 정도로 강한 일격을 가한 한석호는 그의 주먹을 피해 등 뒤로 유령처럼 솟구친 주성하를 향해 몸을 회전시키며 팔꿈치로 가격했다.

“제법인데?”

슬쩍 허리를 꺾어 주성하가 피하자, 이번에는 한석호의 다리가 회전하며 여유를 부리는 그의 종아리를 쳤다.

콰앙!

주성하는 없고 애꿎은 탁자만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이거 놀라운데. 내공을 가진 고수였어.”

“넌 누구냐!”

한석호가 공격을 멈추고 방 안에 들어와 있는 주성하를 노려봤다.

“나 말인가? 이걸 찾아온 사람이지.”

어느새 주성하의 손에는 기예 잡술서가 들려 있었다. 그는 한석호의 공격을 피하면서 침대 머리맡에 놓인 책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결국 저것을 노린 것인가.’

한석호는 침중한 눈빛으로 복면을 한 주성하의 위아래를 빠르게 살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자가.’

그의 특기가 검술이긴 하지만 권각법이 약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자는 장난이라도 치듯 그의 공격을 다 피해 내 버렸다.

“밖에 있는 유금찬은 어떻게 했지?”

“아, 그 사람. 모르겠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면 나가서 확인해 봐.”

기예 잡술서를 품 안에 잘 보관한 그는 한석호에게 한 발 다가갔다.

“그 전에 날 넘어가야겠지.”

“건방진 놈!”

한쪽 다리에 총상을 입어 아직 몸이 정상이 아니지만, 한석호는 투지를 일깨우며 번개처럼 주성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뭔가 하기도 전에 소리 없이 뽑혀 나온 주성하의 검이 부드럽게 한석호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붉은 핏물과 함께 귀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부하들 말로는 검을 제법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하던데, 검이 없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늘어트리고 주성하가 물었다.

한석호는 잘린 귀 부분을 손으로 감싸며 주성하를 죽일 듯 노려봤다.

“네놈을!”

한석호의 상체는 귀에서 흐르는 피로 피투성이였다.

그는 분했다. 조금 전 주성하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는데, 총상을 입은 다리 때문에 간발의 차로 맞고 말았다.

“다리 부상 때문에 억울하다고 생각하는군. 그러지 마.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네가 정상이었다면 난 조금 더 힘을 쏟으면 그뿐이니까.”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신체 부위를 보며 한석호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게 자신 있다면 내게 검을 다오. 상대해 주마.”

“글쎄, 난 그렇게 하긴 싫은데?”

주성하가 낮게 웃으며 한 발 다가왔다.

“결정해. 편안한 죽음, 고통스러운 죽음. 조건은 네가 누구고, 왜 이 책을 사려 했고, 네가 가진 무공은 어디서 배웠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세하게 설명하는 거야. 쉽지?”

“미친 자식.”

한석호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

“난 싸우다 죽겠다.”

“어리석은 자군.”

주성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가 검을 다시 휘두르려던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멈칫한 주성하가 물었다.

“누굴까? 재수 없이 죽기 위해 온 사람이.”

“나야 모르지.”

“아니야, 알고 있는 눈치던데. 초인종 소리에 당황했잖아.”

초인종 소리가 다시 울렸다.

“아무래도 누군지 확인해 봐야겠어.”

주성하가 몸을 돌린 순간, 한석호가 몸을 던져 온몸으로 그를 막으며 고함을 질렀다.

“백 관장, 피하게!”

초인종을 누르며 한석호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도현은 현관문 너머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 뭐라고 외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혹시나 해서 문에 귀를 대 보았다. 조용했다.

“잘못 들었나?”

도현은 문 앞에서 계속 기다렸고, 안에서 반응이 없자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누르려 했다.

그때 현관문이 끼익 하며 열렸다.

반가운 마음에 도현은 안에서 나온 사람을 쳐다보다가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복면을 쓴 누군가가 그의 목에 검을 겨누고 서 있었다.

“들어와.”

주성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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