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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26화 (126/575)

[126] 디 임팩트 6권 1화

기예 잡술서

도현은 복면을 착용한 주성하를 깊은 눈빛으로 응시하다가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목을 향해 곧게 뻗어 있는 상대의 검엔 피가 묻어 있었다.

한석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낡은 아파트에서 이런 상황을 맞닥트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도현은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상황을 파악해 보려고 해도 잘 안 되지?”

주성하가 복면 안에서 낮게 웃었다.

“들어와, 궁금하면 알려 줄 테니까.”

주성하의 검 끝이 턱 밑 깊숙이 들어오는 순간, 도현이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빛살 같은 빠르기로 뒤로 몸을 뺐다.

도현을 위협해 안으로 끌어 들이려 했던 주성하의 눈이 반짝였다.

‘이것 봐라?’

그는 현관문을 박차고 총알처럼 뛰쳐나갔다. 그리고 몸을 뒤로 빼는 도현을 쫓아가며 힘이 느껴지는 검을 휘둘렀다.

곱게 집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면 모를까 반항하는 자에게 시간을 길게 빼앗기기 싫었다.

그의 검이 도현의 목을 훑고 지나가려는 찰나, 도현이 유연한 몸놀림으로 그 검을 간발의 차로 피해 냈다.

쉬이익.

허공을 가른 주성하의 검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아파트 시멘트 벽에 긴 칼자국을 냈다.

사람 몸이었다면 단번에 두 동강이 났을 무서운 위력이었다.

사방으로 날리는 시멘트 가루를 보며 도현은 숨 돌릴 새도 없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재빠르고 민첩하던지, 주성하는 재차 공격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죽여 버리겠다.”

분노한 주성하가 검을 든 채 도현을 뒤쫓았다. 검선문 사형제들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자신의 검을 피한 자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자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파앙.

계단을 박차고 오른 그는 계단 난간과 통로 벽 사이를 지그재그로 오가며 놀랄 만한 속도로 도현의 등 뒤까지 따라 붙다가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시커먼 게 날아왔다. 도현이 입고 있던 정장 상의를 벗어서 집어 던진 것이다.

“치졸한 자식!”

“누가 치졸한지 모르겠군.”

도현은 주성하를 자극하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아파트 옥상 문을 열고 나갔다.

밖은 어둡고 달 하나가 떠 있었다.

‘누굴까? 왜 한석호 선배가 있어야 할 곳에서 그런 차림으로 나타난 거지?’

실력도 범상치 않아 보여서 맨손으로 상대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하며 옥상까지 달려왔다.

“이제 어디로 갈 건가? 응?”

주성하가 검을 늘어트린 자세로 천천히 걸어왔다.

“넌 누구냐?”

도현의 질문에 주성하가 밤하늘을 보며 크게 웃었다.

“그 질문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는데 말이야. 넌 누구지?”

“글쎄, 궁금하면. 따라와 봐.”

옥상 난간 위로 올라선 도현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훌쩍 밑으로 뛰어내렸다.

깜짝 놀란 주성하가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도현이 아파트 외벽에 바짝 달라붙은 채 떨어지다가 아파트 베란다 난간이 나올 때마다 그 층에서 일단 멈추며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후 또다시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가고 있었다.

잠시만 틈을 보이면 수십 미터 아래로 떨어져 몸이 박살 날 위험한 행동을 그는 망설임 없이 벌이고 있었다.

주성하 역시 내공을 이용해 그와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는 있지만, 감히 목숨을 걸고 저런 식의 대담한 행동을 벌일 용기는 없었다.

잠시 도현의 위험천만한 행동을 지켜보던 그는 도현이 향하는 목적지가 어딘지 뒤늦게 파악했다.

“그 집이었어! 이 자식, 감히 날 농락하다니!”

위치를 보니, 도현이 내려가는 방향은 유금찬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철컥.

허리에 매달린 칼집에 검을 넣은 그는 생각을 바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원래 목적인 기예 잡술서가 그의 수중에 들어온 이상 이렇게 무리한 행동을 할 이유는 없었지만, 한석호와 도현의 정체가 궁금해서 이대로 놓아줄 수가 없었다.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가는 집 안에 있는 한석호도 도현도 모두 놓칠 우려가 있었다.

‘날 우습게 봤구나.’

주성하의 눈이 매서워졌다.

‘이쯤이었지?’

15층부터 베란다를 이용해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내려온 도현은 5층 유금찬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의 베란다에 매달린 채 위를 올려다봤다.

어둠을 뚫고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고 있는 복면인이 보였다.

도현은 시간 끌지 않고 베란다 창문을 통해 곧장 안으로 진입했다.

저자와 싸우게 되더라도 이 집에 한석호가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먼저 파악을 해야 했다.

‘어쩌면 다른 자가 있을지도…….’

도현은 긴장을 유지하며 빠르게 집 안을 살폈다.

커튼이 쳐진 거실 한쪽엔 입 주변이 피투성이인 사내가 가죽 소파와 함께 쓰러져 있었고, 보는 사람 없는 TV만 집 안의 고요함을 떨치려는 듯 작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죽진 않았어.’

유금찬을 스쳐 지나간 그는 방을 수색하다 방문턱에 쓰러져 있는 한석호를 발견했다.

한쪽 귀가 잘린 상태로 그는 정신을 잃고 엎드려 있었다.

“정말 번거롭게 하는 자식이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도현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복면인이 칼을 뽑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유가 뭐지?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도현은 한석호와 개인적인 친분이 거의 없었지만,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한석호에게 내공의 벽과 관련된 조언을 듣기 위해 온 처지였다.

“몰라서 묻나?”

도현 때문에 고층 아파트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온 주성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모르니까 묻는 거야.”

“내 물건에 손댄 죄다.”

“뭐라고?”

도현의 시선이 발밑에 쓰러져 있는 한석호에게 향했다.

“무슨 물건?”

“정말 모르는 건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건가?”

도현은 귀가 잘린 한석호에게서 시선을 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몰라.”

“믿기 힘든데? 그럼 넌 여기 왜 왔나?”

“일이 있어서 만나려고 온 것뿐이야.”

“아! 일이 있어서?”

주성하가 낮게 웃으며 회랑처럼 생긴 좁은 실내 복도 앞에서 도현을 가로막았다. 그를 거치지 않고는 거실과 현관문 쪽으로 가지 못한다.

“그것참, 유감인데, 하필 이런 때에 오다니.”

“나도 유감이야. 넌 다짜고짜 날 죽이려고 검을 휘둘렀으니까.”

도현이 싸울 자세를 취하자, 검을 든 주성하가 싸늘하게 말했다.

“조금 전은 영리하게 머리를 잘 썼어. 하지만 넌 실수한 거야. 그대로 도망갔다면 목숨은 부지했을 텐데.”

“자신 있으니까.”

“뭐?”

주성하가 어이없어 비웃는 순간, 도현이 그 틈을 노려 고풍스러운 탁자 위에 놓인 장식용 도자기를 기습적으로 집어 던졌다.

집 안 상황을 파악한 이상 그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 피하거나 아니면 이자를 물리치거나.

주성하가 항아리 모양의 도자기를 깨트리지도 않고 반으로 잘라 버리는 신기에 가까운 검술 솜씨를 보이는 사이, 도현은 그에게 번개처럼 접근했다.

그러고는 반으로 잘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도자기 한쪽을 낚아채서는 섬전 같은 빠르기로 주성하의 안면을 후려쳤다. 마치 수없이 연습해 온 것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이런 무식한 새끼!’

생각지도 못한 도현의 공격 방식에 주성하는 살짝 당황하며 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물러나지 않고 검으로 도현을 찌를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의 얼굴도 성치 못할 것 같았다.

도현은 대담한 기습으로 주성하의 기를 꺾어 놓은 뒤, 한 손에 들고 있던 도자기를 박살 내며 그 조각을 양쪽 손에 움켜쥐었다.

끝이 뾰족한 도자기 날이 단단한 그의 손바닥 살을 베고 들어왔지만, 도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서운 눈빛으로 주성하를 노려보며 몸을 비호처럼 다시 던졌다.

“겨우 그 도자기 조각으로 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도자기 기습에 적지 않게 당황했던 주성하는 분노한 음성으로 소리치며 자신을 향해 덤벼 오는 도현에게 공간이 갈라지는 쾌검을 연거푸 펼쳐 냈다.

평범한 인간의 시력이 따라갈 수 없는 극쾌의 검술을 펼치는 주성하의 검은 분명 놀라웠다.

‘빠르면서도 변화가 극심한 검술!’

보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현기증이 올 만큼 기이한 힘이 담겨 있는 검술이었다.

낯빛이 바뀐 도현은 공격을 거두고 급히 방향을 바꿔 벽에 착 달라붙었다.

간발의 차로 주성하가 작심하고 날린 쾌검이 그의 가슴을 스치며 지나갔다.

흰 와이셔츠가 갈라지며 금세 붉어졌다. 다행히 피부만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 검이 한 바퀴 회전하더니 벽에 등을 댄 도현의 얼굴로 날아왔다. 검을 잡은 주성하가 다시 쾌검을 펼친 것이다.

도현은 빠름 속에 기이한 변화를 숨긴 주성하의 검 끝을 끝까지 살펴보다가 몸을 숙였다.

머리카락 일부가 잘리며 허공으로 날렸다.

퍽!

큰 소리와 함께 몸을 숙였던 도현의 몸이 통로 밖 거실 쪽으로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주성하의 발길질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것이다.

도현은 통증을 참으며 재빨리 옆으로 몸을 굴렸다.

뒤따라 온 주성하의 쾌검이 그가 있던 거실 바닥에 부딪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디 그 잘난 주둥이를 또 놀려 보시지.”

이죽거린 주성하는 몸을 피하기 급급한 도현을 쫓아가며 내공 소모가 적지 않은 검선문의 무예를 계속해서 펼쳐 갔다.

“왜 도망가나! 어?”

유금찬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부근의 소파가 그의 검에 여러 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그 잔해들이 흩어졌다.

그 잔해들 속을 돌파하면서도 도현은 주성하의 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검을 쓸 때의 그의 하체 모습과 상반신의 움직임, 어깨와 손목으로 이어지는 팔의 미세한 떨림까지, 그는 거실이 폐허가 되도록 그의 검을 피해 다니며 주의 깊게 응시했다.

파지지지직.

TV 화면이 깨졌고, 주성하는 한 손으로 무거운 TV를 번쩍 들어서는 도현에게 집어 던졌다.

콰아앙!

큰 소리와 함께 도현이 피한 공간에 서 있던 벽에 TV가 부딪히며 박살이 났다.

“호기롭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갔나! 덤벼!”

“원한다면!”

이제껏 피해 다니던 도현이 벽을 걷어차며 몸을 뒤집어 주성하의 정수리를 노렸다.

“흥!”

주성하가 콧방귀를 뀌며 내공으로 변화를 준 극쾌의 검술을 펼쳤다.

속이 울렁거리게 하는 요술 같은 검술이 빠름을 가장해서 다시 도현의 눈앞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끝없이 돌아가는 회전판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정신적인 타격이 왔지만, 이번만큼은 도현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겨 내야 해!’

눈을 현혹시키는 힘이 강한 주성하의 검술을 파고들며 도현은 순간적으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온몸으로 주성하의 존재감과 그 검을 느꼈다.

술 취한 사람처럼 여러 번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기이한 힘이 담겨 있는 극쾌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도현이 눈을 번쩍 떴다.

주성하가 놀란 얼굴로 바로 앞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들고 있던 도자기 조각을 주성하의 양 옆구리에 쑤셔 넣었다.

“크아악!”

낮은 비명 소리와 함께 주성하가 황급히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도현은 옆으로 몸을 굴리며 그의 검을 가볍게 피했다.

“죽여 버리겠다, 이 개자식!”

갑작스러운 도현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주성하는 단전의 힘을 본격적으로 개방했고, 사방으로 날카로운 기세가 파도처럼 뻗어 나갔다.

깊은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현이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자세를 낮췄다.

그의 양손에는 피가 흠씬 묻은 도자기 조각이 들려 있었다.

“계속 해볼 텐가?”

“널 죽이고 이 집도 몽땅 불태워 버리겠다!”

분노한 주성하는 점점 이성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검선문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세상 사람들을 다 눈 밑으로 깔보고 살아온 주성하였다. 그런데 오늘 그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형편없이 깨져 버렸다.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내려다보던 그는 독사 같은 눈빛을 흘리며 도현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바닥을 향해 늘어트린 그의 검 끝에는 선명한 빛이 어려 있었다.

‘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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