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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28화 (128/575)

[128] 디 임팩트 6권 3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턱에 철심을 넣어 조각난 뼈를 연결시키는 수술이 이뤄진 상태였다.

병실은 4인실로 그들이 당분간 머물 공간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들어온 의사는 유금찬의 상태에 대해 몇 가지 얘기를 해 주다가 나이 든 병원장이 나타나자 서둘러 말을 마무리하고는 병실을 나갔다.

집에 있다 연락을 받고 온 병원장은 모자를 벗으며 병실에 들어섰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잠들어 있는 유금찬을 잠시 내려다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한석호를 봤다.

“며칠 전은 당신이 다쳐서 오더니, 오늘은 유금찬까지 다쳐서 왔군.”

작은 키에 잔주름이 가득한 병원장은 도현을 힐끔 보더니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저 사람까지 더 하면 세 명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오?”

“작은 소란이 있었을 뿐입니다.”

한석호의 대답에 병원장이 한 걸음 다가오며 코끝으로 내려온 안경테를 올렸다.

“보시오. 난 골치 아픈 일에 휩싸이는 건 딱 질색인 사람이에요. 다른 병원 다 놔두고 유금찬이 나를 찾아왔다는 건, 그와 나 사이에, 그러니까 그런 관계를 염두에 두어서 그런 거 아니요? 조용히 치료 좀 받고 나가겠다.”

“험한 일에 몸담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법이니, 그렇게 이해해 주십시오. 치료비도 다 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 입원해 있다는 사실만 비밀로 해 주면 됩니다.”

한석호의 말에 병원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에게 쫓기는 거요? 혹시 경찰?”

“그런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음.”

병원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들어 있는 유금찬을 다시 한 번 본 후 모자를 썼다.

“치료비는 제대로 청구가 될 거요.”

병원장이 병실을 나가자 한석호가 말했다.

“유금찬은 그자들에게 신분이 드러난 상태네. 책을 가지고 갔지만 생명까지 노릴 수도 있어서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는 게 좋겠죠. 하지만 어쩌면 조심을 하려고 몸 사리는 건 오히려 그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복면인은 선배님의 정체에 대해 매우 궁금해했었습니다. 내공을 익힌 고수라는 것에 놀라워하기도 했고요. 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반응이었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와 선배님 외에도 또 다른 고수가 우리 주변에 더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충분히 할 겁니다.”

“있긴 하지. 내 제자 다혜.”

낮게 웃으며 대꾸한 한석호는 도현의 말뜻을 바로 알아챘다.

“목적인 책을 차지했으니까 더 이상 우리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 말이지? 더 나아가 우리가 자신들을 쫓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고?”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선배님. 복면인이 리더인지 아니면 그 뒤에 또 다른 자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목적을 달성했다면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그들에게도 이롭다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 중심에는 자네가 있겠군. 복면인이 자네를 보고 깜짝 놀랐을 테니까 말이야.”

“복면인을 보고 놀란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도현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자네, 나랑 그자들이 누군지 파헤쳐 볼 텐가?”

한석호는 복면인이 자신의 귀를 자르며 낮게 비웃던 순간을 잊지 못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도 무척 궁금하지만 그에 앞서 제게는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흠, 그런가? 할 수 없지.”

“죄송합니다.”

“괜찮아. 자넨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자넨 큰 역할을 한 거야. 나머지는 이제 내 몫인 것이지. 조금 전 내가 한 말은 잊어버리게.”

껄껄 웃은 한석호는 물을 조금 마시고는 물었다.

“자, 이제 내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자네 얘기를 들어 볼까. 무슨 일이기에 홍콩까지 날 찾아온 건가?”

도현은 옆 침상에 잠든 유금찬 쪽을 한번 바라본 후 그가 온 목적을 말했다.

“얼마 전부터 단전의 내공이 늘지 않고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한석호가 살짝 놀라며 물었다.

“평상시대로 축기는 정상적으로 이뤄지는데 그렇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선배님.”

단전에 기운을 모으는 축기 과정이 비록 한석호가 생각하는 방식과는 달랐지만 크게 보면 타투를 통해 흡수되던 몬스터의 기운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어서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을 했다.

“내공이 늘지 않는다……. 착각하는 건 아니고?”

“착각이 아닙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지켜봤으니까요. 그리고 선배님도 아시겠지만, 단전의 기운은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그 변화가 바로 감지되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한석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아한 눈빛으로 도현을 쳐다봤다.

“자네는 선친께 내공 수련법을 물려받았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게 와서 이런 걸 묻는 이유가 뭔가?”

“예?”

“선친께서 내공 수련법을 전수해 주시면서 내공과 관련된 여러 말씀을 해 주셨을 게 아닌가?”

“아버지께서는 우연한 기회에 얻은 수련법을 어린 제게 전수해 주셨을 뿐입니다. 그분은 정작 내공을 얻지 못하셨고요. 그래서 이론적인 부분은 제가 아는 게 극히 적습니다.”

한석호는 도현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했다.

“어떤 경지에 이르면 이런 현상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지만, 너무 막연해서요. 선배님, 아시는 게 있다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난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을 함부로 말하는 성격이 아니네. 자네도 이미 날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하지만 자네가 내 목숨을 구해 줬으니, 이번만큼은 내가 엎드려서 자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도 부족하겠지.”

“별말씀을요.”

잠시 천장의 등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한석호가 느리게 입을 뗐다.

“먼저 밝혀 두지만 내가 말하는 게 절대적인 건 아니야.  수십 년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공부해 왔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고맙습니다, 선배님.”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그의 말에 도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람의 몸속에는 자연의 기를 담아 둘 수 있는 단전이라는 공간이 있네. 다만, 자질에 따라 그 공간에 기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눠지지. 자네나 나와 같은 사람은 기를 수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사람들인 셈이지. ‘내공을 가졌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도현은 눈을 빛내며 한석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이 단전에 쌓이는 기는 일반인을 초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만큼 아주 강력해서 체내에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좋지. 그래서 자네도 열심히 수련했을 테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물을 한 모금 더한 한석호는 숨을 돌리며 다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축기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내공이 정체가 돼. 기를 수용할 수 있는 한계점에 이른 것이지. 그건 자연스럽고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경지이기도 하네.”

“영광스러운 경지라고요?”

도현은 언뜻 이해가 안 됐다.

“왜 그렇습니까? 단순히 내공이 다른 사람보다 높은 상태라는 뜻에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한석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사진전을 할 때 갤러리에서 도현에게 보였던 차가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나의 관문을 통과할 준비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야.”

“관문이라면 어떤 걸……?”

“단전은 두 종류가 있어. 태어날 때부터 생성된 선천적 단전과 인위적으로 새롭게 만든 후천적 단전.”

도현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선천적 단전은 지금 자네처럼 내공의 한계가 주어지지. 이것처럼.”

한석호는 손을 뻗어서 마시다 만 물컵에 생수를 가득 담아 채웠다.

물이 흘러넘쳤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만약 깨달음을 얻는다면 이 물컵만 한 선천적 단전은 사라지고 새로운 단전이 생긴다네. 그 크기는 바로 이 세상이야.”

한석호가 손으로 사방을 가리켰다.

“끝이 없고, 한계가 없는 새로운 단전이 생기는 것이지. 그 안에는 한계가 없는 무한한 내공을 쌓을 수가 있고, 내공이 부족해 펼칠 수 없는 상상 속의 절기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다네. 이를테면, 장풍을 사용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도 강한 흡입력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게 되지. 진정한 고수의 세계에 접어드는 단계인 거야.”

도현은 그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정한 고수의 세계!’

“내가 왜 영광스러운 경지라는 말을 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나? 새로운 단전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이야. 사실 평생을 수련한다 해도 선천적 단전의 그릇에 내공을 다 채우기는 어려워. 그런 만큼 자네의 성취는 놀랍다 할 수 있겠지. 젊은 나이에 벌써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는 벽 앞에 서 있으니까.”

한석호의 시선에는 약간의 부러움이 담겨져 있었다. 수십 년간 옛 무인들의 무예를 연구하고 익혀 오고 있지만 아직도 그는 도현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도현은 읽었고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자신이 이계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얻은 내공이었지만, 한석호와 비교하면 어쩐지 편법으로 익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배님 말씀대로 영광스러운 경지에 도달한 게 맞긴 하군요.”

“물론이지. 하지만 앞으로가 중요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서 새로운 단전을 얻을지는 자네의 평생 숙제가 될 테니까.”

한석호도 어떻게 깨달음을 얻는지는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오로지 도현의 몫이었다.

‘평생 숙제…….’

어감부터가 쉽지 않게 다가왔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네. 부디 발전해서 빠른 시간 안에 진정한 고수의 세계에 진입하기 바라네.”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귀중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나야말로 오늘 도움을 줘서 다시 한 번 고맙네.”

진정성 있는 태도로 한석호가 도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석호는 병원에 오며 챙겨 온 자신의 배낭 안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아까 자네 얼굴을 보니, 기예 잡술서를 못 봐서 굉장히 아쉬워하는 것 같더군.”

그는 DSLR 카메라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이 안에 기예 잡술서가 들어 있네. 혹시 몰라서 책 안에 내용들을 한 장 씩 다 찍어 뒀지. 필요하면 카피해서 읽어 보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속마음 속이는 거, 나 별로 좋아하지 않아. 보고 싶다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어.”

손가락으로 메모리 카드를 튕기자 마치 암기처럼 빠르게 날아왔고, 도현은 눈앞에서 메모리 카드를 받아 냈다.

“한국엔 언제 돌아갈 텐가?”

도현은 부상당한 한석호와 유금찬을 둘러보며 답했다.

“일주일 정도 있다 가려고 합니다.”

“우리 때문인가? 보호해 주려고?”

“아닙니다, 선배님. 저도 상처가 깊지는 않지만 아물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뭐 그렇다면 좋을 대로 하게.”

한석호는 침대에 누우며 길게 숨을 토해 냈다.

“백 관장.”

“예, 선배님.”

“불 좀 꺼 주겠나?”

콰아앙!

주성하는 자신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검을 집어 던지며 속에 쌓인 분노를 표출했다.

“부엌칼을 쓰는 놈에게 쩔쩔매다니! 빌어먹을! 으아아아!”

고급스러운 사각 테이블을 뒤집어엎은 그는 그래도 성이 안 찼는지 눈에 보이는 모든 걸 깨부수기 시작했다.

값비싼 장식품과 인테리어 구성품들이 박살 났고 집안은 흉물스럽게 변해 갔다.

“하아, 하아.”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품에서 피에 물든 기예 잡술서를 꺼냈다. 도현의 부엌칼에 당한 가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책에 스며든 것이다.

한동안 책을 노려보던 그는 외공을 익히는 방법과 인체 혈도가 그려진 누런 종이를 한 장 한 장 자세히 보다가 어느 순간 더 읽지 못하고 겉표지만 남긴 채 책 속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병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혹시나 한 그는 말도 안 되는 외공 수련법에 욕을 해 댔다.

“역시 진짜는 이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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