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디 임팩트 6권 13화
“뭐야, 너?”
“잘 탈게요.”
부우우웅.
서지철은 순간적으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다 점점 멀어지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보고서야 이해가 됐다.
“야 이 새끼야! 너 거기 안 서!”
절뚝거리며 골목을 뛰어 내려가던 그는 손에 든 마취 총을 도둑놈에게 겨냥하며 발사했다.
그러나 마취 총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꼼짝도 안 했다.
“빌어먹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왜 이 모양이야!”
그는 마취 총을 집어 던지며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 옆에서 달려오는 차 한 대가 그의 몸을 쳤다.
콰앙!
허공으로 붕 뜬 서지철의 몸이 차가운 도로 위로 떨어졌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그는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카우보이 할아버지
요즘 홍영의 일과 중 하나는 스톤과 관련된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스톤을 산다는 글을 세계 각지의 인터넷 공간에 올리긴 했지만 의미 있는 연락은 아직 없었다.
대신, 엉뚱한 돌을 사라며 사진을 첨부해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오늘도 그녀는 10여 군데에서 온 장난 이메일과 다른 돌을 사라고 제안하는 프랑스와 중국에서 온 이메일을 받았다.
불필요한 이메일을 삭제한 그녀는 새로 산 노트북을 덮고 관장실을 나왔다.
도현이 도장 한쪽에 단정히 앉아서 검 대신 손에 붓을 들고 화선지에 난을 치고 있었다.
깨달음을 얻고 내려온 도현은 하루 중 서너 시간은 저렇게 조용히 묵상하듯 앉아서 그림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 옆모습이 보기 좋아 홍영은 도현의 옆에 앉아 가만히 그림이 그려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림이 완성되자 도현은 붓을 놓고 홍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어때요?”
“쓸쓸해요. 난은 많지만, 저마다 외롭다고 소리치는 것 같아요.”
화선지 그림을 보며 홍영이 평가를 해 줬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성공했네요.”
빙그레 미소를 지은 도현은 오전부터 그린 서너 장의 그림을 모두 찢어 버리려고 했다.
“아깝게 왜 그래요?”
홍영이 얼른 그림을 빼앗았다.
“이번엔 안 돼요. 지난 열흘 동안 계속 버리는 걸 지켜봤지만 말이에요.”
“뭐하려고요?”
“잘 보관해야죠. 아니면, 우리 관원들에게 기념품으로 한 장씩 선물할 수도 있고요.”
“선물요?”
“네에, 선물요. 찢어서 버리느니 그게 차라리 낫죠. 안 그래요?”
“굳이 그럴 필요가.”
도현은 손을 뻗었다가 홍영이 지그시 노려보자 뻗었던 손을 도로 얌전히 내려놨다.
“앞으로 그림 찢지 마요. 알았죠?”
“……알았어요.”
“야! 도현아!”
지하 도장 문이 벌컥 열리며 용주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얼른 일어나.”
“왜 무슨 일 났어?”
도현이 벌떡 일어났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사람한테 연락이 왔어. 스톤이 있다고.”
“정말이야?”
도현의 표정이 환해졌다. 광고 글을 올린 지 3주 만에 제대로 된 연락이 온 것이다.
“돈 준비해서 오래. 지금 기다리고 있다고. 아, 그리고 돌이 조금 커서 옵션으로 100만 원은 더 받아야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지. 스톤이 300만 원이면 우리 입장에서는 사실 거저나 다름없지.”
흥분한 용주의 입에서 침이 마구 튀었다.
“잘됐어요. 정말 잘됐어요.”
홍영은 자신이 너무 낮은 가격으로 글을 퍼트려서 연락이 오지 않는 건 아닌지 내심 불안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가격을 일부러 낮춰서 내긴 했지만, 3주 동안 스톤을 판다는 사람이 없으니 그녀로서는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판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가자, 용주야.”
홍영을 도장에 남겨 둔 그들은 점심도 거르고 강원도 원주로 차를 몰아 달려갔다.
“일찍들 오셨군.”
커피숍에서 만난 중년 남성의 말에 용주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근데, 돌은?”
“여기 있소.”
배가 나온 중년 남성은 발밑에 놔둔 배낭에서 신문에 싼 애기 호박만 한 돌을 꺼냈다.
멍하니 돌을 내려다보던 용주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게…… 뭡니까?”
“돌.”
“돌인 건 아는데요, 아까 전화로 제게 말씀하신 돌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 돌인데?”
“장난치세요, 지금!”
용주가 흥분을 하자 옆에 앉은 도현이 말리며 중년 남성에게 차분히 말했다.
“선생님, 사진을 보셨으면 저희가 찾는 돌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아셨을 텐데요.”
“응? 이게 다르다고? 내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데. 여기 보라고. 당신들이 찾는 돌과 크게 다를 게 없잖아. 돌 표면에 여러 선들이 그려져 있고.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군.”
“서울에서 왔습니다. 찾는 게 있다고 해서 기쁜 마음에요. 선생님은 팔면 좋고 아니면 말고겠지만, 저희는 정말 기분이 불쾌합니다.”
도현의 묵직한 눈빛에 중년 남성은 그제야 눈치를 보며 마시던 커피를 홀짝였다.
“험, 미안해요. 내 돌도 괜찮은 것 같아서 한번 와서 보라고 한 거지 놀리려고 한 건 아니에요.”
“가자, 용주야.”
애써 실망감을 감춘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그러지 말고 100만 원에 줄 테니 살 생각은 없소?”
“이 아저씨가 정말!”
화를 참고 있던 용주가 몸을 돌려 중년 남성을 길게 노려봤다.
“여기 이 친구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 아세요? 다른 세상이었다면 아저씬 벌써 이 친구 손에 그냥!”
용주가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중년 남성이 주춤 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럼 10만 원에라도?”
“안 사요. 안 사!”
커피숍에서 나온 용주는 서울로 올라가며 분을 참지 못하고 담배를 뻑뻑 피워 댔다.
“미안하다. 괜히 기분만 띄워 놨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너무 신경 쓰지 마.”
“제길. 어쩌면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냐. 나보다 더 뻔뻔해. 진짜 강자야.”
도현은 차 속도를 내며 피식 웃었다.
“그만 잊어버리래도.”
“그래, 잊어버리자. 네 말 대로 잊자. 그 사람도 먹고살기 팍팍해서 그랬겠지.”
혼자서 분을 삭이던 용주는 휴대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원주 그 사람이었다.
“이 아저씨가 정말! 안 산다니까요!”
아무래도 당분간 용주는 그 사람을 잊기 힘들 것 같았다.
열세 살 샘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문양이 그려진 돌의 사진을 이리 보고 저리 보다가 방을 뛰어나왔다.
“엄마! 엄마!”
주방에 앉아 다음 달에 낼 각종 공과금을 걱정하던 제시카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제 방에 가요.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샘은 엄마의 손을 잡고 급히 2층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보면 알아요. 얼른요.”
엄마를 재촉해 2층 방에 온 샘은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여 줬다.
“보세요, 엄마. 한국에 있는 어떤 사람이 여기 사진과 같은 돌을 2,000달러나 주고 산대요. 상태와 크기에 따라 옵션도 붙어 있고요. 엄청나지 않아요?”
아들의 호들갑에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아들이 자주 가는 취미 생활 사이트 게시판에 누군가 장난스럽게 올려놓은 글이었다.
“그래서?”
“엄마, 무려 2,000달러라고요.”
“그래. 지금 우리 사정에 2,000달러는 큰돈이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 돌을 찾으러 산이라도 들어갈까? 응?”
제시카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넌 돈 걱정 말고, 지금처럼 잘 커 주면 돼. 알았지?”
“아니 엄마, 그게 아니라요, 우리에게 이 돌이 있다니까요.”
“저런 돌이 있다고? 우리 집에?”
제시카가 고개를 갸웃하며 팔짱을 꼈다.
“어디서 봤니?”
“카우보이 할아버지 상자에서요. 잠깐만요.”
샘은 후다닥 지하실로 내려가 낑낑대며 무거운 나무 상자를 안고 왔다.
먼지가 가득 옷에 묻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상자를 열어 안을 뒤적였다. 안에는 선조인 카우보이 할아버지가 남겨 놓은 100년도 넘은 오래된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찾았다!”
샘은 야구공만 한 돌을 찾아서 흔들었다.
“봤죠? 우리 집에 있잖아요.”
제시카는 아들의 손에서 돌을 받아서 자세히 살펴봤다.
겉이 볼링공처럼 매끈하고 표면에는 알 수 없는 선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카우보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오래된 선조를 좋아하지 않았다. 죽은 남편의 선조인 그는 아주 오래전, 인디언들을 학살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었다.
어쩌면 이 돌은 그 선조가 인디언들을 학살하며 그들의 땅에서 빼앗은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상자 안에 것은 그가 남긴 유품이었으니까.
“우리 이 돌을 팔아요! 좋은 기회잖아요!”
“난 별로 팔고 싶지 않은데?”
“네? 왜요?”
샘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엄마는 이 할아버지를 싫어하지만 넌 좋아하잖니. 그래서 그분이 남긴 이 상자 안의 물건들도 다 기억하는 거고.”
“엄마, 괜찮아요. 난 그 돌 관심도 없다구요.”
“정말이니?”
“네! 팔아서 엄마 필요한 데 쓰세요. 단, 100달러만 제게 용돈으로 주시구요.”
“요 녀석, 결국은 용돈이 필요했던 거구나!”
제시카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이 죽고 생활이 어렵다 보니 늘 돈에 치여 살았다.
“엄마가 용돈을 줄 테니까, 이 돌은 그냥 가지고 있어. 용돈이 필요해서라면 굳이 이럴 필요 없다.”
“아니에요. 저 정말 이 돌 필요 없어요. 도대체 제가 이 돌로 뭘 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선조가 남긴 돌을 손에 들고 잠시 갈등을 하던 그녀는 아들의 책상에 앉아 다시 한 번 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사진들을 확인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사진 속 돌은 그녀의 손에 있는 돌과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처음엔 누가 장난으로 올린 글인 줄 알았는데, 그녀 손에 같은 돌이 들려 있자 진심으로 누군가 이 돌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어서 판다고 메일을 보내세요. 다른 사람이 먼저 판다고 하면 큰일이잖아요.”
“알았으니까 재촉 좀 하지 마!”
엄마가 언성을 높이자 샘은 입을 다물고 옆에 서 있었다.
“얼마에 판다고 할까?”
“2,000달러요.”
“샘.”
“너무 비싸게 부르면 안 산다고 할 수도 있어요.”
“3,000달러.”
제시카가 큰 결단을 내리듯 말하자 샘이 딸꾹질을 했다.
“안 사면요.”
“그때 2,000달러에 팔면 되지.”
생긋 웃은 제시카는 디지털카메라로 카우보이 할아버지가 남긴 돌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다음, 이메일에 첨부를 해서 전송했다.
“자, 다 됐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녀는 아들을 보며 말했다.
“샘, 연락이 안 온다고 실망하기 없기! 알았지?”
“장난일 리 없지만, 알겠어요, 엄마.”
엄마가 내려가자 샘은 얼른 자리에 앉아 다시 이메일을 작성해 보냈다.
-3,000달러가 비싸면, 2,000달러도 가능합니다. 꼭 사 주세요. 전 한국도 좋아합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샘과 제시카는 미국 서부 시애틀까지 날아온 동양인 남녀와 마주했다.
“안녕. 네가 한국을 좋아한다는 샘이구나.”
도현이 빙그레 웃으며 한국에서 가지고 온 기념품을 내밀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호태식이 병문안을 왔지만 서지철은 알은체도 안 하고 TV만 시청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다 살아났다. 머리 수술도 하고, 갈비뼈도 여러 개 나가고, 다리에는 철심도 박았다.
앞으로 한 달은 더 병원에서 꼼짝도 못할 형편이었다.
“오늘도 제게 말씀 안 하실 겁니까?”
호태식은 자신이 가지고 온 과일 바구니 안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깨물어 먹었다.
“이만하길 다행이에요. 까딱하면 형님하고 다시는 술도 못 마실 뻔했어요.”
“그만 염장 지르고 나가라.”
“이제야 말씀하시네.”
호태식이 서지철 앞에 섰다.
“형님, 이제 아셨죠? 백 관장하고 얽혀서 좋은 꼴 못 본다니까요. 제가 그랬잖아요. 위험한 사람이라고.”
“니가 더 위험한 놈이야. 넌 내 사기를 계속 떨어트리고 있어. 빌어먹을 자식.”
서지철이 TV에서 시선을 떼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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