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디 임팩트 6권 7화
발바닥부터 등까지 전신 36곳의 혈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머리를 제외한 그곳들을 책에서는 선천지기가 잠들어 있는 혈맥이라고 했다.
수련자를 때릴 때는 발바닥부터 시작해야 했고 마지막은 등에서 끝나야 했다.
정확히 가격하며 충격을 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매타작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숨 몇 번 쉴 동안에 전신 36곳의 혈도를 모두 자극해야 해서, 도현처럼 손이 빠르고 순간적으로 혈의 위치를 파악할 사람이 아니고는 거의 불가능했다.
“상당히 아플 거야.”
들고 있던 인체 혈도의 그림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도현이 말했다.
“괜찮아, 참을 수 있으니까. 강철 같은 피부를 얻을 수 있다면야, 흐흐.”
“시작하면 멈추지 않을 거야. 그리고 통증이 심하더라도 되도록 참고 움직이면 안 돼. 혈도 주변에 급소가 되는 신체 부위가 있어서 잘못 맞으면 위험해.”
도현은 목검 손잡이를 가볍게 말아 쥐고 용주 정면으로 걸어갔다.
자신만만하게 참을 수 있다고 장담을 한 용주는 그래도 긴장은 됐는지 침을 삼켰다.
“준비해.”
“응.”
용주가 왼쪽 발바닥을 들어 올리는 순간, 도현의 목검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왔다.
번쩍.
발바닥이 갈라지는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크아아아!”
왼쪽 발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껑충껑충 뛰던 용주는 도현이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뒤로 물러나려 하자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젠장! 이따위 거! 할 수 있어!”
용주가 눈물을 흘리며 오른쪽 발바닥도 도현이 때릴 수 있게 허공으로 올렸다.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더 늦기 전에 목검을 휘둘렀다.
짜악.
“허어어어억!”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고통이 발바닥을 거쳐 전신으로 퍼져 갔다.
뒤로 넘어질 듯 휘청거린 그는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우뚝 섰다.
도현은 친구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손을 멈출까 싶었지만 용주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하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할 수 없지.’
도현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발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책에서는 36곳의 혈도를 정해진 시간 내에 모두 다 자극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도현이 용주를 휘감아 돌았다.
사사사삭. 퍼퍼퍼퍽.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도현은 열 곳이 넘는 용주의 혈도를 자극했다.
“어어어어.”
입을 벌린 채 실성한 사람처럼 극심한 아픔을 견디던 용주는 다리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던 도현의 목검이 엉덩이를 거쳐 상체에 이르자 입술을 물어뜯으며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그래도 신음 소리가 절러 흘러나왔다.
‘마지막!’
도현이 날카로운 눈빛을 뿌리며 목검 끝으로 마지막 36번째 혈도를 자극했다.
쩌어엉.
얼었던 몸이 깨지는 소리가 환청처럼 용주의 머릿속을 관통했다.
앞으로 픽 쓰러진 용주는 도장 바닥에 엎드려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
“용주야,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좆도 아파. 시바. 흐흑.”
“잘 참았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텐데.”
도현은 서럽게 우는 용주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몸을 살폈다.
그가 정확히 때린 36곳의 혈도 부근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이렇게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잠깐 생각 좀 해 보고.”
한번 맞고 나자 용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무작정 두들겨 맞기에는 그 아픔이 너무 심했다.
그때 지하 도장 문을 열고 장철호가 스윽 들어왔다. 막노동을 하는 그는 오늘 일거리가 없어서 아침부터 도장을 찾은 것이다.
“너 팬티 바람으로 뭐 하는 거냐? 몸은 또 왜 그렇고?”
가까이 다가온 장철호는 도현의 손에 들린 목검을 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도현아, 아무리 화가 나도 친구를 왜 때려. 말로 해야지. 용주가 너 없을 때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형, 그게 아니라요.”
“이건 또 뭐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기예 잡술서 사본을 들여다보던 장철호가 사각턱을 매만졌다.
“내가 다 잘하는데 한자가 약해. 이거 뭐라고 쓰인 거야? 그림은 혈을 표시한 것 같은데.”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종이를 들여다보던 장철호의 눈빛이 강해졌다.
“가만, 여기 혈 자리하고 용주 몸에 있는 붓기하고 대략적으로 위치가 비슷해 보이는데? 너희들 뭐 하고 있었던 거냐?”
“네가 얘기해.”
용주가 슬쩍 떠넘기자 도현은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할 수 없이 기예 잡술서 얘기를 꺼냈다.
“홍콩에서 아는 사람에게 얻은 외공 수련법이라고?”
“네. 그런데 고서의 내용이 장난으로 써 놓은 건지 아니면 진짜 효과가 있는 건지, 장담하기 어려워요.”
“어떤 효과가 있는데.”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지고 괴력을 사용할 수 있대요.”
용주가 도복을 입으며 도현 대신 대꾸했다.
“강철과 괴력!”
장철호가 깜짝 놀라며 기예 잡술서 사본을 내려다봤다.
“그럼 너희들은 지금 외공을 수련 중이었다는 거야?”
“도현이는 아니고 저만요.”
“형, 관장실로 가요.”
도현은 얘기가 길어지자 관장실에서 한글로 번역해 놓은 기예 잡술서를 장철호에게 건넸다.
도현이 타 준 차를 마시며 묵묵히 글과 그림을 보던 장철호는 엉덩이가 아파서 일어서 있는 용주를 쳐다봤다.
“해 보니까 어때?”
“정말 아파요. 욕이 입에서 나올 정도로.”
“같이 배워 볼래?”
“예? 형이랑요?”
용주는 당황을 했다. 36곳의 혈도 중에는 장철호가 고통스러워하는 오른쪽 어깨 부위에 위치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형은 어깨 부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 아픔의 횟수가 조금 더 증가해도 내겐 문제가 안 돼. 그리고 여기 위치를 보니까 내가 수술한 어깨 부위하고는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고. 도현아, 괜찮겠지?”
도현은 선뜻 답을 못 했다.
“철호 형, 결과 없이 끝날 수도 있어요.”
“맷집은 좋아지겠지. 하루에 몇 번 맞는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낭비될 것 같지는 않고. 그리고 검술과 호심공을 익히는 데도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는 마음이 선 것 같았다.
도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용주를 쳐다봤다.
“계속할 거야?”
“나?”
36개의 혈도를 맞아 본 용주는 죽을 맛이었다.
“형, 정말 이거 배우고 싶어요?”
용주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장철호가 왼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사내 녀석이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같이 하자. 엉터리 책이면 어때, 참을성을 심어 주는 매라고 생각하면 되지.”
“형이야 격투하면서 맞는 데 이골이 났을지 모르지만, 전 아니거든요.”
“맞다 보면 익숙해져.”
“한번 맞아 보세요. 익숙해질 맛인지.”
“이 자식이, 형 말 못 믿네.”
장철호는 차를 비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훌러덩 벗고 팬티 바람이 된 그는 도장 한가운데 서서 도현에게 사내답게 말했다.
“쳐 봐.”
“철호 형.”
“어서!”
“후우, 왼쪽 발바닥 올리세요.”
도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목검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잠시 후, 장철호의 비명 소리가 도장 안을 가득 메웠다.
“아아아! 살살! 아아!”
“움직이지 마세요, 형!”
5층에 올라온 용주와 장철호는 시무룩한 얼굴로 창가에 섰다.
“사람 없어도 도장 안이 훈훈해야지. 히터 좀 틀어라.”
“그럴까요?”
용주가 어기적거리며 히터를 틀러 걸어갔다.
“용주야.”
“네, 형.”
“도현이 말이다. 참 냉정한 녀석이야.”
“가끔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죠.”
“일부러 세게 때린 것 같아. 외공 익힐 생각 말고 검술에 집중하라고.”
“의심이 되긴 해요.”
그들은 총 세 차례씩 도현에게 매를 맞았고, 줄지 않고 점점 깊어지는 진득한 아픔에 몸서리가 쳐졌다.
“포기할 거냐?”
“아니요. 갈 데까지 가 보려고요. 형은요?”
“물론 포기할 순 없지.”
대답을 한 장철호는 창문을 열고 아래에 대고 소리를 쳤다.
“홍영아, 영화 잘 보고 와! 도현이 너도!”
“고마워요, 오빠!”
홍영은 도현의 팔짱을 끼고 가다가 위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홍영은 오랜만에 도현과 둘만의 데이트를 하러 나가자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한집에 살면서도 설레는 표정이었다.
창문을 닫은 그는 용주를 쳐다봤다.
“넌 여자 친구 없냐?”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죠. 귀찮아서.”
“녀석.”
피식 웃은 장철호는 목검을 들러 가며 말했다.
“용주야.”
“예?”
“너희들 형에게 뭐 속이는 거 없지?”
“뭐, 뭘 속여요?”
뜨끔한 용주가 표정을 감추며 물었다.
“내가 도현이와 몇 년을 살아서 알아. 웃고 있지만 그 녀석 얼굴 뒤에 그늘이 져 있단 말이야.”
“그늘요?”
“그래, 그늘. 모른 척하고는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장철호가 걱정 깊은 눈빛으로 벽에 걸린 백남식 관장 사진을 바라봤다.
“명색이 그래도 형인데, 그늘이 있다면 거둬 줘야지 않겠냐?”
용주는 분위기에 취해 하마터면 태선군 얘기를 꺼낼 뻔했다가 얼른 말을 바꿨다.
“착각이에요, 착각. 그보다 형, 생각해 봤는데요, 도현이에게 매일 몸을 때려 달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우리끼리 해결해요.”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연습을 좀 해야 할 거야. 지금 우리 수준으로는 도현이만큼 36개의 혈도를 짧은 시간 안에 정확히 가격할 수가 없거든.”
“마네킹 사 올게요. 거기에 혈도 표시해 놓고 연습하죠 뭐.”
실제 그들 체형과는 다르겠지만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런데 철호 형, 솔직히 말해 봐요. 외공은 왜 배우려고 하는 거예요? 혹시, 격투기 다시 하고 싶은 거예요?”
장철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알아요 저도. 교통사고 때문에 재활 훈련 열심히 해서 격투계에 복귀했는데, 악랄한 그 자식 만나서 어깨가 완전히 끝장난 거요.”
“패한 거다.”
“그 자식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 나도 동영상 봤다고요. 생각 같아서는 쫓아가서 확!”
“스포츠다. 싸움이 아니고. 내가 패한 거야.”
장철호는 케이지 안에서 비참하게 뒹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격투기 다시 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오히려 그럴 몸 상태라도 되면 도현이하고 저, 둘 다 박수를 보내며 응원을 하겠죠. 형, 열심히 해 주세요. 검이든 주먹이든 호검술 도장 사람이 당하고 사는 꼴은 못 보겠어요.”
도현과 홍영은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있었다. 오후부터 눈이 내린다고 하더니 말없이 손을 잡고 고궁의 돌담길을 걷는 그들 사이로 흰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계에서의 눈도 이렇게 생겼죠?”
눈이 내리는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홍영이 물었다.
“달라요. 맞으면 아플 정도로 눈송이가 커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우박도 아니고.”
도현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조금 느리게 걸어요.”
그녀는 팔짱을 끼며 살며시 도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눈이 내리는 덕수궁 돌담길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뭐가요?”
도현은 걷는 속도와 보폭을 많이 줄이며 나직하게 물었다.
“용주 씨하고 철호 오빠요. 두 사람 다 고집이 세서 중간에 포기할 성격이 아니잖아요. 고생만 하다가 끝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요.”
“조금 지켜봐요. 의외로 좋은 결과가 기다릴 수도 있잖아요.”
“기예 잡술서를 믿어요? 그렇다면 도현 씨도 매를 맞아야겠네요?”
“그러고 싶은데 때려 줄 사람이 없어요. 홍영 씨가 때려 줄래요? 옷을 벗고 맞아야 하는데…….”
“그럼 같이 수련해요. 나도 맞아야겠어요.”
“네에?”
농담 삼아 말을 꺼냈던 도현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홍영의 몸을 향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이 붉어진 도현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더듬었다.
“나, 난 별로 익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홍영 씨도 배우지 말아요.”
홍영은 도현의 어깨에 기댔던 얼굴을 떼어 내며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약속해요. 효과가 없는 것 같으면 도현 씨가 나서서 두 사람을 말리기로요.”
“알았어요. 약속할게요.”
도현이 약속을 하자 그녀는 다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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